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65)
감사의 이유
잘 알고 지내는 집사님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약속을 미리 한 것은 아니고 그냥 시간이 되고 할 일이 없으면 가끔 아무 이유 없이도 잘 만나 밥을 먹는다. 같이 먹다가 식사가 거의 끝나갈 때쯤 나는 서둘러 일어나 밥값을 먼저 계산했다. 그랬더니 난리가 났다. 무슨 사모님이 밥값을 계산하냐고 그럴 것 같았으면 먼저 밥 먹자고 안 했을 거라며 화 아닌 화를 다 내신다. “집사님! 저도 돈 벌어요. 밥 값은 낼 수 있다 구요” 했더니 “사모님 벌어도 저희가 더 벌어요. 그냥 사모님은 우리가 일주일 내내 전도사님, 사모님 밥 사드릴 수 있는 능력 되게 해달라고 기도만 해주세요” 하시며 결국 손에 돈을 쥐어 주셨다. 나는 늘 이렇게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감사한 마음만큼 나도 꼭 뭔가 보답하고 싶은 심정이 든다. 내가 교회사모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늘 대접을 받는 것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게 난 참 다행스럽다. 나는 누군가에게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주5일 일하며 나는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것인지 조금은 알고 있다. 사실 본인 또한 며칠 전 발을 심하게 다쳐 꼼짝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바로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멀쩡한 한쪽 다리 마저 두 다리 역할을 혼자 하는 것이 힘들었는지 퍼렇게 멍이 올라 오고 어색한 목발을 짚다 보니 어깨며 허리까지 아파오지만 하루 쉬면 우리 가정에 얼마나 타격이 큰지는 내가 제일 먼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곳에서는 배려해 주시고 쉬라 하시지만 이렇듯 몸이 아프거나 여러 사정이 있어도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우리 같은 이민자들이 맘 편히 쉴 수 없는 게 현실 아닌가. 그렇게 힘겹게 번 돈으로 우리 가정에 밥도 사주시고 가끔 하람이 용돈이나 하라며 쥐어주시는 분들이 사실 돈이 많아서 그러는 건 분명 아닐 것이다. 단지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그 사랑을 우리에게 흘려 보내는 것뿐 이리라. 그렇다 보니 우리 집은 마치 작은 교회처럼 변해버렸다. 냉장고에 세탁기며 침대 작은 그릇까지도 전부 여러 고마운 분들의 정성으로 모여진 것이니 말이다. 필요에 따라 자신의 것들을 아낌없이 나누는 분들이야 말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 그 자체이다. 그래서 나는 늘 새롭게 결심한다. 감사함을 잊지 말자. 받은 만큼 아니 더 많이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자고 말이다. 그것이 꼭 나에게 뭔가를 베푼 사람이 아닐지라도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면 늘 더 많은 사랑으로 나에게 돌아 오는 법이다.
전도사님과 내가 항상 하는 대화가 있다. 솔직히 말해 우리 둘은 참 부족하다는 것 이 요점인데,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사역자감(?)은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극히 감정적인 부분이 많고 인내심이나 참을성도 부족하며 차를 운전할 때 그다지 나이스 하지도 못하다. 신발 깔창을 좋아하는 조금은 이상한 취미와 그저 웃기기만 하는 TV프로그램도 즐겨본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거지로 사역하게 하신 거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역을 하면서 그나마라도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을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더 엉망이었을까. 이렇듯 호주에서의 사역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긴 하지만 때때로 내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잊을 때, 많은 분들에게 받는 사랑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사소한 것에 섭섭해 할 때, 하나님을 의지 하기 보다는 사람에게 더 기대고 있는 나를 발견 할 때 무엇보다 내가 문제만을 보고 감사함을 놓칠 때 늘 커다란 부담감이 나를 억누른다. 그렇지만 그저 이름과 학벌만 그럴 듯 하고 성도를 자기 욕심을 채우는 도구 정도로만 생각하며 삐딱하게 교회건물 크기에 연연하는 쓸데없는 신앙놀이 하는 분(?)들이 만연한 세상에서 적어도 영적 부담감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힘들긴 하지만 나는 너무 감사하다. 또한 몸은 비록 고단해도 성도의 삶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니 이런 경험을 하는 내 삶에도 감사하다. 발을 다치니 그 동안 아무렇게나 당연하게 쓰던 내 두 발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발을 다친 첫날. 밥맛도 없고 의욕도 없어 침대에 시체마냥 가만히 누워 있는데 하람이가 걱정스럽게 옆에 다가와 눕는다. “엄마 많이 아파?” 라고 묻는 하람이게 “쪼금” 이라고 내가 성의 없이 대답하는 찰나 눈치 없이 방귀가 나온다. 그런데 하람이가 갑자기 “엄마! 오늘은 방귀 소리가 하나도 안 웃겨” 하더니 슬퍼한다. 그 말이 이상하게 슬픈데 웃기다. 그리고 감사하다. 아픔이 잊혀지고 소소한 행복감이 밀려 온다.
박은정 사모(시드니우리장로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