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특집
21세기 기독교 인간교육의 과제로서 양심교육(1)
| 목 차 1. 들어가는 말 2. 양심의 의미 1) 양심의 개념 2) 양심의 정의 3. 양심의 기능과 종류 4. 양심의 도덕의식 5. 신앙과 양심 6. 기독교교육의 과제로서의 양심교육 7. 나가는 말 |
1. 들어가는 말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고대 그리스시대 이래로 다양하게 논의되어 왔다. 인간이란 본래 언어를 가진 존재로서 자기 동료와 함께 유용한 것과 해로운 것, 선과 악에 대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가운데 자아를 논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인간이다. 이 자아는 한편으로 인간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사고하고 파악하면서 자신을 세계 이해로부터 규정성을 가진다. 동시에 자신이 다른 동료들과 다름을 인식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자아는 자신을 보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공유하는 자아 자체이지만, 반복될 수 없는 고유한 특성을 가진 자기 자신의 합목적성을 가진 인간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인간이해는 개별과학들과 더불어 교육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이고 해석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전체 본질 속에서 개별 현상들을 탐구하는 의미를 가진다. 동시에 인간은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 종교와 교육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기독교 인간교육은 성경적인 인간이해에 근거하여 삶의 세계를 형성하는 요인으로서 양심교육의 당위성이 강조된다. 기독교교육의 인간이해는 기독교교육의 핵심으로써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교육의 체계, 목적들 그리고 이 목적을 위한 교육방법의 근원이다. 바른 인간이해로부터 출발하여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고자 하는 양심교육은 이 시대에 새롭게 접근해야 하는 교육적인 과제이다.
특히 불확실한 사회현상 속에서 기독교 인간교육은 인간 소외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로서 인간을 의롭고,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시는 하나님의 교육 안에서 논의되어야한다. 하나님께서 나와 내 이웃을 왜 자기의 형상으로 만드셨으며? 인간이 인간이기 위하여 왜 하나님의 교육을 필요로 하는지 인간본질의 교육적인 당위성을 규명해야 한다.
본 연구에서는 기독교 인간교육의 과제로서 양심교육의 현상들 즉 기독교 인간교육과 양심의 의미, 양심의 기능과 종류, 신앙과 양심 그리고 양심이 기독교교육의 과제로서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 필요성과 가능성을 논의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한국 기독교교육학계에 전혀 논의되지 않았던 양심교육의 테마가 이 논문을 통하여 기독교교육학계에 새로운 지평을 확대하고 소외되어진 인간교육에 새로운 희망의 방향성으로 제시되기를 바란다.
2. 양심의 의미
1) 양심의 개념
성경에는 ‘양심’이란 용어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양심의 가책’, ‘착한 양심’, ‘깨끗한 양심’, ‘청결한 양심’, ‘화인 맞은 양심’, ‘더러운 양심’등의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양심은 ‘Conscience’인데 이는 라틴어의 ‘Conscientia’로부터 유래되었다. 접두어 ‘con’은 “함께”라는 의미가 있으며, scientia는 동사 scire에서 파생된 언어로 “알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개념은 “함께 알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양심은 ‘con’과 ‘science’의 합성어로서 그 어원은 각각 ‘con’과 ‘scientia’이다. 즉 함께 알고, 함께 생각하고 합의에 의해서 되어지는 계약(Bilateral Agreement)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의 양심은 좋건 나쁘건 검사와 변호사의 역할을 동시에 의미하기도 하고 또한 고발과 변명(변호)을 동시에 행하는 모순성을 지닌 불완전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때로는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의 혼란을 초래할 수 도 있다.
양심이란 단어의 어원은 “함께 안다”(Know with)는 뜻을 가진 라틴어 동사에서 파생되었는데, 이 라틴어는 ‘Conscientia’, 희랍어 ‘Syneidesis’, 노르웨이어 ‘Samvite’ 그리고 스웨덴어는 ‘Samvete’인데 “함께 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함께 안다”의 의미는 누구와 함께 알며, 누구에게 동의한다는 뜻인가? 누구와 더불어 본다는 말인가? 그것은 하나님께 즉, 양심은 옳고 그름에 관하여 하나님께 동의한다는 뜻이다. 이 언어는 또한 우리의 전통이나 교육, 조건, 환경 및 문화에 동의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노르웨이의 신학자 O. 할레스비는 “양심이란 개념은 거룩하고 초인간적인 어떤 법에 대한 자각”이라고 말한다. 양심은 우리로 하여금 양심을 통하여 깨달은 마땅히 따라야 하는 거룩하고 초인간적인 법을 자유롭고 강요됨이 없이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처럼 양심은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기초가 된다. 동시에 양심은 본능이나 동물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게 하는 내적 충동과는 다르다.
