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여러 해 전 나는 마이클 샌델 (Michael Sandel)의 명저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를 소개하면서 어줍짢은 잡기장 하나를 썼던 적이 있었다. 오늘의 잡기장 <죽음이란 무엇인가, Death> 역시 그 책에 버금가는 선풍적 인기를 몰아왔던 아이비리그의 3대 명강 중 하나이다. 이 책은 예일대학 철학과 교수인 셸리 케이건 (Shelly Kagan)이 1995년 이후 예일대학에서 선풍적 인기 가운데 진행했던 공개강좌 <Death>를 재구성하여 2012년에 출판한 책이다. 한국어 번역판은 같은 해 박세연 번역가를 통하여 엘도라도 (웅진 씽크빅)에서 출판하였다. 오늘 나는 다른 때의 독서 잡기장 처럼 이 책에다 밑줄 친 부분들을 직접 옮겨오지는 않고 이 책의 개관만 간략하게 소개 하고 그 뒤엔 내가 그 동안 주변에서 목도하고 써 보았던 죽음에 대한 나의 인문학적 생각을 잡문으로 나누어 보려고 한다.
(1) 이 책은 저자가 <한국인 독자들에게 보내는 글>로 시작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 앞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신중해야 하겠지요. 삶의 목표를 세울 때도, 그리고 그 목표를 어떻게 이루어나갈 지를 결정 할 때도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누구인지, 주어진 시간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2) 그 다음 이 책은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의 명언을 앞에 싣고 있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는 끝나기 때문이다> 이 귀절 역시 케이건이 이 책을 통하여 전하고 싶은 생각을 함축한다.
(3) 저자는 처음 부터 마자막 까지 일관되게 주장한다.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 바로 살고 아름답게 살고 뜻있고 가치있게 살아야 한다>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고뇌하며 죽음에 대한 이론을 펼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하는 물음 앞에서 오늘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4) 죽음이란 무엇인가? 의학적으로 죽음이란 하나의 유기체에게 주어졌던 생명이 끊어지는 현상이다. 호흡은 멈추고,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고, 뇌의 기능이 정지 되면 우리는 <죽었다>고 말한다.
(5) 종교와 철학에서는 <인간의 생명은 유한한 것>이고 <인간이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본다. 그러면서 동시에 <죽음이 있기에 인간의 생명과 삶은 값지고 소중한 것>이요, 따라서 <인간은 지금의 주어진 삶에 충실하고 현재의 삶속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6) 죽음은 경험해 볼 수 없는 유일회적 사건이다. 죽다가 살아난 사람은 있어도 완전히 죽고 나서 다시 살아난 사람은 없다. 만약 누군가 완벽하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고 해야 맞다.
(7) 저자는 이 책에서 수 많은 질문들을 던진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영원한 삶은 가능한 일인가? 육체가 죽은 후에도 영혼은 계속해서 사는가? 그렇다면 그 영혼은 어디에 가서 사는가? 영혼은 얼마나 오래 사는가? 죽음이란 나쁜 것일까, 좋은 것일까? 자살은 합리적 선택일까, 아닐까?>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8 ) 죽음은 첫째, 필연적이다. 모든 유기체는 반드시 죽는다. 둘째, 죽음은 가변적이며 동시에 예측 불가능하다.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지,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세째, 죽음은 편재성을 지니고 있다. 모든 유기체는 자기가 죽을 자리나 형태를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자살하는 경우다. 자살은 죽음의 예측 불가능성과 편재성을 거부하는 행동이다. 그래서 자살은 잘못된 선택이다.
(9) 인간이란 어떻게 형성 되어진 존재일까? 몇 가지 다른 주장들이 있다.
첫째는 二元論 (Dualism)이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주장이다. 인간의 몸 (Body)이란 육체 (Flesh)와 영혼 (Spirit)으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육체가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뇌가 활동을 하면서 생각, 판단, 결정을 하며, 희로애락의 감정을 나타내는 동안, 즉 인간의 육체가 <살아서 활동하는 동안>은 영혼도 그 인간의 육체속에 거하면서 육체와 함께 활동하지만 육체가 죽고 나면 영혼은 육체를 벗어난다는 이론이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을 중심한 이원론자들의 주장이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질문들이 제기되어 왔다.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가?> <육체의 생명이 끊어진 다음 육체를 떠난 그 영혼은 어디로 가서 사는가? 천국인가? 지옥인가? 연옥인가? 아니면 그냥 우주공간 어디인가?> <죽지 않고 영생하는 영혼은 무엇을 하면서 사는가?> 같은 질문들이 제기되어 왔다. 대부분의 종교들은 이 이원론적 바탕위에서 그들의 신앙과 신학적 이론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사람의 육체가 죽은 후, 그육체를 떠난 영혼이 어디에 가서 어떤 형태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거하고 활동 하는지에 대해서는 기독교, 불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교리가 똑 같지는 않다. 심지어는 기독교의 성서에도 여러가지 다른 기록들이 있어서 단순화 하기가 쉽질 않다.
