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2026년 8월 모임 실시
린필드 목요모임 ‘한국사에 고대사는 존재하는가?’, 독서모임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실시
리드컴 수요모임은 주강사 홍길복 목사 강연, 8월 12일과 26일 (수, 오전 10시) 명성교회에서 [8월 6일 강연과 20일 발제 전문포함]
시드니인문학교실 (The Humanitas Class For the Korean Community in Sydney)은 2026년 8월 모임을 린필드와 리드컴에서 실시한다.
리드컴 수요모임은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를 주강사로 8월 12일과 26일에 새벽종소리명성교회 (리드컴 소재)에서 모인다.
린필드 목요모임은 중간방학을 마치고 8월 6일 (목) 오후 7시, 린필드한글사랑도서관 (김동숙 관장, 454 Pacific Hwy, Lindfield)에서 김대근 강사와 ‘한국사에 고대사는 존재하는가?’란 주제로 모임을 가졌다.
8월 6일 모임에서 김대근 강사는 서두에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한반도와 그 주변에 살아왔던 사람들 (현재의 국민국가 영역과 민족 개념을 뛰어넘는)의 ‘상고사’는 존재하며, 이는 여러 문헌과 유적으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강단사학계’는 이를 연구하기는커녕 ‘위서’라 칭하거나 언급을 회피하고, 새롭게 발견되는 유적들에도 거의 아무런 연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론을 말씀드리기 위해, 먼저 이번 시간에는 자주 언급되는 용어들의 개념을 살펴보겠습니다. 또한 ‘위서 논쟁 (僞書論爭)’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한국 상고사와 관련되어 언급되는 대표적인 ‘위서’들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울러 위서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환단고기]에서 주장하는 몇 가지 내용도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다른 나라의 문서들과 학술지 논문들을 살펴보며, 이번 시간에 다룬 상고사의 내용 및 연구들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이를 통해 ‘위서’들에서 주장하는 상고사를 다른 각도에서 한 번 조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라며 강연을 이어갔다.

김대근 강사는 ‘용어 정리와 사관의 중요성’, ‘강단사학계가 위서로 분류한 책들’, ‘환단고기의 핵심 주장들’ 등의 순으로 강연했다.
강연을 마무리 하며 “이러한 위서 논쟁이 남긴 긍정적인 면을 말씀드리면서 이 번 시간을 정리하겠습니다. 서로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국내외 고금의 문헌들을 샅샅이 추적하는 과정에서, 단군조선에 관한 새로운 사료들과 유적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세조·예종·성종 년간에 걸쳐 세 차례 반포되었던 수서령 (收書令)을 통해서 수거된 책제목을 할게 된 점입니다. 서적의 제목들도 심상치 않습니다. 고조선비사 (古朝鮮秘詞), 조대기 (朝代記), 대변설 (大辯說), 안함노원동중삼성기 (安含老元董仲三聖記), 동천록 (動天錄), 통천록 (通天錄), 표훈삼성밀기 (表訓三聖密記), 표훈천사 (表訓天詞)입니다. 무엇인가 제목만으로도 어디선가 발견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조선의 왕조에게는 무엇인가 거슬리는 내용이라도 적혀있던 것 일까요? 제출하지 않거나 반발하면 참하라고 했으니 꽁꽁숨기던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폐기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또한, 천문학적 관측 기록을 통한 역사 검증 시도도 이루어졌습니다. 세종 대의 천문학자 이순지가 편찬한 국가 공인 천문서 《천문류초》에는 고대 오성 결집 현상이 기록되어 있어 고대 천문학 수준을 보여주는 공신력 있는 사료로 평가받습니다.
오성결집이란 목성, 화성, 토성, 수성, 금성이 태양과 달 사이에 정렬하는 특이한 천문현상으로 육안으로 관찰이 가능했었다고 합니다. 이와 비교하여 《환단고기》에 기록된 기원전 1733년의 ‘오성취루 (다섯 행성이 루성에 모임)’ 현상 역시 1990년대 천문학자들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역계산을 통해 실제 사실에 가깝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다음 시간에 더 자세하게 다루어 보겠습니다. 비록 《환단고기》 자체는 위서 논란 중심에 서서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천문 기록만큼은 현대 과학을 통해 엄밀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차이점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시간에는 학술 논문과 해외 기록들을 참조하여 상고시대 거대 연방국가의 존재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내용들을 살펴보겠습니다.”라고 강연 후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졌다.

8월 20일 (목)에는 오후 7시, 린필드한글사랑도서관 (김동숙 관장, 454 Pacific Hwy, Lindfield)에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현준 저서) 서적으로 1-3 장 박혜경 회원, 4-5장 김마리아 회원의 독서발제 모임을 가졌다.
박혜경 회원은 ‘제1장 왜 어떤 거리는 걷고 싶은가 : 강남 거리는 왜 걷기 싫을까?, 명동엔 왜 걷는 사람이 많을까?, 공간의 속도, 카페 앞 테라스는 어떻게 거리를 좋게 만드는가?’, ‘제2장 현대 도시들은 왜 아름답지 않은가 : 휴먼 스케일, 카오스적인 도시 간판, 옛 도시: 통일된 재료와 지형에 맞추어진 다양한 형태, 골목은 없고 복도만 있다, 머리 위 하늘을 빼앗긴 도시, 빨래가 사라진 도시, 스카이라인, 감정 시장’, ‘제3장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 : 감시받는 사회, 공간과 권력,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 클럽에 왜 문지기가 있을까?, 감시는 나쁘기만 할까? 광장과 운동장, 호텔과 모텔 사이, 면적 vs 체적’ 순으로 독서발제했다.
이어 김마리아 회원은 ‘제4장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뉴욕 이야기 : 로프트, 예술가 부동산, 깨진 유리창의 법칙, 냉장고와 건축, 도시 개발업자의 비밀 무기, 도시 재생 생명의 사이클, 죽은 시설의 부활 하이라인 공원, 지루한 격자형 도시 뉴욕은 어떻게 성공했는가?, 남대문은 고려청자와 무엇이 다른가?’, ‘제5장 강남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사람이 만든 도시 도시가 만든 사람 : 도시는 유기체, 아메바부터 척추동물까지, 진화하는 도시 로마 파리 뉴욕, 화폐 속 건축가, 강남과 북한’ 순으로 독서 발제 후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졌다.
