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7월 4일, 프랑스의 소설가•외교가 프랑수와 샤토브리앙 (François-René, vicomte de Chateaubriand, 1768 ~ 1848) 별세
샤토브리앙 자작 프랑수아르네 / 프랑수아르네 드 샤토브리앙 (François-René, vicomte de Chateaubriand, 1768년 9월 4일 생말로 ~ 1848년 7월 4일 파리)는 1768년 9월 4일 생말로에서 태어나 1848년 7월 4일 파리에서 사망한 프랑스의 작가이자 정치가이다.
샤토브리앙은 프랑스 낭만주의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불문학에서 위대한 이름을 남긴 이들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 프랑수아르네 드 샤토브리앙 (François-René de Chateaubriand)
.출생: 1768년 9월 4일, 프랑스 생말로
.사망: 1848년 7월 4일 (80세), 프랑스 파리
.묘지: 프랑스 생말로 Grand Bé
.국적: 프랑스
.배우자: 셀레스트 드 샤토브리앙 (1792 ~ )
.저서: Memoirs from Beyond the Grave, The Genius of Christianity, 아탈라, René 등
.수상: 흑수리 훈장 ○ 생애와 활동
프랑스의 생말로에서 브르타뉴 지방의 오래된 귀족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루소, 존 밀턴의 영향을 받아 무신론적인 성향이 강했으나 어머니와 누이가 옥중에서 죽고난 후 기독교에 복귀해 로마 가톨릭교회의 왕당적 전통주의자가 되었다. 화려하고 섬세한 정열을 가진 문체로서, 서정적인 작품으로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1787년에는 형의 장인인 말세르브의 도움으로 루이 16세를 알현하게 되고 사교계에 데뷔해 자유분방한 생활을 시작했다. 1791년에 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하게 되는데, 이는 훗날 저술의 밑바탕이 되는 중요한 경험이었으며, 1792년에는 셀루타의 모델이 되기도 한 셀레스트와 결혼을 했다. 그는 프랑스 대혁명때 반혁명군에 참가하였다가 1793년 부터 영국에서 혹독한 망명 시절을 보냈다. 나폴레옹 1세의 후대로 로마 공사를 지내기도 했으나, 후에는 불화로 평생을 적대시하였다.
파리로 돌아온 후 1801년에 《아탈라》를, 1802년에는 나폴레옹의 보호 아래에서 《르네》가 수록된 《기독교의 정수》를 발표했다. 이 작품들의 대성공으로 인해 샤토브리앙은 프랑스 낭만주의의 시작을 화려하게 알렸다. 이어서 1809년에 《순례자들》, 1826년에 《나체즈 족》이 포함된 《전집》을 발간하고 1844년에는 《랑세의 삶》을 출판했다. 샤토브리앙은 1817년 이후 《무덤 너머의 회상》을 30여 년에 걸쳐 집필했다. 또한 샤토브리앙은 왕정파의 일원으로서 두 번의 장관직과 영국 대사를 비롯한 세 번의 대사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1848년 80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루이 16세 치하, 프랑스 대혁명, 나폴레옹 치하, 왕정복고 등의 극심한 정치적 · 사회적 변화 속에서 정치가로, 작가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샤토브리앙처럼 될 것,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빅토르 위고가 말했을 정도로 당대의 젊은이들과 후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샤토브리앙 [François-Auguste-René, vicomte de Chateaubriand, 1768. 9. 4 프랑스 생말로 ~ 1848. 7. 4 파리]은 프랑스의 작가 · 외교관으로 프랑스 낭만주의의 초기 작가이다. 당대의 젊은이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미국과 인디언 원주민을 이국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그의 가장 지속적인 관심사는 자기 자신이었고, 그런 이유로 그의 회고록은 불후의 작품이 되었다.

○ 생애 및 활동
프랑수아르네 드 샤토브리앙 (François-René de Chateaubriand)은 1768년 9월 4일, 프랑스 생말로에서 출생했다.
특이한 성격을 지닌 그는 가난한 귀족의 막내아들로서, 학창시절 방학 때면 콩부르 영지의 낭만적인 황야에서 여동생과 함께 지냈는데, 그곳에는 오래된 참나무와 히스가 무성한 황폐한 중세의 성이 있었다.
그는 학교를 졸업한 뒤 기병대 장교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 초기에 왕당파 가입을 거부했고 1791년 4월 미국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모피상인과 함께 여행을 하며, 처음으로 인디언을 접하는 등 오래 기억할 만한 추억을 남겼다.
1791년 6월 루이 16세가 도주한 사실을 알고 나서 자신이 군주정치의 혜택을 입었었다는 생각에서 프랑스로 돌아왔다.
가난했던 그는 돈 많은 상속녀인 17세의 평범한 여자와 결혼해 그녀와 함께 파리로 갔으나 파리가 너무 사치스럽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내를 홀로 두고 왕당파 군대에 들어갔다. 티옹빌의 포위 때 부상을 입어 제대했다.

