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6년 9월 16일, 화씨온도를 만든 네덜란드 공화국의 물리학자 다니엘 가브리엘 파렌하이트 (Daniel Gabriel Fahrenheit, 1686 ~ 1736) 별세
다니엘 가브리엘 파렌하이트 (독: Daniel Gabriel Fahrenheit, 1686년 5월 24일 ~ 1736년 9월 16일)는 프로이센의 물리학자이다.

– 다니엘 가브리엘 파렌하이트 (Daniel Gabriel Fahrenheit)
.출생: 1686년 5월 24일, 폴란드-리투아니아 단치히 (現 폴란드 포모르스키에주 그단스크)
.사망: 1736년 9월 16일 (50세), 네덜란드 공화국 헤이그
.성별: 남성
.국적: 폴란드-리투아니아 → 네덜란드 공화국
.직업: 물리학자
.소속: 왕립 협회
네덜란드의 물리학자이다. 현재 야드파운드법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하는 온도 단위인 화씨온도를 처음 만든 사람이다.
단치히에서 출생하여, 오랫동안 영국에서 살았다. 1724년 왕립 협회 회원이 되었고, 1714년 알코올 온도계 대신 수은 한란계를 발명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온도계의 화씨 눈금을 생각해 냈다.
액체가 끓는 온도는 기압에 따라 변하며, 또 물이 액체인 그대로 빙점 이하의 온도로 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 생애 및 활동
다니엘 가브리엘 파렌하이트 (Daniel Gabriel Fahrenheit)는 1686년 5월 24일,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단치히에 거주하던 한자 동맹의 무역상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17세기는 한자 동맹이 이미 많이 쇠퇴한 시기지만 그의 어머니 콘코디아 슈만 (Concordia Schumann) 역시 단치히의 유명한 사업가 가문의 딸이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15세일 때 부모가 독버섯인 알광대버섯을 먹고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고, 네덜란드 공화국의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여 무역상으로서의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무역업보다는 자연과학에 더 관심이 많았기에 실험과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1717년부터는 베를린, 할레,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코펜하겐 등을 여행하며 올레 뢰머, 크리스티안 볼프 (Christian Wolff),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등 당대의 유명한 학자들과 교류하였다.
이후 1717년에 헤이그로 이주하여 유리 가공업자로 정착하였으며, 당시 기준으로 꽤 성능이 좋은 기압계, 고도계, 온도계를 개발하였고 특히 그가 만든 수은 온도계는 당시 널리 쓰이던 기존 수은 온도계보다 성능이 탁월하다고 평판이 좋았다.
1718년 이후부터는 암스테르담에서 화학 교사로 활동하였다. 1724년엔 영국을 방문하였는데 이 해에 영국 왕립학회의 회원으로 뽑혀 당회의 학술지 ‘철학적 거래 (Philosophical Transactions)’을 통하여 화씨온도의 이론을 확립하였다.
1736년 8월부터 사망할 때까지 파렌하이트는 네덜란드와 서프리슬란트 주에서 특허 신청과 관련하여 헤이그의 플레인 광장에 있는 요하네스 프리슬레벤의 집에 머물렀다. 9월 초에 그는 병에 걸렸고 7일에는 건강이 너무 악화되어 공증인 빌렘 루이스브로크를 불러 유언장을 작성하게 했다. 이후 공증인이 다시 와서 몇 가지 변경 사항을 적용했다. 그로부터 5일 후인 1736년 9월 16일에 파렌하이트는 5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 주요 생애 및 업적
다니엘 가브리엘 파렌하이트 (Daniel Gabriel Fahrenheit, 1686 ~ 1736)는 현대식 온도계와 화씨온도 체계를 발명한 폴란드 출신의 독일계 네덜란드 물리학자이자 과학 기기 제작자다.
출생과 배경: 1686년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그단스크 (현재의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태어났으며, 청소년기에 부모를 여윈 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지에서 활동했다.
온도계 개량: 1709년 알코올 온도계를 제작했고, 1714년에는 기존보다 훨씬 정밀하고 일관된 측정이 가능한 최초의 수은 온도계를 발명했다.
화씨온도 체계 (Fahrenheit scale) 창안: 1724년 물·얼음·소금의 혼합물을 0도, 사람의 체온을 기준점으로 삼는 화씨온도(℉) 체계를 발표했다.
학술 활동: 정밀한 과학 기기 제작 능력을 인정받아 1724년 영국의 런던 왕립 학회(Royal Society)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주요 발표 논문 (영국 왕립학회 및 학술지 발표) : 1724년 파렌하이트는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면서 온도계, 기압계, 비중계 연구 결과를 라틴어 논문으로 잇달아 발표했다. 《진공 상태에서 물의 결빙 실험과 관찰》 (Experimenta et observationes de congelatione aquae in vacuo factae, 1724), 《몇 가지 끓는 액체의 열의 정도에 관한 실험》 (Experimenta circa gradum caloris liquorum nonnullorum ebullientium instituta, 1724), 《새로운 기압계의 기술》 (Barometri novi descriptio, 1724), 《새로운 비중계의 기술과 사용법》 (Araeometri novi descriptio et usus, 1724) 등이 있다.
사망: 1736년 9월 16일, 네덜란드 공화국 헤이그에서 별세했다. 향년 50세

○ 저서
다니엘 가브리엘 파렌하이트 (Daniel Gabriel Fahrenheit)는 평생 단행본 형태의 책 (도서)을 출간하기보다는, 영국의 과학 학술지인 《왕립학회 철학적 트랜잭션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에 자신의 연구 논문들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저술 활동을 펼쳤다.
그가 1724년 왕립학회에 제출하여 게재된 주요 대표 논문 (저서)들은 다음과 같다.
《여러 끓는 액체의 열의 정도에 관한 실험》 (Experimenta circa gradum caloris liquorum nonnullorum ebullientium instituta): 화씨온도 (℉) 눈금의 기준을 제안하고 여러 액체의 끓는점을 측정한 연구다.
《진공 상태에서 물의 결빙에 대한 실험 및 관찰》 (Experimenta & Observationes de congelatione aquae in vacuo factae): 물이 어는점 이하에서도 액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과냉각 현상’을 발견하고 기술한 논문이다.
《새로운 비중계 기술》 (Araemetri novi descriptio): 그가 직접 발명한 정밀한 물질 비중 측정 기구에 대한 설명이다.
이 논문들은 파렌하이트 사후인 1893년, 독일의 과학 고전 총서인 《오스트발트의 정밀과학 클래식 (Ostwalds Klassiker der exakten Wissenschaften)》 제57권 (《온도측정법에 관한 논문집》)을 통해 독일어로 번역 및 묶여 단행본 형태로 출간되기도 했다.
또한, 1983년에는 그가 당대의 석학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헤르만 부르하페 등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엮은 편지 저술집인 《파렌하이트가 라이프니츠와 부르하페에게 보낸 편지들 (Fahrenheit’s Letters to Leibniz and Boerhaave)》이 출간되었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