유현준 저자는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및 미국 건축사이다. 하버드 대학교, MIT, 연세대학교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하버드 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 후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하였다. MIT 건축연구소 연구원 및 MIT 교환교수 (2010)로 있었다. 2013 올해의 건축 Best 7, 2013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 CNN이 선정한 15 Seoul’s Architectural Wonders, 2010 건축문화공간대상 대통령상, 2009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으며, 국제 현상 설계에서 다섯 차례 수상하였다. 2011 한국현대건축작가 16인 아시아전 요코하마 전시, 2010 한국현대건축작가 17인 아시아전 상하이 전시, 2015 멜버른 대학교 한국현대건축작가 초청 전시를 가졌다. 건축으로 세상을 조망하고 사유하는 인문 건축가. 건축가는 사회의 복잡한 관계를 정리해 주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는 잘 어우러질 수 있는 화목한 건축으로 관계와 사회를 바꿔 나가고 있다. 또한 여러 매체에 글을 연재하면서 방송 출연 및 유튜브 〈셜록 현준〉을 통해 공간과 건축 이야기를 쉽게 전하고 있다. 또한 청와대 리모델링 자문과 대한민국 건축대전 심사위원,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부커미셔너를 비롯한 각종 위원을 역임했다. 재미 시절 작품으로는 『165 Charles Street Apartments, New York』 등이 있고, 2005년 귀국 후 주요 작품으로는 『청운대학교 도서관』, 『테마동물원 ZooZoo』, 『강북삼성병원 종합검진센터』, 『고리원자력 발전소 신사옥』, 『플로팅 하우스』, 『머그학동』, 『쌍달리 주택』, 『청년 일자리 허브/사회적기업 개발센터』 등이 있다. 주요 저서로는 『모더니즘: 동서양문화의 하이브리드』, 『현대건축의 흐름』, 『52 9 12』가 있다.
시드니인문학교실은 “우리 시대 과연 사람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고 고민하며, 함께 그 생각과 고민을 나누고 싶어 하는 분들을 초청합니다. 현재 린필드에서는 목요일 (1, 3주 목요일 오후 7시)에, 리드컴에서는 수요일 (2, 4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모임을 합니다”라고 취지를 밝히며 초청했다.
한편 리드컴 수요모임은 새벽종소리 명성교회 (리드컴 소재)에서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를 주강사로 8월 12일과 26일 (수) 오전 10시에 모인다.

시드니인문학교실 8월 모임 안내
– 린필드 목요모임
.일시: 2026년 8월 6일 (목) 오후 7~9시 / 8월 20일은 독서모임
.장소: 린필드한글사랑도서관 (김동숙 관장, 454 Pacific Hwy, Lindfield)
(대면과 비대면 병행해 모임)
.문의: 주경식 (0401 017 989, drjks709@hotmail.com)
*8월 6일 (목, 오후 7시) 첫째주에는 김대근 선생님을 모시고 “한국사에 고대사는 존재하는가?” 란 주제로 강의가 진행됩니다.
*8월 20일 (목, 오후 7시) 세째주 모임에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현준 저서) 책으로 독서토론을 합니다.
.일시: 2026년 8월 12일 / 8월 26일 (수) 오전 10 ~ 12시
.주강사: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장소: 명성교회 새신자 교실 (31 East St, Lidcombe)
.문의: 천옥영 0422 712 235
한국 ‘상고사(上古史)’ 다시보기 1
(대통령이 소환한 위서 논쟁의 ‘위서’들과 강단사학계가 언급하지 않는 상고사 이야기)
안녕하세요, 여러분. 다시 인사드리니 매우 반갑습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신문 기사 몇 개 보고 가시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2일 정부 부처 업무보고에서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환빠’ (환단고기 추종자) 논쟁이 있지 않느냐”며 “환단고기를 주장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비하해서 환빠라고 하지 않나. 고대 역사 연구를 놓고 다툼이 벌어지는 것이지 않나”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박 이사장이 “재야사학자 얘기인 것 같은데 전문 연구자들의 의견이 더 설득력 있다”고 답했고, 이 대통령은 “근거가 없는 건 역사가 아니다? 환단고기는 문헌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경향신문, 점선면 2025.12.18)
“이재명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에서 언급한 『환단고기 (桓檀古記)』와 ‘환빠 논쟁’에 역사학계가 들끓고 있다. 주류 학계는 대통령의 언급을 계기로 합동 성명까지 내며 이른바 ‘유사역사학’ 타도에 뭉치는
모양새다.” (출처: 중앙일보)
李 대통령 “환빠 논쟁 모르나”… 업무보고에 등장한 ‘환단고기’ (출처: 조선일보)
대통령실 “이 대통령, 환단고기 동의하거나 연구 지시한 것 아냐” (출처: 한겨레)
한국 주요 언론에서도 며칠간 다룰 정도로 화제가 되었을 만큼 이재명 대통령의 ‘환단고기’ 언급은 파급력이 있었습니다. 다수의 대중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할 ‘환단고기’가 무엇이길래 대통령이 언급하고 역사학계는 왜 이토록 들끓었을까요? ‘환빠’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이해하려면 더 큰 맥락을 짚어봐야 합니다. 그 맥락은 바로 한국 상고사에 있습니다. 오늘과 다음 강연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한국 상고사를 살펴보려 합니다. 저는 역사가 학부 전공이긴 하지만, 상고사를 전공하지는 않았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한반도와 그 주변에 살아왔던 사람들 (현재의 국민국가 영역과 민족 개념을 뛰어넘는)의 ‘상고사’는 존재하며, 이는 여러 문헌과 유적으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강단사학계’는 이를 연구하기는커녕 ‘위서’라 칭하거나 언급을 회피하고, 새롭게 발견되는 유적들에도 거의 아무런 연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론을 말씀드리기 위해, 먼저 이번 시간에는 자주 언급되는 용어들의 개념을 살펴보겠습니다. 또한 ‘위서 논쟁 (僞書論爭)’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한국 상고사와 관련되어 언급되는 대표적인 ‘위서’들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울러 위서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환단고기]에서 주장하는 몇 가지 내용도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다른 나라의 문서들과 학술지 논문들을 살펴보며, 이번 시간에 다룬 상고사의 내용 및 연구들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이를 통해 ‘위서’들에서 주장하는 상고사를 다른 각도에서 한 번 조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용어 정리와 사관의 중요성
상고사는 한국 고대사 이전 시기의 역사, 즉 고대국가 (신라, 백제, 고구려 등) 이전의 역사입니다. 제가 공부할 때는 고대국가 이전의 한반도에는 체계를 갖춘 국가나 문명이 없었다고 배웠습니다. 물론 과학이 발달하고 새로운 유적과 유물이 나오면서, 고대국가 이전에도 사람들이 계속 살아왔다는 쪽으로 시대 구분이 조정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단군 이야기는 신화로 치부되며, 기원전 한반도와 만주를 아우르는 곳에 문명이라 불릴 만한 나라 혹은 연방체가 있었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지난번 중국사 시간에 보신 것처럼 중국은 나름의 노력을 통해 역사를 수정하고 새로운 교과서를 썼지만, 한국은 별다른 대응이 없으며 고대사 연구는 재야사학자들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상고사는 삼국 혹은 사국 시대 이전에 한민족의 기원과 연관된 문명과 나라가 존재했으며, 그와 관련된 역사를 포괄적으로 고대사 이전의 역사로 묶어 지칭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위서’를 ‘위조하여 만든 책, 거짓으로 꾸민 문서’라고 정의합니다.
