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列傳 (사기열전) 권126 滑稽列傳 (골계열전)
서문표 (西門豹)
서문표 (西門豹, ?, 산서성 윈청시 샤현 ~ ?)는 위 문후의 신하이다. 업 지방의 장관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으며 강물을 끌어들이는 관개사업을 벌여 농업생산력을 높였다.
당시 업 지방에는 잦은 홍수로 하백 (황하의 신)에게 첩 (처녀)을 골라 수장시키는 관습이 있었다. 첩을 고르는 사람은 70세를 넘긴 무당이었고, 재물을 모으는 것은 그 지방의 세 장로였다. 또 무당에게는 4명의 제자 무당들이 있었다.
서문표는 부임한 후 무당에게 다음에는 더 나은 처녀를 하백에게 첩으로 바치겠다고 말하고 오라면서 무당을 수장했고, 그후에는 무당이 오지 않는다고 무당을 모셔오라며 4명의 제자를 수장시켰다. 그리고 수장한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면서 세 장로까지 수장시켰다. 그런 다음, 하백에게 첩을 바치는 관습을 없애고, 12개의 수로를 만들도록 했다. 이후 심한 홍수가 일었지만 파도는 12갈래의 수로로 흘러들어, 오히려 백성들의 논밭에 물을 대주었다.
史記列傳 (사기열전) 권126 滑稽列傳 (골계열전) 서문표 (西門豹)
<①순우곤(淳于髡) ②우맹(優孟) ③우전(優旃) ④곽사인(郭舍人) ⑤동방삭(東方朔) ⑥동곽선생(東郭先生) ⑦왕선생(王先生) ⑧서문표(西門豹)>
이 편은 익살스러운 말로 사람들을 감동시킨 사람들에 대한 일화를 열전으로 엮은 것이다.
사마천은 전국시대의 인물인 순우곤(淳于髡), 우맹(優孟), 우전(優旃)에 대해 기록했으며 후세에 전한(前漢)의 사학자인 저소손(褚少孫)이 곽사인(郭舍人), 동방삭(東方朔), 동곽선생(東郭先生), 순우곤(淳于髡), 왕선생(王先生), 서문표(西門豹) 등 여섯 명의 일화를 이 편에 덧붙여 놓았다.
이 장은 저소손(褚少孫)이 기록한 서문표(西門豹)에 관한 전기이다. 서문표는 12개의 수로를 파서 논으로 강물을 끌어들이는 관개사업을 하여, 농업생산 증대에 이바지하였다. 또 그 고장 사람들이 해마다 미녀를 골라 강물에 던지는 풍습의 폐습을 일소했다.
○ <西門豹 (서문표)>
文侯時(위문후시),西門豹為鄴令(서문표위업령)。
豹往到鄴(표왕지업),會長老(회장로),問之民所疾苦(문지민소질고)。
長老曰(장로왈):「苦為河伯娶婦(고위하백취부),以故貧(이고빈)。」
위 문후(魏 文侯) 때 서문표(西門豹)가 업(鄴)의 현령이 되었다.
서문표가 업현에 부임해서 장로(長老)들을 불러놓고 백성들의 괴로움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장로가 말했다.
“하백(河伯)에게 신부감을 바치는 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가난하기도 합니다.”
豹問其故(표문기고),對曰(대왈):
「鄴三老(업삼로)、廷掾常歲賦斂百姓(정연상세부렴백성),收取其錢得數百萬(수취기전득수백만),用其二三十萬為河伯娶婦(용기이삼십만위하백취부),與祝巫共分其餘錢持歸(여축무공분기여전지부)。
當其時(당기시),巫行視小家女好者(무생시소가녀호자),云是當為河伯婦(운시당위하백부),即娉取(즉빙취)。
洗沐之(세목지),為治新繒綺縠衣(위치신증기곡의),閒居齋戒(한거재계);
為治齋宮河上(위치재궁하상),張緹絳帷(장제강유),女居其中(여거기중)。
為具牛酒飯食(위구우주반식),行十餘日(행십여일)。
서문표가 그 까닭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업의 삼로(三老)와 아전들은 해마다 백성에게 세금을 거두어가며,
수백 만전을 거두어 그 중에서 하백에게 신부감을 바치게 하는데 20~30만 전을 쓰고,
그 나머지 돈은 무당들과 나누어 가지고 돌아갑니다.
