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 모자람과 넘침

모자람과 넘침
<오상 부부 한의원> 원장 장성수선생은 우리 부부의 건강을 관리해 주는 한의사이다. 그는 마치 우리 가정의 <한의사 G.P> 같은 분이다. 우리는 한 주에 한 번씩 (요즘은 한 주에 두 번씩) 그의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고 맛사지도 받고 때로는 한약도 받아온다. 지난 13년 동안 진료비란 단 한번도 받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은 마치 나를 당신 병원의 원목 처럼 여기시며 때를 따라 대접해 주신다.
우리는 오랫동안 진료를 전후해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왔다. 처음엔 음악과 미술로 부터 시작하여 동서양의 고전 이야기를 거쳐 가정과 건강, 인간과 질병, 역사와 사회, 동양과 서양, 서양 의학과 한의학 그리고 더 나아가 종교와 신앙, 성서와 교회사, 신학과 교리, 이민생활과 두고온 조국 이야기 등등.. 수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면서 교제해 왔다.
그런데 몇일 전 좀 한가한 시간에 그분은 이런 문제를 화두로 꺼냈다. <목사님, 인류의 역사란 인간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 무엇인가 결핍을 느끼기 시작한 데서 부터 출발하여 점진적으로 발전해 온 것이 아닐까요?> 참 좋은 화두였다. 그래서 우리는 고대 원시인들의 삶과 수렵시대, 농경시대, 유럽과 동양에서의 침략과 전쟁, 그리고 산업사회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 까지 인간과 사회가 어떻게 궁핍을 해결하고 필요를 채우느라 노력하고 투쟁하고 연구하고 몸부림 쳐 왔던지에 대해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기후와 지리, 환경과 자연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하며 제레드 다이아몬드 (Jared Diamond)의 <총, 균 쇠, Gun, Germs and Steel> 까지 동원해 가면서 참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 나누어 보려고 하는 잡기장 <모자람과 넘침/ 결핍과 과다>는 그 날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질병이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부터 오는 것인가? 사실 질병의 정의와 온갖 질병의 발생 원인들은 너무 많아서 나 같은 비전공자는 알지도 못하려니와 풍얼로 좀 얻어 들은 게 있다고 하더라도 일일히 설명 할 재주나 능력이 없다. 그런데 그 날 우리는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인문학적 상식선에서 <질병이란 그 무엇의 결핍이나 부족, 혹은 그 반대로 과잉이나 과다에서 부터 비롯된다>는 데 생각을 같이 했다. <꼭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라거나, 아니면 꼭 필요한 것이라 하더라도 너무 지나치게 많아지면 그게 병이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눈에 띠는 육체의 질병들이란 기본적 영양소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흔히 말하는 5대 영양소인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그리고 미네랄의 부족이나 편향성이 우리 몸의 건강을 위협하고 더 나아가 인간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든다. 물과 햇볓, 운동과 휴식을 필두로 하여 밥과 빵이나 과일 같은 탄수화물, 고기와 계란과 콩 같은 단백질, 견과류와 기름기 같은 지방질, 과일과 채소 같은 비타민, 칼슘이나 철분 같은 무기질이 결핍되면 인간은 병들게 되어 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인간에겐 필수 영양소의 부족이나 결핍만 심각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지나쳐도 우리의 몸을 병들게 하고 우리의 건강을 위태롭게 만든다는 점이다. 모자란 것도 문제이지만 넘치는 것 역시 똑같이 질병의 원인이 된다.