다소 애매한 정의입니다.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사료로서의 ‘시간적·공간적 출처’를 사칭하거나 위조한 문헌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처녀가 임신하여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후에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가 나중에 다시 구원하러 온다는 이야기가 실린 책을 위서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종교와 역사라는 분야가 달라서 그렇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기존의 위서 정의는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면이 있습니다.
소위, 정사 (正史)라고 불리는 책들도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원전이 확실하지 않고, 후대의 가필이나 편집 흔적이 있어도 전면적인 위서로 폐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적층형 문헌’ 혹은 ‘전승 문헌’이라 부르며 위서와는 다르게 취급합니다.
한자로 쓰인 사료 중에는 《죽서기년》, 《목천자전》, 《산해경》, 《관자》 등 이런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상서》 같은 경우 청나라 학자에 의해 후대의 편집으로 고증되었으나, 아직도 유교 경전의 하나로 인정받아 추앙받고 있습니다.
참 편리한 기준이지요?
‘위서 논쟁’을 이해하려면 해석의 ‘폐쇄성’과 ‘억압성’을 지닌 ‘식민사학계’라는 표현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중화사대주의적’ 한문 서지학 해석을 학문의 전부인 양 여기는 강단사학계와 평생직장이 보장된 이들의 기득권 지키기 카르텔이 작용한 결과라고 저는 봅니다.
이와 비교해 주로 쓰이는 표현 중 하나가 ‘재야사학계’ 그리고 ‘시민사학계’입니다. 문자 그대로 주류 사학계 밖에서 연구를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시민사학계 역시 비슷한 맥락인데, 재야사학계의 한계를 비판하며 시민들이 직접 참여한다는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이 대통령의 언급으로 유명해진 표현인 ‘환빠’의 뜻은 무엇일까요? [환단고기]를 역사적 사실로 믿는 사람들을 ‘환단고기빠’라고 부르고, 이를 줄여 ‘환빠’라 칭하는 것입니다. 내용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이라기보다는, 이 책의 어떤 부분이라도 사실로 인정하면 비하하려는 목적으로 쓰이는 속칭입니다.
역사에서는 사관 (史觀)이 중요합니다. 저의 사관은 현실주의와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문헌과 유적을 함께 보려는 관점입니다. 그리고 역사 해석은 같은 자료를 가지고도 다를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지향하며, 기본적으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유전자는 흔히 크게 북방계와 남방계 아시아 인종이 섞여 있다고 합니다. 남방계가 70%, 북방계가 30%입니다. 그런데 역사책들은 대부분 북방계 민족의 역사만을 다룹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대 국가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모두 북방계가 세운 나라들의 역사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남방계 사람들이 세운 나라의 역사 기록이 있었다 하더라도, 북방에서 내려온 사람들에게 패하면서 그들의 기록이 북방인들의 기록으로 대체되었고, 그 이후 북방계 중심으로 역사가 쓰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단사학계가 위서로 분류한 책들
‘환단고기’
[환단고기]의 한자는 桓檀古記입니다. 환인 (桓因), 환웅 (桓雄), 단군 (檀君)의 오래된 기록이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한단고기’라는 명칭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1911 년 계연수가 한국 상고사를 서술한 역사서이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Figure 1 환단고기 책 표지 안경전 석주 / Figure 2 한단고기 책표지 임승국 번역
이에 대한 강단사학계의 입장은 다음 서술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1979년에 출판된 한국의 대표적인 위서이다. 1986년 임승국이 한글 번역본을 냈다. …… 『환단고기』는 오랜 세월 축적된 국수주의 역사관의 결집체이다. …… 유사역사학이 주장해 온 국수주의 역사관은 영향력을 확산해가고 있다.” (이문영, 『환단고기』의 성립 배경과 기원)
[환단고기]를 역사서로 옹호하는 입장도 확인해 보시죠.“[환단고기]는 안함로의 삼성기, 원동중의 삼성기,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 복애 범장의 [북부여기], 일십당 이맥의 [태백일사]를 모아 엮은 기념비적 사서이다. … 천 년 세월에 걸쳐서 다섯 사람이 저술한 하나의 책으로 집대성된 것이다.” (안경전, [환단고기] 해제)
1979년 이유립이 계연수가 남긴 책을 보관하고 있다가 출간하여 세상에 다시 알려졌고,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80년대 중반 카지마 노보루 (鹿島昇)가 찬술한 일본어 번역본을 임승국이 다시 한글로 번역한 [한단고기]가 출판되면서부터입니다.