그 시기가 되면 무당이 돌아다니면서 어려운 집안의 딸 중에서 아름다운 처녀를 보면
‘이 처녀가 하백의 아내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곧 폐백을 보내 주고 데려갑니다.
처녀를 목욕시키고 새로 비단옷들을 지어 입히고 홀로 머물게 하며 재계시킵니다.
재궁(齋宮)을 물가에 짓고 붉은 장막을 치고 처녀를 그 안에 머물게 합니다.
쇠고기와 술과 밥을 갖추어 먹이고 10여 일을 보냅니다.
共粉飾之(공분식지),如嫁女床席(여가녀상석),令女居其上(영녀거기상),浮之河中(부지하중)。
始浮(시부),行數十里乃沒(행수십리내몰)。
其人家有好女者(기인가유호녀자),恐大巫祝為河伯取之(공대무축위하백취지),以故多持女遠逃亡(이고다지녀원도망)。
以故城中益空無人(이고성중익공무인),又困貧(우곤빈),所從來久遠矣(소종래구원의)。
民人俗語曰(민인속어왈)『即不為河伯娶婦(즉불위하백취부),水來漂沒(수래표몰),溺其人民(익기인민)』云(운)。」
그날이 되면 단장을 시키고 시집가는 여자의 이부자리와 방석처럼 만들어 여자를 그 위에 앉힌 뒤 물에 띄워 보냅니다.
처음에는 떠 있지만 수십 리를 가면 물에 가라앉고 맙니다.
예쁜 딸을 가진 집들은 큰 무당이 하백에게 시집보낼 것을 두려워해
데리고 멀리 도망가는 집이 많아졌습니다.
이 때문에 성 안이 더욱 비게 되어 사람도 없어 더욱 더 가난해진 것이 이미 오래 된 일입니다.
백성들의 속담에 ‘만약 하백에게 신부감을 바치지 않으면 물이 넘쳐 백성들을 빠져 죽게 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西門豹曰(서문표왈):
「至為河伯娶婦時(지위하백취부시),願三老(원삼로)、巫祝(무축)、父老送女河上(부로송녀하상),幸來告語之(행래고어지),吾亦往送女(오역왕송녀)。」
皆曰(개왈):「諾(낙)。」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을 위해 신부감을 바치려 할 때 삼로와 무당과 부로(父老)들이 처녀를 물에 띄우려 하거든 제게 알리기 바라며 저도 처녀를 전송할 것입니다.”
장로들이 모두 말했다. “알겠습니다.”
至其時(지기시),西門豹往會之河上(서문표왕회지하상)。
三老(삼로)、官屬(관속)、豪長者(호장자)、裏父老皆會(이부로개회),以人民往觀之者三二千人(이인민왕관지자삼이천인)。
其巫(기무),老女子也(노녀자야),已年七十(이년칠십)。
從弟子女十人所(종제자녀십인소),皆衣繒單衣(개의증단의),立大巫后(입대무후)。
때가 되어 서문표는 물가로 가서 그들을 만났다.
삼로와 아전, 유지들과 마을의 부로가 모두 모이고
이를 구경하러 온 백성들이 모두 2천~3천 명이었다.
무당은 늙은 여자로서 나이가 이미 일흔이었다.
여제자 열명 가량이 따르는데 모두 비단으로 만든 홑옷을 입고 큰 무당의 뒤에 섰다.
西門豹曰(서문표왈):
「呼河伯婦來(호하백부래),視其好醜(시기호추)。」
即將女出帷中(즉장녀출유중),來至前(내지전)。
豹視之(표시지),顧謂三老(고위삼로)、巫祝(무축)、父老曰(부로왈):
「是女子不好(시녀자불호),煩大巫嫗為入報河伯(번대무구위입보하백),得更求好女(득갱구호녀),后日送之(우일송지)。」
即使吏卒共抱大巫嫗投之河中(즉시리졸공포대무구투지하중)。
有頃(유경),曰(왈):「巫嫗何久也(무구하구야)?弟子趣之(제자촉지)!」
復以弟子一人投河中(부이제자일인투하중)。
有頃(유경),曰(왈):「弟子何久也(제자하구야)? 復使一人趣之(부사일인촉지)!」
復投一弟子河中 (부투일제자하중)。凡投三弟子(범투삼제자)。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의 신부감을 불러오거라, 내가 예쁜지 못났는지를 보겠다.”
