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9월 12일, 독일의 영화 음악가 한스 짐머 / 한스 치머 (Hans Florian Zimmer, 1957 ~ ) 출생
한스 플로리안 짐머 / 치머 (독: Hans Florian Zimmer, 1957년 9월 12일 ~ )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음악 프로듀서이다. 주로 영화 음악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영화 《인터스텔라》, 《다크 나이트 라이즈》, 《심슨 가족: 더 무비》 등에서 음악을 맡았다.

– 한스 짐머 / 치머(Hans Zimmer)
.출생: 1957년 9월 12일, 서독 프랑크푸르트암마인
.국적: 독일
.직업: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
.장르: 영화 음악, 게임 음악
.악기: 피아노, 키보드, 신디사이저, 기타, 큐베이스
.활동 시기: 1977년 ~
.앨범: 인터스텔라 OST, Inception (Music From The Motion Picture), Live in Prague 등
.배우자: 비키 카롤린 (1982 ~ 1992년), 수잔 짐머
.자녀: 조 짐머, 제이크 짐머, 브리지트 짐머
.레이블: Remote Control Productions
.웹사이트: www.hanszimmer.com
독일의 영화음악 유대계 작곡가이다. 정규 음악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지만 대중적인 팝, 락음악이나 전자음악, 월드 뮤직, 실험적인 사운드 디자인과 전통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결합한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에 있어서는 당대 최고의 음악가다. 자신의 이름 약자를 따서 “HZ”라고도 한다.
1982년부터 150여 편 이상의 영화 스코어들을 작곡해왔으며 그 중 많은 영화들이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존 윌리엄스, 엔니오 모리코네와 더불어 영화 음악가들중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유명 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1980년대 말 할리우드에서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3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영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독특한 아이디어로 끊임없이 변신하며 현대 영화음악의 사운드를 재정의해 온 “히트 메이커”로 불릴만 하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현대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작품들로 유명한 마이클 베이와 리들리 스콧, 론 하워드, 크리스토퍼 놀란, 드니 빌뇌브 등과 좋은 콤비를 이루고 있다.

○ 생애 및 활동
아버지 한스 요아힘 치머 (Hans Joachim Zimmer)와 어머니 브리기테 치머(Brigitte Zimmer) 사이에서 1957년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직물회사 치머 (Zimmer) AG를 운영하던 성공한 사업가이자 전후 유럽 재건과정에서 수요가 많았던 새로운 합성 섬유를 만들어내 특허를 출원한 뛰어난 발명가였기에, 어린 시절에는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다.
발명가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테크놀로지와 늘 함께 성장한 짐머는 집에서 음악을 연주해 테잎 레코더에 녹음을 하고 그 소리를 다시 이상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재미있는 것은 아마추어 클래식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의 그랜드 피아노를 짐머가 다양한 이물질등을 얹어 소리를 바꾸어 가며 실험하는 것을 보면 어머니는 기겁을 했지만, 발명가인 아버지는 반대로 “음악적 혁신”이라고 크게 칭찬하며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사실 유대인이었으나, 다행히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인 1939년에 영국으로 피신하여 홀로코스트를 모면하고 전후에 독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래도 독일에 살면서 전쟁의 참혹한 기억과 유태인 차별로 인한 트라우마가 강하게 남아있었고 유대인이란 사실을 주변에 밝히기는 여전히 불편해하였다. 그래서 이웃은 물론 외동아들인 짐머에게도 유태인 혈통임을 철저히 숨겨왔고, 그는 나중에 다 커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짐머가 겨우 6살 무렵 갑자기 아버지가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저택을 돌봐주는 여러 관리인들과 가정부, 보모가 있기는 했지만 거대한 집안에 가족이라고는 어머니와 단 둘이 남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마저 갑작스레 남편이 떠나 충격과 상심이 너무나 컸는지 방문에 “절대 방해하지 말 것”이라고 써붙이며 아들과의 소통을 단절했다.
