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8년 8월 21일, 프랑스의 역사가 쥘 미슐레 (Jules Michelet, 1798 ~ 1874) 출생
쥘 미슐레 (Jules Michelet, 1798년 8월 21일 파리 ~ 1874년 2월 9일 예르)는 프랑스의 역사가이다.

– 쥘 미슐레 (Jules Michelet)
.출생: 1798년 8월 21일, 파리
.사망: 1874년 2월 9일, 예르
.국적: 프랑스
.부모: Jean-François Furcy-Michelet (부)
.배우자: 아테나이스 미슐레 (1849 – 1874), Pauline Rousseau (1824 – 1839)
.동거인: Françoise Adèle Poullain-Dumesnil
.자녀: Adèle Michelet, Charles Michelet, 이브장라자르 미슐레
.직업: 역사가, 아키비스트, 작가, 일기 작가, 교수, 역자, 철학자
.학력: 리세 샤를마뉴 (1812 – 1816)
.사조: 낭만주의
.수상: Concours général,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스승: Abel-François Villemain, 프랑수아 기조
.주요 작품: Histoire de France
자유주의자이자 반교권주의자이던 미슐레는 19세기의 위대한 역사학자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폴 베니슈에 따르면 “낭만주의 시대 가장 위대한 창작자들” 가운데 하나이지만, 오늘날에는 그 평가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특히 그가 “민족 소설”의 한 거대한 부분으로서의 역사 저술을 낳았다는 측면에 있어서, 20세기 후반 들어서 발전한 역사학은 미슐레에 의문을 제기했다.
미슐레는 또한 많은 수필과 풍습에 관한 저작들을 저술했는데, 이 중 몇 저작들로 인해 교회와 정치 권력과 대적하게 되었다.
미슐레의 작품들 가운데 당대 가장 유명한 것은 <프랑스사 Histoire de France>이며, 그 다음으로는 아마도 <혁명사 Histoire de la Révolution>가 뒤따를 것이다.

○ 생애 및 활동
쥘 미슐레 (Jules Michelet)는 1798년 8월 21일,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했다.
쥘 미슐레의 아버지는 편집장으로, 쥘은 언론계에서 실질적인 일을 하며 아버지를 도왔다.
한 업체에서 쥘에게 관련 국가직을 제안하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명문의 샤를마뉴 학원에 입학시킬수 있었고, 그곳에서 쥘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821년에 대학고시에 합격한 후, 곧 그는 롤랑 대학에서 역사학 교수직으로 임명받았고, 그 후 1824년에 그는 결혼을 했다.
이 당시는 프랑스에서 학자 및 문인들에게 가장 유리한시기 중 하나였으며, 미슐레는 막강한 후원자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공화주의와 독특하고 다양한 낭만적인 자유 사상을 받아 들인 그는 열렬한 정치인 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과거의 역사에 대한 탐구자이자 문인이었다.
그의 초기 작품은 학교 교과서들이다.
미슐레는 소르본과 콜레즈 드 프랑스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프랑스사 (史)> (1833-1867) 17권과 <프랑스 혁명사> 7권 (1847-1853)을 비롯해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쥘 미슐레 (Jules Michelet)는 1874년 2월 9일, 예르에서 별세했다.
“대리석을 통하여 인간을 느낀다”란 말에 상징되어 있듯이 미슐레는 실증적인 자료의 조사를 통하여 과거의 역사를 산 것으로 부활시키려 했다.
같은 시대의 역사가에는 기조 (Guizot), 토크빌 (Tocqueville), 키네 (Quinet)가 있으며 역사와 문학 이외의 면에서도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역사관
역사주의를 프랑스에 소개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독일에서 처음 생성된 역사주의는 모든 가치, 이데올로기와 지식이 당시 역사적 배경, 환경과 불가피하게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역사철학적 개념이다.
역사주의는 가치의 상대성을 옹호하고 보편적인 잣대의 존재를 부정했다.
따라서 역사주의자들에 따르면 역사가가 과거를 현대 관점으로 보아 비판하거나, 역사가 일률적인 패턴을 따른다는 목적론적인 접근을 하는 것을 자제해야 하고,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개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실제 미슐레는 글을 다음 세대의 지배적인 사조인 실증주의 역사관에 비해, 때로는 과하게 시적으로 글을 썼다.
또 사료에 상징성을 부여하기를 즐겨해 본래 의미를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 평가
농촌 출신의 어머니와 인쇄업을 했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소년기에 나폴레옹의 언론 탄압으로 가업이던 인쇄소 문을 닫고 시련을 겪었다.
뛰어난 학창 시절을 거쳐 이십대 초반에 교수자격을 얻었다.
국립문서보관소에서 근무했고 고등사범학교와 소르본,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를 역임했다.
그가 30여 년에 걸쳐 집필한 『프랑스 역사』는 사학사의 역작이자 기념비로 꼽힌다.
그 밖에 방대한 『프랑스 혁명사』, 『로마사』 등 수많은 걸작을 남겼고, 잠바티스타 비코의 『새로운 학문』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등 왕성한 학문 활동을 펼치며 역사와 문학을 넘나드는 아름다운 문체로 역사의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언제나 사회 모순을 직시하고 대안을 제시해온 지식인으로서 그는 늘 민중의 입장에 굳건히 서서 역사를 바라보았는데, 그 결과가 바로 『민중』이다.
이 책은 역사가로서의 통찰에 더해 노동자로서 미슐레 자신의 경험, 그리고 수많은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쓴 역사와 문학, 사회학의 총체이다.

○ 저술
- 영향
미슐레는 오로지 계몽시대의 철학 저술에만 취향이 있는 듯 보인다. 로크 (그의 라틴어 논문), 콩도르세, 데이비드 흄 등. 그러나 그를 계몽시대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 가운데는 볼테르와 몽테스키외도 있었다)로 이어주는 이 분명해 보이는 지적 영향 관계를 넘어서, 다른 철학자들 역시 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나 라이프니츠가 그러하다.
- 주요 저서
프랑스의 역사 (1833년-1867년)
프랑스 혁명사 (1847년-1853년)
르네상스 역사 (1855년)
- Bibliography
Michelet, Jules. The History of the French Revolution (Charles Cocks, trans., 1847) online
Michelet, Jules (1844). The History of France. Trans. by W. K. Kelly (vol. 1–2 only).
Michelet, Jules. On History: Introduction to World History (1831); Opening Address at the Faculty of Letters (1834); Preface to History of France (1869). Trans. Flora Kimmich, Lionel Gossman and Edward K. Kaplan. Cambridge, UK: Open Book Publishers, 2013.
History of France v 1 English translation
History of France v 2 English translation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