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에서의 뒷담화
Hole 17 (슬럼프)
Par 3 Blue Red
거리 138m 108m
인덱스 12/30 15/33
주말 골퍼들이 주기적으로 겪는 것이 슬럼프일 것이다. 골프의 매력인지 치명적 극약인지 어떤 날은 잘 치다가도 다음 날 한껏 기대에 부풀어 가면 영락없이 죽 쑤다 오고 만다. 죽 쑤는 날이 몇 주 지나 몇 달째로 접어 들어가면 골프채 갖다 버리고 싶어진다. 한 달 이상 동반 파트너에게 계속 맥주를 산다고 하면 슬럼프에 빠졌구나! 솔직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슬럼프의 사전적 정의는 무엇일까? ‘슬럼프는 확실한 원인이 파악되지 않은 채 골프 경기에서 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저조한 상태 (부진, 침체)가 길게 계속되는 상태.’ 문제는 원인이 뭔지를 정확히 모른다는 얘기다. 신이 골퍼들에게 내린 저주는 소위 퍼팅할 때 발생하는 입스(YIPS)나 뜬금없이 바나나킥을 하는 생크(shanks)이다. 입스나 생크는 문제가 분명하여 해결책을 모색하면 되지만 슬럼프는 원인을 모르니 대책이 있을 리 만무하다.
슬럼프, 내 사전에 지워버리고 싶은 단어이지만, 잊을 만 하면 실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은근슬쩍 올라오니 정말 죽을 맛이다. 명색이 싱글 핸디캡이지만 막상 라운딩해 보면 보기플레이어보다 결과가 못할 경우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불행히도 쥐구멍 있는 골프장은 가 보질 못했다.
‘싱글도 별것 아니네’는 그나마 양반이다. ‘프로샵가서 핸디캡 확인해야겠네’ 같은 도발적 구찌는 치명타다.
차라리 포기하고 얼른 맥주 한잔해서 스트레스를 조금이나 풀어야 할텐데. 클럽 하우스에서 더 멀어지는 17번 홀로 걸어가는 것은 지옥의 문으로 향하는 것 같다.
그린까지는 138m. 그린 앞에 워터 해저드가 있기는 하지만, 6번 아이언으로 힘만 조금 빼면 쉽게 온그린할 수 있는 홀이다. 슬럼프에 빠진 날에는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어깨에 힘만 빡 들어가니 역시나 탑볼. 그린 앞 연못에 애처롭게 빠져버린다. 이런 날은 티샷도 안 되고, 어프로치도 안 되고, 퍼팅도 안 되고 전문용어로 총체적 난국이다.
슬럼프에 빠져 헤매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라운딩 파트너로 함께 한 어르신이 ‘너무 잘 치려고 애쓰지 말고, 자신을 믿고 자연스럽게 치라’ 한 말씀해 주신다.
욕심이 날 때 마음을 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포자기 심정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을 갖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나도 그린에 볼을 올리지 못할 때가 있다.
나도 모든 홀에서 버디를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나는 내게 그럴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 타이거 우즈”
마이클 림
mcilim@hotmail.com
백세 인생이라는 재미있는 노래를 들으며, 이제는 백세까지 사는 것이 희귀한 일이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 환갑 전이라기보다는 왠지 50대 후반이라는 표현이 조금은 살갑게 들리는 나이다. 앞으로 40년을 더 산다는 것이 끔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뭔가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초조함을 느낀다. 골프는 내 인생의 후반전을 좀더 활기차게 보내기 위한 선택이고, 이 컬럼을 쓰는 것 역시 좀더 풍성한 삶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이전에 종교간의 대화 모임이었던 길벗 모임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모임이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인생의 도반, 좋은 길벗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돌같이 굳은 심장에 약간의 설렘이 속삭인다. 골프를 통한 새로운 도반, 길벗들이 인생 후반기를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Michael Lim, www.crazygolfdeals.com 한국 마켓팅 담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