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그리스·터키, 한국 방문기 (9)
시드니인문학교실에서는 지난 2019년 10월 22일~11월 1일 (그리스·터키, 10박 12일), 11월 2일~4일 (한국 강진 다산 유배지와 안동 퇴계 유적지, 2박 3일)에 ‘2019 인문학여행’을 26인이 동행해 실시했다. 이에 방문지인 그리스와 터키, 그리고 한국 일정중의 단상을 나누고자 한다. _ 편집자 주.

카파도키아의 괴레메 골짜기, 데리쿠유, 우치사르 바위산 그리고 이스탄불로
어제는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 일대를 둘러본 후 장거리를 달려 카파도키아 인근 호텔에서 일박했다.
10월 31일, 오늘 일정은 호텔 조식 후 카파도키아 사파리 투어, 괴레메 골짜기,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간 지하도시 데린쿠유, 우치사르 방문 후 카이세리 공항에서 이스탄불로 이동하는 일정이다.

카파도키아 (Cappadocia)
카파도키아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로마인들로부터 도망쳐 온 기독교도의 삶의 터전으로 시작됐다. 다음에 동로마 제국이 성상 파괴 운동을 일으키자 이 종파 운동을 반대한 신자들은 동굴이나 바위에 구멍을 뚫어 지하도시를 건설해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살았다.
카파도키아는 네브세히르 (Nevsehir)와 카이세리 (Kayseri) 사이에 위치한 광활한 기암지대를 부르는 이름으로 수도 앙카라에서 300km 남쪽에 위치한 아나톨리아 고원의 중부에 자리 잡고 있다. 카파도키아는 ‘아름다운 말 (馬)이 있는 곳’이라는 뜻의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한 말로 자연의 신비와 인간의 슬기가 극치의 조화를 이룬, 지구상에서 몇 안 되는 명소이다. 지상의 기암괴석과 지하의 암반, 그리고 그 속에다 인간이 삶의 터전으로 마련한 도시와 마을, 교회가 하나의 조화로운 복합구조를 이루고 있다.
카파도키아에는 현재 100여개의 교회가 남아 있다. 이 석굴 교회는 지상에 있는 교회와 다를 바 없는 십자 형태의 구조를 하고 있거나 둥근 천장을 가진 곳이 많다. 교회 내부의 프레스코화는 보존 상태가 좋을뿐더러 내부 가득 장식되어 있었다.
카파도키아 (Cappadocia)는 예전의 소아시아의 중앙에 위치한 지역 이름으로서 오늘날 터키의 카파도캬 (Kapadokya)에 해당된다. 아나톨리아 고원 한가운데에 자리한 카파도키아는 실크 로드가 통과하는 길목으로 대상 행렬이 근대까지 이어졌다.

괴레메 (Göreme, Goreme) 골짜기 사파리 투어
우리 일행은 괴레메 골짜기를 사파리 투어형식으로 둘러 보았다.
괴레메 (Gereme)란 뜻은 “보이지 않는”이란 뜻으로 기독교 박해자들을 피해 눈에 띄지 않는 지하나 동굴 속에 교회와 생활공간을 만들어 신앙생활을 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초대 교회 시절에는 로마, 오스만 터키 시대에는 이슬람의 핍박을 피해 숨어든 기독교인들과 수도사들이 수도를 하기 위해서 만든 거대한 동굴 교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괴뢰메 (Goreme) 근처에 위치한 ‘괴뢰메 야외 박물관 (Goreme Open Air Museum)’은 모자이크로 장식된 암굴 교회와 예배당의 복합 수도원으로 알려져 있다. 9세기 이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기독교인들의 대규모 정착지로 이곳에는 ‘엘말르 교회’와 ‘성 바질 교회’, ‘성 바바라 교회’, ‘일라니 교회’ 등 아주 흥미롭고도 잘 보존된 교회들이 산재해 있다. 내부는 모자이크화나 성화로 장식되어 있고, 교회 근처의 바위를 깎아 만든 침실이나 테이블, 창고 등은 이곳에서 수도사들이 거주했음을 보여준다. 그림에 새겨진 그림들을 통해 괴뢰메 골짜기의 교회들이 성지 순례의 장소로도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지금도 많은 순례자들이 이 교회들을 찾아온다.
