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3일, 소련의 총기개발자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Mikhail Kalashnikov, 1919 ~ 2013) 별세
미하일 티모페예비치 칼라시니코프 (Mikhail Kalashnikov, 1919년 11월 10일 ~ 2013년 12월 23일)는 러시아의 군인으로, 돌격소총 AK-47을 발명하였다.

–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Mikhail Kalashnikov)
.본명: 미하일 티모페예비치 칼라시니코프 (Михаи́л Тимофе́евич Кала́шников / Mikhail Timofeyevich Kalashnikov)
.출생: 1919년 11월 10일, 러시아국 알타이현 쿠루야 (現 러시아 시베리아 연방관구 알타이 지방 쿠린스키군 쿠루야)
.사망: 2013년 12월 23일 (94세), 러시아 볼가 연방관구 우드무르티야 공화국 이젭스크
.묘소: 러시아 연방 현충원
*군복무
.노농적군
기간: 1938년 ~ 1946년
.소비에트 지상군
기간: 1946년 ~ 1993년
.러시아 연방 지상군
기간: 1993년 ~ 2013년
AK-47의 개발자로 유명하다.
M16 소총을 개발한 유진 스토너와 함께 현대의 돌격소총의 양대 산맥을 구축한 인물로서 세계 총기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러시아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유명인이자 러시아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그의 장례식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까지 직접 참석했을 정도로 그가 러시아에서 얼마나 영향력이 큰 인물인지 알 수 있다.
그밖에 RPK 분대지원화기, PK 기관총 등 다양한 명작 총기를 개발했다.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전문적으로 배워도 어려운 총기설계를 그는 배운 적도 없고 단순히 공업고등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발명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엔 문맹률이 상상 이상으로 높았으므로, 고졸만 되어도 상대적으로 고학력자에 속했다. 그러나 기계공학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고, 학사학위조차 없음에도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는 점이 그의 재능은 천부적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의 사후에도 AK 계열 자동소총의 전설은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 생애 및 활동
1919년 11월 10일, 러시아국 알타이현 쿠루야 (現 러시아 시베리아 연방관구 알타이 지방 쿠린스키군 쿠루야)에서 출생했다.
부농집안 가정에서 19명의 자녀 중 17째로 태어났는데[1] 8명만 살아 남았다. 어머니 알렉산드라는 100살 넘게 생존했지만, 아버지 티모페이는 이오시프 스탈린이 시행하고 있는 농업집단화에 앞서 부농에 대한 숙청이 이뤄질 때라서 시베리아로 추방되어 그곳에서 사망했다. 이렇게 보면 아버지를 앗아간 소련체제에 반감을 가질 만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라시니코프는 생애를 통틀어 소련-러시아에 충성을 바쳤다. 왜냐면 시베리아로 가족 전체가 추방되었는데,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추방당한 그 시베리아 알타이 지방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칼라시니코프 부부 입장에서는 상실감과 고향에 대한 향수가 있어서 정부에 반감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애초에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시베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런 걸 체감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 여파로 체제에 대한 반감도 커질 이유가 없었다. 당장 시베리아에서 자라면서 소련 정부가 칼라시니코프 가문의 출세길을 막거나 교육을 제한한다든가, 추방된 가족이라고 구타하는 등의 불이익을 주는 경우도 없었고 주변 친구들도 어차피 칼라시니코프 가족과 비슷한 가족사정으로 해당 지역으로 왔고 재산 수준도 비슷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환경도 아니었다. 다만 소련 체제 붕괴 후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의 회상을 들어보면 자신은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태어나 겨울에도 힘든 걸 잘 몰랐지만 칼라시니코프의 부모는 원래 따뜻한 지역인 흑해 지역 크라스노다르 출신이라서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시베리아의 겨울만 되면 괴로워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어린 시절 그는 어떤 것도 잘 하지 못했다고 한다. 알타이강에서 수영을 배우다 빠져 죽을 뻔하고 얼어붙은 알타이강에서 스키를 배우다가 얼음구멍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알타이 지방 출신 중에서 자신만 수영과 스키를 못 탈 거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농사 짓는 걸 배워보았지만, 이번에도 낫을 다루다 손을 크게 다칠 만큼 농사에도 재능이 없었다.
