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
복음과 동행
‘사람아 주께서 선하신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우리는 지난 2주간에 걸쳐서 ‘복음과 용서’ 그리고 ‘복음과 생명’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기쁜 소식, 이를 우리는 ‘복된 소식’ 즉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복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고 우리들 서로가 용서하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며, 그런 복음은 우리의 생명에 관한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서로 용서하는 사랑을 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구원을 얻으려면 용서받아 새 생명을 받고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이며, 믿음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듭 태어남의 목적이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마치 주먹으로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이 허망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들도 우리의 신앙을 이런 관점에서 항시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성령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과 용서의 실천에 대하여).
약속된 동행
오늘 본문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신앙생활에서 그리고 일상을 통하여 우리들에게서 무엇을 바라시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하신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8) * walk humbly with your God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첫 번째는 공의를 행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자(mercy)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원하시는 것이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 곧 동행하는 것입니다. 공의를 행하는 것과 자비를 베푸는 것은 우리 자신이 행동으로 결단하여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반면에, 세 번째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심이 있어야 하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같이 걷도록 허락해 주셔야 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들과 같이 행할 것을 전제하시면서, 겸손히 동행할 것을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굽어 살펴 주시기를 바라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구원이라는 인생의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돌보시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비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양떼를 몰고 가는 목자의 입장에서는 양들이 목자가 이미 알고 있는 안식처까지 순순히 따라와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양들 중에, 무리와 함께 목자를 따라 가지 않고, 목자의 지시를 무시하고 아무데로나 막 가는 양이 있다면, 그 양은 필경 길을 잃고 언젠가는 맹수의 먹이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이미 준비된 안식처까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생길을 살아가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순종하는 의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과 동행하실 것을 전제하시고, 겸손히 동행 주기를 바라십니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수준의 순종을 바라시는 것입니다.
동행과 순종
성경에는 실제로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창세기에 에녹이라는 선조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하고, 노아라는 선조가 또한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과 동행했던 노아라는 선조에 대하여 성경은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 6:9)
이 성경의 기록으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었다는 것과 완전하였다는 것입니다. 의인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를 성경은 아브라함의 경우를 통하여 아래와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니’ (창 15:6)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나님께서 부르시자 고향을 떠났으며, 험한 방랑길을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따랐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의인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여기서 ‘믿으니’라고 해석된 단어는 영어로는 ‘believed’ 인데, 원어적인 해석은 ’어떤 대상에게 자신을 맡기고 끝까지 의지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곧 이렇게 조건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고 전적으로 의지 할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의인이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다는 것은 노아와 같이 의인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하며, 의인으로 인정받는 조건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곧 그것은 성경에서 계속 강조되고 있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곧 순종함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 우리들이 취하여야 할 자세인 것입니다.
복음(새로운 약속)과 동행
즉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그 분의 의도하심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하는 삶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속사역에 대한 것이었고, 예수님을 통하여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을 잘 알고 믿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그렇습니다. 목자 예수님을 좇아 인생을 살 때, 우리들은 하나님을 만나 동행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한 원리로 우리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곧 그것은 믿음에 기초를 둔 순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보내어 구원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믿고, 그 뜻하신 바대로 우리들이 예수님을 좇아 따라오기를 하나님께서는 바라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믿고, 하나님(예수님, 성령님과 일체이신)과 동행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복음을 믿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고 계시는지요? 각자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하신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8)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복음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의 종착지인 새 하늘, 새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고, 그 복음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 순종하고 따름으로써 하나님을 만나고 끝까지 동행하여 구원에 이르는 복된 삶이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손창건 전도자(시드니가정공동체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