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1세기에 활동한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 (Marcus Vitruvius Pollio, BC 81년경 ~ BC 15년경)와 ‘건축 십서 (十書)’ (De architectura)

비트루비우스 (Marcus Vitruvius Pollio)는 BC 1세기에 활동한 로마의 건축가이자 기술자이기도 했던 그는 로마의 여러 건축가를 위해 유명한 논문 ‘건축 십서 (十書)’ (De architectura)를 썼다. 그의 생애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으며 다만 저작을 통해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어느 황제를 위해 건물을 지었는지 전혀 밝히지 않았지만 아마도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위해 건물을 지었고 BC 27년 이후에 ‘건축 십서’를 구상한 것 같다. 자신을 나이 든 사람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아 율리우스 카이사르 치하에서도 활동한 듯하며 자신이 파눔(지금의 파노)에 지은 한 바실리카에 관해 쓰고 있다.
헤르모게네스 같은 유명한 그리스 건축가들의 이론적 저서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건축 십서’는 건축의 거의 모든 측면을 기술하고 있지만, 주로 그리스 건축을 다루고 있으므로 그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 왜냐하면 얼마 뒤 로마 건축은 로마의 세계제국 선포라는 새로운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단호하게 그리스 건축을 탈피했기 때문이다. ‘건축 십서’는 모두 10권이며 도시계획과 건축일반론, 건축재료, 신전건축과 그리스 오더의 사용법, 극장·목욕탕 등 공공건물, 개인건물, 바닥과 회반죽 장식, 물의 이용, 시계·측량법·천문학, 토목도구 및 군사용 도구를 나누어 다루고 있다.
본질상 헬레니즘적 견해를 지니고 있던 그는 신전과 공공건물 설계에서 고전적 전통을 보존하고자 했고 건축론의 각권 서문에 그 시대 건축에 관해 비관적인 견해를 자주 나타냈다. 플리니우스 스스로는 밝히지 않았지만 자신의 ‘자연사’ (Natural History)에서 설명한 로마의 건축기법과 벽화에 관한 대부분의 내용들은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을 빌린 것이다. 후세에 칭송받기를 공공연히 바라던 비트루비우스의 소망은 실현되었다. 그의 저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부흥, 바로크 시대 건축의 고전적 측면, 그리고 신고전주의 시대를 통틀어 고전건축에 관한 최고의 권위서였다.
○ Vitruvius의 ‘건축10서’
제1서 : 총론
건축가의 교육 : 이론과 실제
건축의 기본원리 : order, arrangement, eurythmy, symmetry, decor(propriety), economy
건축의 분류 : 건설기술, 기념건축물, 기계제작
건축의 3요소 : firmitas, utilitas, venustas
도시의 입지
가로의 방향과 풍향
공공건물의 위치
제2서 : 주거건축

그 기원
각 재료들의 성질과 구조
제3서 : 신전 건축
인체와 신전에서의 대칭성
신전의 기초 및 하부구조
각 부분의 비례
제4서 : Orders
3 order의 기원
신전의 각 부분
제5서 : 공공건축물
바실리카, 포럼, 극장, 공동욕장 등
제6서 : 계획론
주거양식을 결정하는 기후
Symmetry와 그것을 대지에 따른 변형
주요 실들의 비례
각 실들의 위치
제7서 : 시공
바닥
벽 마감
마감 색채
제8서 : 설비
물의 공급방법, 선정
– 우선 1서는 총 일곱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로 건축관련 분야의 학문과 건축의 구성, 그리고 건축가로서의 자질을 주로 언급하였다.
