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10일, 미국의 영화배우 ‘영원한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 (Christopher Reeve, 1952 ~ 2004) 별세
크리스토퍼 리브 (Christopher Reeve, 1952년 9월 25일 ~ 2004년 10월 10일)는 미국의 영화 배우, 영화 감독이자 작가이다. 영화 《슈퍼맨》의 주연으로 유명하다.
크리스토퍼 리브는 살아 생전 승마를 즐겼는데 1995년에 승마를 하다가 낙마사고를 당해 전신마비가 되어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움직일 수 없었다.
2000년에 크리스토퍼 리브가 스스로의 의지로 손가락 하나를 움직인 것으로 전 미국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 갔으며 전 세계 모든 슈퍼맨의 팬들은 크리스토퍼 리브가 쾌유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으나 결국 그런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2004년 세상을 떠났다. 향년 52세. 슬하 2남 (윌, 맷) 1녀 (알렉산드라)가 있다.

– 크리스토퍼 리브 (Christopher Reeve)
.이름: 크리스토퍼 디 오라이어 리브 (Christopher D’Olier Reeve)
.출생: 1952년 9월 25일, 미국 뉴욕주 뉴욕시
.사망: 2004년 10월 10일 (52세), 미국 뉴욕주 마운트 키스코
.국적: 미국
.직업: 배우, 작가, 영화감독
.활동: 1970 ~ 2004년
.데뷔: 1978년 영화 ‘위기의 핵잠수함’
.학력: 코넬 대학, 줄리어드 스쿨
.부모: 부) F. D. 리브, 모) 바바라 피트니
.배우자: 데이나 리브 (1992년 결혼, 2006년 사망)
.자녀: 2남 (윌, 맷) 1녀 (알렉산드라)
1978년부터 1986년까지 영화 ‘슈퍼맨’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악에 대항하는 정의의 사도로 부각되었지만 1995년 승마사고로 목뼈가 부러져 전신이 마비되는 장애인이 되었다. 사회활동을 더 이상 할 수 없으리라는 세상사람들의 부정적 예상과는 달리 1996년에는 온몸과 머리를 휠체어에 묶은 채 모니터와 마이크를 통해 연기를 지시하는 방식으로 영화 ‘황혼 속에서’ 를 감독했고, 1998년에는 TV영화 ‘이창’ 에서 휠체어에 앉은 사진기자 역을 맡아 얼굴연기만으로도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2002년에는 연방정부로부터 200만 달러의 기금을 지원 받아 뉴저지주에 척수마비 장애인을 위한 전문센터를 건립하였다. 2004년 10월 10일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 생애 및 활동
어릴 때부터 연기에 관심을 가져 13살때부터 무대에 섰다. 코넬 대학에 다니면서 영국과 프랑스에서 연기를 공부했고, 줄리어드 스쿨에서 죤 하우스먼 (John Houseman)의 지도도 받았다. 그 후 지방무대들에서 활동하다가 76년에 브로드웨이로 진출했다.
영화는 78년에 찰튼 헤스튼 주연의 핵잠수함 구조작전을 그린 해양영화 <위기의 핵잠수함 (Gray Lady Down)>에서 작은 조연으로 데뷔했다. 193cm의 건장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보이는 외모, 그리고 탄탄하게 갖추어진 연기력으로 인해 <슈퍼맨>의 오디션에 합격함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열었고, 계속 시리즈에 출연을 해오면서도 진정한 연기자로서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영화와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고 있는 노력파이기도 했다. <슈퍼맨> 시리즈 이외의 작품으로는, 제인 시모어와 공연작으로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SF적 기법으로 묘사한 이 <신비의 여인>이라는 제명으로 TV에 방영되었으며, 마이클 케인과 공연 작품인 스릴러 이 있다.
그는 1995년 5월 승마대회에 참가했다가 낙마해 전신마비가 되는 커다란 불운을 겪은 이후, 척추 연구 확대를 호소하는 운동과 의료보호 확대를 촉구하는 재활과 사회운동에 힘써왔다. 96년에는 휠체어에 앉은 채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등장해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1998년에는 히치콕의 스릴러물 리메이크한 영화 <이창>에 출연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2004년 10월 11일 뉴욕의 자택에서 향년 52세의 나이로 급성심근경색으로 별세하였다.
