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3일, 일본의 작가 구보타 시게코 (久保田 成子, 1937 ~ 2015, 백남준의 배우자) 별세
구보타 시게코 (일: 久保田 成子, 1937년 8월 2일 ~ 2015년 7월 23일)는 일본의 조작가, 비디오 예술가이다.
대한민국의 비디오 예술가인 백남준의 부인이기도 하다.

– 구보타 시게코 (久保田 成子)
.출생: 1937년 8월 2일, 일본 니가타현 니시칸바라군 마키 (현재 니가타시 니시구)
.사망: 2015년 7월 23일 (78세), 미국 뉴욕주 뉴욕
.직업: 조각가, 대학 교수, 행위 예술가, 텔레비전 프로듀서, 시각 예술가, 비디오 아티스트
.배우자: 백남준 (1965 ~ 2006년), 데이빗 베흐만
.사조: 플럭서스
.학력: The Brookyn Museum Art School (1967 ~ 1968년) 등
.저서: Shigeko Kubota Video Sculpture 등
.수상: 구겐하임 펠로십 (1987), Maya Deren Award (1995)
백남준(1932∼2006)의 아내이자 전위예술가 구보타 시게코 (久保田成子)는 2015년 7월 23일 뉴욕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당시 용인 백남준아트센터 서진석 관장은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의 아내였을 뿐 아니라 그 자신도 열정적 미디어 아티스트였다.”라고 말했다.

○ 생애 및 활동
1937년 8월 2일 일본에서 태어난 구보타 시게코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일본 전국 미전에서 입선하며 10대 때부터 일본 미술계에서 천재 소녀로 명성이 자자했다.
1964년 일본 도쿄 쇼게츠홀 공연에서 백남준을 처음으로 만났다.
1965년에는 백남준의 기획으로, 다리 사이에 붓을 꽂고 종이에 물감을 칠한 ‘버자이너 페인팅’을 선보였다.
전도 유망한 예술가였던 그녀는 뉴욕으로 가 플럭서스 본부로 갔고, 그곳에서 또다시 백남준을 만났다.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했으나, 샬럿 무어맨과의 공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써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다 결국 구보타 시게코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
그러다가 1971년, 시부모의 반대에 의해 이혼하게 되고, 다시 캘리포니아에서 백남준을 만나 뉴욕으로 갔고, 1974년에야 작업실을 마련했다.
그 후 백남준에게 비디오 아트를 배운 구보타 시게코는 비디오 아트로 현대 미술계에 이름을 날리는 작가로 성장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이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이다.
그러다 1977년, 암에 걸려 생명을 보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백남준과 재혼해 백남준의 암 보험으로 치료를 받게 된다.
회고록에서 당시 자궁 질환으로 비싼 수술비가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보험을 들지 않아 일본으로 귀국을 준비하던 순간, 백남준이 자신과 결혼해서 부인 자격으로 수술을 받으라며 청혼했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들은 세계 최고의 현대 미술관인 미국 뉴욕의 모마 미술관과 구겐하임 미술관 등에 전시되기도 했다.
예술가 커플로 산 구보타 여사는 1996년 백남준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그를 돌봤고 2006년 1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아파트에서 임종할 때까지 함께했다.
구보타 시게코 (久保田成子)는 2015년 7월 23일, 뉴욕에서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 주요 작품
구보타 시게코는 백남준에게 비디오 아트를 배운 후, 자신만의 독창적인 비디오 조각과 설치 작품으로 현대 미술계에서 중요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구보타의 작품은 종종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해석되기도 하지만, 작가 본인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규정하는 것을 주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보타의 작품은 성, 여성성, 남성 중심의 시선, 기술과 자연의 관계 등 젠더 이슈와 관련된 주제를 탐구하며, 남성 중심적인 플럭서스 운동이나 미술계 전반에서 여성이 겪는 소외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 초기 퍼포먼스
《질 페인팅》 (Vagina Painting, 1965): 1965년 7월 “불멸의 플럭서스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아트. 음부에 붓을 꽂고 붉은 물감을 묻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로, 당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퍼포먼스는 이브 클랭의 인체 측정학이나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과 같은 남성 작가들의 작업을 여성의 신체와 관점에서 재해석하려는 시도로 읽히며, 페미니즘 아트의 중요한 사례로 언급된다. 구보타는 후일 이 퍼포먼스가 백남준과 조지 마치우나스의 요청으로 이루어졌다고 밝혔으나, 여성의 신체를 주체적으로 드러낸 급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작품 이후 구보타는 유사한 퍼포먼스를 반복하지 않았다.