그가 유일하게 관심을 가진 것은 기계였다. 기계가 동작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그 원리를 알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농촌이라 기계가 귀했기 때문에 주변의 기계를 몰래 가져와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곤 했다. 칼라시니코프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손재주가 뛰어나 동네의 모든 자물쇠를 분해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하루는 아버지 티모페이 몰래 그 당시 귀하던 시계를 분해했는데, 다시 조립해 봤더니 작동하지 않아서 아버지에게 크게 혼났다고 한다.

칼라시니코프가 14세가 되던 해에 동급생 가브릴이 주운 녹이 쓸어 작동하지 않는 존 브라우닝이 설계한 어느 권총과 안에 들어있는 총알 6발을 받았는데, 그는 아버지 몰래 총을 분해해서 녹을 벗겼다. 당시 사포도 구하기 힘든 시골이라서 진짜 모래와 진흙을 가지고 정성스럽게 녹을 제거했고, 이 작업은 거의 한 달이 소요됐다고 한다. 드디어 총기가 말끔해지자 윤활유를 바르고 재조립을 했다. 총기가 정상 작동하자 그는 세상을 다 가진 양 기뻐했고 아직도 그 무쇠와 기름 냄새가 잊혀지지 않는다고 회고 했다. 밖으로 나가 알타이 강가에서 시험사격을 했고 4발 모두 정상적으로 발사되었다.
하루는 그의 친척 여자아이가 집에 놀러왔는데, 그가 브라우닝 권총을 애지중지 어루만지는 걸 보고 아직도 어린애처럼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고 놀렸다. 칼라시니코프는 무작정 총을 발사했는데 하필 거기에 총알이 들어있는 바람에 옷장에 구멍을 냈다. 철컥하는 발사 동작만 보여주고 이게 장난감같아 보이냐고 으스대려 했지만 약실에 한 발이 들어 있었고 그게 발사된 것. 총소리를 신고받은 경찰이 칼라시니코프를 심문했으나 칼라시니코프는 시치미를 땠고, 총을 숨겨놓은 터라 증거로 쓸 총을 찾지 못한 경찰은 결국 무혐의로 결론내리고 돌아갔다. 그러나 그날 미하일은 아버지 티모페이에게 또 죽도록 혼이 나고 권총도 압수당했다고 한다.
이 권총이 그대로 남아있었으면, 전설의 시작을 알린 총기인 만큼 브라우닝 박물관이나 칼라시니코프 박물관에 보관될 만큼 귀한 총기였겠지만 이 압수당한 총기는 결국 분해돼서 길거리에 버렸다고 한다.
1941년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여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전차장으로 싸우다 브랸스크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고, 부상이 나은 후에 카자흐스탄 소재의 부대로 배속되어 복무하던 중 신형 기관단총을 설계하여 상부에 제출하였다.
이 설계안 자체는 결함이 많아 채택되지 않았으나, 총기 설계의 재능을 인정받아 국영 조병창으로 배치되어 총기 개발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소련은 독일군의 신형 돌격소총 Stg44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와 비슷한 신형 돌격소총을 장차 소련군의 주력 개인화기로 삼을 계획을 세웠는데, 칼라시니코프가 설계한 소총이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아 소련군 제식 소총으로 채택되었고 AK-47이라고 명명되었다.
이 공로로 1949년 스탈린 훈장을 수여받고, 1951년에 육군 상사로 전역한 후에도 이즈베스크 조병창의 주임 설계관으로 일하면서 AK-47의 개량형 소총 AKM, RPK 분대지원화기, PK 기관총 등 소련군의 주력 총기들을 설계했다.