카파도키아에는 3천 개가 넘는 동굴 수도원이 있다고 한다. 괴레메 골짜기 내에도 30여 개 이상의 동굴교회가 있는데 독거 수도생활에서 공동 수도생활로 변화해가는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한다. 9세기 무렵에 지어진 것들이 대부분인데 내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 등을 주제로 하는 성화들로 장식되어 있는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대표적인 동굴교회로는 바실리우스 교회 (작은 교회), 엘말러 킬리세 (사과 교회), 성녀 바르바라 교회, 열라늘러 킬리세 (뱀 교회), 카란르크 킬리세 (어두운 교회), 차르클러 킬리세 (샌들 교회), 크즐라르 마나스트러 (수녀원), 엘 나자르 교회, 토칼러 킬리세 (버클 교회) 등이 있다. 교회 이름은 각 교회 내의 벽화에서 그 특징을 따서 부르고 있다.
카파도키아에는 자연의 풍화·침식 작용으로 인해 다양한 모습을 한 계곡들이 여럿 생겨났다. 괴레메 골짜기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바위들이 특징이라 하겠다. 이곳의 돌은 그냥 돌이 아니다. 뾰족한 도구로 긁으면 돌가루가 떨어진다. 카파도키아의 지형은 본래 부드러운 사암 (砂岩, sandstone)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수백만 년 전 화산방출로 인해 생긴 응회암 (凝灰岩, tuff) 층이 그 위를 덮어버렸고, 응회암 위로 또 다시 용암이 흘러넘치면서 단단한 새 지층을 만들게 된다. 이러한 지층이 오랜 세월 동안 풍화와 침식 작용을 거치면서 오늘날과 같은 신비로운 모습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사암과 응회암은 경도 (硬度)가 낮다. 이곳 주민들이 어렵지 않게 동굴을 만들어 그곳에서 거주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데린쿠유 (Derinkuyu)
게린쿠유를 방문하기전 우리 일행은 터키식으로 점심식사를 나눴다. 자기 속에서 음식이 나오는데 현지 식재료와 문화가 결합해 만들어낸 맛으로 별미였다.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데린쿠유로 향했다.
데린쿠유 (Derinkuyu)는 ‘깊은 우물’이라는 뜻의 마을이름이다.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지하도시가 발견되면서 성지화되었다. 데린쿠유가 발견된 이유는 1960년 어떤 농부가 닭을 좇다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후 비슷한 지하도시가 계속 발견되었는데 그 수가 무려 40여개나 된다. 데린쿠유는 깊이 55m 20층의 주거공간까지 조사되었으며 깊은 곳까지 맑은 공기가 닿을 수 있게 40m 깊이로 환기구를 만들어 놓았다. 시설규모로 보아 약 8천명이 거주하였을 것으로 본다.
왜 이렇게 많은 지하도시가 만들어졌을까. 자연환경과 외부침략이라는 두 요인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카파도키아 일대는 여러 암층이 얽혀 있고 또 파내기는 쉽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굳어져가는 응회암 지층이 많다. 이것이 자연적인 이유라면 아시리아, 페르시아, 로마와 같은 거대세력이 휩쓸고 간 광풍의 역사는 두 번째 이유가 될 것이다.