<모든 결핍과 부족은 인간을 병들게 만든다. 그러나 동시에 아무리 필요한 것이요, 기본적인 것이라 하더라고 지나치게 과다해 지면 그것 역시 우리를 위험에 빠뜨린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는 너무 가난하여 우리 몸에 필수 영양소들을 다 채울수가 없었다. 가난, 궁핍, 모자람 같은 것들이 우리의 건강과 일상적 삶을 늘 위협해 왔다. 그런데 이즈음은 세상이 너무 급속하게 변했다. 지나치게 먹고 마시고 과다하게 영양소를 섭취함으로 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질병들이 우리를 위협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요즘은 먹고 마시며 소비하느라고 쓰는 비용 보다 오히려 살을 빼고 체중을 줄이고 운동을 하느라 쓰는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드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모자라도 문제지만 넘쳐나도 문제다. 결핍이나 부족한 것도 위험한 것이지만 과잉이나 과다한 것도 똑같이 위험한 일이다. 저혈압도 고혈압도 똑같이 위험한 일이다. 혈당 역시 너무 높아도 걱정이고 너무 낮아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건강 뿐만이 아니다. 인간들이 하는 일체의 모든 일은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균형을 잡아야 하고 절도있게 적당히 해야한다. 질병이란 무엇이고, 어디로 부터 오는 것일까? 균형과 조화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며 균형과 조화가 깨어질 때 생겨나는 것이 질병이다. 인간의 질병은 <필수 영양소의 결핍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넘쳐남으로 균형이 깨어질 때도 생겨난다> <제발 좀 적당히들 해야 할텐데> 나를 포함하여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을 지을수가 없다.
그런데 인간을 병들게 하는 결핍과 모자람, 과다와 넘침은 육체의 질병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인간 관계와 사회 생활, 정신적 활동과 내적 자기 조절에서도 마찬가지다. 모자라지도 아니하고 넘치지도 아니해야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 할 수 있고 건전한 정신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현대인들은 많은 부분에서 균형이 깨어진 생각과 조화가 일그러진 일상으로 인하여 심각한 상태에 직면해 있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문화 등에서 매우 심각한 양극화 현상들이 우리의 삶을 극단으로 몰고 간다. 정신병리학자들도 그렇게 말하고 한의사들도 비슷하게 진단한다. 인간이 육체적으로 병드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 균형이 깨어짐으로만이 아니라 실은 정신과 육체, 마음과 몸의 균형이 어긋남으로 더욱 더 심각해 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몸에서 발생되는 모든 질병들은 단순히 몸만 치료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게 아니라 육체와 정신을 함께 치료해야 한다고 본다.
과유불급 (過猶不及) – 맞는 말이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넘침은 모자람과 똑같다. 중용 (中庸), 균형, 조화, Harmony & Balance! – 목표는 그러했지만 내 삶에 있어서 한번도 제대로 이루어 보지 못한 내 이상이요, 꿈이다.
사랑과 희망의 결핍, 기쁨과 감사의 모자람, 자유와 평화의 결핍, 선함과 인내의 모자람은 우리 자신과 우리 공동체를 정신적 및 영적으로 병들게 하고 허약하게 만든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촌은 <양식만 모자라고 부족함>으로 위태로운 것이 아니라 <사랑과 나눔, 평화와 감사의 결핍>으로 무서운 재앙 앞에 마주해 있다. 이곳에선 사랑과 나눔이 너무나 심각하게 모자라고 부족한데 저 쪽에선 과다하게 차고 넘쳐나고 있는 것들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그게 무엇인질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경쟁과 이기주의다. 탐욕과 미움이다. 전쟁과 다틈이다. 인간과 인간사회는 완전하고 철저하게 병이 들었다. 한 때는 육체적 먹거리만 모자라고 부족한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인간들에겐 이것들 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모자란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랑, 이해, 용서, 나눔 감사, 기쁨, 축복, 자유, 평화 같은 참되고 영원한 이상과 꿈들이 우리의 시야와 마음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우리에겐 오직 자기, 자기 집, 자기 나라, 자기 잡단 만 있을 뿐이다. 탐욕, 이기심, 잘 먹고 잘 사는 것 만이 차고 넘친다. 병든 세상이다. 인류는 아주 치명적 중병에 걸렸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가난한 땅, 네팔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떼 죽임을 당하도록 만든 것은 누구일까? 보이지 않는 땅 여기에서 오늘도 흥청망청 대면서 지나친 소비로 히말라야와 지구촌을 온난화 시키고 있는 내게도 무거운 책임이 있다. (*) 홍길복 (2026.9.22.)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