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30)
이다 맥피 (1881-1937. 4. 13)
한국명: 미희(郿喜) 교장, 부산 1911-12; 마산 1912-32, 1933-37; 동래 1932-33
이다 맥피는 1881년 빅토리아 주의 탈봇(Talbot) 근처에서 초등학교 교사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 역시 교사가 되었고 빅토리아 주에서 7개의 학교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녀는 키네톤(Kyneton) 교회에서 장로교청년연합회(Presbyterian Fellowship Association)에 가입했고 이 운동과 주일학교에 열정적인 일꾼이 되었다. 그녀는 1910년에 선교사로 지원했고 디커니스(선교)훈련소에서 교육을 더 받았다.
맥피는 교육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1911년 10월 30일 찰스와 제시 매클라렌과 함께 같은 배로 한국에 도착했다. 그녀는 부산에서 1년간을 머물며, 한국어를 배우고, 엘리스 니븐과 함께 몇 차례 광범위한 시골 방문여행을 했고, 주일에는 부산진 교회에 출석하며 오르간을 반주했다. 또한 아미 왓슨이 아플 때 간호차 마산에 머물기도 했다. 그녀는 1912년 6월 한 달 동안 평양에 새로 설립된 한국어 학교에 참석했고, 9월에는 나피어와 함께 새로 건축된 집으로 이사했다.
1913년 2월 경, 마산 창신학교에는 남녀 아이들이 여전히 함께 공부하고 있었고, 마산교회에는 160명의 어린이들이 출석하고 있었다. 그해 4월 17일 의신여학교가 새롭게 개교했고 맥피가 교장이 되었다. 9월 달에는 학교 기숙사가 완공되었고 맥피는 사감 활동도 겸임했다.
맥피는 그 후 24년의 선교활동에서 1917-21년과 1932-33년의 공백 기간을 제외한 대부분을 학교의 교장으로 지냈다. 그녀의 지도력 아래서 학교는 학생 수가 28명에서 330명으로 확장되었다. 동시에 그녀의 교사훈련 능력은 많은 어린 교사들에게 유익을 주었다. 그러나 그녀의 선교활동의 범위는 학교에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녀는 낮에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여성들과 소녀들을 위해 야간 학교를 열었다. 그녀는 마산교회에 주일학교를 발전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쏟았는데, 다른 종교를 믿는 부모들의 어린 아이들을 주일 학교로 인도하기 위해 어린이 전도를 활성화시켰다. 맥피는 또한 마산 시 안에서와 주변 지역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반을 가르쳤다. 그녀는 순회사역과 성경 교육을 대단히 즐거워했다.
그녀는 1932-33년 데이비스 교장이 휴가를 떠나 있는 동안, 동래 일신여자중학교(Jane B Harper Memorial Girls’ School)에서 대리교장으로 일했다.
1937년 3월 초, 그녀는 심장 천식에 걸려 테일러 부부의 간호를 받았으나 4월 13일 세상을 떠나 마산의 무학산에 장사되었다. 맥피는 학교를 거쳐 간 많은 학생들로부터 깊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녀의 우정은 위대한 재능이었고, 그 영향력은 넓게 퍼졌다. 맥피는 마산교회 안에서 헌신적이고 열심 있는 성도, 힘 있는 전도자, 많은 사람의 친구, 몇 몇 사람에게는 “어머니”였다.
선교위원회가 남긴 기념 메모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그녀의 삶은 그녀의 주변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감동(inspiration)이었다. 그녀의 친절한 성격은 만나러 오는 사람들의 기분을 북돋아주었다.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한 관대한 평가는 그들로 하여금 최선을 다 하도록 만들었다. 그녀의 최대의 은사인 넓은 마음씨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찾아 그녀에게 오도록 했고, 그녀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녀는 관대하게 자신을 내주었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