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 1월 21일, 미국의 치과의사•마취제 발명가 호레이스 웰스 (Horace Wells, 1815 ~ 1848) 출생
호레이스 웰스 (Horace Wells, 1815년 1월 21일, 미국 버몬트 하트퍼드 ~ 1848년 1월 24일, 미국 뉴욕 뉴욕)는 치과에서 마취의 사용, 특히 아산화질소의 사용을 개척한 미국 치과의사이다.

– 호레이스 웰스 (Horace Wells)
.출생: 1815년 1월 21일, 미국 버몬트주 하트퍼드
.사망: 1848년 1월 24일, 미국 뉴욕주 뉴욕 Manhattan Detention Complex
.묘지: 미국 코네티컷 하트퍼드 시더 힐 묘지
.직업: 치과의사
.배우자: Elizabeth Wales
.업적: 마취제 발명
마취술의 발견은 현대의학 특히 외과학이 지금과 같은 지위와 명성을 얻을 수 있게 하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사건이다. 이로써 외과 의사들은 심각한 통증 없이도 다양한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인류는 질병의 고통과 치료에 따르는 통증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견이 있고 그것이 임상에 안전하게 적용되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인류는 일찍부터 아편과 알코올의 진통작용을 잘 알고 있었고 이런 약재를 적절히 사용하기는 했지만, 사람의 의식까지 마비시킬 수 있는 전신마취의 기술은 가지고 있지 못했다.
1795년 토마스 베도스라는 영국의 의사가 산화질소를 흡입해본 결과 기분이 좋아지고 근육이 이완되는 현상을 발견해 이를 ‘웃음가스’로 명명해 유명해지지만, 의료적 가치는 크지 않았다. 그보다는 호사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사람들을 초대해 이 가스를 흡입시키는 웃음잔치가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이 가스를 처음 의료에 적용한 사람은 미국의 치과의사인 호러스 웰즈 (Horace Wells)였다. 그는 1844년 산화질소를 흡입한 상태에서 자신의 치아를 발거하는 수술을 받은 다음 이제 발치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 효과는 사람에 따라 일정치 않았고 의료계는 그를 불신의 시선으로 대했다. 이런 속에서 그는 정신병에 걸려 비극적인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다.

○ 생애 및 활동
호레이스 웰스 (Horace Wells, 1815 ~ 1848)는 1815년 1월 21일, 미국 버몬트주 하트퍼드에서 출생했다.
웰스는 1834년에 보스턴에서 2년간의 치의학 수습을 시작했고, 1836년 4월 4일에 자신의 진료실을 열었다.
웰스는 1844년 12월 10일, 아내와 함께 가드너 퀸시 콜튼의 ‘아산화질소 공연’을 관람하였다.
당시 사무엘 A. 쿨리는 아산화질소를 마시고 취한 뒤 나무 벤치에 부딪혔는데,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자신이 다쳤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이를 관찰한 웰스는 다음날 아산화질소의 영향 아래에 조수 리그즈에게 이를 뽑혔고, 이 과정에서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이후로 약 12명 이상의 환자에게 실험한 뒤 확신을 가지게 된 웰스는 발견을 널리 알리기 위해 1845년 1월 보스턴으로 향한다.
그는 1845년 1월 말 보스턴의 의과대학생들 앞에서 한 지원자에게 아산화질소를 공급한 뒤 이를 뽑는 시연을 보였다.
하지만 아산화질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원자는 고통을 호소했다.
웰스는 다음날 집으로 돌아왔고, 한동안 치과의 일을 중단하고 다른 일거리를 찾아다녔다.
같은 해 9월에 진료실 재개업을 했지만, 11월에 진료실을 닫았으며 이후 치과의 경력을 완전히 그만두었다.

1846년 10월 16일, 예전 조수이자 사업 동료였던 윌리엄 T. G. 모턴이 에테르로 환자를 마취하고 존 콜린스 워렌이 환자의 종양을 제거한, 에테르 마취의 첫 공개 시연을 보이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웰스는 신문사에 편지를 쓰고, 파리 국립 의학 아카데미에 찾아가는 등 자신을 마취의 발견자 자리에 놓기 위해 노력했지만, 큰 성과를 내지는 못하였다.
클로로포름과 에테르를 남용하던 웰스는 1848년 1월 21일, 클로로포름의 영향 아래 길거리로 나가 산책을 하던 여성에게 황산을 던졌다.
웰스는 곧 경찰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1월 23일 밤 그곳에서 클로로포름을 사용하며 면도칼로 왼 다리 동맥을 절단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848년 1월 24일, 미국 뉴욕주 뉴욕 Manhattan Detention Complex에서 별세해 미국 코네티컷 하트퍼드 시더 힐 묘지에 묻혔다.
웰스는 현재 코네티컷주 하트퍼드 시더 힐 공동묘지에 매장되어 있다.
- 출판물
Wells, Horace (1838). 《An essay on teeth : comprising a brief description of their formation, diseases, and proper treatment》. Cushing/Whitney Medical Library Yale University. Hartford : Printed for the author.
Wells, Horace (1847). 《A History of the Discovery of the Application of Nitrous Oxide Gas, Ether, and Other Vapors to Surgical Operations》. Hartford: J. Gaylord Wells. Horace Wells.

○ 아산화질소의 사용을 개척한 미국 치과의사
웃음 가스 (Laughing Gas)로 불리는 아산화질소 (Nitrous oxide)는 1775년 영국의 화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 (Joseph Priestley)가 최초로 합성했다. 그 당시, 기술이 부족하여 제대로 정제되지 않아 독성이 있다고 여겨졌다.
아산화질소의 마취 효과를 밝혀낸 사람은 18세기 영국의 과학자 험프리 데이비 (Humphry Davy)다. 그는 정제된 아산화질소는 안전하다는 생각으로 가스를 흡입했는데, 기분이 좋아지면서 자극과 통증에 둔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아산화질소를 ‘웃음 가스’라고 이름 짓고 감각을 무디게 만들기에 마취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당시 아산화질소는 의료용이 아닌 오락용으로 자주 이용됐다. 젊은이들은 파티를 즐기기 위해 웃음 가스를 환각제로 사용하곤 했다.
그러던 1844년의 어느 날,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열린 파티 ‘웃음 가스 쇼’에 방문한 치과의사 호레이스 웰스 (Horace wells)는 웃음 가스를 마신 사람이 다리를 다쳐 피를 흘리는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는 이 모습을 보고 “웃음 가스를 치과 수술의 마취제로 사용하면 되겠다”고 생각안다. 바로 다음 날 웃음 가스를 들이마시고, 자신의 사랑니를 뽑아 본 웰스는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엄청난 발견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외과 의사들을 모아놓고 마취제 공개실험까지 연다. 하지만 아산화질소의 양이 적었는지 아니면 마취효과가 돌기 전에 서둘러 발치를 한 탓인지 환자는 아프다고 고함을 질렀고, 그 바람에 이 공개실험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웰스는 웃음거리가 돼 치과의사마저 그만둬야 했다. 하지만 그가 죽고 난 1870년 미국 치과협회로부터 최초의 마취제 발견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 후에 웰스와 같이 일했던 ‘윌리엄 모턴’은 디에틸에테르를 발견하고 이를 환자에게 들어마시게 하면 환자가 의식을 잃어 전신마취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통하여 비로서 외과수술에서 환자의 그 끔찍했던 수술의 악몽으로부터 해방시키게 된 것이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