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로마 가톨릭 사제이자 신학자, 교회사학자 요한 아담 묄러 (Johann Adam Möhler, 1796 ~ 1838)
독일의 로마 가톨릭 사제이자 신학자, 교회사학자. 1796년 5월 6일 뷔르템베르크 공국 이거스하임에서 태어났다. 1817년 튀빙엔 대학교에 입학했으며 1819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지역 교회 사제로 잠시 섬겼다.

1822~1823년 독일 여러 대학교를 방문하는 학문 여행을 떠나 베를린에서 요한 아우구스트 빌헬름 네안데르, 필립 마르하이네케,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를 만났다. 1823년 튀빙엔 대학교로 돌아와 교회사·교부학·교회법 강의를 시작했으며 요한 세바스티안 폰 드라이가 창간한 「튀빙엔 신학 계간지」 Theologische Quartalschrift에 기고했다. 1826년 부교수, 1828년 정교수로 승진했으며 1835년 뮌헨 대학교로 옮겼고 1838년 4월 12일 뮌헨에서 4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요한 세바스티안 폰 드라이와 더불어 이른바 튀빙엔 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로 이브 콩가르, 칼 아담 등 영향력 있는 신학자들에게 영감을 준 인물로 평가받는다. 교회 일치 신학과 관련해 주저 『교회 안의 일치』 Die Einheit in der Kirche는 처음 세 세기 교부들의 정신 안에서 공교회의 원리를 제시했다. 로마 가톨릭-개신교 신학 비교에서 『신앙고백론, 혹은 공개 신앙고백 문선들에 따른 가톨릭과 개신교의 교의 대립 서술』 Symbolik oder Darstellung der dogmatischen Gegensätze der Katholiken und Protestanten nach ihren öffentlichen Bekenntnisschriften은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신앙고백 문서들에 근거하여 두 전통의 교의 차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이 저작은 튀빙엔의 개신교 신학자 페르디난트 크리스티안 바우어로부터 강한 반론을 불러일으켰으며 묄러도 이에 응답하는 책을 출판했다.
주요 저술로 『교회 안의 일치』 Die Einheit in der Kirche, 『대 아타나시우스와 그의 시대의 교회, 특히 아리우스주의와의 투쟁에서』 Athanasius der Große und die Kirche seiner Zeit, besonders im Kampf mit dem Arianismus, 『교회사』 Kirchengeschichte (전3권, 사후 출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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