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십자화과(十字花科, Brassicaceae) 채소
한국에서 무 배추의 주산지는 고냉지인 강원도의 산간지역이다. 시드니에서는 배추라면 퀸스랜드것을 찾게 되는데 주산단지를 가보지 못하였지만 강원도 대관령 근처와 비슷한 조건의 산간 지역인 고냉지일 것이다. 필자의 집 뒤 뜰에 30여평 남짓한 텃밭을 만들어 소꿉놀이 하듯 채소를 가꾸고 있다. 지난 5월 하순경 고추 대를 뽑아 낸 자리에 무, 상추, 시금치, 갓, 치커리 등을 파종하였으며 3개월이 다 돼 가는 현재, 싱싱하게 채소밭이 제법 어울렸다. 그 중에 갓은 자주색의 이파리를 땅 갈피에 부치고 모지락스럽게 자라고 있으며 이따금씩 갓 잎을 뜯어 쌈을 쌓아 먹으며 눈물이 핑 돌 정도의 톡 쏘는 맛을 즐기고 있다. 갓이 겨자[mustard] 못지않게 눈물이 찔끔 나게 하는 이 성분은 십자화과[十字花科]식물의 특성이다. 영어로 “glucosinolates”라고 한다. 한국어로 번역된 말은 없다. 갓 이파리가 부서지면myrosinase라는 효소가 나오는데 이 효소와 “glucosinolates”가 부딛치면 맵고 자극적인 겨자유로 변하면서 코가 맹하고 눈물까지 자극하는 맹랑한 물질이 되는 것이다. 겨자도 대표적인 십자화과 식물이다.
여수 돌산 갓 김치
10여년 전에 전남 여수시를 관광하며 향일암 이라는 곳을 찾았던 일이 있다. 향일암(向日庵)은 여수시 돌산읍에 있는 암자로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이다. 깎아지른 바다 절벽이며 시원하게 펼쳐지는 풍경도 절경이지만 무엇보다 암자로 오르는 길가에서 아낙네들이 파는 갓 김치가 인상적이었다. 여수시 돌산읍은 여수반도와 다리로 연결된 섬인데 갓 재배 특산지로 유명 하여졌고 여수 돌산 갓 김치는 한국인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필자의 뒤뜰에서 자라는 갓은 커 봤자 20cm내외 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 돌산 갓은 큰 것이 1m가까이 된다고 하니 명산지가 될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갓의 맵고 톡 쏘는 맛을 인간의 미각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야생시대에 초식동물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만들어진 성분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못 먹어서 환장[換腸]을 하니 십자화과 측에서 생각한다면 기가 찰 노릇일 것이다. 시드니의 7-8월은 한국의 엄동설한에 해당하는 시기다. 갓 재배는 연중재배가 가능하지만 10월 상·중순에 재배하는 것이 수량과 품질 면에서 뛰어나다는 것을 보면 시드니는 5월경에 파종하는 것이 적기일 것 같다. 요즘 시드니 날씨가 급강하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방한복으로 무장하고 난로를 피고 법석을 떠는데 갓이며 치커리 등은 십자화과 식물이 제철을 만난 것이다. 제철을 만난 겨울 채소를 보며 한국의 이른 봄에 상징적인 식물인 냉이가 생각난다.
산과 들의 식물 이름
필자가, 한국식물분류학의 기초를 닦으신 식물학자중의 한 분인 고 이덕봉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희한한 시험을 치른 일이 있다 학생들에게 식물 30가지 이상의 표본을 가지고 와서 그 이름을 말해 보라는 것이었다. 필자에게는 이거야 말로 “식은 죽 먹기” 처럼 쉬운 것이었다. 어린 시절 산나물을 채취 하시던 할머니를 따라 다니며 산나물 이름이며 풀 이름을 제법 많이 알고 있었었던 터인데 이것이 시험문제로 나오게 되리라고는 꿈엔들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그때부터 쉬지 않고 약초며, 산 나물, 풀 이름 들에 매달렸으면 나름대로의 학문적인 체계를 이루었을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회한이 있다. 시골에 살던 사람이면 집 근처에 있던 풀과 나무 이름은 거의 모르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 많은 식물 중에서도 십자화과 식물은 생활과 문화에의 밀접한 관계 때문에 애지중지[愛之重之]하는 식물 종류에 속한다. 성경공부에 매달리신 분들은 십자화과 하면 십자가[十字架]를 연상하며 눈이 번쩍 뜨일지 모르나 십자가[十字架]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꽃이 십자 “十”로 피는 식물이라는 뜻이다. 길가나, 논둑이며 울타리 밑에서 솟아오르는 잡초들을 뽑아 버리기에 바빴지 꽃 모양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봄나물의 상징, 냉이
