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7년 3월 30일, 프랑스의 유명한 공병장교•건축가 세바스티앙 르 프레스트르 드 보방 (Sébastien Le Prestre, Seigneur de Vauban, 1633 ~ 1707) 별세
세바스티앙 르 프레스트 르, 세뇨르 드 보방 (프: Sébastien Le Prestre, Seigneur de Vauban, 1633년 5월 15일 ~ 1707년 3월 30일)은 프랑스의 군인이다.
원수, 작위는 후작. 일반적으로 보방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 세바스티앙 르 프레스트르 드 보방 (Sébastien Le Prestre, Seigneur de Vauban)
.출생: 1633년 5월 15일, 프랑스 왕국 생레제드푸셰레스 (現 부르고뉴프랑슈콩테레지옹 생레제보방)
.사망: 1707년 3월 30일, 프랑스 왕국 파리
.복무국가: 프랑스 왕국
.최종계급: 프랑스 원수
.주요 참전: 프롱드의 난, 상속 전쟁, 9년 전쟁, 카마레 전투, 프랑스-네덜란드 전쟁,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기타 이력: 릴의 지사 (1668 ~ 1707년), 요새건설총감 (1678 ~ 1703년)
세바스티앙 르 프레스트르 드 보방 (Sébastien Le Prestre de Vauban, 1633 ~ 1707)은 루이 14세 치하 프랑스의 군인이자 당대 최고의 군사 공학자다.
그는 요새 설계와 공성전 전술을 혁신하여 ‘근대 공성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그가 구축한 방어 체계는 이후 100년 넘게 유럽 군사 건축의 표준이 되었다
보방은 당대 가장 뛰어난 공병이자 요새 (fortifications) 설계와 공략 양쪽에서 자신의 뛰어난 능력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또한 루이 14세에게 조언하여 프랑스 국경을 강화했고, 직접 방어시설을 만들었다.

○ 생애 및 활동
세바스티앙 르 프레스트 르, 세뇨르 드 보방 (프: Sébastien Le Prestre, Seigneur de Vauban)은 1633년 5월 15일, 프랑스 왕국 생레제드푸셰레스 (現 부르고뉴프랑슈콩테레지옹 생레제보방)에서 출생했다.
보방은 프랑스 왕국 부르봉 왕조 시대의 귀족, 장군, 엔지니어이다.
특히 루이 14세 치세 동안에 프랑스 북서부 국경에 많은 요새를 축조하여 프랑스군이 전략적으로 우세를 가지게 하는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초창기에는 프랑스의 권신이었던 푸케의 가신 중 하나였으나 그의 유능함을 눈여겨본 루이 14세에 의해 푸케가 실각하는 와중에도 재등용되었다.
이후로 그는 프랑스군의 재편성에 도움을 주어 수많은 전쟁에서 프랑스군이 우세를 차지하여 현재의 프랑스 국경을 확립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특히 7년 전쟁 동안에는 그가 프랑스 국경에 빽빽하게 축조한 요새가 진가를 발휘하여, 프랑스 국토가 신성 로마 제국 연합군에게 탈탈 털리는 와중에 연합군의 보급로를 끊어버려서 그나마 스페인에 들어선 부르봉 왕조가 유지되는 것으로 협상하는데에 성공한다.
한국에서는 특이한 생김새로 유명한 별모양 요새 (star fort)를 고안해낸 인물처럼 알려져 있어 별 모양 요새를 보방식 요새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만 실제로는 별모양 요새는 보방보다 훨씬 이전에 이탈리아에서 고안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가 프랑스군에 기여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요새 축조의 경험을 통해 공병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현대적인 공병조직과 교육의 기초를 닦았다.
또 성형요새에 대응하는 공성교리, 특히 포병 조직과 전술의 개선에도 기여했으며, 프랑스 군에 오늘날에도 사용되는 소켓방식의 총검을 도입한 것 역시 그의 업적이다.
그의 관심은 군대에만 국한된 것 역시 아니었다.
요새 축조 지식은 다른 토목공사에도 응용될 수 있는 것이었고, 그는 이를 도로, 운하와 항구 건설에도 활용했다.
그리고 다시 이러한 사업 과정에서 경험한 재무, 특히 조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프랑스의 재정 적자를 타파하기 위해 귀족과 같은 특권계급에 대한 면세제도 철폐를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통계학의 발전에 기여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는 당시 귀족 계층의 호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던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고 결국 채택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때 손보지 못한 프랑스의 재정 적자 문제는 결국 프랑스 혁명의 주요 원인이 되고 만다.
세바스티앙 르 프레스트 르, 세뇨르 드 보방 (프: Sébastien Le Prestre, Seigneur de Vauban)은 1707년 3월 30일, 프랑스 왕국 파리에서 별세했다.