우리 삶에 있어서 양심이 함께 있다는 것은 인간 자신의 의지나 이성보다는 더 높은 신적인 의지로서의 인간을 다스리고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법칙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양심이 하나님의 의지와 함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심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를 물어보는 개념이다.
2) 양심의 정의
양심은 모든 인간에게 천부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속성으로서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고자 하는 본능 또는 선악을 판단하는 본능적 속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양심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양심은 3가지 관점에서 정의하고 있다. 첫째로 양심을 이성의 한 속성, 즉 이성의 실천적 기능이로고 보는 관점, 둘째로 양심을 하나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특수한 기능이 아니라 인간의 지성과, 의지와 전인적의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보는 관점, 셋째로 양심을 이성(의지, 느낌)과 구별되는 독립적 속성으로 보는 관점이다.
두 번째 관점은 양심을 이성과 완전히 독립된 어떤 속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작용에 의해서 생성된 결과물로 보기 때문에 결국에는 야심을 이성의 한 기능, 즉 이성의 실천적 기능으로 보는 첫 번째 관점과 궁극적으로는 같은 입장이다.
(1) 양심을 이성의 한 기능으로 보는 관점
이 관점은 양심을 “하나님의 음성”, “내면의 음성”, “조용하고 작은 음성”등으로 이해하는 것을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하면서, 양심을 이성의 한 실용적 기능으로 본다.
양심은 이성과 지성의 한 기능으로서 행동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의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현상이다. 그러므로 양심은 지성 자체이며, 인간의 개별적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주는 지성의 특별한 기능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이 개인의 행동에 따라서, 그 행동이 선한 것이면 실천에 옮기고, 악한 것이면 실행하지 않도록 하는 이성의 실용적인 판단(the practical judgment of reason)이다.
이런 측면에서 양심은 이성과 동일시된다면, 이성이 잘못된 판단을 내릴 경우 행동에 실수 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양심의 판단이 곧 이성의 판단이며, 틀린 전체를 수용하거나 비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 냄으로 인하여 이성이 오류를 범할 수 있으므로 양심도 정확하거나 틀릴 수가 있다.
양심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실천적 이성이다. 이성은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데 작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작용을 한다.
더욱이 양심이 이성과 분리된 독특한 속성이 아니라, 이성의 한 기능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감정적 반응은 양심이 내린 도덕적 판단이 뒤따르는 것으로 보았다.
(2) 양심을 종합적 판단으로 보는 관점
토마스 아퀴나스, 프로이드, 융 등은 양심을 통합적 판단력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양심을 이성의 실천적 기능으로 보는 견해와 같다.
프로이드(Sigmund Freud)와 융(Carl Gustav Jung)은 양심은 신적 의지나 인권의 진정한 자기표현이 아니고, 인간이 사회 환경과 다른 영향에 의해 나타내는 반응으로 보았다. Freud는 양심이 자아(ego)와 함께 초자아(super-ego)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이 구성은 사회적 교육의 결과로 형성된 초자아, 즉 부모와 사회가 각자에게 규정된 규칙과 표준에 따라 살고 행동하도록 가르친 일체의 의무와 습관으로서 본능적인 원초적 자아의 이기적인 욕구충족을 억제하고 자기가 속해있는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으로 본다.
