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9월 18일, 미국의 블루스 가수•설교자•저명한 음악가 블라인드 윌리 존슨 (Blind Willie Johnson, 1897 ~ 1945) 별세
블라인드 윌리 존슨 (Blind Willie Johnson, 1897년 1월 25일 ~ 1945년 9월 18일)은 미국의 가스펠 블루스 가수이자 기타리스트, 전도사이다. 1927년부터 1930년까지, 총 3년간 발매한 30곡의 노래는 강력한 흉성 사용과 슬라이드 기타 기술, 그리고 수 세대에 걸쳐 후대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준 독창성의 결합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노래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여생을 거리 공연자이자 전도사로 활동하면서 음반을 많이 팔았음에도 불구하고 풍족하게 살지는 못하였다. 또한 삶에 대해 제대로 기록된 것이나 밝혀진 바가 거의 없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새뮤얼 차터스와 같은 음악 역사가들이 존슨과 오직 다섯 번만 이루어졌던 녹음 활동에 관한 많은 정보를 발굴하였다.

– 블라인드 윌리 존슨 (Blind Willie Johnson)
.예명: 블라인드 윌리블라인드 텍사스 마를린더 블라인드 필그림
.출생: 1897년 1월 25일, 미국 텍사스주 펜들턴
.사망: 1945년 9월 18일 (48세), 텍사스주 보몬트
.성별: 남성
.직업: 음악가전도사
.장르: 가스펠, 가스펠 블루스
.활동 시기: 1920년대 ~ 1945년
.악기: 슬라이드 기타, 기타
.레이블: 컬럼비아
.종교: 개신교
존슨의 음악은 해리 에버렛 스미스의 음반 《Anthology of American Folk Music》이나 블루스 기타리스트 레버런드 게리 데이비스의 노력으로 1960년대부터 재조명을 받기 시작한다. 이후 많은 노래가 《American Epic: The Best of Blind Willie Johnson》과 차터스가 발매한 음반같은 컴필레이션 음반을 통해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존슨은 블루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특히 찬송가인 〈Dark Was the Night, Cold Was the Ground〉에서 슬라이드 기타를 연주하는 소리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존슨의 다른 노래로는 〈Jesus Make Up My Dying Bed〉, 〈It’s Nobody’s Fault but Mine〉, 〈John the Revelator〉 등이 있다.
존슨은 블루스, 특히 가스펠 블루스에 있어서는 달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동시대에 활동한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처럼 블루스의 표현력을 찬송가집에서 얻은 자신의 종교적인 메시지로 변환시켰다. 컴필레이션 음반 《The Complete Blind Willie Johnson》의 라이너 노트에 “사실 존슨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봤을 때에는 블루스 가수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가차없는 기타 리듬과 거칠고 고집스러운 목소리, 그리고 블루스 가수이 지닌 사납고도 강렬함처럼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곧 서로를 만들어낸 사회의 거울에 각자의 모습이 비치는 꼴이 되도록 한 것과 같다.”고 썼다.

