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독서발제 (2026년 10월 15일)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유현준 지음
제 11 장 · 제 12 장 · 제 13 장 (발제자 권태원 회원)
제 11 장. 왜 사람들은 라스베이거스의 네온사인을 좋아하는가
기호 해독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네온사인을 보면서 우리는 도시의 활기를 느낀다. 그런데 서울의 복잡한 간판은 왜 그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같은 간판이라도 그곳을 여행하는 사람과 매일 살아가는 사람에게 전하는 의미는 다르다. 사람은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기억을 통해 해석한다.
라스베이거스에 들어서면 사막 한 가운데 거대한 도시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밤에 빛나는 화려한 네온사인은 도시를 상징하는 대표적 경관이다. 그러나 비슷한 네온사인이 서울의 간판에 나타날 때에는 왜 다르게 받아들이는가? 저자는 경관 자체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그 공간에 부여하는 의미와 경험에 주목한다. 관광객에게는 낯선 풍경이 여행의 기호가 되지만, 매일 반복해서 마주하는 주민에게는 피로한 일상의 장면이 될 수 있다.
정보로서의 건축
건축은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건물의 입구, 창문, 간판, 길의 방향을 보고 우리는 그곳의 쓰임을 짐작한다. 이러한 정보를 어떻게 배치하는가에 따라 사람이 도시를 이해하고 움직이는 방식도 달라진다. 물리적인 건축물이 하나의 기호가 되는 것이다.
건축은 기능을 담는 그릇인 동시에 정보를 전달하는 기호다. 건물의 외관, 재료, 입구와 간판은 그 장소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 준다. 사람은 주변의 공간을 해석하면서 움직이고, 익숙한 경험을 통해 그 의미를 학습한다. 건축과 도시의 모습은 물리적인 형태만으로 완성되지 않고 그것을 읽는 사람의 인식과 만나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상징·활동·정보의 관계
사람이 경험하는 공간은 물리적인 공간만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형태와 그 공간을 바라보는 사람의 심리, 기억과 경험이 서로 결합한다. 같은 거리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활기찬 곳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불편한 곳이 된다. 따라서 도시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외형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손에 잡히는 물리적 공간과 그곳에서 느끼는 심리적 공간은 일치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형태가 같아도 방문목적, 문화적 배경, 기억에 따라 전혀 다른 장소가 된다. 네온사인은 광고이면서 도시를 기억하게 만드는 상징이고,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은 그 상징에 생명력을 더한다. 따라서 간판을 단순히 많거나 적은 것으로만 평가하기보다 그것이 어떤 정보와 도시 경험을 만드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도시 경관은 눈에 보이는 물체의 집합이 아니라, 사람이 읽고 해석하는 정보와 기억의 집합이기도 하다.
제 12 장. 뜨는 거리의 법칙
고객과 광장에 사람이 없다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을 만들려면 먼저 그곳을 누가, 왜 찾아오는지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넓고 아름다운 광장도 사람들의 일상적인 동선에서 떨어져 있으면 쉽게 비어 버린다. 건축은 사진으로 보는 모습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행동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건축가가 아름다운 건물을 설계했다고 해서 그 주변에 저절로 사람이 모이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공간을 어떻게 이용하는 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거리의 활기는 건물의 외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보행자가 실제로 걷고, 머무르고, 소비하고, 다른 사람과 마주칠 수 있어야 한다. 멋진 광장이라도 일상적인 동선과 연결되지 않으면 비어 있는 장소가 되기 쉽다.
건물의 1층과 보행자의 눈높이
도시의 인상은 높은 건물의 꼭대기보다 걷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진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가게와 출입구, 유리창 너머의 움직임이 새로운 장면을 제공한다. 반면 닫힌 벽이 길게 이어지면 걸으면서 경험할 수 있는 변화가 줄어든다.
