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그리스·터키, 한국 방문기 (12)
시드니인문학교실에서는 지난 2019년 10월 22일~11월 1일 (그리스·터키, 10박 12일), 11월 2일~4일 (한국 강진 다산 유배지와 안동 퇴계 유적지, 2박 3일)에 ‘2019 인문학여행’을 26인이 동행해 실시했다. 이에 방문지인 그리스와 터키, 그리고 한국 일정중의 단상을 나누고자 한다. _ 편집자 주.

안동 일정 후 상경해 ‘2019 시드니인문학여행’ 마무리
간밤에 안동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여독을 풀고 11월 4일 ‘2019 시드니인문학여행’의 끝날 일정을 시작했다.
11월 14일, 호텔에서 조식 후 곧바로 일정을 시작했다. 오늘 일정은 도산서원, 하회마을, 병산서원 방문후 상경하는 일정이다.
우리 일행은 호텔에서 조식 후 도선서원으로 향했다.

도산서원
안동 도산서원 (陶山書院)은 퇴계 이황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1969년 5월 28일 사적 제170호에 지정되고, 2019년 7월 1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이황이 사망한 지 4년 후인 1574년에 설립되었다. 영남학파와 한국 유학을 대표하는 이황을 모신만큼 영남학파의 선구자인 이언적을 모신 경주 옥산서원과 함께 한국의 양대 서원으로 꼽힌다.
퇴계 이황은 1501년(연산군 7년) 11월 25일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현 노송정 종택 태실)에서 태어났기에 이곳이 생가이면서 태실이 모셔져 있다. 참고로 퇴계 이황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574년(선조 7년)에 시작하여 1576년 완공하였다. 1570년 퇴계 이황이 작고하자, 1572년에 위패를 상덕사에 모시기 위해 공사가 시작되었다. 1575년에 선조가 명필 한석봉으로 하여금 쓰게한 편액을 하사함으로써 영남 유림의 본산이 되었다. 1615년(광해군 7) 사림이 조목(趙穆)을 종향(從享)했다.
1969년 사적 제170호로 지정되었고, 1970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수되어, 1977년 관리사무소가 설치되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1975년부터 2007년까지 대한민국에서 발행된 1000원 지폐 뒷면의 디자인 소재로도 사용되었다.

도산서원 관련 문화재는 다음과 같다.
안동 도산서원 전교당 – 보물 제210호 : 유생들의 자기 수양과 자제들의 교육을 하기 위한 강당이다. 전교당의 맢 마당 좌우에는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1574년(선조 7년)에 지었고, 1969년에 수리를 하였다. 팔작지붕과 온돌방,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현판 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선조의 앞에서 쓴 글씨라고 전해진다.
안동 도산서원 상덕사 및 삼문 – 보물 제211호 : 도산서원 가장 뒷쪽에 이황 선생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1574년(선조 7년)에 지었고, 1969년에 수리를 하였다.
강세황필 도산서원도 – 보물 제522호
안동 도산서원 – 사적 제170호
문화재청은 2018년 1월 이곳 안동 도산서원을 비롯한 한국의 대표서원 9곳을 「한국의 서원」으로 지정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신청하여, 2019년 7월 1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하회마을
안동 하회마을 (安東 河回마을)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전통 민속마을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들은 보물 2점, 국가민속문화재 9점 등을 포함하여 11점이고 이밖에 국보 2점이 있다.
2010년 7월 31일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의 제34차 회의에서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되었다.
풍산 류씨 집안의 발상지이며 그들의 자손들이 여기에 머물러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서애 류성룡과 겸암 류운룡이 이 곳에서 태어났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강거의 제일은 평양이요, 계승의 제일은 하회’라고 극찬하였다.
특히 류성룡은 회재 이언적과 퇴계 이황의 학설에 따라 이기론(理氣論)을 펼치고 양명학을 비판했으며 이황의 이선기후설(理先氣後說)을 좇아 기(氣)는 이(理)가 아니면 생(生)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여 기보다 앞서 있는 실체로서의 이를 규정했다.
류성룡은 양명학의 핵심적 이론인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과 치양지설(致良知說)이 ‘굽은 것을 바로잡으려다 지나치게 곧아진(矯枉而過直)’ 폐단에 빠진 것으로 불교의 학설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하나에 치중됨이 없이 병진해야 한다는 지행병진설(知行竝進說)을 주장했다.
그가 남긴 저작 중 『징비록』 (懲毖錄)은 이러한 ‘알면 행하여야한다’는 지행병진설이 잘 반영된 책으로 알려 있다. 참혹한 국난의 하나였던 임진왜란에서의 아픈 경험을 거울삼아 다시 그러한 수난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후세를 경계하기 위하여 남긴 저술이다.
하회탈은 국보 제121호로 우리 나라에서 현존하는 탈 중 가장 오래된 탈이다. 지금은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부네, 백정, 할미 9개의 탈만 전해지며, 이 중 3개의 탈은 분실되었다.