짐머는 그 때부터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함께 큰 외로움을 경험하게 되어 음악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라이언 킹’의 주제가인 ‘This Land’를 작곡할 때 자신과 같이 아버지를 잃은 심바의 슬픔을 음악으로 승화시키기 어려웠다고 술회했다.
부모님이 TV는 문화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지 못하게 하였고, 주로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어떨 때는 6시간씩이나 되는 오페라 공연 가는 것이 고역이었다고. 보모와 그런 공연들을 보러 가면 하도 지겨워서 서로 오페라 인물들에 대한 농담을 하며 웃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 12살 때 처음으로 동네 극장에서 본 영화가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옛날 옛적 서부에서’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1968)였고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에 무척 큰 감명을 받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게되었다고 한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한스 짐머에게 큰 영향을 끼쳤는데 최근 인터뷰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3개의 사운드 트랙으로 모리코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조르조 모로더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반젤리스의 ‘블레이드 러너’ 사운드 트랙들을 꼽았고 이보다 더 많은 사운드 트랙을 께속 꼽을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중 최고는 여전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라고 했다.

하지만 짐머는 독일의 엄격한 정규 교육을 너무나 싫어해 학교에서 7번이나 쫓겨나 전학을 다녔다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 부터 4학년까지 거의 6개월에 한번씩 옮겨 다닌 셈이다.
짐머가 학교에서 모든 일에 토를 달며 “왜 꼭 그래야만 하나요?”라며 따져 묻는 바람에 선생님들이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고정관념을 깨는 창의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아이로도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영락 없이 반항기로 똘똘 뭉친 문제아. 음악 교육을 받은 것도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등 떠밀어서 2주간 피아노 레슨을 몇 번 받다 도망친 것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다른 음악가들과 밴드 생활이나 공동 작업을 하면서 모두 독학으로 익혔다.
짐머의 반항에 지친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의 교육을 위해 해결책을 찾아내야만 했고, 10살이 되던 해인 1967년 짐머는 영국에 소재한 대안학교 허트우드 하우스 (The Hurtwood House)로 유학을 가게 된다.
전직 마케팅 매니저 출신의 교장 선생님 스티브 잭슨은 실용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버지 처럼 아이들을 지켜보면서도 열린 자세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짐머가 독일 학교들에서 계속 문제를 일으킨 것을 알고 있었기에 뭐가 제일 하고 싶냐고 묻자 짐머는 “음악만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짐머는 음악에만 몰두할 수 있었고 교장 선생님은 그의 어머니한테는 수학 등에서 아주 우수한 성적을 보이고 있었다고 얘기했지만 짐머는 수학 선생님은 아예 만나 본 적도 없었다고 한다.
짐머는 이후 부모님께 떠밀려 독일에서 가야했던 클래식이나 오페라 콘서트 대신 70년대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롤링 스톤스나 데이비드 보위같은 락앤롤 콘서트를 맘껏 보며 성장하게 된다.
5년간의 영국 중고등학교 생활 이후 짐머는 대중음악에 점점 더 빠져들며 10대 중반부터 펑크, 뉴웨이브 밴드 음악을 시작하게 된다.

한스 짐머 온라인 마스터 클래스에 따르면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였던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1982년 작품, ‘위대한 피츠카랄도’를 보고 저 정도 미친 열정이라면 자신도 평생 영화에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영국의 베테랑 영화음악가 스텐리 마이어스 (Stanley Myers)의 영화 음악에서 기술 보조를 담당하며 미국 LA의 할리우드에 가기 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런던에서 보냈다.
당시의 신서사이저나 전자 음악은 가르쳐줄 사람도 없고 스스로 개척해나가야하는 장르라서 마치 아방가르드 예술과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독일의 음악 정서를 잘 이해하고, 모국어인 독일어가 더 유창하지만 독일의 클래식과 일렉트로닉 음악, 영국의 팝/락 음악도 잘 알고 있다.
