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
예수와 큰 구원II (2)
요나는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를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시스로 도망가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로 위와 같은 내용의 자신의 결정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마도 아무 응답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나서 처음 부분에 니느웨에 가서 경고를 하라고 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하였고, 두 번째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사흘 만에 물고기 밖으로 나왔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내용을 세세히 기록한 것으로 보아, 요나가 다시스로 가려는 의도를 기도드렸을 때는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나는 자신이 기도드린 내용에 대하여 하나님의 답변이 없자, 자신의 결정대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니느웨 성의 구원에 대하여 심하게 불만하며 기도드렸을 때, 아래와 같이 응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하시니라’ (욘 4:4)
이와 비슷한 경우가 구약시대에도 있었는데, 아브라함시대에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 사건입니다. 그런데 다른 점은 아브라함은 그 진멸되어야 마땅한 성의 백성들을 위하여 여호와께 의인 10명이 그 성에 있으면 진멸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반면, 요나는 진멸되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은 것이 사뭇 다른 점입니다. 즉 요나는 그때만 해도,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의인의 축에는 들지 못하는 성품의 소유자였던 것입니다. 니느웨 사건이후로는 변했을 것으로 짐작은 가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성의 회개를 촉구하고, 그들이 회개한다면 얼마든지 살려 두실 뜻이었는데, 요나는 그런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니느웨성의 회개와 구원을 기뻐하지 않았던 편협한 사고의 소유자였던 것입니다.
이런 요나에게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또한 후 세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리기 위하여, 요나를 통하여 그 뜻을 체험적으로 알게 하십니다.
니느웨의 멸망을 외치면서, 성을 통과하여 나온 요나가 뜨거운 해가 내려쬐는 성 동편에 그늘막을 짓고 성이 어떻게 되나 보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위에 박넝쿨을 자라게 하십니다. 그래서 요나는 그 박넝쿨 덕분에 시원하게 있을 수 있었습니다.
요나가 지은 초막은 햇볕을 충분히 막아낼 수 없었으나, 박넝쿨이 햇볕의 뜨거운 기운을 막아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이튿날에는 새벽에 벌레를 준비하시고 그 박넝쿨을 씹게 하셔서, 그 박넝쿨이 시들게 하십니다. 박넝쿨이 시들자, 뜨거운 햇볕이 그늘막을 투과하여 내려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설사가상으로 열풍을 요나에게 불게 하십니다. 그러자 요나는 햇볕도 뜨겁고, 뜨거운 열풍에 거의 죽을 지경이 됩니다.
요나는 그 박넝쿨이 너무나 소중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넝쿨이 없으니 이렇게 뜨겁구나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오늘 본문과 같이 교훈하십니다.
(욘 4:10-1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요나는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사랑하시는 줄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우상을 따르는 이방민족이라면 진멸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사랑하신다는 더 깊은 뜻을 이 니느웨성의 사건을 통하여 계시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큰 구원(이방인의 구원)
신약에도 이와 비슷한 선교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 하였삽나이다 한 대,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행 10:13-15)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성령세례를 받고 전도에 힘쓸 때 일어난 일 중에 하나입니다. 그 당시 고넬료라는 이방인 백부장이 있었는데, 그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있던 욥바(Joppa=Jaffa)로부터 고넬료가 있는 가이사랴(Caesarea)까지는 약 70km의 길입니다. 이 거리는 보통 장정 걸음으로 적어도 18시간 정도는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유대인들은 그들 외에 다른 민족, 즉 이방인들을 상종하지 못할 타락한 족속으로 생각하던 때였습니다. 그런 유대인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던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환상을 통하여 이방인을 주님께서는 깨끗하게 생각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을 속되고 타락했다고 복음의 은혜에서 제외시키지 말고, 이방인 선교에 나서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실제로 이 환상 후에 천사의 지시를 받은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을 방문하여 설교를 하였고, 그 말씀을 듣는 그 집 모든 사람들이 성령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예루살렘회의에서 이방인선교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됩니다.
요나도 이와 같은 경우입니다. 요나도 이방인들이 사는 니느웨성에 가서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그 당시 유대인의 정서로 볼 때, 절대로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죽으면 죽었지 어떻게 그 속되고 타락한 이방인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는가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반응은 그로부터 700여년이 지난 베드로에게도 똑같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 하였삽나이다.” 한 대’
그러나 요나 때도 그랬었고, 베드로 때도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이 품은 편협한 생각을 바로잡아 주셨던 것입니다.
요나서에 기록된 요나의 선교기록은 예수님께서 표적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일컬으셨습니다. 그만큼 이 요나의 선교에 대한 기록은 예수님께서 행하실 구속사역의 예표로서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즉 이방인 선교가 이루어져야 함을 예표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한 이방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역사 속에 나타나게 함으로써, 지금 이 시대에도 회개하는 만민을 구원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전하셨던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니느웨의 구원사건과 같은 만민구속사의 예표가 아닌 하나님의 결론적 작정하심을 실제로 이 땅에서 실천해 보이셨던 것입니다(그림자가 아니라 실체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저와 여러분은 이렇게 요나서를 통하여,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 베드로를 통하여 분명히 말씀하시고, 구원의 증거를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들 이방인들도 회개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예수님의 큰 구원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손창건 전도자(가정공동체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