자연조건은 선사시대부터 계속된 화산활동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카파도키아에는 대규모 기암지대가 많은데 이는 에르시에스(Erciyes)산의 분출 때문이다. 용암과 화산재 충적층은 적갈색 흰색 주황색 등 서로 다른 지층을 만든다. 이러한 지층변화는 지하공간을 만들 때 아주 유리하다. 예를 들어 응회암층을 파내면 그 위쪽의 단단한 용암층이 자연스럽게 지붕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현재 터키가 이스탄불은 유럽에 나머지는 아시아에 걸쳐있는 것처럼 카파도키아도 과거에는 유럽과 아시아 틈에 끼어 있었다. 이곳은 주요한 고대 통상로로 BC 3세기경에는 아바노스(Avanos) 위르굽(Urgup) 등 여러 왕국이 자리 잡은 문화 경제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 때문에 히타이트, 그리스, 로마 등 거대세력의 패권이 바뀔 때마다 온 몸으로 전쟁의 광풍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카파도키아 일대에 흩어져 있는 동굴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데린쿠유처럼 평지에서 아래로 파내려간 지하도시, 바위산을 옆에서 뚫어 만든 괴레매 동굴주거지, 깍아지른 절벽 중간에 지은 동굴교회 등. 이러한 동굴이 상당 부분 침략과 도피의 산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굴 속에서 선사시대의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인간이 처음 여기에 살기 시작한 것은 수렵 채취기인 4000년 이전으로 보인다.
데린쿠유에서는 흰 대리석으로 만든 독수리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BC.18세기 이 지역을 지배하던 히타이트의 유물이다. BC.401년 크세노폰이 쓴 아나바시스(Anabasis)에는 프리기아인이 만들었다고 쓰여 있다. 프리기아인은 히타이트와 비슷한 시기 아나톨리아에 거주하던 사람들이다. 누가 만들었든 오랜 세월동안 조금씩 확장되었기 때문에 어떤 한 시기의 유물로 보는 것은 마땅치 않다.
응회암은 석기나 뼈조각 등 단순한 도구로도 쉽게 파낼 수 있다. 그래서 추위와 맹수를 피하기 위한 동굴이 선사시대부터 만들어졌을 것이다. 처음에는 지평면 근처에 작은 동굴이 만들어졌겠지만 이후 광야로 쫒겨온 기독교인에 의해 크게 확장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최종 완성된 규모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다. 처음에는 독립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점차 연결통로를 확장하여 주변에 있는 지하도시와 소통하기도 했다.
변변한 측량도구도 없던 시절 도시간 연결통로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사막의 지하수로를 만들 때 그랬던 것처럼 두 개의 수직갱을 이용했을 것이다. 두 도시 끝에 수직굴을 파고 땅위에서 마주 보도록 막대를 놓는다. 그리고 수직굴 아래도 같은 방향으로 막대를 놓고 뚫어 나가면 서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지하도시 곳곳에 있는 수직갱은 환기와 햇빛을 받아들이는 목적도 있었지만 이렇게 지하도시간 연결 작업에도 활용되었을 것이다
지하도시에는 지상에서 필요한 시설이 거의 그대로 옮겨져 있다. 방이나 부엌 외양간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공간은 물론 학교나 세례 제의를 위한 집회시설, 곡식이나 포도주를 저장하기 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심지어 법을 어긴 죄수나 격리가 필요한 사람을 가두어 놓은 흔적도 있어 이들이 생활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이외에도 생명유지에 꼭 필요한 물저장소, 환기시설, 매장공간도 보인다. 외부침입에 대비해서 통로 중간에는 비상 차단용 돌을 배치하였다. 이곳은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도록 좁게 만들었다.
동굴 안에 웬만한 주거기능이 갖추어져 있긴 하지만 적의 위협이 없는 평시에는 지상으로 나와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했다. 근처에서 농사를 짓고 양을 키우면서 지하도시에 식량을 공급한 것이다. 저장 공간에서 발견된 밀이나 포도주 그리고 교역을 통해 얻은 직물 그릇 제의도구는 지상과 지하생활을 병행하던 이들의 삶을 어느 정도 추정해 볼 수 있게 해 준다.