사람이 거리를 경험하는 높이는 대개 건물의 낮은 층이다. 1층에 무엇이 있고, 입구가 얼마나 자주 나타나며, 길에서 실내 활동을 얼마나 느낄 수 있는가가 보행 경험을 바꾼다. 벽과 주차장만 길게 이어지는 거리에서는 걸으며 선택할 일이 줄어든다. 반대로 작은 상점과 출입구, 볼거리와 머물 곳이 이어지면 걷는 시간이 풍성해진다.
가로와 건물의 관계
거리와 건물은 별개의 공간이 아니다. 길에 면한 건물의 1층이 열려 있고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으면 길 자체가 활기를 얻는다. 사적인 건물의 활동이 공적인 거리와 만나는 접점에서 도시의 생명력이 생긴다.
좋은 거리는 보행자와 건물이 서로 반응할 때 만들어진다. 가로의 폭, 상점의 배치, 건물의 전면부, 보행 속도와 사람의 시선이 함께 작용한다. 거리는 단순한 이동 통로가 아니라 다양한 관계와 활동이 발생하는 무대다. 특히 건물 안의 활동이 거리로 드러나고 거리의 사람이 자연스럽게 건물로 들어갈 수 있을 때 공간은 살아난다.
거리의 생명력을 만드는 조건
사람이 모이는 거리에는 걷기 편한 환경뿐 아니라 적당한 변화, 다양한 선택지, 우연한 만남의 가능성이 필요하다. 화려한 조형물 하나보다 일상적인 활동이 계속되는 작은 공간들이 도시를 활기 있게 만든다. 결국 거리의 경쟁력은 건축물의 크기보다 사람과 활동이 얼마나 긴밀하게 이어지는가에 달려 있다.
* 거리의 활기는 건물의 모양보다 1층의 활동, 보행자의 선택권, 건물과 거리의 연결에서 나온다.
제 13 장. 제품 디자인 VS 건축 디자인
제품 디자인과 건축 디자인의 차이
제품은 대개 같은 모양으로 반복 생산되지만 건축은 특정한 장소에 세워진다. 땅의 조건과 주변 환경, 그곳을 이용할 사람들의 생활이 모두 다르다. 그러므로 건축 디자인은 보기 좋은 외형을 정하는 작업만이 아니라 장소와 사람 사이의 관계를 풀어내는 작업이다.
흔히 건축을 디자인이라고 하면 멋진 외형을 떠올린다. 그러나 제품 디자인과 건축 디자인은 다루는 조건이 다르다. 제품은 크기와 기능을 정하고 반복 생산할 수 있지만, 건축은 특정한 땅과 주변 환경, 사용하는 사람의 삶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같은 설계가 모든 장소에 똑같이 적용될 수 없는 이유다. 건축은 보이는 형태를 넘어 사람의 움직임과 관계, 주변 도시와의 연결을 설계하는 일이다.
거리의 경험과 디자인
건물은 사진 한 장처럼 한눈에 들어오는 대상만은 아니다. 사람은 길을 걸으며 벽과 창, 입구, 빛과 그림자를 차례로 경험한다. 같은 건축물도 어디서 접근하고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이런 점에서 건축은 시간과 움직임을 함께 다루는 디자인이다.
사람은 건축물을 한 장의 사진처럼 한 번에 보는 것이 아니라 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차례로 경험한다. 건물의 앞 모습뿐 아니라 입구까지의 접근, 거리에서의 시선, 안팎의 경계와 주변 건물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길이 좁고 건물 사이에 가려진 도시에서는 건물 하나의 아름다움보다 건물들이 함께 만들어 내는 거리의 경험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도시의 디자인은 관계를 디자인하는 일
건축은 독립된 조형물로 끝나지 않는다. 건물 앞을 지나는 사람과 주변의 거리, 이웃 건물과 맺는 관계 속에서 도시의 일부가 된다. 건축가에게 필요한 것은 건물 한 채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 건물이 주변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고민이다.
