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371년 7월 6일, 아기어드 왕통의 스파르타왕 클레옴브로투스 1세 (Cleombrotus I, BC ? ~ BC 371) 타계
클레옴브로토스 1세 (Cleombrotus I, 고 그: Κλεόμβροτος, ? ~ 기원전 371년 7월 6일)은 스파르타 아기아다이 왕조의 왕 (재위 : 기원전 380년 ~ 기원전 371년)이다.

– 클레옴브로토스 1세 (Κλεόμβροτος / Cleombrotus I)
.출생: ?
.사망: 기원전 371년 7월 6일
.성별: 남성
.국적: 스파르타
.직업: 왕
.활동 기간: 기원전 380년 – 기원전 371년
.소속: 아기아다이 왕조
클레옴브로투스 1세는 기원전 380년부터 기원전 371년까지 재위한 고대 그리스 스파르타 아기아다이 왕조의 왕다.
그는 스파르타의 전성기를 끝내고 그리스 패권을 테베에 넘겨준 역사적 사건인 기원전 371년 레욱트라 전투에서 전사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재위 기간은 스파르타의 패권이 몰락하는 시기였으며, 에파미논다스가 이끄는 테베와의 전쟁을 지휘하다 기원전 371년 레욱트라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가장 유명하다.

○ 생애 및 활동
클레옴브로토스 1세 (Cleombrotus I)의 출생 시기는 불분명하다.
클레옴브로토스 1세는 파우사니아스의 아들이며, 선대의 왕 아게시폴리스 1세의 동생으로 후대의 왕 아게시폴리스 2세와 그 또 다음 왕 클레오메네스 2세의 아버지이다.
아테네 원정 때의 실수를 책망하여 부왕 파우사니아스가 스파르타에서 망명했을 때 아게시폴리스 1세와 클레옴브로토스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친척인 아리스토데모스의 후견을 받았다.
기원전 380년, 형의 죽음으로 스파르타의 왕으로 즉위했다.
클레옴브로토스는 테바이에 주둔한 스파르타 군이 테바이 인들에게 죽임을 당하자 스파르타와 펠로폰네소스 동맹 세력을 이끌고 기원전 379년에 테바이 원정을 떠났다.
클레옴브로토스는 키타이론 산을 통해서 진격하여, 적의 수비대 150명을 희생의 제물로 올린 후 우방인 플라타이아로 향했다.
이어 테스피아이를 통해 키노스케팔라이로 가서 10일 정도 머무르다 이후 테스피아이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곳에 용병을 고용하기 위한 군자금과 스포드리아스 (Sphodrias)가 이끄는 동맹군의 3분 1을 남기고 귀국했다.

기원전 376년에 다시 클레옴브로토스는 테바이에 보내졌지만, 국경 부근의 키타이론에서 테바이, 아테네 연합군에 일찌감치 패해 철수했다.
기원전 371년, 클레옴브로토스는 보이오티아를 다시 침공했다.
그에 맞서기 위해, 테바이의 장군 에파메이논다스는 케피시스 호수 근처에 진을 세우고 클레옴브로토스를 기다렸지만, 포키스의 안브로소스로 진군한 클레옴브로토스는 에파메이논다스를 지나쳐, 카이레아스가 이끄는 테바이 군을 물리치고, 크레우시스를 점령하고 이곳의 테바이의 삼단노선 12척을 빼앗아 이어 레우크트라로 향했다.
레우크트라 전투에서 클레옴브로토스는 에파메이논다스가 이끄는 보이오티아 동맹군과 싸우다 패하여 기원전 371년 7월 6일에 죽음을 맞았다.
클레옴브로토스는 기원전 480년의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전사한 레오니다스에 이어 두 번째로 전장에서 전사한 스파르타의 왕이 되었다.
이 패배로 인해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패권을 잃었다.

- 주요 생애와 업적
왕위 계승: 파우사니아스 왕의 아들이며, 형인 아게시폴리스 1세가 기원전 380년에 사망하자 스파르타의 왕위를 이어받았다.
테베와의 갈등: 공동 왕이었던 아게실라오스 2세가 강경한 반 (反) 테베 성향이었던 것과 달리, 클레옴브로투스 1세는 상대적으로 테베에 온건하고 우호적이라는 의심과 비판을 정적들에게 자주 받았다.
레욱트라 전투 (기원전 371년): 테베의 명장 에파미논다스가 이끄는 군대와 격돌했다. 당시 스파르타군은 수적으로 우세했으나, 에파미논다스의 혁신적인 ‘사선진 (Oblique Order)’ 전술과 테베 신성대의 맹공에 밀려 우익이 무너졌다.
최후: 그는 이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필사적으로 싸우다 전사했다. 이는 기원전 480년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전사한 레오니다스 1세 이후 약 110년 만에 처음으로 전장에서 전사한 스파르타 국왕이었다.
○ 역사적 영향
클레옴브로투스 1세의 사망과 스파르타군의 대패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유지되던 스파르타의 그리스 패권을 완전히 종식시켰다. 이 전투를 기점으로 그리스의 주도권은 테베로 넘어갔으며, 스파르타는 극심한 인구 감소와 국력 저하로 인해 다시는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가 죽은 뒤 왕위는 아들인 아게시폴리스 2세가 승계했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