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그리스·터키, 한국 방문기 (11)
시드니인문학교실에서는 지난 2019년 10월 22일~11월 1일 (그리스·터키, 10박 12일), 11월 2일~4일 (한국 강진 다산 유배지와 안동 퇴계 유적지, 2박 3일)에 ‘2019 인문학여행’을 26인이 동행해 실시했다. 이에 방문지인 그리스와 터키, 그리고 한국 일정중의 단상을 나누고자 한다. _ 편집자 주.
11월 1일 저녁비행기로 터키 이스탄불은 출발한 우리 일행은 밤새 대한민국 인천공항을 향해 달리고 달렸다.
밤새 자다 깨다 하며 그리스와 터키에서의 일정을 돌아본다.
10월 21일부터 27일 사이 그리스 방문을 통해 수많은 역사적 인물과 지형, 사건들을 접하고 정리해야 할 숙제거리가 참 많이 생겼다. 인생에 아련한 추억이 될만한 사진도 남겼다.
10월 28일부터 11월 2일 사이 터키를 방문하며 그리스에서 먼 거리지만 알렉산더의 영향력과 헬라문명 화려함과, 그리고 신앙수호의 치열함도, 터키식 캐밥과 심각한 교통문제도 맛봤다. 헬라문화의 연속성과 비연속성, 기독교와 이슬람 신앙의 통일성과 다양성, 상이성도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꿈만같다. 그런 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신비로은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한 시간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11월 2일 정오경 한국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 입국수속 후 공항을 나와 대기중인 전세버스에 올라 곧바로 한국에서의 첫 방문지인 다산의 유배지 강진으로 향했다. 강진으로 향하는 우리 일행은 지난 여행의 소감을 돌아가며 나눴다. 무엇보다 날마다 일기를 쓰신 홍길복 목사님께서 여행일기를 읽어주시는 시간은 인상 깊었다.
강진가는 길에 단풍여행객이 많아서인지 시간이 지체되었다. 시간은 빨리 지나 저녁시간이 되어 한식당을 만나 저녁식사를 나눴다.
인천공항에서 전라도 강진까지의 이동거리와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강진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예약된 호텔에 짐을 풀고 한국의 가족들에게 연락도 하며 고국의 정취를 만끽했다.

강진 일정 후 안동으로
11월 3일, 간밤에 도착해 강진에서 일박한 우리 일행은 호텔에서 조식을 하고 곧바로 오늘 일정을 시작했다. 오늘 일정은 만덕산과 백련사, 다산초당, 다산박물관, 사의재, 영란문학관, 강진 갈대축제 등을 관람하고 다음 행선지인 안동으로 향하는 것이다.
우리 일행이 첫일정을 시작하려 버스에 오르자 해설사분이 자신을 소개하며 오늘하루 일정에 대해 나누고 강진에 대해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만덕산과 백련사
우리 일행은 다산의 유배지 강진일대를 둘러보는 첫 일정으로 만덕산 백련사를 찾았다. 백련사는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만덕산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이다. 만덕산 (408m)에 있으므로 만덕사 (萬德寺)라고도 한다.
통일신라 말기인 839년 (문성왕 1년) 무염(無染) 스님이 창건하였다. 이 때부터 백련사라고 불렀다. 그러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만덕사로 불렀다. 근래에 다시 이름을 고쳐 백련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고려 무신정권 시대에 원묘국사 요세 (了世)에 의해 사찰의 교세는 확장되었다. 요세는 고려 후기 불교 정화 운동으로서 백련결사라는 신행 단체를 결성하였다. 다만 백련결사가 연구하고 설파한 내용은 관련 자료가 현재까지 전해진 게 없어 파악할 수 없다.
절 입구에 동백나무 군락이 유명하며 어느정도 올라오면 강진만이 보이며, 인근에는 다산초당이 있는데 이 절과 이어지는 오솔길이 만덕산 안에 있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절 이 절에 있던 혜장 스님과 친하게 교류하면서 이 길을 자주 오갔다고 한다.