곧 처녀를 장막에서 데리고 나와서 서문표 앞으로 왔다.
서문표가 그녀를 보더니 삼로와 무당과 부로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처녀는 예쁘지가 않으니 수고스럽겠지만 큰 무당 할멈이 들어가서 하백에게 다시 예쁜 처녀를 구해 다음에 보내드리겠다고 보고하여라.”
이에 아전과 군사를 시켜 큰 무당 할멈을 안아서 물에 던졌다.
조금 있다가 서문표가 말했다. “무당 할멈이 어째서 이렇게 오래 있단 말인가? 제자들을 보내 재촉하게 하라!”
다시 제자 하나를 물에 던졌다.
또 조금 있다가 말했다. “제자는 어째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 다시 제자 하나를 더 보내 재촉하게 하라!”
또 제자 하나를 물에 던졌다. 이렇게 모두 제자 세 명을 강에 던졌다.
西門豹曰(서문표왈):
「巫嫗弟子是女子也(무구제자시녀자야),不能白事(불능백사),煩三老為入白之(번삼로위입백지)。」
復投三老河中(부투삼로하중)。
西門豹簪筆磬折(서문표잠필경절),向河立待良久(향하립대량구)。
長老(장로)、吏傍觀者皆驚恐(이방관자개경공)。
西門豹顧曰(서문표고왈):
「巫嫗(좌구)、三老不來還(삼로불래환),柰之何(내지하)?」
欲復使廷掾與豪長者一人入趣之(욕부사정연여호장자일인입촉지)。
皆叩頭(개고두),叩頭且破(고두차파),額血流地(액혈류지),色如死灰(색여사회)。
서문표가 말했다.
“무당과 그 제자들이 모두 여자라 사정을 말하기 어려운 모양이니 삼로들이 번거롭겠지만 들어가 하백에게 알리시오.”
다시 삼로를 강물에 던졌다.
서문표는 붓과 같은 비녀를 모자에 꽂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면서 물을 향해 한참을 기다렸다.
장로와 아전들과 곁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겁을 먹었다.
서문표는 이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무당과 삼로들이 모두 돌아오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다시 아전과 고을 유지에게 한 사람씩 들어가서 재촉하라고 했다.
모두들 머리를 조아려 머리를 땅에 부딪치니 이마의 피가 땅위에 흐르고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다.
西門豹曰(서문표왈):
「諾(낙),且留待之須臾(차류대지수유)。」
須臾(수유),豹曰(표왈):
「廷掾起矣(정연기의)。狀河伯留客之久(상하백류객지구),若皆罷去歸矣(약개파거귀의)。」
鄴吏民大驚恐(업리민대경공),從是以後(종시이후),不敢復言為河伯娶婦(불감부언위하백취부)。
서문표가 말했다.
“좋다, 잠시 멈추고 기다려 보자.”
잠시 후 서문표가 말했다.
“아전들은 일어나라. 하백이 손님들을 오래 붙잡고 있는 모양이니 너희들은 모두 마치고 돌아가도록 하라.”
업현의 아전과 백성들은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며 이후로는 감히 다시는 하백을 위해 신부감을 바쳐야 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西門豹即發民鑿十二渠(서문표랑발민착십이거),引河水灌民田(인하수관민전),田皆溉(전개개)。
當其時(당기시),民治渠少煩苦(민치거소번고),不欲也(불욕야)。
豹曰(표왈):
「民可以樂成(민가이락성),不可與慮始(불가여로시)。
今父老子弟雖患苦我(금부로자제수환고아),
然百歲後期令父老子孫思我言(연백세후기령부로자손사아언)。」
서문표는 곧 백성을 징집하여 12개의 도랑을 파서 강의 물을 끌어서 백성들의 논에 물을 대니 논마다 모두 물이 대어졌다.
당시 백성들은 도랑을 만드는 것이 다소 번거롭고 힘들다고 여겨 하려고 들지 않았다.