프로이드는 양심을 후천적으로 형성된 통합적 판단으로 이해한다. 융 역시 양심을 교육과 훈련의 결과물로 보며 결국 통합적 판단력으로 본다. 융은 인간 정신의 무의식적 부분이 개인적 무의식과 집단적 무의식으로 보았다. 인간은 성장해감에 따라서 개인적 무의식과 집단적 무의식에 차례로 부딪치게 되며, 이 과정을 통해서 인격의 새로운 중심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의식과 무의식의 접경지대에 나타나게 되는 자아(self)이다. 이 자아가 프로이드의 ego와 같은 역할을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는 인간의 이성은 사색적일뿐 아니라 실천적이므로, 인간에게는 사색적인 성품과 방황하는 실천적인 성품이 내재되어 있다. 아퀴나스는 이 실천적 성품을 양지양능(synderesis 선은 행하고 악은 피하도록 하는 성품)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성품이 도덕적 형성(moral formation)과정을 거쳐 행동을 위한 올바는 사고인 “신중함(prudence)”이라는 덕으로 발전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 양심은 이 신중함이 실제적인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지양능과 신중함 그리고 양심이 모두 본능적인 행동원칙들이며 이성의 실천적 기능들이다.
결국 인간의 행동들을 결정지어주는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모든 판단의 힘이 되는 이성(reason),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도록 해주는 내적 성품인 양지양능(synderesis), 덕성으로서의 신중함(Prudence), 외적 행동 원칙인 자연법(natural law), 초자연적이며 외적행동 원칙인 은혜로움(grace),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실제 결정을 내리는 힘으로서 양심(conscience)이다.
(3) 양심을 독립적 속성으로 보는 관점
유대교에 있어서 양심은 선천본능으로서 개인 내부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선을 행해야겠다고 느끼는 개인적 책임의식이다. 구약성경에서 양심(syneidesis)은 마음(또는 “뱃속”)과 “심장”이다. (시26:2, 렘11:20, 17:10, 20:12, 창20:5, 시편7:10, 24:4, 렘17:1, 31:33).
구약성경은 양심의 의미가 죄를 범한 사람에 대한 단죄 또는 올바르게 산 사람에 대한 칭찬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 : 창3:7-10, 동생을 죽인 가인 : 창4:9-14, 의인 욥의 행위 : 욥22:6, 시17:3, 26:2-3, 139:23-24).
이런 측면에서 구약에서 양심은 궁극적으로 각자의 행위를 질책하거나 칭찬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목소리로 이해된다.
바울은 그리스도 이전부터 그 시대의 철학과 윤리학에서 자주 사용되었던 (syneidesis)라는 말을 도입하여 사용하였다. 바울은 롬 2:14-15에서 양심이 이성과는 별개의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보편적 속성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양심이 각각의 행동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증인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롬2:15, 9:1, 고후1:12), 선행적 판단자와 후속적 판단과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고전8:7-13, 10:13-30, 딤전1:15-19, 행23:1, 히13:18, 벧전3:16-21, 행24:16, 딤전3:9, 딤후3:9, 디도서 1:15).
빌헬름 어네스트(Wilhelm Ernst)는 “양심은 단순한 이상이나 의지나 느낌 그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심저이며,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고 하나님에 의해서 자신을 궁극적으로 유지시켜가는 인간의 내밀한 중심”이라고 말한다.
패쉬케는 양심이 인위적인 산물이 아니라 원래부터 존재하는 내재적 속성이라고 본다. 즉 자연의 질서나 목적이나 하나님의 계획도 창조의 질서 안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와 그가 수행해야할 역할에 대하여 알게 되는 감각이 인간 안에 없다면 실현될 수 없다. 그렇게 때문에 양심 속에 들어있는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은 목적론적 특성을 지닌 세계의 질서와 하나님 안에 있다.
이러한 개념적 설명과 함께 양심이 일반적 지식이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인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람이 어떤 사물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이해하는 것을 “안다(scire)”고 하며, 여기에서 과학 또는 지식(scientia)이라는 개념이 나타났다. 그리고 더욱이 궁극적 심판자의 법정에서 자신의 죄를 감추지 못하도록 하며 또한 고발을 피하지 못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인식으로 양심(conscientia)이다.
인간을 하나님의 신성한 법정에 세우는 양심은 인간을 감시하기 위해서 어떤 비밀도 어둠 속에 묻혀있지 못하도록 관찰하고 검사하기 위해서 주어졌다.
이런 측면에서 양심이 이성의 한 기능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속성으로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능이라고 보았다. 양심의 기능은 하나님의 공의를 인식하고 인간의 행동을 감시하며 선을 행하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다음호에 계속)
한상진 교수(총신대 기독교교육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