일본인이 먼저 번역했다는 점은 재야사학계 내에서도 비판적으로 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유행을 타면서 아류작들이 많이 출판되었는데, 저도 중학생 때 소설 [환단고기]를 읽으며 ‘단군들의 재위 기간이 이렇게 길어서야 사람이 어떻게 오래 살 수 있나’ 하고 의아해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Figure 3 일본어 번역본 표지 카지마 노보루 역
일반적으로 역사학계의 위서 논쟁은 1977년 국민대 국사학과 송찬식 교수가 《월간중앙》 9월호에 〈위서변 (僞書辨)〉이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글에서 송 교수는 [규원사화 (揆園史話)]라는 문서의 위작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구체적인 논쟁 내용은 시간 관계상 생략하겠지만, 위키백과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조선 숙종 1년인 1675 년에 북애자 (北崖子)가 저술하였다는 역사서 형식의 사화 (史話)로, 상고시대와 단군조선의 임금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소장하고 있는데, 내용의 일부를 잠시 소개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 (동쪽) 말에 박달나무를 일러 박달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백달이라고 했고, 임금을 일러 임검이라 했다. 당시에는 한자가 없었던 고로 다만 백달임검이라 일컬었는데 후세에 역사를 쓰는 자들이 번역하여 단군이라 한 것이고, 다시 후세에 전해 이르렀으니 즉 다만 단군이란 글자만을 기록하고 단군이 백달임검의 번역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은 저자의 공과 죄가 서로 반반이 되는 것이다.” (규원사화, 민영순 옮김)
Figure 4 규원사화 책 표지, 민영순 번역 / Figure 5 규원사화 책 표지 고동영 번역
강단사학자들을 비롯한 ‘실증사학자’들은 근대적 어휘가 근대 이전 시기의 문서에 사용되었다는 점을 들어, 후대에 저술되었음에도 시기를 조작한 증거로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규원사화]에 나오는 문화 (文化), 문명 (文明), 원시국가 (原始國家), 남녀평권 (男女平權) 등과 같은 어휘들은 명백한 근대 용어라는 주장입니다.
이 외에도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이 지었다고 전하는 [단기고사 (檀奇古史)]와 신라의 충신 박제상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부도지 (符都誌)]가 있습니다. [부도지]는 환인, 환웅, 단군보다도 더 오래된 인류의 시조 ‘마고’와 이상향인 마고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약간 결이 다른 ‘위서’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지면 관계상 한 부분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Figure 6 단기고사 책 표지 / Figure 7 부도지 책 표지, 박재상 지음
“선천시대에 마고대성은 실달성 위에 허달성과 나란히 있었다. 처음에는 햇볕만이 따뜻하게 내려쬐일 뿐 눈에 보이는 물체라고는 없었다. 오직 8려의 음만이 하늘에서 들려오니 실달성과 허달성이 모두 이 음에서 나왔으며, 마고대성과 마고 또한 이 음에서 나왔다. 이것이 짐세이다.” (부도지, 김은수 번역)
[부도지]는 1950년대에 박제상의 후손인 박금이 자신이 과거에 보았던 책인 《징심록》의 내용을 기억해 내어 복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류 역사학계는 이 책에 대해 논문이나 비평조차 내지 않을 정도로 무시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단기고사]는 발해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이 8세기경 편찬한 것으로, 원래는 발해문이었으나 300년 뒤 황조복이라는 인물이 한문으로 번역한 고조선·기자조선 연대기입니다. 역사학계는 이를 구한말 대종교 계열의 민족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조작된 대표적인 위서로 분류합니다.
보신 바와 같이 공교롭게도 단군조선과 그 이전의 역사를 깊이 다루면 위서로 분류되는 현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 권한, 즉 어떠한 사료에 권위를 부여하고 학계의 공식 입장을 결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권력의 문제’가 위서 논쟁의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환단고기의 핵심 주장들
1. 단군 이전, 환인이 다스리던 거대 제국 ‘환국’이 있었다.
吾桓建國最古 (우리학족이 나라를 세운 것이 가장 오래되었다.) – <삼성기 상>
1만 년 전에 남북 5만 리, 동서 2만 리에 걸친 거대 국가가 존재했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단군보다 훨씬 이전의 나라로, 중국의 삼황오제보다도 앞서며 동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시원이라는 내용입니다. 세워진 시기뿐만 아니라 영토의 범위 역시 매우 논쟁적입니다. 지도에서 보듯 만주, 연해주,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에 걸쳐 환국이 존재했다는 주장입니다.
Figure 8 환국지도, 안경전 <환단고기>에서 퍼옴
더 나아가 인류의 모든 문명이 바로 이 환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강단사학계는 당연히 황당무계한 주장으로 보고 있으며, 일부 재야사학자들조차 최근에는 환국을 한국만의 조상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시원 문명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경향이 강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인류가 대홍수를 피해 환국 지도에 표시된 ‘천산’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 아닐까 하는 주장에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 부근에는 ‘지구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 고원이 있고, 앞서 언급한 [부도지]의 마고대성 역시 이 파미르 고원에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시기적으로는 약 12,000년 전의 일인데, 이 부분은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2. 18명의 환웅이 1,565년 동안 다스렸던 ‘배달국’이 단군조선 이전에 있었다.
“환웅께서 동방을 개척할 당시 기이한 술법을 좋아하던 반고라는 인물이 있었다. 반고가 개척의 길을 따로 나누어 가기를 청하므로 환인께서 이를 허락하셨다.
그리하여 반고는 많은 재화와 보물을 싣고 십간십이지의 신장을 거느리고 공공·유소·유묘·유수와 함께 삼위산 납림 동굴에 이르러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이들을 제견이라 하고, 반고를 반고가한이라 불렀다. 이때 환웅께서는 무리 3,000명을 이끌고 태백산 마루, 신단수 아래에 내려오시어 이곳을 신시라 하시니, 이분이 바로 환웅천황이시다. … 인간 세상을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신교의 진리로써 다스려 깨우쳐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셨다.” (삼성기 하, 안경전 해제)
반고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천지창조 거인의 이름입니다. 중국 사서 어디에도 반고를 역사적 인물로 설명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환단고기]에서는 이 반고마저 환국에서 갈라져 나가 나라를 세운 인물로 묘사합니다. 현재 중국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극단적인 ‘한국국뽕’으로 보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태극기의 원형 (팔괘)을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태호 복희씨는 태우의 환웅의 막내아들로 등장하며, 치우천왕으로 잘 알려진 자오지 천왕 역시 배달국의 환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흔히 치우는 한국의 조상, 황제 헌원은 중국의 조상으로 대립 구도를 이룬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두 세력 모두 무력에 능했던 유목민족이며 한반도에 정착한 세력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황제 헌원의 후손이 ‘소호금천’인데, [삼국사기] 등에서 신라 김씨와 가야인들이 자신들을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 칭하며 ‘김 (金)’을 성씨로 삼았다는 기록을 보면, 고대 한국인과 황제 헌원 가문 사이에 깊은 연결고리가 있었을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3. 단군은 직책명이며, 47명의 단군이 삼한관경제에 바탕을 둔 연방국가를 다스렸다.
