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레지스탕스의 날 (Resistance Day) :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는 매년 9월 22일에 ‘레지스탕스의 날’ (Resistance Day)을 기념한다.

이 날은 1944년 9월 22일, 소련군이 탈린을 재점령하면서 에스토니아가 다시 소련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 사건을 기념하며, 에스토니아인들이 외세의 압제에 맞서 싸운 저항의 정신을 되새기는 날이다.
작은 발트해 국가 에스토니아는 20세기 동안 강대국의 침략과 점령에 시달렸지만, 그 속에서도 독립을 향한 끈질긴 저항을 보여주었다.
레지스탕스의 날은 에스토니아 국민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의 상징이자, 역경 속에서 자국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한 노력을 기리는 날이다.
9월 22일을 국경일로 지정하려는 제안은 2005년 Pro Patria Union 과 Res Publica Party 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 날은 2007년 2월 15일 Riigikogu의 명령에 따라 저항의 날에서 저항 전투의 날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날은 그해에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기념되었다. 주요 행사는 수도 탈린의 자유 광장에서 열린다.
공식 행사는 Pikk Hermann에서 에스토니아 국기를 게양하면서 일출과 함께 시작된다.
저항의 날에 Vabamu 점령 및 자유 박물관 은 몬트리올 에서 열린 Expo 67 동안 망명 에스토니아인과 소련 에스토니아인의 만남에 대한 전시회를 열었다. 이 박물관은 휴일 동안 무료로 개방된다

에스토니아 (Estonia) 개관
1918년 24일, 에스토니아 (Estonia)가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에스토니아 (Estonia)는 북유럽에 위치하며 북쪽과 서쪽은 발트 해, 동쪽은 러시아, 남쪽은 라트비아와 닿아 있다.
수도는 탈린으로 정식 명칭은 에스토니아 공화국 (Republic of Estonia)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8년 2월 24일 러시안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으나 1940년 다시 소련에 강제 점령 병합되었다.
1991년 8월 20일에 노래 혁명 후 에스토니아의 독립을 공화국으로써 인정받았다.

– 에스토니아 공화국 (Eesti Vabariik)
.국가: 나의 조국, 나의 행복과 기쁨
.수도: 탈린 (에스토니아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
.정치: 공화제, 의원내각제
.역사: 독립 –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독립 선언 1918년 2월 24일, 승인 1920년 2월 2일, 소련에 점령 1940년 6월 16일, 재독립 1991년 8월 20일
.공용어: 에스토니아어
2008년 5월 1일에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
발트 3국의 최북부에 있으며, 빙하 작용을 받은 토지는 낮고 평평하다.
기후는 습윤하며, 삼림·습지·목초지는 매우 넓다. 민족 구성은 65%가 에스토니아인이다.
공용어로는 에스토니아어를 사용한다. 의회는 단원제로 직접 선거로 선출되며 임기는 4년이다. 발트 해를 따라 핀란드, 스웨덴과 국경을 접한다.
핀란드에서는 에스토니아를 “Viro”(비로)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 에스토니아 역사
에스토니아는 상고적부터 핀우그리아어파에 속하는 에스토니아인들의 땅이었다. 독일의 프라테스 밀리치아이 크리스티 (Fratres militiae Christi)에 의해 1227년 정복되며 기독교화되었다.
이후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러시아인들에 의해 지배를 받았다.
10월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난 뒤 1918년 2월 24일 에스토니아는 독립을 얻었으나 1934년에 초대 국무총리였던 콘스탄틴 패츠 (Konstantin Päts)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1939년 8월 23일 소련은 나치 독일과 리벤트로프-몰로토프 밀약을 맺어 중앙유럽을 독일과 소련이 각각 분할하기로 하는 비밀 의정서를 만들었다.
이 의정서에서 에스토니아는 소련의 영향권에 두기로 인정받았다.
소련이 발트 3국을 처음으로 점령한 것은 1940년 6월 중순의 일이었는데, 소련의 내무인민위원회 요원은 에스토니아의 국경 초소를 급습하였고, 에스토니아군을 몰아낸 뒤 소비에트 간부단으로 대신하였다.
의회와 여타 정부 부처의 공직자를 뽑는 선거에서는 명부에 후보자가 한 명씩밖에 없었는데, 독재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명분으로 선거가 치러져 선거의 공식 결과에서 친 (親) 소련 후보가 92.8%의 표를 얻었다.
그렇게 구성된 의회는 곧 소비에트 연방에 가입할 것을 요청하였으며, 소련의 승인을 얻어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 병합되었다.
국제 사회는 소련의 발트 3국 병합을 불법으로 보고 비판하였다.
1991년 8월 20일 노래혁명과 소련의 붕괴로 독립을 되찾았다. 8월 20일은 에스토니아의 국경일이다.
에스토니아의 마지막 소련 군대가 떠난 1994년 8월 31일 이후 에스토니아는 서유럽과의 관계 정상화에 노력을 기울여 2004년 3월 29일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에, 2004년 5월 1일 유럽 연합 (EU)에 가입했다.
에스토니아는 세계에서 최초로 휴대폰으로 투표를 치르게 되는 방식을 2012년에 도입하였다.
2011년 1월 1일부터 유로를 공식화폐로 도입했다.
에스토니아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비종교적인 국가로 전체 인구의 75.7%가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한다.
2011년 기준 전체 인구중 14%만이 종교가 일상생활에서 중요하다고 할정도로 비종교적인 국가이다.
2011년 통계에 따르면 동방 정교회 그리스도인이 17만 6천여명, 루터교 개신교인이 10만 8천여명, 로마 가톨릭교회가 4천 5백여명, 여호와의 증인을 믿는 사람이 4천 여명이었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 정교회를 믿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러시아인들이라고 한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