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8월 4일, 일제강점기의 연극인 김우진 (金祐鎭, 1897 ~ 1926)•가수 윤심덕 (尹心悳, 1897 ~ 1926) 별세 (동반 자살)
김우진 (金祐鎭, 1897년 ~ 1926년 8월 4일)은 일제 강점기 연극인 · 연극 이론가이다.

그는 한국 최초로 근대극다운 희곡을 남겼으며, 서구의 표현주의 문예이론을 수용하는 한편, 이를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버나드 쇼의 사회 문제극과 스트린드베리의 표현주의 극의 영향을 받았다.
해박한 식견과 선구적 비평안을 가지고 당대 연극계와 문단에 탁월한 이론을 제시한 평론가이며, 최초로 신극운동을 일으킨 연극운동가로 평가된다.
1926년 8월 3일 현해탄에서 ‘사의 찬미’를 부른 애인 윤심덕과 함께 투신 정사 (情死) 했다.
윤심덕 (尹心悳, 1897년 7월 25일 ~ 1926년 8월 4일)은 일제 강점기의 성악가이자 가수 겸 배우이다.
화가 나혜석과 함께 1920년대의 신(新)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한기주 (韓琦柱)와 함께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였다.
한국 최초의 대중 가요로 꼽히는 〈사의 찬미〉를 녹음하여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윤심덕은 활달한 성격이라 도쿄 유학시절 남자 유학생들과 잘 어울렸다.
키가 크고 목이 긴 서구형 외모에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21년에는 유학생들이 계획한 순회공연에 참여했다가 극작가이며 와세다 대학 학생인 김우진을 만나게 되었다. 김우진은 부인과 자녀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1926년 레코드 취입을 위하여 오사카에 있는 닛토 [日東] 레코드 회사에 갔다가 ‘사의 찬미’를 녹음한 윤심덕은 그해 8월 3일에 김우진과 함께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가는 연락선 도쿠주마루 [德壽丸]에 탑승했으며, 4일 새벽 4시 쓰시마섬을 지나던 중 자살하였다.
당시 동아일보는 1926년 8월 5일자 사회면에서 이들의 자살을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지난 3일 오후 11시에 하관 (시모노세키)을 떠나 부산으로 향한 관부연락선 덕수환 (배 이름)이 4일 오전 네 시경에 쓰시마섬 옆을 지날 즈음에 양장을 한 여자 한 명과 중년 신사 한 명이 서로 껴안고 갑판으로 돌연히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였는데 즉시 배를 멈추고 수색하였으나 그 종적을 찾지 못하였으며 그 선객 명부에는 남자는 전남 목포시 북교동 김우진이요, 여자는 윤심덕이었으며, 유류품으로는 윤심덕의 돈지갑에 현금 일백사십 원과 장식품이 있었고 김우진의 것으로는 현금 이십 원과 금시계가 들어 있었는데 연락선에서 조선 사람이 정사 (情死, 연인끼리의 동반 자살)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더라”
이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 감독 김호선은 영화 ‘사의 찬미’를 제작하였는데, 이 영화는 임성민과 장미희가 주연을 맡았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