Figure 9 단군 이미지 나무위키에서 퍼옴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았던 단군 영정이나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잘 아실 겁니다. 이를 ‘신화’라고 배우는데, 신화라는 것은 곧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실이 아니라면 왜 역사 시간에 배워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단군 (檀君)이라는 명칭은 몽골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하늘신’을 뜻하는 ‘Tengri (또는 Tanri)’를 한자로 음차한 ‘단(檀)’과, 정치·군사적 수장을 뜻하는 ‘Khan (칸)’을 음차한 ‘군 (君)’이 합쳐진 제정일치 사회의 수장 명칭이라는 견해에 저 역시 동의하는 편입니다.
부족들을 무력으로 통합한 강력한 군주였을 것이며, 징기스칸의 정복 과정처럼 소문을 듣고 자발적으로 투항해 온 부족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넓은 영토를 가진 고대 국가 체제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왜 상상조차 하지 않는 것일까요? 꼭 현재의 대한민국과 억지로 연결 짓지 않더라도, 열린 시각으로 상상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한사군이 한반도 내부에 설치되었다는 주장의 지도는 흔히 볼 수 있지만, 대륙을 아우르는 단군조선에 대한 지도는 위서에나 나오는 이야기로 취급받는 것이 학계의 현실입니다. 주류 학계의 시대 구분 체계는 [환단고기]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거센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환단고기]에서는 이를 9,000년의 국통맥 (國統脈)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 주장하지만, 이 역시 지나친 국수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Figure 9 강단사학계에서 주장하는 한사군의 위치
Figure 10 한국사 체계 비교, 안경전 환단고기에어 퍼옴
이렇게 표로 보시면 어떻게 다른 지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이렇게 보시니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느끼시나요? 제가 이 표에 나와 있는 시대구분에 100% 동의 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목요연하게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아 보여드렸습니다.
맺음말: 위서 논쟁이 남긴 의미
이러한 위서 논쟁이 남긴 긍정적인 면을 말씀드리면서 이 번 시간을 정리하겠습니다. 서로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국내외 고금의 문헌들을 샅샅이 추적하는 과정에서, 단군조선에 관한 새로운 사료들과 유적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세조·예종·성종 년간에 걸쳐 세 차례 반포되었던 수서령 (收書令)을 통해서 수거된 책제목을 할게 된 점입니다. 서적의 제목들도 심상치 않습니다.
고조선비사 (古朝鮮秘詞), 조대기 (朝代記), 대변설 (大辯說), 안함노원동중삼성기 (安含老元董仲三聖記), 동천록 (動天錄), 통천록 (通天錄), 표훈삼성밀기 (表訓三聖密記), 표훈천사 (表訓天詞)입니다.
무엇인가 제목만으로도 어디선가 발견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조선의 왕조에게는 무엇인가 거슬리는 내용이라도 적혀있던 것 일까요? 제출하지 않거나 반발하면 참하라고 했으니 꽁꽁숨기던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폐기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또한, 천문학적 관측 기록을 통한 역사 검증 시도도 이루어졌습니다. 세종 대의 천문학자 이순지가 편찬한 국가 공인 천문서 《천문류초》에는 고대 오성 결집 현상이 기록되어 있어 고대 천문학 수준을 보여주는 공신력 있는 사료로 평가받습니다.
오성결집이란 목성, 화성, 토성, 수성, 금성이 태양과 달 사이에 정렬하는 특이한 천문현상으로 육안으로 관찰이 가능했었다고 합니다. 이와 비교하여 《환단고기》에 기록된 기원전 1733년의 ‘오성취루 (다섯 행성이 루성에 모임)’ 현상 역시 1990년대 천문학자들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역계산을 통해 실제 사실에 가깝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다음 시간에 더 자세하게 다루어 보겠습니다.
비록 《환단고기》 자체는 위서 논란 중심에 서서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천문 기록만큼은 현대 과학을 통해 엄밀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차이점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시간에는 학술 논문과 해외 기록들을 참조하여 상고시대 거대 연방국가의 존재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내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긴 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시드니인문학교실 독서발제 (2026년 8월 20일)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유현준 지음
발제 (1-3 장): 박혜경
저자 소개: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이며 유현준 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미국 하버드대학교, MIT,연세대학교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저서로는 『명견만리』,『알뜰산집 2』,『어쩌다 어른』,『20 세기 소년탐구생활』이 있다.
건축은 단순히 예술이 아니라 과학이며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이 종합된 학문이다. 건축물은 그 나라와 그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건축은 사회, 경제, 역사, 기술의 산물이며 도시는 살아 움직인다. 우리는 돌, 나무, 흙 같은 자연 속의 재료를 가지고 건축물을 만든다. 그리고 그 건축물이 부산물로 만들어 내는 빈 공간안에서 생활한다. 그 공간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 그 공간은 또 다시 우리를 만든다. 이처럼 건축물을 만든사람은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 공간을 통해서 다른 시대의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건축물은 소통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건축물과 사람은 떼어 낼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건축물은 삶의 일부가 된다.
첫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보행자에게 권력을 이양한다
걷는 사람에게 주도권(선택권)을 준다는 얘기다. 우리가 삶을 살 때 자신의 삶에 대해서 주도적 선택권이 있기를바란다. 자신이 선택해서 만들어 가는 내러티브적인 오락을 선호한다. 만약에 보행자가 선택권이 없는 길을걷는다면 이는 마치 채널이 하나밖에 없는 TV 처럼, 수동적이고 선택의 자유가 없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과 같다.
둘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보행자에게 변화의 체험을 제공한다
점포의 출입구가 자주 나타난다는 점은 조금만 걸어도 새로운 점포의 쇼윈도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서 5 미터에 하나씩 점포의 출입구가 나온다는 것은 보행자의 속도를 시속 4 킬로미터로 보았을 때4.5 초당 새로운 점포의 쇼윈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TV 를 볼 때 2~3 초에 한 번씩 채널을 바꾼 경험을2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런 경우 특별히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없더라도 서로 다른 채널의 화면 속 영상들이 새로운시퀀스로 편집되어서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기도 하고, 단순하게는 다른 채널로 바뀐다는 변화의 리듬감때문에도 끊임없이 TV 에 앉아 있게 된다.