○ 주요 작품
슈퍼맨
사랑의 은하수
위험한 도박
○ 언론소개 : <슈퍼맨>의 크리스토퍼 리브, 하늘로 오르다 (문석, 2004-10-21)
- 지구에서의 임무를 모두 마친건가요?
영원한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가 지난 (2004년) 10월10일 52살을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사인은 휠체어와 침대에 오랫동안 짓눌려 있던 부위의 피가 감소해 세포조직이 감염되면서 발생한 합병증. 1995년 낙마사고 이후 오랫동안 전신마비 상태로 지낸 데 따른 것이었다. 1952년 뉴욕에서 태어난 리브는 룸메이트인 로빈 윌리엄스와 함께 코넬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으며, 줄리아드에서는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의 킹스필드 교수 역으로 유명한 존 하우스만으로부터 사사받으며 연기자로서의 준비를 갖춰갔다.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활약하던 그가 <슈퍼맨>의 주연으로 발탁된 것은 행운이었다. 당시 감독인 리처드 도너는 슈퍼맨 클라크 켄트 역을 맡을 신선한 얼굴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200명이 넘는 배우를 상대로 오디션을 가졌지만 적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도너는 ‘너무 말랐고, 슈퍼맨의 모습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상’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3∼4차례나 거절했던 사진 한장이 책상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1977년 1월, 크랭크인을 2개월 앞둔 상황에서 리브는 캐스팅됐고 마치 준비라도 했다는 듯 정의감 넘치고 다정하며 유머까지 갖춘 이 ‘철의 사나이’를 연기했다.
78년 개봉된 <슈퍼맨>으로 전세계의 스타가 된 리브는 이후 3개의 속편과 <저주받은 도시> <남아 있는 나날들>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연기인생은 그의 또 다른, 그리고 좀더 값진 삶을 위한 서곡에 불과했다. 95년 경마대회에 나가 말에서 떨어진 그는 어깨 아래가 완전히 마비되는 불운을 당했다. 한때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던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면서 삶의 새로운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횡경막에 전극을 이식한 뒤 그는 기적적으로 오른쪽 팔목과 왼쪽 손가락, 발가락을 움직일 수 있었다. 비록 움직일 수는 없지만 신체 중 70%의 감각을 되찾은 그는 “나를 안아주는 가족들의 촉감을 느낄 수 있는 게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사지는 못 움직여도 정신만큼은 또렷하다”는 것을 오히려 축복으로 받아들인 그는 이 ‘축복받은 사람’들을 위한 운동에 나섰다. 장애인들의 복지와 약자에게 불리한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그는 ‘크리스토퍼 리브 척수마비재단’ 등을 만들었고, 의회에 로비활동을 벌였다. 9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할리우드는 장애인을 위해 좀더 노력해야 한다”며 연설을 펼쳤다. 특히 배아세포 연구를 통해 척수장애가 해결될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이 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을 중단한 부시 대통령을 향해 십자포화를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사회운동가가 되기 전 자신의 본업을 한번도 잊은 바 없었다. 리브는 96년 다큐멘터리 <동정 없이>에서 내레이션을 했고, 97년에는 브리지트 폰다, 글렌 클로즈가 나온 TV영화 <황혼 속에서>를 연출했다. 98년에는 히치콕 원작을 리메이크한 TV영화 <이창>에서 휠체어에 앉아 건너편 아파트만을 내다보는 건축가 역을 했으며 슈퍼맨의 청소년기를 다룬 TV시리즈 <스몰빌>에 특별출연하기도 했다. 하버드에 들어간 전신마비 여성의 실화를 그린 TV드라마 <브룩 엘린 스토리>와 공황기의 한 소년이 삶의 장애물을 극복한다는 이야기를 그린 컴퓨터애니메이션 <양키 어빙>(2006년 개봉) 등 그가 연출한 작품들은 그의 마지막 유산이 됐다. 대신, 영화 안과 밖에서 모두 슈퍼맨이었던 이 남자는 지구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자신의 고향인 크립톤 별을 향해 영원의 시공 속을 헤엄치고 있을 것이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