1장에서는 건축가의 교양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가지 학문과 교양에 대한 지식을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건축가는 지식의 판단에 따라 다른 분야의 기술로서 이루어진 작품을 음미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건축가는 회화에 숙달되며 기하학, 역사에 능통하고, 철학과 음악을 이해하며, 의술에 무지하지 않아야하고 법률이나 천문학에 관한 지식도 구비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그 이유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건축가는 학문이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젊었을 때부터 다방면에 걸쳐 교양을 쌓아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장에서는 질서체계 (order), 공간배치 (arrangement), 미적구성 (eurythmy), 형식과 내용의 적정화 (propriety) 및 경제성 (economy) 등의 건축의 기본적 원칙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먼저 질서체계는 건물의 각 부분이 전체적인 치수를 가지되, 전체적인 비례관계에 있어서도 심메트리의 원칙에 맞추어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공간배치는 건물을 적절한 위치에 짜맞추어 놓은 것이라고 하면서 그 종류로 평면도, 입면도, 투시도가 있다고 하고 있다. 미적 구성은 부재를 조립함에 있어 구성의 아름다움과 기능의 적합도를 말하는 것이고, 심메트리란 건물의 부재 상호간의 적당한 배열, 기준으로 채택한 부분의 기준 치수에 따른 건물 전체의 모양과 다른 부분 사이의 관련성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형식과 내용의 적정화란 인지된 원칙에 맞추어 건물을 위엄있게 지었을 때 이룩되는 양식의 완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고, 자연적인 조건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고 덧붙여서 설명하고 있다. 경제성이란 집을 지을 때 공사비용을 세밀하게 나누어 경제적으로 배분하는 것뿐만 아니라 재료와 부지의 적정한 관리까지를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주택도 각기 거주하는 사람들의 계층에 맞게 지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천여 년 전에 세운 건축의 기본적 원칙이 현대에도 어느정도 적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3장에서는 건축의 여러 부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많은 부분을 나열하고 그 모든 건축물들은 내구성과 아름다움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4장에서는 도시의 입지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데 어떤 곳이 살기 좋은 입지인가에 대하여 서술 해 놓았다. 어떠한 환경이 거기에 거주하는 인간에게 가장 유익한가를 연구하면서 습기나 바람, 열 등을 고려하고 있었다. 또한 그 시대에 도시들을 예로들어 어떠한 환경이 좋은 입지인지 설명하고 있다.
5장에서는 성벽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현재와 동떨어져 있는 내용이나 내용 가운데 성벽의 재료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재료 확보여건에 따라 달라진다는 구절을 보면 자재의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장에서는 풍향을 고려한 도로의 방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도 바람이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건축물에 의해 바람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덜 받기위한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남과 북을 찾아내는 방법과 방위를 찾아내어 풍향을 알아내서 바람을 분류한 것이 상당히 과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7장에서는 공공건물의 부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공공 건물의 부지 선정에서 고려할 사항을 쾌적함과 편익성이라고 설명되어있다.
– 2서는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거의 기원과 천연 재료의 건축적 이용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1장에서는 주택의 기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선사시대에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안식처가 그 기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게 시작한 주택이 손을 사용하고 서로 모방하고 학습하여 발전된 입장의 다양한 기술을 갖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2장에서는 자연물리학들이 제시한 원소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현재와는 많이 다른 화학이지만 그것을 고려하여 적합한 재료를 구사하려는 노력이 드러나 있다.
3장부터 10장까지는 천연 재료의 건축적 이용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3장에서는 벽돌을 먼저 이야기하고 있다. 벽돌의 원료, 양생하기 좋은 시기, 벽돌의 종류 등을 이야기 하면서 벽돌을 쌓을 때 반장씩 서로 포개어 쌓아 통줄 눈을 피하고 벽체의 강성을 높이고 외관의 미려함을 갖추게 하는 비트루비우스식 벽돌 쌓기는 현대에도 많이 이용되고 있는 방법이여서 인상적이였다.
4장에서는 모래에 대한 이야기로 좋은 모래를 고르는 방법과 모래 종류에 따라 각각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5장에서는 석회석에 대하여 설명하는데 모래와 물과 혼합하여 벽체를 견고하게 만든다고 설명되어있다. 현재의 콘크리트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6장에서는 화산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7장에서는 석재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각 지방에서 채석되는 석재의 특징을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8장에서는 벽쌓기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여러 건물들을 예로 들면서 각각의 벽쌓기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9장에서는 목재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목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벌채 기간, 벌채 방법, 그리고 각 나무들이 가진 특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10장에서는 9장의 목재 설명에 이어 전나무에 관하여만 따로 또 설명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고 양지의 저지대의 전나무가 그늘진 고지대 나무보다 좋다고 설명하고 있다.
– 3서는 총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 되어져 있는데 주로 신전 건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1장에서는 신전 건축과 인체에서의 심메트리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자연이 인간의 신체를 전체적으로 비례를 맞추어 조화롭게 구성한 것에 근거하여 건물을 건립하는데도 개개의 구성요소가 전채의 외관에서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였고 특히 그 구조물이 오래 지속되는 신전건축에서 특히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건물에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측정의 기본을 손가락, 손바닥, 발, 팔과 같은 인체의 구성요소에 의거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2장에서는 신전의 분류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구성 방법에 따라 신전을 분류하고 그 특징을 서술하고 있다.