이러한 공적으로 금성훈장 2회, 레닌 훈장 수여와 함께 1969년에는 육군 대령 계급이 수여되었다.
1971년에는 비록 대학을 다니지는 못했으나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공학박사 학위가 수여되었다.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체제가 수립된 후에도 이즈베스크 조병창이 민영화된 이즈마쉬사의 주임 설계관으로 재직하였다.
1994년, 76세 생일 축하 선물로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종신 육군 중장 계급을 수여받았다.
러시아 군의 정년은 60세이므로, 칼라시니코프는 사실상의 최고령 러시아군 장군인 것이다.
그의 아들, 손자들도 그의 뒤를 이어 총기 설계에 종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M16을 개발해 재벌이 된 미국의 유진 스토너와 달리 특허를 인정하지 않는 당시 소련 제도 때문에 월 55만원쯤 되는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생활고를 타개하기 위해 최근 자기 이름을 붙인 보드카 판매에 나섰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91세 생일이었던 2009년 11월 10일, 러시아 대통령 메드베데프는 칼라시니코프에게 러시아 영웅 칭호를 수여했다.
2013년 12월 23일 지병으로 인해 94세로 숨을 거두었다.

- AK-47 개발
1947년형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 (AK-47, 러: Автомат Калашникова образца 1947)은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Mikhail Kalashnikov, 1919 ~ 2013)가 1947년에 발명한 돌격소총 (자동소총) 이다.
단순함과 높은 신뢰성, 저렴한 가격으로 유명하다.
AK-47은 가장 많이 생산된 돌격소총이다.
정품과 불법 복제판까지 합치면 대략 2억정이 생산됐다.
그리고 총에 무지한 사람도 1시간 정도의 설명을 들으면 바로 조립과 분해가 가능하고 총기 사용이 가능한 정도로 간단하다.
또 진흙이나 사막 같은 곳에서도 잘 작동된다.
AK-47을 만들 당시 M1 개런드 소총과 MP40을 참고해 만들었다고 한다.
AK-47은 프레스 방식으로 총을 만들기 때문에 전시상황에서 대량 생산할 수 있다.
AK47은 노리쇠가 무거워 무언가가 껴도 발사할 수 있다.
그리고 총100개의 부품중 4개만 작동해도 발사가 된다.
AK47의 사살 가능 사거리는 350m고 최대 사정거리는 1,500m이다.

- 일화
“우리의 적은 MP40이다! 우리에게 MP40 기관단총만 있었더라면! … – 한 소비에트군 중위, 대조국 전쟁 당시. 이 한마디가 칼라시니코프가 훗날 AK 소총 설계에 몸을 던지는 계기 중 하나가 된다.”
1997년에 칼라시니코프는 라이벌이자 M16 소총의 개발자인 유진 스토너와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이 개발한 소총을 보며 서로 평가했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의 AK-47 소총과 유진 스토너의 M16 소총은 둘 다 동구권과 서방세계를 대표하는 소총으로서 둘 다 각각 1억정이 넘게 (AK47의 경우 불법 복제품 포함) 제작 및 판매되었다.
2004년 《플레이보이》 잡지는 <세계사를 바꾼 50까지 제품> 특집 기사에서 AK47을 4위로 꼽았다. 애플 매킨토시 컴퓨터가 1위, 경구 피임약이 2위, 소니의 VCR이 3위였다. 이 기사의 부제목은 ‘지난 반세기에 등장한 가장 혁신적인 소비재를 말한다’였다. 이 총이 ‘소비재’로서 현대 세계에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 기사였다.
정작 이 총을 발명한 칼라시니코프는 2002년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만든 발명품이 자랑스럽지만 테러리스트들이 그 총을 사용하는 것은 유감입니다.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계, 농부의 작업을 돕는 기계, 예컨대 잔디 깎는 기계를 발명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