다산초당과 다산박물관
백련사를 둘러본 우리 일행은 산길을 따라 다산초당으로 향했다. 다산초당 (茶山草堂)은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위치한 다산 정약용과 관련된 문화재이다. 1963년에 다산초당을 포함한 관련 유적 일대가 사적 제107호로 지정되었다. 공식 명칭은 강진 다산 정약용 유적 또는 강진 정다산 유적이다. 원래는 초가로 있지만 현재는 기와집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에 유적지로 불리고 있다.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이 1801년 신유박해로 인해 강진으로 귀양을 와서 18년 중 10년동안 생활하던 집이다. 이곳에서 정약용은 유배가 끝날 때까지 생활하며 학문에 몰두한 끝에 목민심서를 비롯한 숱한 저서들을 남겼다.
1800년 다산을 총애했던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즉위하면서 다산의 시련이 시작되었으며 이듬해인 1801년 (순조 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게 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조선 가톨릭 신자이자 다산의 조카딸 사위로 알려진 황사영이 청국에 있는 가톨릭 주교인 구베아 주교에게 백서 (帛書)를 보낸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황사영 백서 사건) 여기에 보수 유학파 (儒學派) 신하들로부터 서학 (西學, 가톨릭 교리)에 물들었다는 이유로 인신 공격과 모함까지 이르면서 결국 현재의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정약용이 처음부터 이곳에서 18년 간의 강진의 유배 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처음엔 강진 읍내의 주막인 동문매반가 (東門賣飯家)에서 주모의 호의로 4년간 생활하였는데 정약용은 이 주막에 사의재 (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 사의재는 강진군이 2007년에 복원해서 문화 관광 해설을 제공하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 이후 고성사의 보은산방, 학래 이청 (정약용의 제자)의 집 등을 전전하다가 47세이던 1808년 봄에 윤단 (尹慱, 1744 ~ 1821)의 산정 (山亭)인 귤동의 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산을 초당으로 초빙한 이는 윤단의 아들인 윤규로 (尹奎魯, 1769 ~ 1837)였다. 윤규로는 자신의 네 아들과 조카 둘을 다산에게 배우게 했다. 다산은 18년 (1801 ~ 1818)의 유배 기간 동안 다산초당에서 11년 가량 (1808 ~ 1818)을 머물렀다.
다산이 윤단의 산정으로 오게 된 것은 어머니가 해남 윤씨였기 때문이다. 외가 쪽 친척의 소유였던 산정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다. 다산의 외가는 해남윤씨로 고산 윤선도의 가문이다. 다산초당의 원래 주인인 윤단은 윤복의 6대손이고, 윤복의 형인 윤형의 5대손이 인물화에 탁월했던 공재 윤두서 (恭齋 尹斗緖, 1668 ~ 1715)이다.
공재는 윤선도의 증손자이기도 한데, 공재의 셋째 아들 윤덕렬의 딸이 다산의 어머니이니, 공재의 손녀이다. 결국 산정의 주인인 윤단은 다산에게 먼 외가 친척인 셈이다.
다산초당은 1963년에 사적 제107호로 지정받았다. 다산초당에 걸린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쓴 글씨로 알려져 있다. 이름의 초당 (草堂)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는 작은 초가집이었으나, 복원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현대의 정면 5칸, 측면 2칸의 기와집으로 중건하였다. 강진군에서는 다시 이를 초가집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우리 일행이 방문하 2019년까지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우리 일행은 해설사분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다산초당을 내려와 다산박물관으로 향했다.
다산박물관은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18년 유배지 강진에 남겨진 흔적을 기념하기 위한 곳이다.