그의 가슴은 독일인이면서 영국인과도 가깝고, 런던을 자기 손바닥처럼 구석구석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셜록 홈즈의 음악을 작업 때도 자신에게 익숙한 런던 거리를 표’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 초창기
197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영국 대중음악계에서 활동했다. 크라카토아 (Krakatoa)하는 밴드에서 프로듀서, 피아니스트, 키보디스트로 시작했다. MTV의 최초의 비주얼 세대의 시작을 알린 역사적인 송신 비디오가 된 뉴웨이브 신스 팝 밴드, 버글스의 1979년도 히트곡인 ‘Video Killed the Radio Star’에도 프로듀서이자 신서사이저 연주자로 참여했다. 버글스의 베이시스트, 싱어송라이터이자 이후 80년대 영국의 혁신적인 팝 프로듀서가 된 트레버 혼은 2017년 6월 한스 짐머 라이브 런던 공연에 깜짝 게스트로 초청되어 함께 노래하기도 했다.
버글스 이후에는 댐드라는 펑크 밴드에서도 연주했고 이탈리아 밴드 크리스마 (Krisma)에서도 활동했다. 1983년에는 울트라복스의 드러머이자 프로그래머 워런 칸과 “헬든 (Helden)”이라는 프로젝트 밴드로 전자음악 콘서트를 천체 투영관에서 가지기도 했다. 이 둘은 스페인 그룹 메카노 (Mecano)에 영입을 제안받아 일원이 되기도 한다. 런던에서 에어 에델 어소시에이츠 (Air-Edel Associates)라는 회사를 위한 광고용 음악을 만들던 짐머는 스탠리 마이어스 (한국에서는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영화, 디어 헌터의 주제가인 “카바티나”로 알려져 있다.)의 테크니컬 어시스턴트 (신스 프로그래머)로 기용되어 활동하면서 저예산 액션물, 호러물, 드라마들 음악을 조금씩 맡기 시작했다.
1984년 폴란드 출신 명장 예지 스콜리모프스키의 영화 ‘성공은 최고의 복수다’의 음악을 1984년 스탠리 마이어스와 공동으로 맡으면서 영화 음악계에 데뷔했다. 즉 원래 데뷔는 할리우드가 아닌 영국 영화계다. 사실 이전에 스콜리모프스키의 전작인 ‘문라이팅’에서도 1982년에 음악을 담당하긴 했지만 정식으로 음악 감독으로 크레딧을 올린건 이 영화가 최초다. 짐머가 참여한 다른 스콜리모프스키 영화로는 등대선이 있다. 한동안 스탠리 마이어스랑 같이 작업하다가 1987년 코메디 영화 ‘터미널 익스포져’로 독립했고 같은 해 사카모토 류이치가 공수, 데이비드 번과 아카데미 베스트 오리지널 스코어상을 공동 수상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 사운드트랙 두 곡에 신스 프로그래머와 프로듀서로 참여하기도 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2017년도 다큐멘터리인 “코다”에 보면 마지막 황제 오케스트라 레코딩 세션 당시 믹싱보드 앞에 앉아 뭔가 부러운 듯 사카모토를 빙긋이 쳐다보는 짐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비디오나 케이블로 종종 방영하는 ‘나이트메어 눈’ (Nightmare at Noon, 1988)이라든지 ‘종이집’ (Paper house, 1988) 같은 영화들에서 그가 음악을 맡았고 국내에도 잘 알려진 1991년도 영화 ‘분노의 역류’ 이전에는 주로 신서사이저를 이용해 작업했다. 그 외 초기작들 가운데 스탠리 마이어스와 협업한 작품들 중에는 니콜라스 뢰그 감독의 ‘사랑의 상대성’ (Insignificance, 1985)이나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의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My Beautiful Laundrette, 1985) 같은 유명작들도 있다.