하회마을은 무엇보다 고택이 유명하다.
.입암고택 또는 양진당
보물 제306호인 입암고택은 입암(立巖) 류중영의 호를 따서 입암고택(立巖古宅) 또는 양진당(養眞堂)이라고 부른다. 현재 풍산 류씨 겸암파의 대종택으로 보물 제306호이다. 사랑채는 고려시대의 건축양식을 가지며, 안채는 조선의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는 고려와 조선의 건축양식이 공존하는 고택이다.
.충효당
보물 제414호인 충효당은 서애의 문하생과 삼림들이 장손 류원지를 도와서 지었고, 증손자 류의하에 의해 확장된 조선시대 사대부 양식의 고택이다. 충효당 내에는 영모각이 별도로 건립되어 서애 선생의 저서와 유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바깥마당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방문기념식수가 있다.
.작천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제87호로 작천고택 또는 류시주 가옥이라고 부른다. 원래 작천 류도관의 호를 따서 작천고택이라고 불렀는데, 현재의 집주인인 류시주의 이름을 따서 부르기도 한다. 조선중기의 건축양식을 다랐으며, 1934년 대홍수로 1채가 유실되고 현재는 일자형의 안채만 남아있다. 사랑방에서 안방으로 이어지는 앞마당에는 작은 토담을 쌓아 사랑방 손님과 안채의 부녀자가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만든 것이 재미있는 특징이다.
.하동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제177호로 하회마을 동쪽에 있다고 하여 하동고택이라고 불린다.
.귀촌고택
풍산 류씨 귀촌파(龜村派)의 종가집이며, 사당에는 귀촌 류경심 공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그의 어머니 영양남씨와 며느리 문소김씨는 모두 열녀로 정려비가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북촌댁
국가민속문화재 제84호로 북촌댁은 1797년 정조 21년에 지중추부사 류사춘에 의해 처음 건물이 세워졌고, 1862년 철종 13년에 경상도도사 류도성에 의해 증축되어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마을 북쪽의 99칸 집으로 불리었으며, 사랑채와 안채, 별당, 사당, 대문간채를 두루 갖춘 전형적인 사대부 집의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다. 주요 건축물로는 큰 사랑채인 북촌유거와 중간 사랑인 화경당, 작은 사랑인 수신와를 비롯하여 안채, 등이 있고, 류이좌의 유품이 몇 점 남아 있다. 2007년 2월 7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였고, 2008년 한류스타 배용준이 이곳 화경당에서 하룻밤을 묵고 갔다.
.남촌댁
국가민속문화재 제90호로 정종 21년 지은 99칸의 건물로 하회마을 남쪽 사대부의 가옥을 대표하였으나, 1954년 화재로 안채와 사랑채가 소실되고 내부에 있던 진귀한 도서와 골동품들이 모두 불타버리고, 현재는 대문간채와 별당, 사당만 남아있다.
.주일재
주일재는 국가민속문화재 제91호로 사랑채, 안채, 사당, 광채로 구성되어 있다. 마당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사랑채가 이고, 왼편으로 내외담이라고 하는 작은 담장이 있다. 안채로 통하는 문 앞에 쌓아서 안채가 보이지 않게 하였다.
.지산서루
지산서루(志山書樓)는 대문없이 널찍한 정원을 가지고 있으며, 사랑채와 안채가 있는 고택이다. 사랑채는 정사와 유사한 형태로 지어졌으며, 우승지와 대사간을 지낸 류지영이 독서에 매진하기 위해 지은 도사관이다. 그의 호를 따서 사랑채 이름을 지산서루로 하였다.
.하정재
원지정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고택으로 사랑채의 마루에서 보면 부용대와 시내가 한눈에 보이며 동쪽으로는 화산을 바라보고 있으므로 전형적인 선비의 음풍농월을 즐길 수 있는 고택이다.
.담연재
담연재는 신축된 전통양식의 저택이며,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방문 때 이곳 앞마당에서 하회탈춤 공연이 펼쳐졌던 곳이다. 탤런트 류시원의 부친 소유의 저택이다.