3장에서는 기둥과 기둥 간격의 비례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기둥 지름과 기둥 간격에 따라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특징과 그 예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시선에 따라 보이는 높이가 달라 기둥의 중간 부분을 부풀리는 방식인 엔타시스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4장에서는 신전의 기초와 하부구조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지반이 굳은 곳에 축조하라고 설명하고 있고 견고하지 못한 경우는 인위적으로 견고하게 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5장에서는 이오니아식 기둥의 주초, 주두, 엔타블레츄어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4장에서 설명한 작업이 완료되면 그 장소에 주초를 놓게 되는데 이오니아식 기둥에 관하여 정확한 수치까지 기록하면서 설명해 나가고 있다.
– 4서는 총 아홉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로 도리아식과 코린트식 형태의원칙과 차이점, 특성을 설명하였다.
1장에서는 세가지 기둥의 기원 및 코린트식 주두의 비례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이오니아식과 비교하여 주두가 길기 때문에 기둥의 높이가 길어져 외관이 가늘어 보인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생겨난 도리아식의 유래를 설명하고 그것이 남자의 발자욱을 신장에 비교했을 때 1/6이란 것을 적용하여 주신의 상부를 6배 만큼하여 주두를 포함한 기둥의 높이로 하였다고 하며, 그래서 도리아식 기둥은 남자의 신체 비례와 강건함, 아름다움을 나타낸다고 설명하였다. 이오니아식은 발자욱을 여인의 가는 몸에 맞추어 1/8로 보고 적용하여 여성의 섬세함을 표현해주는 방식이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또 코린트식에 관하여도 설명하고 있는데 그 기원을 설명하고 장식용으로 더욱 아름다운 효과를 얻기 위해 어린 소녀의 섬세함, 가냘픔을 모방하여 만들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2장에서는 기둥의 장식물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기둥 종류에 따른 그 기원과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3장에서는 도리아식 신전의 비례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도리아식 신전 건축도 비례의 법칙에 관심을 기울여 작업하면 정확한 도리아식 신전을 건설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옛 건축가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4장에서는 신상실과 프로나오스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수치를 나타내면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고 시각적인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5장에서는 시전의 방위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6장에서는 신전의 출입구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입구를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앗타카식으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
7장에서는 터스칸식 신전건축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세세한 부분까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여 설명하였다.
8장에서는 원형신전과 기타신전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그리스인들의 미적 감각을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었다.
9장에서는 제단에 관하여 대략적으로 설명하였다.
– 5서는 총 열 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로 공공 건축물의 배치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1장에서는 포룸과 바실리카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을 건설할 때 주의할 점을 강조하였다.
2장에서는 감옥, 원로원, 회의장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3장에서는 극장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제사나 연극을 관람할 수 있도록 극장을 배치하되 가능한 건강한 부지에 배치해야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밖에 주의해야할 점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4장에서는 화성학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음에 나올 5장 극장의 극장의 음향계획을 설명하기위해 언급한 것이다. 5장에서는 현대의 스피커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항아리를 배치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을 설명하고 있다.
6장부터 12장까지는 극장, 욕장, 팔라에스트라, 항구, 방파제 등을 건축할 때 지켜야할 규범과 같이 구체적인 치수를 제시하여 하나의 표본을 제시하고 있다.
– 6서는 개인 주택에 있어서 건축의 이론적 원리와 균재 비례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1장에서는 주택형태 결정 요소로서의 기후라 하여 기후에 따라 주택의 형태가 결정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제주도의 담이 높은 집이나 울릉도의 기둥이 두꺼운 집을 보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2장에서는 심메트리, 대지의 조건에 적응시킨 외관의 형태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학문적인 지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건축적인 감각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어떠한 방식으로 비례원칙에 입각한 건축을 수행할지를 설명하기 위해 3장에서 카바에디움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4장에서는 각각의 방에 대하여 알맞은 방위를 제시하고 있다.
5장에서는 건축주의 상황에 맞는 공간의 구성을 설명하면다.
6장에 농촌 주택을 예로들어 설명하고 있다.
7장에서는 그리스 주택의 트징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8장에서는 앞의 내용과 반복되어 기초와 하부구조에 대하여 설명해 놓았다.