셋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매번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새로운 체험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이벤트 밀도는 그 거리가 보행자에게 얼마나 다양한 체험과 삶의 주도권을 제공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척도가될 수 있다. 경험의 밀도를 직접 계산해 보니 ‘명동 거리 = 가로수길 > 홍대 앞 피카소 거리 > 강남대로 > 테헤란로’ 순이었다. 최고 값을 갖는 명동 거리와 가로수길은 최저 값을 갖는 테헤란로의 4.5배 정도 높은 경험의 밀도를가지고 있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행자의 체험으로 보았을 때 명동 거리와 가로수길이 2.5 초당 채널이바뀐다면 테헤란로는 11초당 채널이 바뀌는 TV에 비유될 수 있다.
강북은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보행자 중심의 도로이다. 하지만 강남은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자동차 중심의도로이다. 강북은 교차로가 많다. 선택의 경우가 많은 도로는 보행자에게 주도권과 새로움을 준다. 공간은 어떠한행위자로 채워지느냐에 따라서 그 공간의 느낌과 성격이 달라진다.
걷고 싶은 거리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얼마나 많은 이벤트가 일어나는 거리인가, 어떠한물건들을 구경할 수 있는 거리인가, 어떠한 자연환경이 있는 거리인가, 어떠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거리인가등이 그 요소들이다. 어떠한 거리의 상황이 사람들이 걷고 싶은 환경이 되느냐는 질문에 대한 이 책의 답은, 걷는환경과 너무 차이가 나지 않아야 하고, 너무 느리지도 않은 시속 4킬로 정도로 걸을 수 있고 상점의 입구가 자주나오는 거리가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든다.
걷고 싶은 거리는 결국에는 얼마나 자주 다양한 가게가 들어서 있느냐의 물리적 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것이다. 사람들은 걸으면서 더 많은 선택권을 갖는 거리가 더 걷고 싶은 거리가 되는 것이다. 더 많은 선택권을가진다는 것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제 2 장. 현대 도시는 왜 아름답지 않은가?
휴먼 스케일, 카오스적인 도시 간판. 우편엽서에 어울릴 만큼 건축적으로 아름다운 몇몇 도시를 떠올린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흰색 회벽으로 만들어진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이나 벽돌로 아름답게 지어진 이태리 토스카나 지방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왜 2차 대전 이전에 세워진 오래된 도시들은 멋있고 그 이후에 만들어진 도시들은그렇지 못한 것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건축 구조 기술과 재료의 관점에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옛 도시: 통일된 재료와 지형에 맞추어진 다양한 형태
옛날 도시는 도시의 지형, 도시 주변의 재료에 맞추어져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그 지역, 그 시대에서 사용가능한 구조적 기술이 하나밖에 없었다. 건축을 하기 위해서 구할 수 있는 재료도 지금처럼 교통과 유통망이 발달한 때가 아니었기에 지극히 제한적인, 가까운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주변에 나무가 많은 경우에는 나무로, 돌산이 가까우면 돌로, 이도 저도 없으면 흙으로 빚어 구운 벽돌로 도시 내 대부분의 건물을 지었다. 이것은 건축 기술적, 건축 재료적 제약들이 도시 DNA의 통일성과 조화를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 도시의 형태는 경제적 원리로 비슷해지고, 재료는 전 세계에서 동일하게 오며 휴먼 스케일을 넘어선 대형화로 진행 가능해졌다.
서울은 여름철이 그나마 좀 볼 만하다. 가로수와 잡초가 건물과 간판을 많이 가려 주기 때문이다. 사실 건축적으로 아름다운 도시가 되려면 겨울에 아름다워야 한다. 가로수 한 그루 없는 유럽의 도시들이 가로수가 많은 우리나라 도시보다 더 아름답다면 우리 도시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골목을 잃었다. 우리의 옛 도시 속에서 다른 집에 갈 때는 골목을 따라서 길을 찾아갔다. 하지만 아파트에서는 복도나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길을 찾는다. 아파트 단지에는 골목은 없고 복도만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골목과 복도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 근본적인 차이는 하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우리의 대형 아파트 단지는 우리에게서 우리 머리 위의 하늘을 빼앗아 갔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하늘이 보이는 골목길이 없다.
제 3 장.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는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펜트하우스는 부자들이 권력을 갖는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 구조를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공간 형태다. ‘공간은 권력을 만들어 낸다’라는 명제를 팬옵티콘 (panopticon) 처럼 잘 설명해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panopticon이라는 단어를 분석해 보면, pan과 바라본다는 뜻의 opticon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합성어로 번역하면 ‘모두 본다’라는 뜻이 된다. 팬옵티콘은 감옥이다. 죄수들을 효과적으로 감시할 목적으로 panopticon을 설계하였다.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가 계속해서 감시를 당한다는 점에서 현대인의 삶과 비슷하기 때문에 팬옵티콘의 디자인과 우리가 사는 사회 구조는 유사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유명해진 계획안이다.