– 비디오 조각 및 설치
구보타는 1970년대 초부터 비디오를 조각적 매체로 활용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그는 텔레비전 모니터 자체를 오브제로 사용하고, 이를 나무, 금속, 거울, 물 등 다양한 재료와 결합하여 독특한 형태의 비디오 조각을 창조했다.
– 뒤샹피아나(Duchampiana) 시리즈 (1972-1990)
마르셀 뒤샹에 대한 오마주로 제작된 연작이다. 구보타는 뒤샹의 작품과 개념을 비디오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재해석했다.
《마르셀 뒤샹의 무덤》 (Marcel Duchamp’s Grave, 1972–1975): 프랑스 루앙에 있는 뒤샹의 무덤을 방문한 영상을 여러 대의 모니터에 담아 합판 구조물에 설치한 작품. 바닥의 거울은 영상을 반사하며 공간을 확장한다. 1975년 뉴욕 더 키친에서 처음 전시되었다.
《비디오 체스》 (Video Chess, 1968-1975): 1968년 뒤샹과 존 케이지가 체스를 두는 영상, 그리고 옷을 입은 구보타 자신과 벌거벗은 백남준이 체스를 두는 영상을 함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는 뒤샹의 작품 속 성 역할을 전복시키려는 시도로 해석되며, 당시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ude Descending a Staircase, 1975-1976): 뒤샹의 동명 회화 작품을 비디오 조각으로 재해석한 구보타의 대표작이다. 나무 계단 구조물에 4대의 모니터를 설치하고, 여성이 계단을 내려오는 영상을 반복 재생한다. 이 작품은 비디오 아트로는 처음으로 MoMA에 소장되었다.
《문》 (Door, 1976–1977): 뒤샹의 작품 《문: 11, 루 라레》 (Door: 11, rue Larrey)를 참조하여 만든 설치 작품. 두 개의 문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가 열리면 다른 하나가 닫히는 구조이며, 내부 모니터에서는 뒤샹의 이미지와 목소리가 담긴 영상이 재생된다.
《자전거 바퀴》 (Bicycle Wheel, 1983-1990):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 《자전거 바퀴》를 차용한 작품. 실제 자전거 바퀴의 살에 소형 모니터를 부착하여 회전시키면서 영상을 보여준다. 여러 버전이 제작되었다.
– 메타-마르셀 (Meta-Marcel) 시리즈 (1976-1991)
뒤샹의 작품 ‘프레시 위도우’ (Fresh Widow)를 참조하여 창문 형태의 구조물 뒤에 비디오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연작이다.
《창 (눈)》 (Window (Snow), 1976–1977): 창문 너머로 보이는 텔레비전 스노우 노이즈를 마치 눈(Snow)처럼 보이게 한 초기 작품.
《창 (꽃)》 (Window (Flowers), 1983): 창문에 꽃 영상을 투사한 작품.
《창 (별)》 (Window (Stars), 1983): 창문에 별 영상을 투사한 작품.
《창 (눈과 컴퓨터 글씨)》 (Window (Snow With Computer Writing), 1991)
– 리버 (River) (1979-1981)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초승달 모양의 구조물에 물을 채우고, 그 위에 설치된 3대의 모니터 영상이 수면에 반사되도록 한 작품이다. 물결치는 수면 위에 비친 영상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액체 같은 현실”을 만들어낸다.[7] 이 작품은 1983년 휘트니 비엔날레에 출품되었고, 이듬해 미술 잡지 《아트 인 아메리카》 (Art in America) 표지를 장식하며 구보타를 대표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 기타 주요 비디오 조각 및 설치
《비디오 시》 (Video Poem, 1968–1976): 보라색 나일론 가방의 틈 사이로 작가의 자화상 비디오를 볼 수 있게 만든 작품. 이 가방은 일본의 예술가 고스기 타케히사가 제작한 것으로, 이를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남성적 권위에 도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 개의 산》 (Three Mountains, 1976–1979): 산과 피라미드 형태의 합판 구조물에 모니터를 내장하여 그랜드 캐니언 등 자연 풍경 영상을 보여주는 작품.