– 7서는 총 열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아름답고 내구성을 갖출 수 있는 마무리 치장의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1장에서는 바닥의 마감에 대하여 주의할 점을 제시하였다.
2장에서는 스코터용 석회의 선정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3장에서는 보올트와 스코터 공사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4장에서는 습윤지의 스터코 공사와 식당의 장식 수법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5장에서는 프레스코 화법의 퇴조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6장에서는 스터코용 대리석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7장부터 14장까지는 안료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각 색깔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여 사용하기 쉽도록 하고 있다.
– 8서에서는 물에 관한 내용을 기술하였다.
1장에서는 물을 발견하는 방법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2장에서는 빗물에 관하여 설명하였는데 빗물을 위생적이라고 말한 것은 현대와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3장에서는 물의 여러 가지 툭성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온천수와 냉수의 좋은 점을 설명하고 있다. 그 외의 많은 물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4장에서는 양질의 물을 판단하는 실험을 설명하였다.
5장에서는 도수와 이에 필요한기구를 6장에서는 수로와 샘, 물탱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9서는 총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 되어 있고 해시계의 제조방법과 태양광선에 의해 해시계 바늘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짧아지는 이치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1장에서 황도대와 행성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2장에서는 달의 현상에 관하여 설명한다.
3장에서는 12행성 사이의 태양의 경로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4장에서는 남쪽 성좌에 관하여 설명한다.
5장에서는 북쪽의 성좌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6장에서는 점성술과 날씨 예측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데 태양의 운행, 별이 뜨고 지는 것을 보고 계절의 징후나 날씨를 예측할 수 있게 한 고대인의 노력을 볼 수 있다.
그 이용방법으로 7장에서 아넬람마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8장에서는 해시계와 물시계의 작동원리와 기원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 마지막 10서는 열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로 기계장치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장에서 16장까지를 통해 기계와 기구, 감아 올리는 기계 장치, 물레 바퀴와 물레 방아, 수차, 크테시비우스의 펌프, 수력 기관, 주행기록계, 투석기, 쇠뇌, 공격용 / 방어용 무기 등의 작동 원리와 사용 방법, 제조 방법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책을 마무리 짓는다.
○ 비트루비우스의 영향
– 포룸 (Forum)

포룸 (라: forum, “시장”) 은 로마 제국 시대의 도시 중심에 위치했던 공공 복합장소를 말한다. 공공 건축물에 둘러싸여 그리스의 아고라와 같이 집회장이나 시장으로 사용되었다.
비트루비우스는 ‘건축십서’에서 공공건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실 포룸은 원래 시장의 기능만 하도록 했지만, 매일같이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거대한 사회 및 소통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고, 또한 일반적으로는 정치토론과 논쟁 장소, 만남 장소 등등 다른 용도로도 쓰이는 것이 보통이었다. 한마디로 포룸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다음과 같이 제국 곳곳에 포룸을 설치하기도 했다.
빌립보의 포룸, 메리다의 지방 포룸과 포룸, 타라고나의 포룸, 폼페이의 포룸 등이 있다.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포룸을 발전시킨 피아자가 많이 지어졌고, 이는 다시 광장이나 플라자로 발전하였다.
– Palladianism
이탈리아 비첸차 출신의 건축가 · 이론가인 안드레아 팔라디오 (1508 ~ 80)의 저술과 작품에 기초를 둔 건축양식을 말한다.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건축가 Palladio, 그의 본명은 Andrea di Pietro Della Gondola로 1508년 북부이탈리아의 베네치아 공화국 파도바에서 태어났다. 이름으로 보아 ‘성 Andrea 날’인 11월 30일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본디 평민 출신으로 13세 무렵 때부터 한 조각가 밑에서 도제로 있으면서 석공 교육을 받다가 16세 때 아버지와 함께 근처의 도시인 Vicenza로 이주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벽돌공과 석공의 길드 조합에 가입하고 미켈레 산미켈리의 양식으로 기념물과 장식 조각을 제작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공방에 석공으로 고용되어 장식 부문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537년 무렵 Vicenza의 인문주의자이자 학자인 잔 조르조 트리시노 백작을 만나 건축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석공으로 일하던 Palladio를 눈여겨보아 그에게 인문주의 교육을 통해 실무경험을 높여 주고자 했다. 그는 1538년에서 41년에 걸쳐 파도바에 장기간 체류하게 되는데, 이 유서 깊은 대학도시에서 Palladio를 교육하는 것이 그 주된 이유의 하나였다고 한다. 다시 고향에서 지낸 이 3년은 Palladio에게 건축가로서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중요한 기간이었다. 여기서 Palladio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건축가로서 성장해간다. 파도바에서의 수업이 어느 정도 끝나자 드디어 트리시노는 Palladio를 로마로 데리고 간다. 로마에서 본격적인 고대 유적과 르네상스의 고전주의 건축에 접하고 받은 영향은 1540년대 초의 초기작품, Villa 고디와 카사치베나부터 1549년의 바실리카로의 변화로서 이해할 수 있다. 트리시노는 1550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 전해에 Palladio는 바실리카 건축주임의 역할도 수행하여, 확고하게 훌륭한 건축가로서의 변모를 이루고 있다. Palladio는 1540년대 초부터 이미 트리시노를 통해서 알게 된 베네치아 귀족들의 Villa 등을 상당히 많이 다루었다.