- 성공 신화
“… But there are great synthesizer scores, and great symphonic scores. Apart from our own work, Vangelis and (Hans) Zimmer have also shown brilliantly how it perfectly works in both directions.” – Founder of German band Tangerine Dream, Edgar Froese (1944-2015) said in Keyboard magazine (January 1996)
‘훌륭한 신서사이저 스코어가 있고, 위대한 교향곡 스코어가 있지요. 우리 (탠저린 드림)의 작업들과는 별개로, 반젤리스와 (한스) 짐머 또한 두 가지 방향 모두에서 어떻게 완벽하게 영상과 어울릴 수 있는지를 멋지게 보여주었습니다.’ – 독일 밴드 탠저린 드림의 리더 에드가 프로에제 (1944-2015), ‘키보드 매거진'(1996년 1월호)에서 반젤리스를 언급하며.
“For me Hans Zimmer was the sound of contemporary movies.” – Chritopher Nolan
‘제게 있어 한스 짐머는 동시대 영화들의 사운드를 의미했습니다.’ – 크리스토퍼 놀란
Christopher Nolan on composer Hans Zimmer’s contribution to his ‘Dark Knight’ saga
한스 짐머가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영화 ‘레인 맨’의 감독인 배리 레빈슨의 부인이 한스 짐머가 음악을 담당한 ‘갈라진 세계’ (A World Apart, 1988)를 본 뒤 그를 만나보라고 추천해주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시 전작인 ‘굿모닝 베트남’의 성공으로 막 유명해지기 시작한 레빈슨 감독은 감정적이면서도 그것을 너무 들이대지 않는 현대적인 스코어를 만들어줄 작곡가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짐머의 음악을 들어보고 흥미롭게 생각했다고 한다.
런던의 릴리 야드 (Lily Yard) 스튜디오에서 컴퓨터와 기계들에 파묻혀 반미치광이처럼 작업만 하던 한스 짐머. 어느날 작업실 문 앞에 밤 11시에 문을 두드리며 갑자기 나타난 레빈슨 감독을 처음 만난 짐머는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해서 “누구지, 이 사람이?”했다고. 그러나 곧 그의 뒤에 서 있는 두 대의 럭셔리한 리무진들을 보고 그제야 “혹시 이게 진짜 기회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레인 맨’은 흥행과 평단 모두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었고 짐머의 스코어도 첫 아카데미 상 후보에 올랐다. 처음 LA에 와 머물 곳조차 없어 레빈슨 감독의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작업을 한 짐머에게는 할리우드에서 거둔 첫 성공이었다.
영국 펑크나 뉴웨이브, 일렉트로닉 밴드 키보드 주자 출신으로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주로 컴퓨터와 신서사이저를 중심으로 영화음악 작업을 하던 그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블랙 레인’, ‘퍼시픽 하이츠’, ‘헨리의 이야기’ 등으로 할리우드 내에서 점차 인지도를 넓히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앤디 맥도웰과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주연한 ‘그린카드’도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선정되어 좋은 평가를 받으며 한스 짐머의 스코어도 호평을 받았다. 특히 ‘카페 아프리카’ (Cafe Afrika)가 좋은 평가를 받았고 ‘불안한 코끼리’ (Restless Elephant)같은 곡은 프라하 시립 오케스트라가 2011년 그의 베스트 사운드 트랙들로 앨범을 제작할 때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로 연주했다.
짐머는 대니 엘프먼의 1989년 작인 ‘배트맨’ 영화음악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유명한 베테랑 여성 할리우드 오케스트레이터이자 작곡가인 셜리 워커의 도움으로 1991년 론 하워드 감독의 ‘분노의 역류’부터 본격적으로 신서사이저, 오디오 샘플을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결합한 현대적이고 강력한, “에픽” 사운드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늘상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성장해서 어떤 사운드를 구현하고 싶은지 감각으로 알고 있기는 했지만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아 오케스트레이션이나 악기론에 대한 전문지식이 전무했던 짐머에게 워커는 오케스트라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를 알려줄 수 있는 선생님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여러해 동안 일 해오면서 짐머는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해 더 많이 알게되었지만 지금도 오케스트레이션은 존 윌리엄스의 오케스트레이터 콘라드 폽, 디즈니 전문 오케스트레이터 데이브 메츠거, 그리고 다른 연륜 넘치는 할리우드 베테랑들인 브루스 파울러, 래드 매킨토시같은 프로페셔널 오케스트레이터들이 담당한다.
