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축구, 전쟁의 축소판 : 축구전쟁 (The Football War)
축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즐기는 스포츠이자, 인간의 협동심과 열정을 가장 강하게 이끌어내는 경기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와 지역, 민족의 자존심이 걸린 경기에서는 극단적인 적대감과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큰 스포츠이기도 하다.
축구가 인간의 감성을 특별히 자극하는 이유는 단순히 경기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집단 정체성을 강화하고, 원시적인 부족 본능을 자극하며, 승패가 가져오는 긴장감과 국가·지역의 자존심이 결합된다.
여기에 수많은 사람이 같은 감정을 동시에 공유하는 사회적·심리적 특성이 더해지면서 때로는 정치와 갈등이 폭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바로 1969년 ‘축구전쟁 (The Football War)’이다.

당시 1969 FIFA 월드컵 북중미 지역 예선에서 온두라스 (Honduras)와 엘살바도르 (El Salvador)가 맞붙었다.
1969년 6월 8일 열린 1차전에서 온두라스가 1대 0으로 승리했고, 경기 직후 엘살바도르의 20세 여성 한 명이 패배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장례식에는 대통령까지 참석하면서 국민들의 슬픔과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축구 경기 하나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양국은 이미 토지 문제, 이민자 문제, 경제적 갈등, 정치적 긴장이 극도로 높아져 있었으며, 축구는 그 갈등에 불을 붙인 마지막 도화선이었다.
결국 1969년 7월 14일, 마지막 예선전이 끝난 지 약 보름 만에 엘살바도르는 온두라스를 군사적으로 공격했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자국 이주민 보호와 국경 지역에서 발생한 폭력에 대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했다.
국토는 작았지만 엘살바도르군은 비교적 체계적으로 훈련되어 있었으며, 공군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되던 F-51 머스탱 (Mustang) 전투기를 운용하면서 온두라스보다 조직적인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엘살바도르군은 국경을 넘어 약 10 ~ 20km 까지 진격해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했고, 수도 테구시갈파 (Tegucigalpa) 인근 공군기지와 비행장, 정유시설과 전력시설 등을 공격했다.
이에 맞서 온두라스도 F4U 콜세어 (Corsair) 전투기를 출격시키며 치열한 공중전을 벌였다. 이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프로펠러 전투기끼리 벌인 역사상 마지막 공중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미국은 중앙아메리카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 것을 최우선 전략으로 삼고 있었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모두 미국의 영향권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미주기구 (OAS, 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를 통해 강력한 휴전을 압박했다.
또한 7월부터 시작되는 중앙아메리카의 우기는 대규모 지상군 작전을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결국 전쟁이 시작된 지 약 100시간 (4일) 만인 1969년 7월 18일, 엘살바도르는 OAS의 중재와 경제 제재 압력 속에서 휴전에 합의했다. 이후 8월 초 엘살바도르군이 온두라스에서 완전히 철수하면서 전쟁은 막을 내렸다.
비록 전쟁은 짧았지만 피해는 결코 작지 않았다. 온두라스에서는 공식적으로 군인 약 100명이 전사했고, 민간인 약 2,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수천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으며, 농경지와 기반시설도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온두라스는 안보 불안이 커지면서 미국과의 군사 협력을 더욱 강화하게 되었다.
‘축구전쟁’은 흔히 축구 때문에 벌어진 전쟁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누적된 정치 · 경제 · 사회적 갈등이 축구라는 상징적 사건을 계기로 폭발한 사례였다.
스포츠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열정이 국가주의와 정치적 갈등, 증오와 결합할 때는 평화를 상징해야 할 경기장이 전쟁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축구전쟁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3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민주화 실천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 (북랩)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