팔라디오는 16세기 후반의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건축가였다. 팔라디오는 BC 1세기 때 활동했던 건축가이며 이론가인 비트루비우스의 현존하는 건축물과 저술을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건축은 고대의 합리성과 원칙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팔라디오 양식은 명확성·질서·대칭의 측면에서 합리성을 나타내는 한편, 고전적인 형태와 장식 모티프들을 사용하면서 고전시대에 경의를 표하기도 한다. 팔라디오의 직속제자인 빈첸초 스카모치(1552~1616) 외에는 어떤 건축가도 팔라디오 작품의 가장 학문적인 측면, 즉 조화로운 비례를 탐구하는 데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2세기 동안에는 너무나 많은 추종자들의 손에서 이 양식이 팔라디오 작품의 힘차고 시적인 면이 빠진 채 무미건조한 학문적인 공식이 되어 버린 경향이 있었다. 그의 진정한 후계자로 꼽을 수 있는 건축가인 잔 로렌초 베르니니 (1598 ~ 1680)를 비롯해 현대 미국의 건축가 존 헤이두크에 이르는 건축가들은 그의 건축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을 다른 관점에서 재검토했다.
고전적 로마 건축에 기초한 안드레아 팔라디오 (1508 ~ 1580)의 작품이며 그의 명료한 건축스타일은 영국을 비롯 유럽과 북미대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지은 빌라 카프라 (로톤다). 둥근 천장을 씌운 직사각형 사방에는 각각 원주 6개로 꾸민 현관 복도를 배치했다. 1550년에 짓기 시작해 팔라디오가 죽은 뒤 제자 스카모치가 완성했다.
– 알베르티 (Alberti, Leon Battista)

비트루비우스 이후 1400년이 지난 15세기 중반 르네상스 초기의 플로렌스의 건축가이자 이론가이며, 근세 건축양식의 창시자로서 단테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마찬가지로 르네상스기의 ‘만능인’ (萬能人)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Leon Battista Alberti, 1404년 2월 14일 ~ 1472년 4월 25일)는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의 철학자이자 건축가이다.
전공 분야는 법학, 고전학, 수학, 희곡, 시학이며, 또 회화나 조각에 있어서는 창작 뿐 아니라 이론의 구축에도 기여하였다. 음악과 운동경기에도 뛰어났고, 제자리에서 사람 키를 뛰어 넘었다고 전해진다.
고대 작품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은 그는 그것들을 현대에 접목시키기 위한 노력들을 한다. 그에게 있어 조각의 궁극적 목적은 자연과의 닮음이었다. 조각가는 보편적인 균형, 개인적 제 각각적인 사물에 대한 균형에 관한 지식까지 다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그는 또한 조각가 (sculpteur)와 모형제작자 (modeleur)의 개념을 분리한다. 재료를 첨가 또는 떼어내는 과정에 의한 창조의 개념은 후, 르네상스 시대 예술에 근본적 영향을 미친다.
교황 에우제니오 4세 밑에서 고대 건축을 연구하였으며, 1450년 ‘건축론’ 10권을 저술하여 건축가로서의 경험과 미학적인 원리를 세웠다. 그의 이론은 옛 고전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을 출발점으로 하였는데, 그의 설계는 후에 바로크 건축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설계에 의해 지어진 건축물로는 밀라노의 산프란체스코 성당과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노베를라 성당 등이 있다. 저서로 ‘조각론’, ‘회화론’ 등이 있다.