1793년 5월 영국으로 건너가 번역과 교사생활로 생계를 이어가며, 세계사를 감동적으로 개관한 〈혁명에 관한 논평 : Essai sur les révolutions〉 (1797)을 쓰기 시작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리스도교에 반대하는 계몽운동의 합리적인 의견들을 지지했으나,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가 지닌 시적이고 영적인 힘을 믿게 되었다.
1800년 파리로 다시 돌아와 자유기고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계속 작품을 썼다. 인디언에 대한 미완성 서사시 〈아탈라 Atala〉의 일부를 1801년에 발표했다. 이 작품은 고전적 전원시의 담백함과 낭만주의가 추구하는 보다 거친 아름다움을 결합한 것으로 즉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1798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종교와 합리주의 사이에서의 갈등을 끝내고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에 귀의했다.
그리스도교를 찬양한 논문 〈그리스도교의 정수 : Le Génie du christianisme〉 (1802)는 런던에서 쓰기 시작한 작품으로, 가톨릭을 국교로 부활시킨 나폴레옹과 왕당파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작품은 모두 ‘도그마의 교의’, ‘그리스도교의 시학’, ‘미술과 문학’, ‘예배’의 4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부는 6장씩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들의 진정한 가치는 신학적 · 철학적인 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술성에 있다.
이런 점에서 스탈 부인의 〈독일론 : De l’Allemagne〉(1808 ~ 1810)과 견줄 수 있다.
그후에 그는 아메리카 대륙 서사시의 일부로서 씌어진 2개의 작품, 즉 자연계의 정경, 인간의 정열과 그리스도교와의 조화를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아탈라〉를 제3부 6편에, 작가 자신의 소년시절을 각색한 〈르네 : René〉(1802)를 〈열정들의 모호함 : Vague des passions〉의 삽화로 제2부 4편에 넣었다.
1803년 로마 대사관의 1등 비서관이 되었고, 1804년 나폴레옹이 앙기앵 공작을 내란음모죄로 몰아 혐의가 불충분한데도 부당하게 재판해 성급하게 처형함으로써 프랑스 전체를 들끓게 하자 이에 항의해 사직했다.

이듬해에는 문학작품 집필과 수차례의 연애사건으로 주목을 끌었다.
1811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에 선출되었다.
1814년 부르봉 왕조의 부활과 함께 정치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1815년 자작작위를 받았고 귀족원 위원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도 그에게는 레카미에 부인과의 관계가 유일한 즐거움이었으며, 여생의 위안이었다. 〈죽음 저편의 회상 : Mémoires d’outre-tombe〉은 그가 죽은 뒤에 출간되었는데, 아마도 가장 뛰어난 기념비적 작품일 것이다.
1821년 6개월 간 베를린 대사를 지낸 뒤 1822년 런던 대사가 되었다.
1822년 베로나 회의에 프랑스 대표로 참석했으며, 1824년까지 과격 왕당파의 총리였던 빌렐 백작 조제프 재임 당시 외무장관을 지냈다. 부르봉 왕조의 페르디난도 7세를 다시 옹위하기 위해 1823년 스페인과 전쟁을 일으켰는데, 전쟁은 승리했으나 지나친 전비 (戰費)의 지출로 전쟁에서 얻은 명성은 줄어들었다.
1년간 (1828 ~ 1829) 로마 대사를 지낸 것을 제외하고는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프랑수아르네 드 샤토브리앙 (François-René de Chateaubriand)는 1848년 7월 4일 (80세), 프랑스 파리에서 별세했다.

○ 저서
기독교의 정수
고백 문화
세기병
묘지 저쪽의 회상
아탈라
르네
나체즈 족
- Works
1797: Essai sur les révolutions.
1801: Atala, ou Les Amours de Deux Sauvages dans le Desert.
1802: René.
1802: Génie du christianisme.
1809: Les Martyrs.
1811: Itinéraire de Paris à Jérusalem. English translation by Frederic Shoberl, 1814. Travels in Greece, Palestine, Egypt, and Barbary, during the years 1806 and 1807.
1814: “On Buonaparte and the Bourbons”, in Blum, Christopher Olaf, editor and translator, 2004. Critics of the Enlightenment. Wilmington, DE: ISI Books. 3–42.
1820: Mémoires sur la vie et la mort du duc de Berry.
1821: Itinéraire de Paris à Jérusalem et de Jérusalem à Paris.
1826: Les Natchez.
1826: Les Aventures du dernier Abencérage.
1827: Voyage en Amérique.
1831: Études historiques.
1833: Mémoires sur la captivité de Madame la duchesse de Berry.
1844: La Vie de Rancé.
1848–50. Mémoires d’Outre-Tombe.
“Progress,” in Menczer, Béla, 1962. Catholic Political Thought, 1789–1848,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