파리의 권력자들은 시민들이 봉기하면 언제든지 자신의 권력이 전복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파리를 재개발할 때에 시민을 통제하기 쉬운 공간 구조로 재구성하게 된다. 원리는 간단하다. 파리를 방사형의 도로망으로 만들어서 모든 길들이 주요 간선도로로 연결되고 그 도로는 다시 개선문 광장을 향해서 모이게 되어 있다. 아주 적은 수의 군대로 큰 무리의 사람을 조정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높은 층에 사는 사람은 마치 간수가 감시탑에 숨어서 바라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부자들은 돈으로 공간의 권력을 사는 것이다. 볼 수 있는 사람은 권력을 갖게 되고, 보지 못하고 보이기만 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지배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렇듯 남이 자신을 보지 못하면서 동시에 나는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상황을 즐기기도 한다. 누군가를 볼 수 있는 자유를 갖는 것은 그만큼 권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끝으로: 유현준 건축가가 이야기하는 진짜 좋은 집의 기준 9가지 (출처: YouTube)
1.다양한 동선이 가능한 구조 (복도형·순환형 X, 네트워크 구조 O)
2.가동식으로 유연한 공간 변경이 가능한 집 (벽식 구조는 공간 리모델링이 거의 불가능)
3.발코니 또는 외부와의 연결 공간이 있는 집 (창 너머의 열린 시야 / 심리적 확장성 + 환기 기능)
4.천장이 높은 집 (높은 체적의 공간)
5.빛과 그림자가 다양하게 드는 집
6.사람마다 쓰임이 다른, 변형 가능한 공간 구조 (부엌/거실/침실 구획이 고정 X)
7.공용 공간과 사적 공간의 균형이 잡힌 집 (부엌이나 세탁기 같은 냄새/소음이 나는 공간은 분리)
8.주차와 동선이 효율적인 집 (집에 들어올 때마다 주차 불편으로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게 중요)
9.오감을 자극하는 집 (부엌 냄새와 거실 공간이 분리되어야 진짜 집의 질이 올라감)
제 4 장. 뉴욕 이야기
건축은 사회, 경제, 역사 기술의 산물이며 도시는 살아 움직인다. 이 명제를 뉴욕의 로프트 (Loft)처럼 잘 보여주는 건축 형태는 없다. 사전적인 정의로는 로프트는 ‘예전의 공장 등을 개조한 아파트’라고 되어 있다. 흔히 뉴욕소호 지역에 있는 로프트를 말한다. 초기 산업 시대에 뉴욕은 미국 최대 항구 도시로 산업도시 기능의 고밀도 공장이 생겨났다. 높은 천장과 창문을 만들어 햇볕과 통풍이 잘 되는 공간의 건물들이다. 2차 산업이 쇠퇴하면서버려진 공장 건물들을 가난해서 임대료를 내기 힘든 미술가들이 살기에 좋았다. 예술가들이 모여 건물 1층에 갤러리를 내게 되고 전시회 작품을 사기 위해 돈 많은 은행가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듯이‘은행가 사람들이 모이면 예술가 이야기를 한다’고 하였다. 뉴욕여피 (Yuppie)들의 ‘쿨’한 삶의 형태가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점차적으로 명품샵이 들어서고, 당연히 임대료가 오르고, 그걸 구경하기 위한 관광객들이 모여들면서 정작 비싼 임대료 때문에 예술가들은 다시 다른 동네로 쫓겨나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철새처럼 건축 사무실이나 예술가들이 이동해서 ‘핫’한 지역이 되고 부동산이 점점 올라가는 추세이다. 이와 비슷한 예가 서울의 홍익대학교 앞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 싶다면 이제 홍대 앞에서 쫓겨난 예술가들과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쫓겨나는 건축가들이 가는 지역이 어디인지 알아봐야 할 시점이다.
뉴욕의 할렘가는 흑인들만 사는 범죄율이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돈 많은 유태인들이 살던 좋은 동네였지만 사회와 격리된 곳이고, 치안 유지가 안 되는 아주 고립된 곳이다. 심리학에는 스탠포드대학의 필립 짐바르도 (Philip George Zimbardo) 교수가 주창한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실험실에서 두 대의 자동차를 한 대는 깨끗한 상태로, 다른 한 대는 유리창을 약간 깨놓은 상태로 자동차 보닛을 둘 다 열어 놓고 주차를 시켜 두었다. 유리창이 깨진 상태의 차는 10분 만에 배터리와 타이어가 도난당하고 일주일 후에는 완전 폐차 상태까지 갔다는 것이다. 반면 깨끗한 상태로 보닛이 열려있던 차는 깨끗하게 유지되었다고 한다. 이 실험에서 처럼 약간의 비호감적인 컨디션이 부정적인 변화는 가속도가 붙어서 더욱 급속하게 나빠지게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것이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다. 할렘에서 유태인이 이탈한 경우가 이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의 모습을 바꾼 혁신적인 발명품은 자동차, 전화, TV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냉장고이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수천 년 동안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끊임없이 이동해왔다. 고밀화된 도시가 경제적, 기능적으로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20세기부터 도심의 사람들이 도시 근교 주택단지로 이동한 것이다. 미국의 중산층이 이상적 라이프 스타일로 교외에서 사는 여유로운 삶, 그것은 냉장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뉴욕시는 할렘의 버려진 건물들을 개발업자들에게 장기 임대를 주었다. 개발업자들은 거리 전체의 건물을 한꺼번에 개발하면서 아름다운 브라운 스톤 건물의 원래 모습을 회복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개선된 집들은 흑인 출신 변호사들이나 의사 같은 전문 직종 사람들에게 특혜 분양을 해 자연스럽게 할렘을 개선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환경 개선을 위해서 스타벅스 커피숍이고 다른 하나는 반스앤드 노블 (Barnes & Noble) 책방이다. 이 둘이 합쳐져서 반스앤드 노블 책방에 스타벅스가 들어간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로 치면 교보문고 안에 카페베네가 들어가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 둘이 들어가면 주변 동네가 좋아지고 개선되는 사례가 많았다. 반면 뉴욕의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라서 살고 있던 저소득층 사람들이 점점 먼 곳으로 쫓겨나고 뉴욕은 부자들만 사는 도시가 되어 간다는 것이다. 도시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태어나서, 성장하고, 전성기를 지낸 후, 쇠퇴하고, 마지막으로 죽는다. 도시의 여러 부분도 태어나서, 성장하고, 나중에는 죽는다. 죽음이 생명의 일부이듯이 도시가 오래되면 일부분이 슬럼화 되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죽은 부분에 다시 새로운 생명이 돋아 나도록 유도하는 것이 도시를 재생시키는 건축가의 역할이다. 뉴욕 소호와 할렘은 이러한 도시 재생의 사례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보통 변화하는 환경에 건축이 적응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환골탈태 형식으로 기존의 건축물들을 모두 철거하고 새롭게 재개발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즐겨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북촌의 경우 서울의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지역인데 한옥 보존 지구로 유명한 관광지로 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이처럼 도시가 하드웨어를 유지하기 위해서 소프트웨어를 변경하는 방식으로 건축이 생존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뉴욕에 있다.
뉴욕 맨해튼의 서남쪽에 가면 하이라인이라는 독특한 공원이 있고 고가도로 같은 공중에 위치해 있다. 하이라인공원이 지금은 시민들에게 사랑받게 되었지만, 한때는 철거될 뻔했던 버려진 고가 철도길로 빌딩들과 항만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기반이었다. 지난 몇 년간 서울시에 있는 대부분의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일을 진행해 오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청계천을 비롯하여 동부 이촌동, 약수동은 성공적인 사례라고 한다. 하이라인이 특별한 공원이 된 이유는 도시가 고밀화, 고층화 되면 지면은 점점 어두워지고, 지상의 자동차들의 소음도 작게 들릴 것이다.
지루한 격자형 도시 뉴욕은 어떻게 성공했는가?