좋은 건축은 주변과 단절된 독립된 작품에 머무르지 않는다. 건물 앞을 지나는 사람, 안에 머무는 사람,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 모두가 그 공간과 관계를 맺는다. 건축가는 형태와 재료를 선택하는 동시에 누가 어디로 걸어가고, 어디서 만나고, 어디서 쉴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건축의 가치는 눈에 띄는 외관뿐 아니라 그 공간에서 가능한 삶의 경험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경제와 사회가 바꾸는 건축의 방향
건축은 한 번 지으면 오랫동안 남지만 사회의 기술과 경제는 계속 변화한다. 손쉽게 허물고 새로 짓는 방식만으로는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기존 건축과 도시의 조건을 읽고, 시대의 변화에 맞게 활용할 가능성을 찾는 일도 중요하다. 건축을 단순한 상품으로만 취급하지 않고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환경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다.
* 제품 디자인이 물건의 쓰임을 설계한다면, 건축 디자인은 특정 장소에서 이루어질 인간의 삶과 관계까지 설계한다.
11–13장을 관통하는 질문
라스베이거스의 네온사인, 사람이 모이는 거리, 제품과 건축의 디자인을 다룬 세 장은 결국 하나의 문제로 이어진다. 도시를 좋은 도시로 만드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인가, 아니면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경험하는 의미와 관계인가? 같은 경관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히고, 같은 건물도 거리와 만나는 방식에 따라 활기를 만들거나 단절을 낳는다. 따라서 좋은 도시를 이해하려면 건물의 형태뿐 아니라 사람의 시선, 기억, 이동과 활동을 함께 살펴야 한다.
*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다시 사람의 감각과 행동을 만든다.

제 14 장 · 제 15 장 · 맺음말 (발제자 주경식 회원)
제 14 장. 동과 서: 서로 다른 생각의 기원
11–13장에서 14장으로 앞의 11–13장은 도시를 읽는 사람의 경험, 거리에서 일어나는 활동, 그리고 건축이 특정 장소에서 인간의 삶과 관계를 설계하는 일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면, 제 14장은 한 걸음 더 들어간다. 같은 공간을 두고도 왜 문화권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사용하는가? 저자는 그 차이를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에서 찾는다. 건축의 형태 차이를 단순한 취향의 차이로 보지 않고,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가 공간의 구성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바둑과 체스의 공간 미학
저자가 먼저 비교하는 것은 바둑과 체스다. 체스의 말은 왕, 여왕, 비숍, 나이트처럼 각각 다른 이름과 기능을 갖고 있으며, 말 자체의 성격과 가치가 비교적 분명하다. 반면 바둑돌은 검은 돌과 흰 돌이라는 차이 외에는 모두 같은 모양이다. 중요한 것은 돌 하나의 고유한 기능이 아니라 어느 위치에 놓이고 다른 돌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가 이다. 같은 바둑돌도 주변 상황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고, 한 수의 의미 역시 전체 판의 관계 안에서 결정된다.
저자는 이 대비를 동서양의 문화적 특성을 설명하는 비유로 사용한다. 서양이 대상을 개별적인 실체로 파악하고 그 고유한 속성과 기능을 중시해 왔다면, 동양은 개체보다는 관계와 주변 맥락을 더 중요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단순히 놀이의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과 사회, 공간을 이해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알파벳과 한자
문자 체계에서도 비슷한 차이가 나타난다. 알파벳은 제한된 수의 글자를 조합하여 수많은 단어를 만드는 체계이고, 한자는 각각의 글자가 하나의 형태와 뜻을 지닌다. 저자는 이런 차이가 사고의 구조와도 관련 있다고 본다. 서양에서는 요소를 분해하고 다시 조합하는 분석적 사고가 발달했고, 동양에서는 전체의 맥락 속에서 의미를 파악하는 방식이 상대적으로 강해졌다는 설명이다.
물론 이러한 비교는 동서양의 모든 사람과 문화를 하나의 틀로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건축을 볼 때 “무엇이 더 우수한가”보다 “어떤 관계의 방식이 공간 속에 담겨 있는가”를 묻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제 14장의 출발점은 건축의 차이를 형태가 아니라 사고방식과 관계의 차이에서 읽어 보자는 데 있다.