서문표가 말했다.
“백성들이란 일이 이루어지고 나면 즐거워할 수 있을 뿐이지 함께 일을 시작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지금 부로와 자제들은 괴롭힌다고 비록 나를 증오하겠지만
100년 뒤에는 부로와 자손들이 내 말을 생각하게 하기 바란다.”
至今皆得水利(지금재득수리),民人以給足富(민인이급족부)。
十二渠經絕馳道(십이거경절치도),到漢之立(도한지립),而長吏以為十二渠橋絕馳道(이장리이위십이거교절치도),相比近(상비근),不可(불가)。
欲合渠水(욕합거수),且至馳道合三渠為一橋(차지치도합삼거위일교)。
鄴民人父老不肯聽長吏(업민인부로불긍청장리),
以為西門君所為也(이위서문군소위야),賢君之法式不可更也(현군지법식불가경야)。
長吏終聽置之(장리종청치지)。
故西門豹為鄴令(고서문표위업령),名聞天下(명문천하),澤流後世(택류후세),無絕已時 (무절이시),幾可謂非賢大夫哉 (기가위비현대부재)!
지금까지도 모두 이 수리(水利) 덕분에 백성들이 부유해 졌다.
12개의 도랑이 황제의 치도(馳道)를 가로지르고 있으며, 한(漢)나라가 세워지자
지방의 수장과 관리들은 12개 도랑의 다리가 황제가 행차하는 길을 끊어서 서로 가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랑의 물을 합치고 또 치도에 이르는 세 도랑을 합쳐 하나의 다리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자 업현의 부로들이 장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으며
서문표가 해 놓은 일이니 어진 사람의 법도를 고쳐서는 안 된다고 여긴 것이다.
장리들도 결국 이 말을 받아들여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서문표는 업의 현령이 되어 이름을 천하에 알려지고, 그 은택은 후대에까지 흘러
끊어져 끝난 적이 없었으니 어찌 어진 대부라고 일컫지 않을 수 있겠는가!
傳曰(전왈):
「子產治鄭(자산치정),民不能欺(민불능기);
子賤治單父(자천치선보),民不忍欺(민불인기);
西門豹治鄴(서문표치업),民不敢欺(민불감기)。」
三子之才能誰最賢哉(삼자지재능수최현재)?
辨治者當能別之(변치자당능별지)。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자산(子産)이 정(鄭) 나라를 다스리자 백성들이 그를 속일 수 없었고,
자천(子賤)이 선보(單父)를 다스리자 백성들이 차마 그를 속이지 못했고,
서문표가 업현을 다스리자 백성들이 감히 그를 속이지 못했다.’라고 했다.
세 사람의 재능 가운데 누가 가장 뛰어난 것일까?
다스리는 길을 아는 자는 마땅히 이를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 출처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史記 -> 列傳 -> 滑稽列傳
魏文侯時,西門豹為鄴令。豹往到鄴,會長老,問之民所疾苦。長老曰:「苦為河伯娶婦,以故貧。」豹問其故,對曰:「鄴三老、廷掾常歲賦斂百姓,收取其錢得數百萬,用其二三十萬為河伯娶婦,與祝巫共分其餘錢持歸。當其時,巫行視小家女好者,云是當為河伯婦,即娉取。洗沐之,為治新繒綺縠衣,閒居齋戒;為治齋宮河上,張緹絳帷,女居其中。為具牛酒飯食,行十餘日。共粉飾之,如嫁女床席,令女居其上,浮之河中。始浮,行數十里乃沒。其人家有好女者,恐大巫祝為河伯取之,以故多持女遠逃亡。以故城中益空無人,又困貧,所從來久遠矣。民人俗語曰『即不為河伯娶婦,水來漂沒,溺其人民』云。」西門豹曰:「至為河伯娶婦時,願三老、巫祝、父老送女河上,幸來告語之,吾亦往送女。」皆曰:「諾。」
위 문후(魏 文侯) 때 서문표(西門豹)가 업(鄴)의 현령이 되었다. 서문표가 업현에 부임해서 장로(長老)들을 불러놓고 백성들의 괴로움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장로가 말했다.
“하백(河伯)에게 신부감을 바치는 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가난하기도 합니다.”