뉴욕의 경우 격자형이되 가로는 길고 세로는 짧은 형태의 구조를 띠고 있는 도시이다. 가로로 형성된 길은 스트리트이고 세로로 난 길은 에버뉴 (Avenue)로 명명되어 있다. 에버뉴는 남북 방향으로 햇빛이 잘 드는 물리적 조건 때문에 패션가로 유명한 피프스 에버뉴 (Fifth Avenue)나 대사관들이 많이 위치한 파크 에버뉴 (Park Avenue) 같은 유명한 에버뉴를 갖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보행자에게 인기가 있는 스트리트는 없다. 동서방향으로 나 있는 뉴욕의 스트리트는 대부분 좁고 어두운 느낌의 서비스 통로 같은 느낌을 준다. 코리아타운이라고 알려진 붐비는 피프스 에버뉴에서 90도로 꺾어진 32번가 거리는 도심 속에서의 사각지대이자 외부 세계와는 격리된 장소성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이유에서 소수 민족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마을 같은 거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강남이나 신도시를 만들 때, 지금의 정사각형 방식의 도로망이 아니라 뉴욕 같은 직사각형의 도로망을 만들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걷는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뉴욕은 발전하기도 하고 쇠락의 길을 걷기도 하고 버려진 시설을 부활시키기도 하였다. 시대가 변하면서 어느 도시에나 문제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뉴욕시는 이 문제점들을 지혜롭게 창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면서이전에는 없는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유연한 대처가 가능한 것은 건축이나 도시를 단순히 유산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함께 살아 숨쉬는 일종의 파트너로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과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과거의 시간과 유기적으로 대화하면서 진화하고 있는가? 우리는 전승되어서 내려오는 건축 유산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고 있는가? 2013년에 복원된 남대문의 단청 부실 시공과 오래된 것이 아닌 복원된 남대문이 국보 1호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론도 회자되었다. 우리가 고건축을 하드웨어로만 보면 그냥 보존에 치중하게 되는 반면, 소프트웨어로 보면 좀 더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다. 유럽의 문화 선진국은 일찍이 건축 문화재를 소프트웨어로 보고 변화된 시대에 맞게 잘 사용하면서 보존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과 루브르 박물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수라간에 레스토랑이 있고 경복궁이 박물관으로 사용하면 안 되는 걸까? 더 이상 건축 문화재를 박제시켜 놓고 우상화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제 5 장. 강남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사람이 만든 도시, 도시가 만든 사람
서울 강남에는 교육제도, 인구폭증, 주택가격, 핵가족화 경향, 경제성장, 문화적인 변화, 부동산 정책 등 셀 수없는 변동 요소에 의해 지금의 도시 구조가 만들어졌다. 혹자는 도시를 신의 창조물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사람들은 인간이 만들어 낸 인공물이라고도 한다. 대부분의 물리적인 구조들은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점이다. 도시는 실제로 도시 설계자의 의도대로가 아니라 자연발생적인 방식에 의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해왔다는 면에서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기 보다는 자생적인 유기체라고 할 수도 있다. 지금 도시의 구성들은 마치 자연발생한 유기체의 모습과도 같다. 역사를 통해서 보이는 도시 진화의 특성이 생명의 진화와 그 과정이 유사하다는 점이다.
진화론자들은 단세포 생물에서부터 진화가 시작되어 지금의 인간과도 같은 복잡한 척추동물까지 진화했다고 보고 있다. 오랜 시간을 거쳐서 다세포 생명체는 단순한 신경계를 뛰어넘어 척추라는 새로운 개념의 체계적인 신경 조직망을 구축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의 여러 척추계 동물과 같은 종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진화론에 의하면 생명체는 순환계, 단순 신경계, 척추 신경계로 진화해 왔다.
도시의 진화 단계도 생명의 진화 단계와 비슷하다. 고대의 도시들은 최소한의 기능만을 가지고 있었다. 생명체의 생명 유지를 위해서 피가 필요하듯이 도시가 유지되기 위해서 물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로마제국을 만들 수 있는 강력한 중앙집권 시스템은 물 공급이 잘 되는 고대 로마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도시에서 상수도시설은 유기체의 혈관 중에서도 동맥의 형성과 의미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람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교통망이 이에 해당 될 수 있다. 도시 내의 교통망을 가장 혁신적으로 개선하여 진화의 다음 단계로 도약한도시는 아마도 19세기 중반 오스만 (G. E. Haussmann) 시장에 의해서 도로망이 리모델링 되었던 파리를 들 수있을 것이다. 지하철 네트워크의 개발까지 이어져 파리는 오랫동안 전 세계에서 순환계와 신경계가 가장 진화된 도시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생명체에서 진화의 다음 단계는 척추 신경계의 발생이다. 도시 진화적인 측면에서 척추 신경계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은 전화망의 구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벨’에 의해서 미국에서 가장 먼저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전화 통신 시스템이 잘 설치된 뉴욕은 20세기에 들어서서 세계를 이끌어 가는 도시가 되었다. 뉴욕은 세계 금융의 중심인 월스트리트를 가질 수가 있었고 세계의 수도라는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서울은 무선 인터넷이 잘 되는, 신경망이 잘 구축된 도시이다. 하지만 서울의 고질적인 교통 체증은 세계적인 도시로 부상하는 데 발목을 잡는 동맥경화와 같은 병이다.
한 나라의 화폐에는 그 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 화폐 속 인물을 보면 그 나라 국민들의 가치관이 드러난다. 근대 건축가 중 대표적 거장으로 추앙받는 르 코르뷔지에라는 건축가의 스위스 화폐와 알바알토라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핀란드 화폐도 있다. 유럽의 여러 국가는 대표적인 건축물과 건축가 둘 다 가진 문화 선진국이 되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건축을 저급한 노동 행위로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건축도 그 나라의 모든 것을 담아 후대에 남겨 주는 예술이고 문화고 정신이다.
우리나라에는 대내적으로 베이비붐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농촌 인구가 대거 도시로 이동하면서 건축의 수요를 키웠다. 덕분에 건축 붐과 함께 한국 경제도 성장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북한은 한국 건축계의 ‘강남’이고 ‘중동’이다. 고유가와 세계 금융위기 사태로 미국이 이자율을 높이면 경제 위기가 올 것이라고 예상된다. 이러한 파도를 피할 수 없다면 이 위기가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축복이 될 남북 경협의 방아쇠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지금도 인간에 의해 다양하게 변화하고 그 변화 속의 도시에 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