둘째는 一元論 (Monism)이다. 흔히 물리주의 (Physicalism) 라고도 한다. 인간이란 오직 육체 하나로만 형성된 존재요, 영혼이란 없다는 주장이다. 이 책의 저자 케이건은 일원론자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질문이 있다. <그럼 인간들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것은 어디에서 하는 일인가?> 일원론자들은 말한다. <인간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창조하며 파괴하는 일체의 모든 일들은 영혼의 역활이 아니라 정신이 하는 일이다. 그런 것들은 본래 부터 육체속에서 육체와 함께 활동하던 정신의 기능이다> 그들은 말한다. <육체가 지닌 이런 정신적 기능들은 육체가 죽음으로 더 이상 그 기능을 수행할 수가 없다. 죽은자가 어디말을 하고 생각을 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육체가 죽으면 정신도 함께 죽는다. 다만 인간의 육체가 지니고 있는 그 정신이란 다른 동물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고귀한 정신으로 이는 사람만이 지닌 것>이라는 것이 일원론자들의 주장이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써 일정 부분 이원론적 신앙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인문주의적 생각을 하는 사람이어서 일원론을 주장하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사유에 대해서도 문을 열어두고 대화한다. 서구 정신사에서 헬레이즘과 헤브라이즘은 대립도 하지만 피차 타협을 통하여 止揚 (Aufheben)을 이루어 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음에 대해서 기독교는 사실 일원론이나 이원론을 넘어서는 매우 독특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부활신앙>이다. 이 <부활신앙>은 종교적 믿음이지 철학적 이론은 아니기에 <부활이론>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셋째, 또 하나의 학설이 있다. 唯心論 (Idealism)이다. 인간이란 처음부터 영으로만 만들어진 존재라는 이론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육신이란 가상적 허구이고 오직 실재하는 것은 영혼 뿐이라는 입장이다. 눈에 띠게 현실적으로 나타나 있는 육체와 정신의 실제적 활동과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니 일종의 신비주의적 견해라 할 수 있겠다.
(10) 영생이란 축복이 아니다. 천당이든 지옥이든 끝없이 계속되는 것은 일종의 형벌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가면 반드시 끝나게 되어 있고 끝나야 한다.
(11) 살아서 좋은 것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이란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이 그의 좋은 것들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반대로 살아 있는 동안 좋은 것은 별로 누리지 못하고 나쁜 일만 겪어온 사람들에겐 죽음이란 좋은 것이 될 수도 있다. 좋은 것을 앗아가는 죽음은 나쁜 것이 될수 있고 나쁜 것을 앗아가는 죽음은 좋은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에 대한 이런 박탈이론으로 부터 벗어나야 한다. 사실 죽음은 우리를 모든 것으로 부터 해방 시키는 축복이기 때문이다.
(12) 에피쿠로스의 말이다. <우리가 아직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이란 없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죽고 난 후에 찿아오는 죽음이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있던, 죽었던 사실 죽음과는 관계가 없다.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이 없는 것이고 죽었을 때는 우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3) 사실 죽음이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란 신비로운 것이 아니다. 죽음이란 우리가 그 동안 사용해 온 컴퓨터나 자동차나 냉장고가 고장 나는 것과 흡사하다. 오래 쓰다 보면 고장도 나고 망가져서 못쓰게 되어 버리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 책을 덮으면서 지난 날 간접적으로 경험해왔던 여러가지 모습의 죽음을 떠올려 본다. 나는 현역 목회시절에 약 70여 분의 장례식을 집례했다. 100세를 넘겨 돌아가신 분으로 부터 임신 7개월 만에 사산한 애기에 이르기 까지 사별한 나이도 각양각색이지만 사망 사유 역시 참 여러가지였다. 자연사, 병사, 사고사, 자살 그리고 한국에서 이곳으로 여행을 왔다가 돌아가신 분의 장례식 까지 여러가지가 섞이여 있다.
