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종교개혁가, 설교가 훌트라이히 츠빙글리 (Huldrych Zwingli, 1484 ~ 1531)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설교가. 울리히 츠빙글리 Ulrich Zwingli로 태어났으나 이후 훌트라이히 Huldrych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484년 1월 1일 장크트갈렌 주 빌트하우스에서 지역 유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바젤·베른 등지에서 초기 교육을 받은 후 빈 대학교와 바젤 대학교에서 수학하여 1504년 문학사 B.A., 1506년 문학석사 M.A.를 받았다. 바젤 대학교에서 에라스무스의 인문주의에 깊이 이끌렸으며 이것이 이후 신학의 토대가 되었다. 1506년 가톨릭 사제로 서품받아 지역 교회를 섬기며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 번역본을 연구하며 개혁 사상을 형성했다.

1519년 취리히 그로스뮌스터 설교자로 부임하여 성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연속으로 강해하는 ‘연속 강해 설교’를 도입했다. 1519년 취리히를 휩쓴 페스트에서 살아남은 후 개혁 운동에 더욱 헌신했다. 1522년 이후 가톨릭 교회와 공식 결별하여 1523년 취리히 시의회에 「67개 신조」를 제출하여 광범위한 교회 개혁을 추진했다. 개혁 내용은 미사 폐지, 성인·성물 공경 폐지, 성화·오르간 제거, 성직자 독신제 폐지 등이었으며 1524년 안나 라인하르트와 공개 결혼했다.
1525년 세례 의미를 두고 재세례파와 결별했으며 1529년 마르부르크 회의에서 루터와 성찬 논쟁을 벌였고,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개신교와 가톨릭 신자들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1531년 10월 11일 제2차 카펠 전투에서 참전해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하인리히 불링거가 취리히 교회를 이끌어 이후 칼뱅과 연합하여 현대 개혁파 전통의 토대가 되었다.
종교개혁 신학에서 루터보다 더 철저하게 성서를 모든 교의, 실천의 유일한 규범으로 적용했는데, 루터가 성서가 금지하지 않는 것은 허용한다는 입장이었다면 츠빙글리는 성서가 명령하지 않는 것은 금지한다는 더 엄격한 입장을 취했으며 이는 성화 제거, 오르간 철폐 등의 예배 개혁으로 이어졌다. 1525년 저술한 『참된 종교와 거짓 종교에 관한 주해』 Commentarius de vera et falsa religione는 종교개혁에 입각한 최초의 조직신학 서술로 평가받기도 한다. 성찬 신학에서 루터, 가톨릭과 달리 성찬을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기념으로 이해하는 ‘기념설’을 주창했으며 이후 이 입장은 개혁파 성찬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주요 저술로 「67개 신조」, 『참된 종교와 거짓 종교에 관한 주해』, 『하느님의 섭리에 관하여』 De Providentia Dei 등이 있으며 한국에는 『츠빙글리 저작 선집』 (전4권, 연세대학교출판문화원)이 소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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