1677년 9월 11일, 영국의 철학자이자 작가 제임스 해링턴 (James Harrington / Harington, 1611 ~ 1677) 별세
제임스 해링턴 (James Harrington / Harington, 1611년 1월 3일 ~ 1677년 9월 11일)은 영국 내란기의 정치철학자이다.

– 제임스 해링턴 (James Harrington / Harington)
.출생: 1611년 1월 3일, 영국 업턴
.사망: 1677년 9월 11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국적: 잉글랜드
.부모: 제인 샘웰, Sir Sapcote Harington
.연인: Dayrell
.주저: The commonwealth of oceana (1656)
내란시에는 중립을 유지하였으나, 왕정복고 후에 투옥되었고 석방 후에는 광인이 되어 죽었다.
주요저서 「오세아나공화국」 (The commonwealth of oceana, 1656)은 일종의 유토피아를 묘사하고 있는데 각종 통치 형태에 관한, 계산 제도와 연관된 과학적인 분석을 포함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그는 특히 공화제를 장려하였다.
또한 균형있는 중산적인 소유를 토대로 하여 권력분립과 광범위한 선거제 등을 주장하였으며, 후대의 정치사상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 생애 및 활동
「오세아나 공화국」 (Commonwealth of Oceana) 의 저자 제임스 해링턴 (James Harrington)은 격동의 세기인 17세기의 인물이었다. 이때의 영국은 혁명의 와중에 있었고 청교도 혁명 (Puritan Revolution)을 거쳐 호국경의 시대 (The Protectorate)를 겪은 뒤 왕정복고 (The Restoration)에 이르는 동안 공화주의를 비롯한 많은 사상이 분출하였다.
17세기 공화주의의 사상으로 당시에 많은 명성을 얻었던 해링턴은 18세기 이후 잊혀졌다가 1941년 토니교수 (R. H. Tawney)에 의해 British Academy의 강연에서 “혁명의 원인을 사회·경제적으로 분석한 인물”이라는 평을 받으면서부터 학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영국학계에는 젠트리 논쟁 (storm over the gentry)의 태풍이 밀어 닥쳤으며 혁명의 성격과 원인의 규명, 공동체에 대한 연구등 많은 학문적 성과가 이루어졌다.
헤링턴에 대한 연구와 평가의 방향은 크게 세갈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토니처럼 “혁명의 動因을 사회·경제적으로 분석한 뛰어난 관찰력을 지닌 인물”로 보는 것이고 다음은 포코크 (J. G. A. Pocock)처럼 “이탈리아의 시민적 휴머니즘(civic humanism)과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를 영국에 도입한 봉건주의 史家”로서 해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맥퍼슨 (C. B. Macpherson)은 “헤링턴은 부르즈와지의 개념을 파악하고 시장경제의 원리를 알고 있었던 인물”이라고 해석하였다.
헤링턴의 공화주의론에 있어서 가장 독창적인 요소는 기존의 폴리비우스의 정체순환론을 영국의 현실에 적용한 것이다. 그는 권력은 재산 (property)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보았고 재산의 소유 형태에 따라 토지가 일인에게 있으면 군주정치 (monarchy), 소수에게 있으면 귀족정치 (aristocracy), 다수에게 있으면 민주정치 (democracy)가 되며 각각의 정치가 타락하게 되면 전제정치, 과두정치, 무정부상태의 모습을 지니면서 이러한 정체는 재산의 소유형태에 따라 순환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는 이를 좀더 발전시켜 재산균형이론 (the theory of balance of property)에 의지하여 당시의 영국은 헨리 7세 이후의 토지 소유의 변화에 따라 귀족에게 있었던 권력이 인민에게로 넘어오게 되었고 그래서 왕, 귀족, 인민에 의한 혼합군주정 (mixed monarchy)의 상태에 있었으나 토지가 인민의 수중으로 넘어간 이후에도 군주제의 체제를 계속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토지의 소유계층과 권력의 소유계층의 불일치상태가 내란을 일으키게 된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헤링턴은 항구적이며 안정적인 이상공화국의 수립을 생각하였고 그러한 이상적인 국가의 토대로서 관직교체, 비밀투표, 農地法 (agrarian law), 그리고 권력분립의 4가지를 기본 원리로 제창하고 그 중에서도 농지법과 관직교체를 이상적이고 공평한 공화국 (equal commonwealth)을 이루는 데 가장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이같은 이론의 전개를 위하여 역사상의 사례를 수집하여 분석하는 귀납적인 방법을 썼다. 이스라엘 공화국, 스파르타, 로마, 베네치아공화국등이 그가 가장 많이 인용하는 공화국이었고 특히 로마에 대한 관심이 높았는데, 이는 마키아벨리에 크게 영향받은 때문이었다.
그의 저서「오세아나 공화국」(The Commonwealth of Oceana)은 이러한 이상국가 즉 유토피아의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그러나 오세아나는 바로 영국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는 영국의 문제를 파악하여 그 문제의 해결점을 가상의 공화국을 내세워서 치유코자 한 정치적 유토피아이자, 고대의 법과 질서와 제도로의 복귀로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의도하에 쓰여진 것이다.
「오세아나 공화국」을 모델로 한 헤링턴의 공화주의의 실험은 그의 지지자인 공화주의파들-이를 포코크는 신헤링턴파 (neo Harringtonian)라고 명명하였는데-에 의하여 활발히 전개되었다.
왕정복고하에서 공화주의를 부활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저술과 팜프렛등을 통하여 표출되었고 이러한 공화주의는 18세기 대서양의 공화주의에, 그리고 대륙의 프랑스에 영향을 미쳤다.
「오세아나공화국」을 통해서 나타나는 그의 정치사상의 요점은 다수 인민이 그들의 토지 소유로 인해 주권자가 되는 공화국은 재산의 균형위에 수립됨으로써 안전하고 완전한 공화국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원리를 영국의 현실에 적용시키고자 노력했다는 점에서 공화주의에 입각한 현실적 공화주의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주요저서
제임스 해링턴 (James Harrington / Harington, 1611 ~ 1677)의 주요저서 『오세아나 공화국 The commonwealth of oceana, 1656)』은 이상국가, 즉 유토피아의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또한 유토피아주의자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오세아나는 바로 영국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이는 당시 큰 혼란을 겪고 있는 영국의 문제를 파악하여 문제들을 가상의 공화극을 내세워서 치유코자한 정치적 유토피아이자, 고대의 법과 질서와 제도로의 복귀를 통하여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의도하에 쓰여진 것이다.
따라서 헤링턴의 정치사상은 고전적 공화주의자들의 이론과 시민적 휴머니즘의 이론을 영국의 현실에 적용시켜 참된 공화국으로서의 영국을 그려내고자 했다는 점에서 공화주의에 입각한 현실적 공화주의자로서의 헤링턴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한 헤링턴의 모습은 그의 생존시의 동조 세력인 헤링턴파 (Harringtonian)와 18세기 초의 신헤링턴파 (neo-Harringtonian)에 의한 공화주의의 실현 운동에 의하여, 그리고 18세기의 대서양과 프랑스의 공화주의에 끼친 영향력 등으로 증명이 될 것이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