70년대 초, 서울에서 부목사로 일 할 때였다. 어느 날 저녁 한 교우댁에서 50대의 남편이 곧 숨을 거둘 것 같다는 연락이 와서 즉시 달려가 보았다. 찾아가 보니 이미 숨을 거두었다고 하면서 하얀 천으로 남편의 온 몸을 덮어두고 아내는 울고 있었다. 나는 임종 예배를 드리고 통행금지 시간이 거이 다 되어서 내일 아침에 와서 장례준비를 하자고 말하곤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일찍 그 집에서 연락이 왔다. 죽었던 남편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나는 곧 그댁을 찾아갔다. 그런데 정말이었다. 그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계셨다. 농담으로 말하자면 죽은 성도가 다시 부활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우린 사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전혀 상식도 없었고 의사의 진단도 없이 우리들끼리 그냥 한 바탕 수선을 떤 것이 아닌가 싶은 일이었다.
1980년대 초엽 호주에 와서 제일 처음으로 경험한 일이었다. 교우 중 한 분이 임신 7개월 만에 애기를 사산했다. 병원을 방문하여 위로하고 기도해 드렸다. 그 후 병원의 사회복지사 (Social worker)가 보자고 해서 그의 사무실로 갔다. 그 직원은 애기의 출생신고서 (Birth Certificate)가 필요하니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다. 나는 애기 엄마와 상의하여 애기 이름을 Carol이라고 짖고 직원에게 알려드렸다. 그 직원은 담당의사에게 가서 Carol이란 이름으로 된 출생신고서와 함께 사망확인서를 받아다 주면서 장의사를 정하여 장례를 치루라고 말했다. 나는 장의사를 정하고 상의하여 절차에 따라 4일 후 Macquarie Park 공동묘지에있는 <어린이 묘역, Children Section>에서 장례를 치루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Macquarie Park에 가면 어린이 묘역을 둘러보며 그 때 처음으로 치루었던 사산한 애기장례식을 생각하면서 많은 것을 되새기게 된다. 이는 나의 긴 목회 경험에서, 그전 한국에서는 한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생명의 주인은 누구이고 왜 인간의 생명은 존엄한 것인지를 가르쳐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지금 내 형제는 3남매이다. 나의 4번째 막내 동생은 6.25 후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불과 일주일 만에 죽었다. 그 때는 모든 것이 참 어려운 시절이었다.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당시 한 열살 쯤 되었을 나는 아버지, 어머니와 같이 죽은 남 동생의 시신을 관도 없이 포대기에 싸서 우리가 살던 영등포구 신길동의 어느 뒷산에 묻었던 생각이 난다, 출생신고도, 사망신고도 없었고 별도의 장례식도 없었다.
내 여동생의 작은 아들, 내 조카는 스물 다섯에 세상을 떠났고 우리 어머니는 98세 까지 壽를 누리셨다. 젊은 시절 내 절친 중 하나는 24살에 월남에서 전사했다. 우리 신학교 동기들은 약 30명 쯤 되는데 요즘은 1년에 한두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단톡방에는 19명이 남아 있다. 이곳 호주에 있는 이민 1세 목회자들도 1년이면 몇 명씩 제 3의 이민을 떠나곤 한다. 몇년 전에는 나 보다 많이 젊은 인문학 친구가 먼저 갔고 몇 주 전에는 인문학 친구 중 한 목사님의 아들이 겨우 36살인데 세상을 떠났다. 몇일 전 나는 가까운 인문학 친구이기도 한 장로님 한 분이 가족들과 함께 피지로 휴가를 갔다가 그곳에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금년 76세시니 많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연세이다. 애기들은 어미 태에서 나오는 순간, <응아>하고 울음보를 터트리지만 부모와 가족들에겐 웃음을 선사한다. 그런데 죽을 때는 태어날 때와는 상황이 뒤집어진다. 이미 죽은 사람은 하느님의 품에 안겨 평안과 안식을 얻게 되었으니 감사하며 기뻐하겠지만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가족들에게는 슬픔과 아픔이다. <자기는 울면서 태어나도 타인들에겐 웃음을 주었던 인간이 자기는 웃으면서 가면서 남의 눈에서는 눈물을 짜내게 하면서 가는 것이 인간이다> 살아있는 자들은 눈물 흘리며 슬퍼하고 숨을 거둔 사람은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죽음이 지닌 양면성이다. 그래서 먼저 간 사람들은 아직 살아있는 이들에게 말한다. <지금은 모르시겠지만 당신도 조금만 있으면 내 입장이 될 때가 곧 올 것입니다>
•다음은 수년 전 돌아가신 이문철박사가 편집한 작은 책 <호주 장례 안내서>의 서문에다 내가 쓴 글 중에서 몇 귀절을 옮겨온다.