대표적으로 한국의 들과 산야에 깔려 있는 냉이가 대표적인 십자화과 식물이다. ”냉이”라는 이름이 그 이유는 모르겠으나 나이[年齡]와 관련된 것은 분명하다. 냉이의 이름이 지역마다 나시, 나이, 나싱이, 나생이, 나싱구, 나싱개, 나승개 등 다양하며 경기도 지방에선 흔히 “나생이”라고 한다. 냉이 하면 날씨가 냉냉해 지는 늦가을에서부터 이른 봄에 땅 갈피에 착 달아 붙어 있는 진초록색의 냉이를 뿌리와 함께 캐서 된장국을 끓이면 그 맛이 좀 쌉쌀하긴 하지만, 맛과 향은 매력적이다. 이런 인기 때문에 최근에는 재배를 해서 유기농산물이라며 시장에 내다 팔기에 이르렀다. 냉이의 종류도 냉이, 물냉이, 말냉이, 논냉이, 좁쌀냉이 등 무려 20여 가지나 된다. 옛 날 분들이 야생식물을 이용 하였기에 경험을 통해 효능을 확인한 것이 지만 냉이도 거의 약용식물 수준으로 평가 하였다. 냉이는 채소 중에서 단백질 함량이 가장 많고 칼슘과 철분 등 무기질 함량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비타민 B1과 C가 매우 많아 소화기관이 약하고 몸이 허약한 사람이나 출혈환자에게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또 냉이는 잎부분에 비타민A와 C, B2가 풍부해 면역력 향상과 피로예방에 좋다. 뿌리의 쌉쌀한 맛은 식욕을 자극시켜 소화효소 분비를 도우며 콜린 성분이 풍부해 고지혈증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몸에 좋은 성분이 냉이에만 있을 리 없지만 한국 에서 봄나물로 냉이를 꼽았다. 냉이나물과 관련된 가사 시 노래 가 많다. 냉이와 관련된 시[詩]도 많고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공부 하였던 농가 월령가[農家月令歌]에도 냉이국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다.
농가 월령가[農家月令歌]
농가 월령가[農家月令歌]는 계절의 변화와 농사꾼의 일상을 실감 있게 표현 하였을 뿐 더러 음식이며 산과 들의 야채와 텃밭 주변의 채소들을 눈에 보는 듯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중, 1월과 2월, 3월에는 특히 나물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정월령[1월]”,정월은 초봄이라 입춘, 우수의 절기로다. 산속 골짜기에는 얼음과 눈이 남아 있으나, 넓은 들과 벌판에는 경치가 변하기 시작하도다. 어와, 우리 임금님께서 백성을 사랑하고 농사를 중히 여기시어, 농사를 권장하시는 말씀을 방방곡곡에 알리시니, 슬프다 농부들이여, 아무리 무지하다고 한들 네 자신의 이해관계를 제쳐 놓고라도 임금님의 뜻을 어기겠느냐? 밭과 논을 반반씩 균형 있게 힘대로 하오리다. 일 년의 풍년과 흉년을 예측 하지는 못한다 해도, 사람의 힘을 다 쏟으면 자연의 재앙을 면하나니, 제 각각 서로 권면하여 게을리 굴지 마라 … 정월 대보름날 달을 보아 그 해의 홍수와 가뭄을 안다 하니, 농사짓는 노인의 경험이라 대강은 짐작하네. 정월 초하룻날 세배하는 것은 인정이 두터운 풍속이라. 새 옷을 떨쳐 입고 친척과 이웃을 서로 찾아 남녀노소 아이들까지 몇 사람씩 떼를 지어 다닐 적에, 설빔 새 옷이 와삭 버석거리고 울긋불긋 하여 빛깔이 화려하다. 남자는 연을 띄우고 여자애들은 널을 뛰고, 윷을 놀아 내기하니 소년들의 놀이로다. 설날 사당에 인사를 드리니 떡국과 술과 과일이 제물이로다. 움파와 미나리를 무싹 에다 곁들이면, 보기에 새롭고 싱싱하니 오신채를 부러워하겠는가? 보름날 약밥을 지어 먹고 차례를 지내는 것은 신라 때의 풍속이라. 지난해에 캐어 말린 산나물을 삶아서 무쳐 내니 고기 맛과 바꾸겠는가? 귀 밝으라고 마시는 약술이며, 부스럼 삭으라고 먹는 생밤이라. 먼저 불러서 더위 팔기와 달맞이 횃불 켜기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풍속이요 아이들 놀이로다. “이월령[2]”의,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로쟁이 물쑥 이라. 달래 김치.냉이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그리고 삼월령[3]의 “울밑에 호박이요, 처 맛 가에 박 심고, 담 근처에 동아 심어 름반찬 가자 하여 올려 보세. 무·배추·아욱·상추·고추·가지·파·마늘을 색색이 분별하여 빈 땅 없이 심어놓고, 갯버들 베어다가 개 바자 둘러막아 계견을 방비하면 자연히 무성하리. 외밭은 따로 하여 거름을 많이 하소. 농가의 여름반찬 이밖에 또 있는가.>” 옛날 문장이기에 난해 하지만 농촌의 정경을 한눈에 보는 듯하다. 월령가에서 거론하고 있는 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로쟁이 물쑥은 야생이지만 한민족의 식생활에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오고 있는 것을 말해주며 현재는 재배하는 채소 종류가 수없이 많아 졌지만 지역을 불문하고 무·배추·아욱·상추·고추·가지·파·마늘은 가장기본적인 채소이었음을 말해준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