병산서원
도산서원과 하회마을을 둘러보고 하회마을에서 오찬까지 나눈 우리일행은 병산서원으로 향했다.
병산서원(屛山書院)은 사적 제260호로 1572년 서애 류성룡이 31세 때에 건립하여 후진을 양성하던 서원이다. 서애의 사후 7년 후인 1614년 서애를 존경하던 사림들이 존덕사(尊德祠)를 세워 류성룡을 배향하였고, 서애의 셋째 아들 수암 류진 사후에 그도 배향하였다. 1863년 병산으로 사액을 받았으며, 복례문, 만대루, 동재, 서재, 입교당, 장판각, 존덕사, 전사청, 고직사 등이 있다.
이렇게 우리 일행은 오늘 하루 도산서원과 하회마을, 병산서원까지 방문일정을 마쳤다.
모든 순례 일정을 마치고 상경하며 휴게소에서 차담도 하고 그동안 여행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갖으며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홍길복 목사님께서는 그동안 쓰셨던 여행일기를 읽어주셨다. 그때그때마다 드신 생각들을 진솔하게 써내려가신 목사님의 섬세함이 잘느껴지는 여행일기였다. 홍길복 목사님과 함께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이 복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며
10월 22일 시드니에서 출발한 인문학여행단은 아테네를 첫 행선지로 근대올림픽 경기장, 국회의사당과 무명용사의 비,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학술관, 아크로폴리스 세계문화유산 1호 파르테논 신전, 소크라테스 감옥터 등을 방문 후, 야간 페리로 유럽문명의 발상지 크레타 섬으로 이동했다. 크레타에서는 베네치아 성채와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무덤, 크로소스궁전과 고고학 박물관, 이라클리오 일대, 디도기념교회 등을 방문 후, 이어 다시 야간 페리로 고린도로 이동해 고린도운하, 고린도 박물관, 고린도 유적지(사도 바울이 재판을 받은 비마터와 아고라가 있는 로마유적지) 등을 방문했다. 이어 올림피아로 이동해 최초의 올림픽을 시작한 곳, 성화채화 터, 김나시오, 올림픽 대경기장과 신전터 등을 둘러 보았다. 일정 5일차에는 델피로 이동해 아라호바 마을, 델피박물관, 옴파로스, 델피 유적지를 살핀후 메테오라로 이동했다. 메테오라에서 수녀원공동체를 한곳 방문 후 인근 호텔에서 일박, 다음날 새벽부터 메테오라 수도원공동체를 순례했다. 메테오라의 수도원들은 공중에 달려있는 듯 했다.
6일차 일정을 마치고 인문학여행단은 그리스 국경을 넘어 터키로 입국했다. 차낙칼레 해협을 페리로 넘자 1차 세계대전 당시 안작연합군이 큰 희생을 입은 갈리폴리 전투지 해안을 볼 수 있었다. 이어 ‘트로이’로 유명한 아이발릭에 도착해 터키에서의 첫날을 보냈다. 7일차에는 에베소를 찾았다. ‘에게해의 두 개의 장미’로 극찬 받았던 버가모와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 에베소에서는 유적입구에 누가의 무덤, 에베소 거리, 헬레니즘 시대 건축물 원형 대극장, 셀수스 도서관, 아카디아거리, 마리아의 집 등 많은 유적들이 산재해 있었다. 에베소에 이어 밀레토스로 이동해 이오니아의 스토아 흔적, 대 원형경기장, 대규모의 아폴론 신전 등을 볼 수 있었다. 일행은 파묵칼레로 이동해 일박했다. 파묵칼레는 ‘목화의 성’이란 이름답게 환했고, 히에라폴리스는 온천요양으로 유명세가 날만큼 충분히 온천수가 샘솟았다. 히에라폴리스에는 고대 주거지역과 원형경기자, 필립 순교지 등의 유적이 있었다. 파묵칼레에서 장거리를 달려 다음행선지인 카파도키아에 도착해 일박했다. 카파도키아는 기독교인들이 박해받아 숨어 지내던 땅속 도시 데린쿠유, 기암괴석의 괴레메 골짜기,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높은 우치사르 등을 방문 후 카이세리공항에서 비행기로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터키에서의 마지막 날 일정은 이스탄불 보스프러스 전세선으로 보스프로스 해협을 유람 후 이집시안바자르, 술탄들의 거주지 톱카프 궁전, 성소피아성당과 블루모스크, 오벨리스크 등을 관람 후 저녁식사를 위해 모인 식당에서 생일을 맞은 일행 축하와 회고의 시간을 갖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11월 3일 한국에 도착해 강진과 안동에서 한국일정도 잘 가졌다. 이렇게 상경해 일단 해산한 우리 일행은 2019년 11월 11일 인천공항에서 모여 호주로 귀국했다.


임운규 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
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