<봄이 있으면 가을이 있고, 여름이 오면 겨울도 오는 것과 같은 이치로 출생이 있으면 죽음도 있고, 삶의 기쁨이 있으면 죽음의 슬픔도 있게 마련이다. 사는 것도 그렇지만 죽음도 자연의 순리요, 자연계의 질서 중 하나이다. 삶과 죽음은 피차 꼬리를 물고 순환하는 것이냐, 아니면 일직선으로 흘러가는 일회적인 것이냐 하는데 있어서는 의견을 달리할 수 있겠지만, 삶이나 죽음 그 자체는 어느 누구도 피하거나 거역할 수 없는 창조주의 섭리 속에 있음이 확실하다. 죽음은 빈부유무식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동서고금, 남녀노소, 장유유서를 구별하지 않는다. 죽음이란 지극히 우발적인 것 같이 보이고, 갑작스런 이변인 것 같이 생각하지만 사실 모든 죽음은 예측 가능한 것이며 준비 하도록 미리 예고된 일정이다. 죽음은 유신론자나 무신론자를 가르지 않는다. 종교적 신앙의 유무나 신앙형태의 다양성과도 아무 관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찾아온다>
<의학이나 생물학에서는 죽음을 삶의 종결이라고 보지만, 대부분의 전통문화나 종교인들은 죽음을 영원으로의 회귀로 본다. 조상에게로 돌아가든지, 신에게로 돌아가든지, 죽음이란 돌아가는 것이지 소멸하여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죽음에 대한 지난 날들의 이해와 해석들은 쉬임없이 변하고 있다. 요즘은 <사망학, Thanatology>이 학문으로 개발 되어서 죽음에 대한 과학적, 의학적 연구만이 아니라 심리학적, 종교적, 사회문화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죽음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함께 죽음에 대한 제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죽음에 대한 이해와 접근은 다양하다. 사람마다 생사관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생사관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죽는 것은 똑같다. 수명은 늘어났지만 그래도 죽는다. 장기는 이식할 수 있지만 그래도 죽는다.>
<죽음은 개인적으로 경험이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고 간접 경험을 할 뿐이지 내가 직접 경험해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죽음은 임상실험을 해볼 수 없는 유일한 분야이다. 죽음이란 유일회적인 사건이다. 그래서 죽음은 신비요, 수수꺽기요, 공포와 두려움으로 남게 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은 후에 이름 석자를 남긴다고 한다. 육신은 죽어서 자연으로 회귀하고, 몸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한 사람의 삶의 흔적은 오랫동안 남게 된다. 그러므로 살아 있을 때 잘 사는 것이 사실은 잘 죽는 것이다. 죽음의 준비란 “지금 여기에서, Here and Now” 하루 하루 사는 삶의 내용이 결정해 준다>
<호스피스 운동을 포함한 “죽음을 준비하는 학교”는 단순히 묘지를 미리 준비하도록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매장, 화장, 수목장, 암장, 동굴장 등등 장례 방법을 소개 하거나 유언 작성법을 배우고 비문을 미리 써 두는 공부로만 이해 해서는 않된다. 하루 하루의 삶을 반성하고 남은 인생은 어떻게 하면 좀 더 뜻있고 바르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죽음에 대한 가장 좋은 준비는 오늘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것이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 나오는 모리 슈워츠 Morrie Schwartz 할아버지 처럼 아직 살아 있을 때 사랑하는 친구들과 같이 자신의 장례식 까지도 미리 치러 두는 여유 있는 삶, 생각하는 인생, 그리고 무엇 보다도 모든 사람들, 모든 주어진 것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삶이 바로 죽음에 대한 가장 좋은 준비가 되리라>
•추가로 추천하는 책 : 1) <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이야기> 손호현지음, 동연, 2015 판 중 <제 10장 메멘토 모리> – 이 책은 시드니에서 저와 함께하는 <목회자 인문학교실>의 주교재로 사용하고 있음. 2) <죽음의 신학> 김균진지음, 대한기독교서회, 2002. (끝)*홍길복 (2026.7.7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