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출신의 베네딕도회 수도사제, 제35대 캔터베리 대주교, 신학자, 철학자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Anselm of Canterbury, 1033 ~ 1109)
이탈리아 출신의 베네딕도회 수도사제, 제35대 캔터베리 대주교, 신학자, 철학자.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 ‘신학자와 철학자의 수호성인’으로 불린다. 1033년경 이탈리아 부르고뉴 왕국 아오스타에서 태어나 1059년 노르망디 베크 베네딕도회 수도원에 입회했으며 스승 란프랑쿠스의 뒤를 이어 1063년 수석 수도사 Prior, 1078년 수도원장 Abbot이 되었다.

훗날 란프랑쿠스는 캔터베리 대주교 (1070~1089)가 되었으며 그의 뒤를 이어 안셀무스가 제35대 캔터베리 대주교가 되었다. 취임 과정은 극적이었다. 란프랑쿠스 사후 윌리엄 2세는 캔터베리 대주교좌를 4년간 공석으로 두며 교회 수입과 토지를 착복했는데, 1093년 왕이 중병에 걸리자 귀족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압박으로 안셀무스를 대주교로 지명했다. 안셀무스가 단호히 거부하자 그는 병상의 왕 곁으로 강제로 끌려가 주교 지팡이를 받았으며 교회로 끌려가 감사 찬가 「테 데움」 Te Deum이 불리는 가운데 대주교로 즉위했다. 이후 교회 서임권 논쟁과 관련하여 왕권에 맞서 교회의 독립성을 수호하다 윌리엄 2세와 헨리 1세에 의해 두 차례 유배되었다. 유배 중에도 저술 활동을 이어갔으며 1109년 4월 21일 캔터베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1494년 교황 알렉산데르 6세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720년 교황 클레멘스 11세에 의해 교회 박사로 선언되었다. 로마 가톨릭, 성공회, 루터교에서 공경받으며 축일은 4월 21일이다.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신 존재와 관련해 존재론 논증, 속죄론에서 이른바 만족설을 제시한 이로 평가받는다. 그의 신학 기획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fides quaerens intellectum으로 압축되는데 신학은 신앙으로 받아들인 것을 이성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라는 이 표현은 이후 신학에 대한 대표 정의로 자리 잡았으며 스콜라 신학의 기풍을 형성했다. 『프로슬로기온』 Proslogion에서 제시한 신에 대한 정의 (“그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 id quo nihil maius cogitari possit)와 이에 바탕을 둔 논증은 향후 철학·신학의 핵심 논쟁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또한 『하느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 Cur Deus Homo에서 다룬 만족설은 서방 그리스도교의 표준 속죄론이 되어 중세 신학자뿐만 아니라 종교개혁 신학자들과 개신교 신학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주요 저술로 『모놀로기온』 Monologion (1076), 『프로슬로기온』 Proslogion (1078), 『진리에 관하여』 De Veritate, 『자유 의지에 관하여』 De Libertate Arbitrii, 『하느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 Cur Deus Homo (1098), 『동정녀 탄생과 원죄에 관하여』 De Conceptu Virginali et de Originali Peccato 등이 있다. 한국에는 『모놀로기온 & 프로슬로기온』 (아카넷), 『인간이 되신 하나님』 (한들출판사)으로 소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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