동양의 상대적 가치와 서양의 절대적 가치
저자는 동양의 가치 판단이 주변 관계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 성격을 강하게 가진다고 설명한다. 사람의 위치와 역할도 고정된 개인의 속성만으로 결정되기보다 가족, 집단,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서양에서는 개인을 독립된 존재로 보고 고유한 권리와 정체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차이는 건축에서도 드러난다. 독립된 건물 자체의 완결성과 조형성을 중시하는 방식과, 건물과 마당·길·주변 자연의 관계를 통해 전체 공간을 완성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 전통을 만들어 왔다.
공간과 SPACE
저자는 동양의 “공간”과 서양의 “space”라는 개념에서도 차이를 읽어 낸다. 서양에서 공간은 측정하고 구획할 수 있는 독립적 실체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동양의 공간은 사물과 사물 사이의 비어 있는 관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따라서 비어 있음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새로운 관계와 활동이 일어날 가능성을 품은 상태가 된다. 마당이나 마루처럼 한 가지 기능으로 고정되지 않은 공간은 상황에 따라 먹고, 쉬고, 이야기하고, 사람을 맞이하는 장소로 바뀔 수 있다.
한식 밥상과 코스 요리, 테이블과 마루
저자는 음식 문화도 같은 관점에서 비교한다. 서양의 코스 요리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음식이 하나씩 제공된다. 각각의 요리가 독립된 단위로 제시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반면 한식 밥상에는 여러 음식이 동시에 올라오며, 먹는 사람이 그때그때 여러 반찬을 조합한다. 하나의 음식이 아니라 음식들 사이의 관계가 맛을 만든다.
테이블과 마루도 유사하다. 테이블과 의자는 앉는 위치와 사용 목적을 비교적 명확하게 규정하지만, 마루는 사용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기능이 달라진다. 이러한 가변성은 동양 공간의 관계적 성격을 보여 준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중요한 것은 공간의 이름보다 그 공간이 사람들의 행동과 관계를 얼마나 다양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이다.
동서양 비교가 던지는 질문
제 14장의 흥미로운 점은 도시와 건축을 문화의 결과로 읽는 데 있다.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공간의 사용법도 사실은 오랜 역사와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동양은 관계적이고 서양은 개인적이라는 구분을 너무 단순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현대의 도시는 이미 여러 문화가 섞여 있고, 동서양 내부에도 다양한 전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장의 가치는 서로 다른 공간 감각을 비교함으로써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방식이 유일한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데 있다.
* 공간은 비어 있는 그릇이 아니라, 문화가 사람과 사람·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조직하는 방식이다.
제 15 장. 건축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
성 베네딕트 채플: 자연과 대화하는 건물
제 15장은 건축과 자연의 관계를 묻는다. 첫 사례인 페터 춤토르의 성 베네딕트 채플은 자연을 밀어내고 독립된 인공물을 세우는 방식과 거리가 멀다. 목재의 질감, 빛이 들어오는 방식, 주변 풍경과 내부 공간의 관계를 통해 건물은 자연과 대화한다. 사람은 건물 안에 있으면서도 빛과 재료, 계절과 시간의 변화를 느낀다. 자연은 배경장식이 아니라 건축 경험의 일부가 된다.
정자와 두 주택: 경계를 느슨하게 만드는 건축
한국의 정자는 자연을 소유하거나 정복하기 위한 건축이 아니다. 사방이 열려 있어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밖에 있고, 주변의 산과 물, 바람과 소리를 건축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일본의 두 주택 역시 여러 작은 공간 사이로 외부와 내부가 스며들게 하여 생활과 자연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례에서 좋은 건축은 자연을 완벽히 차단해 쾌적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적절하게 받아들이며 삶의 일부로 경험하게 하는 장치가 된다.
아사히야마 동물원과 자연에 양보하는 잠수교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동물을 멀리서 전시물처럼 보는 대신, 동물이 실제로 움직이는 공간과 사람의 관람 동선을 가깝게 연결한다. 건축은 사람에게 새로운 관계를 경험하게 만든다. 한강 잠수교도 저자에게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물이 불어나면 잠기는 다리는 자연을 완전히 제어하려 하지 않고 일정 부분 양보한다. 평소에는 강 가까이에서 물을 느끼게 하고, 홍수 때에는 자연의 힘을 받아들인다. 자연과의 관계를 “정복”이 아니라 “조정”으로 이해하게 하는 건축이다.