《나이아가라 폭포》 시리즈 (Niagara Falls I, II, III, 1985-1987): 여러 대의 모니터로 사계절의 폭포 이미지를 보여주고 실제 물이 흐르도록 한 대형 설치 작품.
《아담과 이브》 (Adam and Eve, 1989–1991): 모니터가 내장된 실물 크기의 로봇 인형 두 개를 이용한 작품.
《소변 보는 소년》 (Pissing Boy, 1993): 깡통에 소변을 보는 로봇 조각으로, 구보타는 이 작품이 백남준을 묘사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백남준 I과 II》 (Nam June Paik I and II, 2007): 금속 파이프와 모니터로 백남준의 신체를 형상화하고, 그와 함께한 휴가 영상을 보여주는 헌정 작품.
비디오 하이쿠-걸이 작품 (Video Haiku-Hanging Piece, 1981): 폐쇄 회로 카메라가 장착된 둥근 텔레비전이 지름 약 106.68cm의 오목한 플라스틱 거울 위에 매달려 이미지를 비추는 작품.
– 주요 비디오테이프
구보타는 조각 및 설치 작업 외에도 다수의 단채널 비디오 작품을 제작했다. 이 작품들은 주로 자신의 경험과 주변 인물, 여행 등을 기록한 비디오 일기 형식을 띤다.
《마르셀 뒤샹과 존 케이지》 (Marcel Duchamp and John Cage, 1972): 마르셀 뒤샹과 존 케이지가 체스를 두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
《깨진 일기: 하루 반인치의 유럽》 (Broken Diary: Europe on 1/2 Inch a Day, 1972): 포르타팩 카메라를 들고 유럽을 여행하며 기록한 비디오 일기. 요제프 보이스와의 만남, 뒤샹의 무덤 방문 등이 담겨 있다.[50] 저예산 여행의 현실을 보여주며 당시 유행하던 여행 안내서의 환상을 깬다.[
《나의 아버지》 (My Father, 1973-1975): 암으로 임종을 맞은 아버지를 지켜보는 자신의 슬픔을 기록한 영상. 아버지와 함께 TV를 보던 과거 영상과 현재 자신의 모습을 교차시키며 죽음과 기억의 문제를 다룬다.
《비디오 걸스와 나바호 하늘을 위한 비디오 송》 (Video Girls and Video Songs for Navajo Sky, 1973): 나바호족 보호구역에서의 경험을 담은 초현실주의적 영상 일기.
《한국 여행》 (Korean Adventure, 1984): 백남준이 34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여 가족과 조상의 묘지를 찾는 여정을 담은 영상.
《한국 무덤》 (Korean Grave, 1993): 백남준에게 헌정한 작품.
이 외에도 플럭서스 관련 오브제(《플럭서스 여행 가방》, 1964; 《플럭서스 냅킨》, 1965; 《플럭서스 알약》, 1966), 자연 풍경을 담은 비디오 조각(《록 비디오: 벚꽃》, 1981, 1986; 《녹색 설치 작품》, 1983; 《마른 산, 마른 물》, 1987–88), 신체와 치유를 주제로 한 작품(《성적 치유》, 1998), 기타 영상 작업(《소호 비누/빗물 피해》, 1985; 《두 눈을 가진 조지 마키우나스 1972, 한 눈을 가진 조지 마키우나스 1976》, 1994;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1999; 《마이애미의 겨울》, 2005-2006)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구보타의 작품은 더 키친 (1972, 1975), 에버슨 미술관 (1973, 75), 레네 블록 갤러리 (1976), 도큐멘타 6 (1977) 및 8(1987), MoMA 프로젝트 (1978), 휘트니 비엔날레 (1983) 등 주요 미술 기관과 행사를 통해 소개되었으며, 1991년 뉴욕 뮤지엄 오브 더 무빙 이미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다. 사후에는 2021년 일본의 니가타현립근대미술관, 국립국제미술관, 도쿄도현대미술관 등에서 대규모 회고전 「Viva Video! 쿠보타 시게코전」이 개최되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