서문표가 그 까닭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업의 삼로(三老)와 아전들은 해마다 백성에게 세금을 거두어가며, 수백 만전을 거두어 그 중에서 하백에게 신부감을 바치게 하는데 20~30만 전을 쓰고, 그 나머지 돈은 무당들과 나누어 가지고 돌아갑니다. 그 시기가 되면 무당이 돌아다니면서 어려운 집안의 딸 중에서 아름다운 처녀를 보면 ‘이 처녀가 하백의 아내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곧 폐백을 보내 주고 데려갑니다. 처녀를 목욕시키고 새로 비단옷들을 지어 입히고 홀로 머물게 하며 재계시킵니다. 재궁(齋宮)을 물가에 짓고 붉은 장막을 치고 처녀를 그 안에 머물게 합니다. 쇠고기와 술과 밥을 갖추어 먹이고 10여 일을 보냅니다. 그날이 되면 단장을 시키고 시집가는 여자의 이부자리와 방석처럼 만들어 여자를 그 위에 앉힌 뒤 물에 띄워 보냅니다. 처음에는 떠 있지만 수십 리를 가면 물에 가라앉고 맙니다. 예쁜 딸을 가진 집들은 큰 무당이 하백에게 시집보낼 것을 두려워해 데리고 멀리 도망가는 집이 많아졌습니다. 이 때문에 성 안이 더욱 비게 되어 사람도 없어 더욱 더 가난해진 것이 이미 오래 된 일입니다. 백성들의 속담에 ‘만약 하백에게 신부감을 바치지 않으면 물이 넘쳐 백성들을 빠져 죽게 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을 위해 신부감을 바치려 할 때 삼로와 무당과 부로(父老)들이 처녀를 물에 띄우려 하거든 제게 알리기 바라며 저도 처녀를 전송할 것입니다.”
장로들이 모두 말했다. “알겠습니다.”
至其時,西門豹往會之河上。三老、官屬、豪長者、裏父老皆會,以人民往觀之者三二千人。其巫,老女子也,已年七十。從弟子女十人所,皆衣繒單衣,立大巫后。西門豹曰:「呼河伯婦來,視其好醜。」即將女出帷中,來至前。豹視之,顧謂三老、巫祝、父老曰:「是女子不好,煩大巫嫗為入報河伯,得更求好女,后日送之。」即使吏卒共抱大巫嫗投之河中。有頃,曰:「巫嫗何久也?弟子趣之!」復以弟子一人投河中。有頃,曰:「弟子何久也?復使一人趣之!」復投一弟子河中。凡投三弟子。西門豹曰:「巫嫗弟子是女子也,不能白事,煩三老為入白之。」復投三老河中。西門豹簪筆磬折,向河立待良久。長老、吏傍觀者皆驚恐。西門豹顧曰:「巫嫗、三老不來還,柰之何?」欲復使廷掾與豪長者一人入趣之。皆叩頭,叩頭且破,額血流地,色如死灰。西門豹曰:「諾,且留待之須臾。」須臾,豹曰:「廷掾起矣。狀河伯留客之久,若皆罷去歸矣。」鄴吏民大驚恐,從是以後,不敢復言為河伯娶婦。
때가 되어 서문표는 물가로 가서 그들을 만났다. 삼로와 아전, 유지들과 마을의 부로가 모두 모이고 이를 구경하러 온 백성들이 모두 2천~3천 명이었다. 무당은 늙은 여자로서 나이가 이미 일흔이었다. 여제자 열명 가량이 따르는데 모두 비단으로 만든 홑옷을 입고 큰 무당의 뒤에 섰다.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의 신부감을 불러오거라, 내가 예쁜지 못났는지를 보겠다.”
곧 처녀를 장막에서 데리고 나와서 서문표 앞으로 왔다.
서문표가 그녀를 보더니 삼로와 무당과 부로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처녀는 예쁘지가 않으니 수고스럽겠지만 큰 무당 할멈이 들어가서 하백에게 다시 예쁜 처녀를 구해 다음에 보내드리겠다고 보고하여라.”
이에 아전과 군사를 시켜 큰 무당 할멈을 안아서 물에 던졌다.
조금 있다가 서문표가 말했다. “무당 할멈이 어째서 이렇게 오래 있단 말인가? 제자들을 보내 재촉하게 하라!”
