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4년 5월 26일, 초대 캔터베리 대주교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e of Canterbury, 534 ~ 604) 선종
초대 캔터베리 대주교 어거스틴 (Augustine of Canterbury, 534년 11월 13일경, 동로마 제국 로마 ~ 604년 5월 26일경 <69세>, 켄트 왕국 캔터베리)는은초대 캔터베리 대주교로, 켄트 왕국의 많은 시민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영국의 기독교화를 시작한 인물로 평가된다.

– 초대 캔터베리 대주교 어거스틴 (Augustine of Canterbury)
.출생: 534년 11월 13일경, 동로마 제국 로마
.선종: 604년 5월 26일경 (69세), 켄트 왕국 캔터베리
.직업: 기독교 사상가, 성직자
.종교: 기독교
.축일: 5월 26일(성공회, 정교회) / 5월 27일(천주교)
*초대 캔터베리 대주교 /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
.재임: 597년경 ~ 604년 5월 26일경 (6~7년)
.전임: 아리마태아의 성 요셉좌 설치 / 후임: 제2대 성 로렌스
동명이인인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와 구별하여 캔터베리교구 지역명을 통해 구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s, 또는 아우구스티노)의 가문이나 청소년 시절 혹은 교육과정에 관한 정확한 자료는 없다.
다만 그는 이탈리아의 로마 (Roma) 태생으로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 (Gregorius I, 9월 3일)와 친분이 있었고, 로마 첼리오 언덕에 있던 베네딕토회 성 안드레아 수도원의 수도자이었다는 사실만이 알려져 있다.

○ 생애 및 활동
아우구스티누스의 출생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이 없지만, 534년 11월 13일경, 동로마 제국 로마의 귀족 집안 출신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596년 6월, 로마에 있는 한 수도원의 원장으로 있던중, 그레고리오 1세에게 영국에 있는 이교도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라는 명을 받고 40명의 성직자와 함께 영국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갈리아 남부에 도착했을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위험에 대한 경고를 받고 아우구스티누스를 로마로 돌려보냈다.
그레고리오 1세는 596년 7월 23일에 추천서로 아우구스티누스를 격려했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시 영국으로 출발했다.
597년에는 잉글랜드의 타넷 지역에 도착했다. 당시 타넷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던 켄트 왕국의 왕인 에설버트에게 환대를 받았다.
에설버트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성직자들이 지낼 수 있는 캔터베리의 거처와 그들이 설교를 할 수 있게 허락한 성 마틴 교회를 제공했다.
에설버트 덕분에 애설버트와 그의 신하 수천명, 많은 일반 시민들까지 개종했다.
그해에 아를의 성 비르길리우스에 의해 초대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601년에는 이도교 사원을 철거하고 12개의 교구를 창설하라는 그레고리오 1세의 명을 실행시켰다.
604년 5월 26일에 켄트 왕국의 캔터베리에서 선종했다.

○ 업적
초대 캔터베리 대주교로서, 596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명을 받고 잉글랜드로 건너가, 앵글로색슨족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킨 인물이다.
이때 세례를 준 사람들만 해도 켄트 왕국의 왕과 왕비, 그리고 신하 수천 명이 포함되었다고한다.
그 외에도 주교가 된 이후로는 12개 교구들을 새로 창설하는 등 맹활약을 펼쳐, 601년에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s, 또는 아우구스티노)의 가문이나 청소년 시절 혹은 교육과정에 관한 정확한 자료는 없다.
다만 그는 이탈리아의 로마 (Roma) 태생으로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 (Gregorius I, 9월 3일)와 친분이 있었고, 로마 첼리오 언덕에 있던 베네딕토회 성 안드레아 수도원의 수도승이었다는 사실만이 알려져 있다.
595년 그는 이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고, 이듬해에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1세로부터 앵글로 색슨족을 복음화시키라는 사명을 받고 40명의 수도자들과 함께 영국으로 파견되었다.
성 베다 (Beda, 5월 25일)에 의하면 그는 이미 영국에 도착하기 전에 주교로 승품되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아를 (Arles)의 대주교에 의해 주교 수품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597년 봄에 프랑크 왕국의 도움으로 영국 켄트(Kent) 왕국의 해안가 타네트 (Thanet) 섬에 도착하였다.
그는 이미 영국에 진출해 있던 선교사들과 켄트의 왕인 성 에텔베르트 (Ethelbert, 2월 26일)의 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에는 아일랜드 교회와 로마 교회의 관습에 많은 차이가 있어서 선교활동에 장애가 많았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켄트의 수도인 캔터베리에 주교좌를 정하고 활동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설교와 활동은 놀라운 성과를 가져왔다.
수많은 개종자들이 탄생했고 그의 설교와 모범을 보고 성 에텔베르트 왕과 신하들이 597년 예수 성탄 대축일에 세례를 받았다.
그는 왕이 하사한 땅 위에 주교좌 성당을 세우고 도시 외곽에는 성 베드로와 바오로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이 수도원이 유럽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베네딕토회 수도원이다.
그러나 그는 영국의 켈트 (Celtic) 전례를 고수하려는 주교들이 로마 전례의 규율과 관습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는 여생을 켄트에서 보내면서 런던 (London)과 로체스터 (Rochester) 교구를 설정하고 주교를 임명하였다.
그는 캔터베리의 첫 번째 대주교이자 ‘영국의 사도’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오스틴 (Austin)으로도 불리며, 영국의 기독교화를 시작한 인물로도 평가된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가톨릭신문사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