생활공간과 물자를 갖추었다 해도 어떻게 그 긴 세월을 지하에서 버텨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침략과 학살의 공포를 피해 일단 동굴로 들어오긴 했지만 그 곳에서 장기간 버티는 건 더욱 끔찍한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특히 어둠과 폐쇄로 인한 공포는 육체적인 공포보다 더 심각했을 것이다. 연구 자료에는 지하생활을 견디지 못해 정신병에 걸리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좀 넓은 공간에는 중앙에 기둥이 설치되어 있다. 어떤 기둥에는 구멍이 뚫어져 있는데 이것은 밧줄이나 사슬로 정신질환자를 묶어두기 위한 것이었다. 침략의 광풍이 지나간 뒤 지상으로 올라온 사람들은 어둡고 좁은 지하생활로 인해 곱추나 기형이 되었으며 햇빛 때문에 실명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들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잘 느껴지는 기록이다.
기독교에서는 지하도시의 삶을 신을 향한 염원과 신앙의 결정체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러한 삶이 선택이 아니라 학살의 공포에서 비롯된 것임은 자명하다. 정복자의 입장에서 피정복자의 종교나 문화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노예로 부릴만한 가치가 없으면 무차별 학살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하여튼 신앙이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겠지만 데린쿠유는 바로 그 고난한 삶을 보여주는 흔적에 다름 아니다.

우치사르 바위산
데린쿠유 방문 후 우리 일행은 우치사르 바위산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지막한 언덕은 모두 바위로 절경이었다.
우치사르 바위산은 300만년 전 인근 에르시예스 산에서 대규모 화산 폭발이 일어나 화산재에 덮여 굳어진 땅 위에 화산재와 용암이 쌓였고 이후 끊임없이 일어난 침식과 풍화를 거쳐 다채로운 형태의 기암괴석들이 가득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우치사르는 “뾰족한 바위”라는 뜻으로 특징은 기암괴석의 동굴교회들이다.
이곳들의 특징은 기암괴석의 동굴교회와 땅속으로 이어진 지하도시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로마인들로부터 도망쳐 온 기독교도의 삶의 터전으로 시작됐으나, 7세기 중반에 이슬람의 침공을 받게 되자 기독교 신자들이 이슬람의 핍박을 피해 동굴이나 바위에 구멍을 뚫어 지하도시를 건설해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살았던 곳이다.
파샤바 계곡 (Pasabag Valley)은 일명 수도사의 골짜기로 불리는 카파도키아의 상징이며, 스머프 작가인 벨기에 피에르 클리포드가 이곳 파샤바 계곡에서 영감을 얻어 개구장이 스머프의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카이세리 공항에서 이스탄불로
카파도키아 일정을 마치 우리 일행은 70킬로미터 떨어진 카이세리공항으로 이동해 항공편으로 이스탄불로 향했다.
카이세리공항은 카파도키아와 이스탄불을 오가는 직항 노선을 비롯해 폴란드, 독일, 벨기에 등으로 이동하는 국제선을 함께 운항하는 공항으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카이세리 공항에서 이스탄불까지는 600여 킬로미터 거리로 1시간 20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스탄불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예정된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식사 후 휴식시간을 즐겼다.
호텔은 쾌적하고 음식도 좋았다. 간만에 여유있는 저녁을 즐긴 날이다.
호텔 방에 들어와 침실에 누워 오늘을 돌아본다.
카파도키아는 기독교인들이 박해받아 숨어 지내던 땅속 도시 데린쿠유, 기암괴석의 괴레메 골짜기,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높은 우치사르 등을 신앙을 지키려 땅속으로 들어갔던 현장을 방문하며 드는 생각은 높은 곳으로 향했던 그리스의 메테오라 수도원공동체가 떠올랐다. 그리스 메테오라의 신앙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 더 높은 곳으로 향했다면, 터키의 신앙인들은 깊은 땅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어느 곳이든 녹녹한 장소는 아니지만 두 곳을 방문한 입장에서는 그나마 높은 곳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그나마 신선한 공기를 맘껏 쉴 수 있다는 것이 어디인가! 호텔에 편히 누워 이런저런 생각하다 잠이들었다.


임운규 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
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