○ 생애 및 활동
– 어린 시절과 경력
블라인드 윌리 존슨은 1897년 1월 25일 텍사스주 템플 근처에 위치한 비법인지구 펜들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지 존슨 (윌리 존슨 시니어라 하기도 한다)으로 소작인이었으며, 어머니는 1901년에 사망한 메리 필즈다. 블루스 역사가인 스티븐 칼트에 따르면, 존슨네 가족은 적어도 칼이라는 이름의 남동생이 있었으며, 마를린의 농업 부촌으로 이주하여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곳에서 가족들은 마를린 선교사 침례 교회로 추정되는 곳에 매주 일요일마다 참석하였다. 존슨은 교회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았으며, 사제 서품식을 하여 침례교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꿈을 키웠다. 한편, 존슨이 다섯 살이었을 때 아버지는 존슨에게 첫 악기로 시거 박스로 만든 기타를 선물해주었다.
존슨은 선천적인 시각 장애는 아니지만, 어렸을 때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어떻게 시력을 잃었는 지에 대해서는 불확실하지만, 존슨의 전기 작가들은 대부분 7살 때 의붓어머니가 눈을 멀게 하였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자신이 존슨의 과부라고 주장하는 앤절린 존슨이 처음으로 언급한 이 이야기는 존슨의 아버지가 계모의 불륜 행위에 격렬하게 반응하였고, 말다툼을 하는 동안 계모가 윌리의 눈에 양잿물을 부어 영원히 눈을 멀게 했다는 것이다. 이 외에 존슨이 1905년 8월 30일 텍사스에서 부분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던 개기일식을 잘못 보았다가 눈을 손상하였고, 또 잘못된 안경을 끼는 바람에 시력을 잃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 녹음
그의 첫 녹음은 1927년 12월 3일에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때 녹음한 곡은 “i know his blood can make me whole”, “jesus make up my dying bed”, “it’s nobody’s fault but mine”, “mother’s children have a hard time”, “dark was the night, cold was the ground” 등등이 있는데 그가 전도사인 만큼 전통적인 가스펠 곡들도 있으며 그가 직접 작곡, 작사를 한 곡도 있다.
이때 처음 두 곡은 그의 첫 싱글로 발매되었다. 마지막 녹음은 1930년 쯤이었다.
그의 첫 싱글은 성공적인 판매량을 거두게 된다.
이 때 약 9400장의 카피가 찍혀나갔는데, 컬럼비아 레코드의 간판급 스타였던 베시 스미스의 최근 카피가 6000장이 팔린 것으로 보면 대단한 판매량이었다.
그리고 그가 다섯 번 째로 녹음했던 곡인 “Dark Was the Night, Cold Was the Ground”은 오픈 D 튜닝과 슬라이드 주법으로 이루어진 곡이다.
그의 지속적인 노숙 생활 등의 경험을 토대로 쓰여진 곡이며 단 한 마디의 가사도 없이 허밍과 슬라이드 연주가 곡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곡은 1977년 우주로 쏘아진 보이저 호에 실렸던 골든 레코드에도 수록되었는데, 수록된 이유로는 공허한 우주를 떠도는 보이저 호의 외로움을 대변할 수 있는 곡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이 곡은 지구의 “외로움”이란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한 곡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후 많은 음악가들이 커버를 하고 많은 영화에 사운드트랙으로 수록되기도 하는 등 그의 가장 유명한 곡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 말년
그는 재혼을 한 뒤 계속해서 텍사스의 여러 도시를 떠돌며 거리 공연을 하는 등 별 다른 행적 없이 살다가 1945년 버몬트에 교회를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1945년, 그의 집에 불이 나서 파괴되었으나 그 어디도 갈 곳이 없던 그는 이전 집의 폐허에서 계속해서 살아간다.
이때 그는 지속적으로 폐허의 습기에 노출되었다.
이후 말라리아를 앓게 되지만 그가 흑인이고 눈이 안보인다는 이유로 그 어떤 병원에서도 그를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병세는 계속해서 악화되었고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은 1945년 9월 18일 별세하게 된다.
이후 버몬트의 블랜체트 묘지에 안장되었다.
존슨은 블루스, 특히 가스펠 블루스에 있어서는 달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동시대에 활동한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처럼 블루스의 표현력을 찬송가집에서 얻은 자신의 종교적인 메시지로 변환시켰다.
컴필레이션 음반 《The Complete Blind Willie Johnson》의 라이너 노트에 “사실 존슨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봤을 때에는 블루스 가수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가차없는 기타 리듬과 거칠고 고집스러운 목소리, 그리고 블루스 가수이 지닌 사납고도 강렬함처럼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곧 서로를 만들어낸 사회의 거울에 각자의 모습이 비치는 꼴이 되도록 한 것과 같다.”고 썼다.

○ 음악적 스타일과 영향
그의 유례없는 독창적인 슬라이드 주법은 최고라고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주법은 로버트 존슨과 하울링 울프등의 뮤지션에게도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또한 그의 강렬한 흉성 보컬은 길거리에서 연주를 할 때 오가는 사람들이 잘 들을 수 있도록 그 창법으로 노래한 것이라고 한다.
꾸준히 좋은 판매량을 내다가도 대공황이 찾아오자 매우 저조한 판매량을 보이게 되면서 점점 잊혀가게 되는데, 이후 1952년 포크웨이스 레코드에서 발매한 컴필레이션인 “Anthology of American Folk Music”에 실리게 되면서 그를 포함한 수 많은 블루스 음악가들이 재발견되게 된다. 이때 또 다른 맹인 블루스 음악가인 개리 데이비스의 지속적으로 그를 알리려는 노력 덕에 그가 더 많이 알려질 수 있게 되었다.
이후 1962년에는 밥 딜런이 그의 데뷔 앨범에 존슨의 “Jesus make up my dying bed”를 “In my time of dyin'”으로 제목을 바꾸어 수록하기도 했다. 그 뒤로 1970년대에는 레드 제플린, 존 세바스찬, 에릭 클랩튼등을 포함한 수 많은 록 음악가들이 그의 곡을 커버하기도 했으며 앞서 서술했듯 1977년 보이저 호에 실린 골든 레코드에도 그의 곡이 수록되게 된다. 그 외에도 앨리게이터 레코드에서 발매한 트리뷰트 앨범에는 톰 웨이츠와 루신다 윌리엄스등의 음악가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 대표곡
Dark Was the Night, Cold Was the Ground (1928)
It’s Nobody’s Fault but Mine (1928)
Mother’s Children Have a Hard Time (1928)
Let Your Light Shine on Me (1930)
John the Revelator (1930)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