다시 제자 하나를 물에 던졌다.
또 조금 있다가 말했다. “제자는 어째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 다시 제자 하나를 더 보내 재촉하게 하라!”
또 제자 하나를 물에 던졌다. 이렇게 모두 제자 세 명을 강에 던졌다.
서문표가 말했다.
“무당과 그 제자들이 모두 여자라 사정을 말하기 어려운 모양이니 삼로들이 번거롭겠지만 들어가 하백에게 알리시오.”
다시 삼로를 강물에 던졌다. 서문표는 붓과 같은 비녀를 모자에 꽂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면서 물을 향해 한참을 기다렸다. 장로와 아전들과 곁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겁을 먹었다.
서문표는 이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무당과 삼로들이 모두 돌아오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다시 아전과 고을 유지에게 한 사람씩 들어가서 재촉하라고 했다. 모두들 머리를 조아려 머리를 땅에 부딪치니 이마의 피가 땅위에 흐르고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다.
서문표가 말했다.
“좋다, 잠시 멈추고 기다려 보자.”
잠시 후 서문표가 말했다.
“아전들은 일어나라. 하백이 손님들을 오래 붙잡고 있는 모양이니 너희들은 모두 마치고 돌아가도록 하라.”
업현의 아전과 백성들은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며 이후로는 감히 다시는 하백을 위해 신부감을 바쳐야 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西門豹即發民鑿十二渠,引河水灌民田,田皆溉。當其時,民治渠少煩苦,不欲也。豹曰:「民可以樂成,不可與慮始。今父老子弟雖患苦我,然百歲後期令父老子孫思我言。」至今皆得水利,民人以給足富。十二渠經絕馳道,到漢之立,而長吏以為十二渠橋絕馳道,相比近,不可。欲合渠水,且至馳道合三渠為一橋。鄴民人父老不肯聽長吏,以為西門君所為也,賢君之法式不可更也。長吏終聽置之。故西門豹為鄴令,名聞天下,澤流後世,無絕已時,幾可謂非賢大夫哉!
서문표는 곧 백성을 징집하여 12개의 도랑을 파서 강의 물을 끌어서 백성들의 논에 물을 대니 논마다 모두 물이 대어졌다. 당시 백성들은 도랑을 만드는 것이 다소 번거롭고 힘들다고 여겨 하려고 들지 않았다.
서문표가 말했다.
“백성들이란 일이 이루어지고 나면 즐거워할 수 있을 뿐이지 함께 일을 시작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지금 부로와 자제들은 괴롭힌다고 비록 나를 증오하겠지만 100년 뒤에는 부로와 자손들이 내 말을 생각하게 하기 바란다.”
지금까지도 모두 이 수리(水利) 덕분에 백성들이 부유해 졌다. 12개의 도랑이 황제의 치도(馳道)를 가로지르고 있으며, 한(漢)나라가 세워지자 지방의 수장과 관리들은 12개 도랑의 다리가 황제가 행차하는 길을 끊어서 서로 가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랑의 물을 합치고 또 치도에 이르는 세 도랑을 합쳐 하나의 다리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자 업현의 부로들이 장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으며 서문표가 해 놓은 일이니 어진 사람의 법도를 고쳐서는 안 된다고 여긴 것이다. 장리들도 결국 이 말을 받아들여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서문표는 업의 현령이 되어 이름을 천하에 알려지고, 그 은택은 후대에까지 흘러 끊어져 끝난 적이 없었으니 어찌 어진 대부라고 일컫지 않을 수 있겠는가!
傳曰:「子產治鄭,民不能欺;子賤治單父,民不忍欺;西門豹治鄴,民不敢欺。」三子之才能誰最賢哉?辨治者當能別之。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자산(子産)이 정(鄭) 나라를 다스리자 백성들이 그를 속일 수 없었고, 자천(子賤)이 선보(單父)를 다스리자 백성들이 차마 그를 속이지 못했고, 서문표가 업현을 다스리자 백성들이 감히 그를 속이지 못했다.’라고 했다. 세 사람의 재능 가운데 누가 가장 뛰어난 것일까? 다스리는 길을 아는 자는 마땅히 이를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