짐머는 이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많은 주제가를 작곡하며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 후보로도 여러 번 선정되었지만 높은 명성과는 달리 수상은 단 한 번에 그쳤다. 바로 1995년 제6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라이온 킹’으로 음악상을 수상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라이온 킹을 통해 한스 짐머는 골든 글로브 어워드와 그래미 어워드에서도 수상하며 한스 짐머 작품 중에서 대중성과 음악성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와 닉 글레니-스미스, 해리 그렉슨-윌리엄스와 공동 작업한 마이클 베이 감독의 ‘더 록’의 스코어가 대호평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대중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1999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혔다.
1997년 드림웍스가 제작한 ‘피스메이커’의 음악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스필버그와 가까워지기 시작한 짐머는 2000년대 초부터 드림웍스 SKG의 음악부서장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짐머는 자신이 공동 설립한 라이브러리 음악 벤쳐 회사인 블리딩 핑거스 (Bleeding Fingers)에 취업할 수 있는 조건을 상으로 내건 작곡 경연 대회를 2014년에 열면서 자기 스타일로는 절대 쓰지 말라면서 드림웍스 SKG 음악부서장 시절에 여러 작곡 경연대회의 심사위원을 하던 얘기를 한적이 있다. 자기 사무실 바로 옆에 존 윌리엄스가 있는데 존 윌리엄스 스타일로 써내는 참가작들을 들으며 어이 없었다고.
‘글래디에이터’, ‘진주만’, ‘블랙 호크 다운,’ ‘한니발,’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 셜록 홈즈’ 등을 통해 일약 세계적인 음악인으로 발’돋움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으로 또다른 할리우드 영화 음악의 대가인 제임스 뉴튼 하워드와 손을 잡고 만든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마지막 다크 나이트 라이즈 스코어는 한스 짐머 단독 작품), 인셉션, 인터스텔라의 스코어 또한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는 한스 짐머의 커리어에 거대한 전환점이 된 영화다.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성장한 바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은 현 서구 세계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포스트 9/11 시대의 불안정한 미국과 테러에 끊임없이 위협받는 세계를 배트맨이라는 전통적인 수퍼히어로를 통해 완전히 새롭게 그린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가 거의 10여년간 대중에 끼친 문화적인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뉴웨이브/펑크 뮤지션 출신인 한스 짐머가 다크 나이크의 빌런 캐릭터들을 표현하기 위해 요구되는 무정부주의적인 사운드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여기에 히스 레저의 광기 넘치는 조커 연기까지 가미되어 시대적인 감각을 가지고 타이밍을 잘 탔다고 할 수 있겠다.
짐머는 영화음악에만 참여한 것이 아니고, 사업가로서의 수완도 뛰어나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모바일 앱 등에도 제작에 참여했다. 애니메이션인 ‘블러드 플러스’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2009년에는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의 음악을 담당했고 이어 두 번째 작품으로 유비소프트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도 참여하였다. 또한 ‘크라이시스 2’에도 참여했고 한국 온라인 게임인 ‘블레스 온라인’의 스코어도 작곡했다. 단 이 게임들에 있어 한스 짐머가 직접 음악을 다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자기 밑에 있는 다른 작곡가 론 발프를 시켜서 거진 다 작곡하게 했고 자기는 테마곡 정도 만들고 전체적인 방향 좀 봐준 정도다.
한스 짐머의 온라인 마스터 클래스가 2016년 12월 공개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짐머의 중저음의 묵직한 목소리가 카리스마 있는 이 온라인 코스는 가격은 90불이다. 그가 컴퓨터 앞에 앉아 음악 작업을 어떻게 했는지 자세한 기술적인 설명은 하지 않지만, 작업했던 대표 영화들에서의 경험들을 예로 들며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그의 독특한 필름 스코어링 철학과 접근 방식은 배울 수 있다는 게 리뷰어들의 중론이다.