○ 요새
1667년과 1707년 사이 보방은 약 300개 도시의 요새를 업그레이드 했다.
거기에는 앙티브 (Antibes, 카르 요새), 아라스 (Arras), 옥손 (Auxonne), 바로 (Barraux), 바욘 (Bayonne), 벨포르 (Belfort), Bergues, 브장송 요새, Bitche, Blaye, 브장송, 부용, 칼레, 캉브레, Colmars-les-Alpes, 콜리우르 (Collioure), 두에 (Douai), 앙트르보 (Entrevaux), 지베 (Givet), 그라블린 (Gravelines), 엔다예 (Hendaye), Huningue, 주 (Joux), 켈 (Kehl), 란다우 (Landau), 르 팔레 (Le Palais)(벨릴; Belle-Île), 라 로셸 (La Rochelle), 르 케누아 (Le Quesnoy), 릴, 뤼지냥, 뤽상부르, 마스트리흐트, 멘츠, 몽-도팽, 몽-루이, 몽메디, 나뮈르, 뇌프-브리작, 로크루아, 스당, 베르됭, 이프르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37개의 새로운 요새와 요새화된 군사 항구 건설을 지도했는데, 앙블레퇴즈 (Ambleteuse), 브레스트, 됭케르크, 로슈포르, 툴롱 등이 포함되어 있다.
보방의 축성술은 이후 100년 넘게 유럽 전역의 군사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세바스티앙 르 프레스트르 드 보방 (Sébastien Le Prestre de Vauban)이 설계한 ‘보방의 요새 시설 (Fortifications of Vauban)’은 17세기 프랑스 루이 14세 시대의 뛰어난 군사 건축 기술을 보여주는 유적지다.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프랑스 국경을 따라 설치된 12개의 요새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 주요 업적 및 특징
요새 건축의 대가: 평생 동안 약 33개의 새로운 요새를 건설하고 300개 이상의 기존 요새를 개보수했다. 그의 설계는 지형에 맞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어 체계가 특징이다.
공성 전술 혁신: 적의 요새를 함락시키기 위해 평행호 (Parallel trenches)와 포위망을 사용하는 체계적인 공격법을 고안했다. 이 전술은 아군의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확실한 승리를 보장했다.
다방면의 개혁가: 군사 분야 외에도 통계학을 활용한 경제 논문인 La Dîme royale를 저술하여 조세 제도의 공정성을 주장하는 등 사회 개혁에도 앞장섰다.
군사 행정 및 기술: 프랑스 왕립 공병단 (Corps royal des ingénieurs militaires)을 창설하여 전문 인력을 양성했으며, 총구에 직접 끼워 사격과 근접전을 동시에 가능케 한 소켓형 총검을 발명했다.
○ 역사적 유산
UNESCO 세계유산: 프랑스 전역에 흩어져 있는 그의 요새들 중 12곳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방의 요새들 (Fortifications of Vauban)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보방의 주요 12 요새는 다음과 같다.
– 요새 명칭 (위치) 특징
아라스(Arras) 도시 방어를 위한 전형적인 시타델
브장송(Besançon)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진 강력한 성채
블레-퀴삭(Blaye-Cussac) 지롱드 강 입구를 지키는 전략적 요새
브리앙송(Briançon) 산악 지형을 극대화한 고산 요새 도시
카마레 쉬르 메르(Camaret-sur-Mer) 해안 방어를 위한 전함 형태의 탑
롱위(Longwy) 보방이 구상한 이상적인 ‘신도시’ 형태의 요새
몽-도팽(Mont-Dauphin) 알프스 길목을 지키기 위해 새로 건설된 요새
몽-루이(Mont-Louis) 피레네 산맥의 국경 방어 거점
뇌프-브리작(Neuf-Brisach) 보방 축성술의 정수로 불리는 완벽한 8각형 요새
생-마르탱-드-레(Saint-Martin-de-Ré) 섬 전체를 요새화한 해상 방어 기지
생-바-라-우그(Saint-Vaast-la-Hougue) 노르망디 해안의 관측 및 방어탑
빌프랑슈-드-콩플랑(Villefranche-de-Conflent) 산맥 사이의 좁은 계곡을 통제하는 요새
명예로운 안식: 그의 심장은 나폴레옹 1세의 명령에 따라 파리의 앵발리드 (Les Invalides)에 안치되어 국가적 영웅으로 대우받고 있다.

○ 저서
17세기 프랑스의 전설적인 군사 공학자이자 원수였던 세바스티앙 르 프레스트르 드 보방 (Sébastien Le Prestre de Vauban)은 축성술과 공성술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개혁에 관한 다양한 저술을 남겼다. 그의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 군사 및 축성 분야
보방의 가장 핵심적인 업적으로, 사후에 정리되어 출판된 경우가 많다.
《공성 및 축성법 (De l’attaque et de la défense des places)》: 1705 ~ 1706년경 집필된 그의 대표작으로, 요새를 공격하는 효율적인 방법과 방어하는 전략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요새 축성의 새로운 방법 (The New Method of Fortification)》: 보방의 축성 원칙을 설명한 책으로, 유럽 전역에서 성곽 설계의 표준으로 활용되었다.
《공성 지휘 지침서 (Mémoire pour servir d’instruction dans la conduite des siéges)》: 실전에서 공성전을 수행할 때 필요한 구체적인 지침을 담은 매뉴얼이다.
- 경제 및 사회 개혁 분야
보방은 군사 전문가를 넘어 국가 시스템 전반에 관심이 많았던 개혁가이기도 했다.
《왕실 십일조 프로젝트 (Projet d’une dixme royale)》: 1707년 익명으로 출판된 그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저서다. 당시 프랑스의 복잡하고 불평등한 세금을 폐지하고, 신분과 관계없이 모든 소득의 10%를 세금으로 내는 보통세 도입을 주장했다. 이 주장은 당시 기득권의 반발을 사 루이 14세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 기타 저술 (Oisivetés)
보방은 공직 생활 틈틈이 쓴 수많은 원고를 《여가 (Les Oisivetés)》라는 제목의 총서로 묶었습니다. 이 안에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
운하 및 내륙 항법 경로에 관한 연구
돼지 사육 및 임업 등 농업 발전 제안
위그노(신교도)의 추방 반대 및 관용 정책 건의
식민지 관리 및 국제 관계에 대한 전략적 제안
보방의 저서들은 단순한 군사 기술서를 넘어 현대의 일반 과세 기법이나 도시 공학의 기초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