옹벽·담장·보이지 않는 벽
반대로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대규모 옹벽과 담장은 자연 지형뿐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도 끊어 놓을 수 있다. 아파트 단지의 높은 경계와 폐쇄된 출입 구조는 안전과 관리의 편의를 제공하지만, 동네를 걷다가 우연히 다른 사람과 만나거나 여러 길을 선택하는 가능성을 줄인다. 물리적인 벽이 없어도 경제 수준, 학교, 주거형태와 같은 조건이 사람들을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벽”은 도시의 공간구조가 사회적 단절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 좋은 건축은 자연을 지우지 않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끊지 않으며,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날 여지를 남긴다.
한국적인 건축은 무엇인가
제 15장 후반에서 저자는 “한국적인 건축”을 전통 모양의 반복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기와 지붕이나 처마의 형태를 그대로 복제한다고 한국 건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주변 풍경을 끌어들이며, 안과 밖의 경계를 유연하게 만드는 태도 속에서 한국 건축의 정신을 찾는다. 정자와 한옥의 공간에서 중요한 것은 장식적 외형보다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다는 것은 과거의 형태를 복사하는 일이 아니라 그 안의 원리를 오늘의 재료와 기술로 다시 해석하는 일이다.
획일화된 도시와 문화의 다양성
교통과 통신,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세계의 건축은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기후,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 건축 기술의 차이가 서로 다른 건축 문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같은 프로그램과 같은 공법을 사용하면서 지역의 차이가 빠르게 줄어든다. 저자는 이를 단순한 외형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이 사라지는 문제로 본다. 효율성과 표준화는 편리하지만, 모든 도시가 같은 모습으로 변한다면 그 도시만의 기억과 삶의 방식도 함께 약해질 수 있다.
맺음말. 우리는 모두 건축주다
건축은 예술만도, 과학만도 아니다
맺음말에서 저자는 건축이 예술이면서 동시에 과학이고, 경제학·정치학·사회학이 함께 작동하는 분야라고 정리한다. 건축은 시대의 기술과 자본, 제도와 사람들의 욕망을 모두 담아낸다. 그래서 한 건물을 이해하는 일은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는 지를 읽는 일이기도 하다. 좋은 건축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형태만이 아니라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편리하고 안전하지만 더 불안한 시대
현대인은 역사상 가장 편리하고 안전한 시대를 살아가지만, 뉴스와 미디어를 통해 전쟁·테러·재난과 경제 위기의 소식을 끊임없이 접한다. 실제 생활보다 더 큰 불안을 느끼며 담장과 보안, 폐쇄적인 공간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려움이 커질수록 사람 사이의 우연한 만남과 신뢰가 줄어들 수 있다. 저자는 건축을 이해한다는 것이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적 관계를 선택할 것인지 생각하는 일과 연결된다고 본다.
우리 모두가 건축주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건축가가 비전공자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한다. 건축은 건축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건축주와 사용자, 시민이 함께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전문 건축가는 아니지만 집을 고르고, 어느 거리를 이용하고, 개발 정책과 도시 계획에 의견을 내고, 정치적 선택을 하는 순간 건축주의 입장에 서게 된다. 결국 좋은 도시를 만드는 첫 걸음은 시민이 주변의 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건축적으로 읽는 데서 시작된다.
14–15장과 맺음말을 관통하는 질문
앞선 11–13장에서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다시 사람의 감각과 행동을 만든다”고 정리했다면, 마지막 두 장은 그 질문을 더 넓힌다. 우리의 사고방식이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은 다시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바꾼다. 결국 도시의 문제는 어떤 관계를 장려하고 어떤 경계를 허물며, 어떤 자연을 남겨 둘 것인가를 함께 선택하는 문제다.
* 도시는 건물의 집합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와 기억, 자연과 사람의 끊임없는 대화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시드니인문학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