영국의 오디오 샘플 라이브러리 회사인 스핏파이어 오디오에서 그의 이름을 내건 퍼커션, 피아노, 스트링 샘플 라이브러리를 발매하기도 했다.
인터넷의 출현으로 황폐화된 음악산업 덕에 수 많은 뮤지션들이 영화음악계로 몰리는 상황에서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음악적인 훈련이나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컴퓨터와 가상악기, 모니터 스피커, 미디 키보드만 있으면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이른바 “한스 짐머 현상”은 일견 씁쓸한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도구나 테크놀로지, 교육 매체는 돈을 주고 살 수 있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적 역량과 영화계 인맥을 쌓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가벼운 생각을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스 짐머만 해도 음악뿐 아니라 영화계 비지니스와 인재 양성 및 인맥 동원, 음악을 잘 모르는 감독 및 프로듀서와의 커뮤니케이션과 정치에 능하며 지금의 할리우드 필름 스코어링의 왕좌에 이르는데 수 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이후로 더 이상 슈퍼히어로 영화의 스코어는 작곡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적이 있다.링크 특히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와 차별화된 DC 확장 유니버스 배트맨의 테마를 새로 만드는 것이 힘든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9년에 개봉할 히어로물인 ‘엑스맨: 다크 피닉스’와 ‘원더우먼 1984’의 스코어 제작에 참여하면서 이 약속은 철회되었다.
넷플릭스 사운드마크 극장용 버전을 작곡하기도 했다.
한스 짐머는 최근 미국 메이져 리그 축구협회의 주제 음악을 작곡했다. 한 메이져 리그 축구 팬이 그의 음악을 듣고 앨범 자켓 디자인을 하기도 했다.

○ 작품
*영화 음악 목록
- 2020년
스폰지밥 무비: 핑핑이 구출 대작전
원더우먼 1984 - 2016년
인페르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쿵푸 팬더 3
히든 피겨스 - 2015년
우먼 인 골드
채피 - 2014년
인터스텔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선 오브 갓 - 2013
노예 12년
러시: 더 라이벌
맨 오브 스틸 - 2012
다크 나이트 라이즈
마다가스카 3 - 2011
랭고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 - 2010
하우 두 유 노우 (How Do You Know)
인셉션 - 2009
셜록 홈즈 - 2008
다크 나이트 – 제임스 뉴턴 하워드와 합작
쿵푸 팬더
마다가스카 2
프로스트/닉슨 (Frost/Nixon) - 2007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심슨 가족 더 무비 - 2006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
다빈치 코드
로맨틱 홀리데이 - 2005
웨더 맨 (The Weather Man) – 제임스 S. 레빈과 합작
리틀 폴라 베어 2: 신비한 섬 (Der kleine Eisbär 2 – Die geheimnisvolle Insel) – 닉 글레니스미스와 합작
마다가스카 – 에이토르 페레이라 · 제임스 둘리와 합작
배트맨 비긴즈 – 제임스 뉴턴 하워드와 합작 - 2004
스팽글리쉬 (Spanglish)
로라의 별 (Lauras Stern) – 닉 글레니스미스와 합작
샤크
킹 아서 (King Arthur)
선더버드 (Thunderbirds) – 라민 자와디와 합작 - 2003
라스트 사무라이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Something’s Gotta Give)
매치스틱 맨 (Matchstick Men)
태양의 눈물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 - 2002
링
스피릿 - 2001
블랙 호크 다운
라이딩 위드 보이즈
진주만
한니발 - 2000
에버래스팅 피스 (An Everlasting Piece)
미션 임파서블 2
글래디에이터 – 리사 제라드와 합작
엘도라도 – 존 파월과 합작 - 1999
칠 팩터 (Chill Factor) – 존 파월과 합작 - 1998
씬 레드 라인 (The Thin Red Line)
이집트 왕자
라스트 데이즈 (The Last Days) - 1997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