BC 1세기 고대 로마의 기술자 · 건축가, 비트루비우스 폴리오 (Marcus Vitruvius Pollio, 마르쿠스 위트루위우스 폴리오, BC 81년경 ~ BC 15년경)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 (라: Marcus Vitruvius Pollio, 마르쿠스 위트루위우스 폴리오, BC 81년경 ~ BC 15년경)는 BC 1세기 경에 활약한 고대 로마의 기술자, 건축가이다.

– 비트루비우스 (Vitruvius)
.출생: BC 81년경, 로마 공화국
.사망: BC 15년경, 이탈리아
.본명: Marcus Vitruvius Pollio
.국적: 로마 제국
.건축물: Basilica di Fano
BC 1세기 로마의 건축가로 현존하는 고대 유일의 건축서 ‘De Architectura 10권’ (건축에 대하여, 보통 ‘건축 10서’라고 한다)의 저자로 유명하다. 케사르의 아프리카 원정 시에는 파노에 바실리카를 세우고 만년인 BC 33년부터 BC. 22년간 ‘건축 10서’를 써서 아우구스투스에 헌정한 외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당시에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10서’는 건축기술 이외에 토목, 기예, 조병, 건축, 미학도 포함했다. 현재에는 소멸해 버린 헬레니즘기의 그리스 건축문헌을 많이 참조하고 있으나 명확하지 못한 서술도 많다. 제정시대와 중세를 통하여 많은 사본이 있어 이용되어 왔으나 ‘건축의 바이블’이라 하여 19세기까지 큰 영향을 주었다.
스기모토 도시마사는 “건축이념의 전통이 시작된 비트루비우스의 중요한 특징은 건축이란 단순한 기술이라기보다는 예술을 포함한 총합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전문화되고 세밀한 기술보다는 기본적인 공간의 형태화, 물질의 질서화 쪽에 이상을 두는 것이다. 오늘날 지식이 세분화되어 한 인간이 모든 기술과 예술을 습득하지 못하게 되자 붕괴위기를 맞았으나 비트루비우스적 전통은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용-강-미의 삼위일체가 붕괴되려 할 때에는 강한 반동이 일어나 다시 재구축되어 온 것이다.”라며 비트루비우스 건축관의 생명력을 언급했다.
○ 생애
비트루비우스 (Vitruvius)의 생애에 관하여 알려진 바는 거의 없으며, 심지어 그의 이름이 마르쿠스나 폴리오인지도 확실치 않다. 그의 일생에 관한 모든 것은 오직 그의 저술을 통해 유추해낸 것일 뿐이다.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군단의 건축기사로 스페인과 갈리아 등에서 복무한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군막사, 공성장비, 가도, 다리건설 등의 공병 일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후에 아우구스투스가 그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였다고 한다. 그는 ‘파눔’ (Fanum, 현재의 이탈리아 파노)의 한 바실리카를 직접 건축했다고 저서에 썼으나 현재는 전혀 남아있지 않다.
그의 저술로 알려진 ‘건축술에 대하여’ (De Architectura)는 10권으로 구성된 일종의 건축학 논문이며, 로마건축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하다. 도시계획과 건축일반론, 건축재료, 신전, 극장·목욕탕 등 공공건물, 개인건물, 운하와 벽화, 시계 · 측량법 · 천문학, 토목도구 및 군사용 도구 등 건축기술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이는 그리스 건축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는데 규칙적인 비례와 대칭구조, 고전적 형식미를 강조했다. 그에게 있어 건축은 새나 벌이 둥지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모방이었으며, 따라서 건축의 재료는 자연에서 구한 것이고 인간에게 휴식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또 건축구조는 세 가지 본질을 반드시 갖추어야한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견고함 (firmitas)과 유용성 (utilitas), 또 아름다움 (venustas)이다.
그리스 건축양식을 도리스, 이오니아, 코린토스 양식으로 분류한 것도 비트루비우스이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 알려진 바는 없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재조명되는데, 그의 ‘건축에 관하여’는 1414년 피렌체에서 재발견되어 르네상스 건축가들에 빠르게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혔으며 고대 로마 건축 연구 및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의 영향을 받아 유명한 ‘비트루비우스 해부도’를 그렸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