다산박물관은 다산선생이 생전에 남긴 친필 간찰과 저술, 주변 인물들의 자료를 수집·보관·전시하고 있으며, 다양한 디지털 자료들로 다산선생을 친밀하게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어린이와 가족·청소년·공직자와 단체가 참여하여 강진에서 다산선생의 생활을 느껴볼 수 있도록 다산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사의재와 영란문학관
다산초당과 기념관을 방문한 우리 일행은 사의재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강진 사의재 (康津 四宜齋)는 대한민국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에 있는 다산 정약용이 현재의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를 갔을 때 최초로 머물렀던 조선시대 주막집이다.
다산 정약용이 황사영 백서 사건에 연루되어서 보수 유학파 대신들로부터 탄핵을 받고 강진으로 유배를 갔을 때 최초로 머물렀던 주막집이다. 다산은 이 사건을 계기로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되었으며 강진 고을에 들면서 지금의 이 곳에 4년 동안 머물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죄인이 강진으로 내려왔다고 하여서 주막 손님들과 백성들이 기피하였으나 유일하게 그의 사정을 알게 된 주막 노파가 호의를 베풀어주며 4년동안 이 곳에서 머물도록 주선해주었고 다산은 이 곳에서 학문을 수양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지내왔다. 그리고 보은산방으로 떠나게 되면서 호의를 베풀어 준 주막 노파에게 감사의 뜻으로 주막을 사의재라는 이름으로 지어주었다.
사의재는 네 가지를 마땅히 뜻을 이뤄야한다는 방이며 용모, 말씨, 성품, 행동을 가리킨다.
2007년 강진군에서 다산 실학성지 조성에 따라 현재의 강진읍 동성리 일대에 복원하였으며 강진군 문화해설사가 주막을 운영하면서 해설사로 역할을 맡고있다.
시문학파는 1930년 창간된 《시문학》을 중심으로 시인 박용철(朴龍喆), 김영랑(金永郞) 정인보(鄭寅普), 변영로(卞榮魯), 이하윤(異河潤), 정지용(鄭芝溶), 그리고 뒤늦게 김현구(金玄鳩), 신석정(辛夕汀), 허보(許保)가 참여하여 순수시 운동을 주도한 것을 말한다. 이들 시인들은 당시 정치색이나 사상을 투영하던 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 반발하여 순수서정시를 지향했다.
강진군 영랑생가길에 있는 ‘시문학파기념관’은 지난 2012년 개관했다. 정문에는 《시문학》 창간을 주도했던 3인의 시인 김영랑 정지용 박용철 선생의 동상이 작열하는 8월의 태양 아래 의연하다. 그리고 동상 뒤로 9인의 시인 얼굴이 동판에 새겨져 문학관을 기세 좋게 아우르고 있다. 그러고보면 이미 입구에서 시작된 김현구 거리와 문학관 측면에 잘 정리된 김영랑 생가까지 가히 강진군은 문학의 숨결이 도도히 흐르는 곳이다.

강진 갈대축제
시문학파기념관과 김영랑 시인 생가를 방문하고 강진만생태공원에서 열린 ‘강진 갈대축제’ 현장으로 이동했다.
강진만생태공원은 탐진강과 강진만이 만나는 둑이 없는 하구로 다양한 생태자원이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으며 1,131종 생태다양성의 보고로 매년 2,500여 마리의 큰고니가 방문하는 집단 서식지로 유명하다.
강긴 갈대축제 현장에는 갈대와 국화가 어우러져 장관이었다. 볼거리와 함께 먹거리도 풍성했다.
갈대축제 현장에서 우리 일행은 강진 일정을 마치고 안동으로 이동했다.
강진에서 안동까지의 거리는 280킬로미터 정도로 만만찮은 거리다. 부지런히 달려 안동에 도착하니 9시가 가까웠다. 감사하게도 그때까지 간고등어식당 사장님은 우리 일행을 기다려주셔서 맛나게 저녁식사후 가까이에 위치한 월영교를 한바퀴 도는 산책시간도 가졌다.
예약된 호텔도 정결하게 준비된 숙소로 만족도가 높았다.


임운규 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
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