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에서의 뒷담화
Hole 9 (화엄세계)
Par 4 Blue Red
거리 365m 327m
인덱스 6/23 5/24/43
골프 세계는 화엄세계 보다는 피튀기는 정글의 세계에 떠 가까울 것이다. 한국에서의 피곤한 일정을 마치고 추가로10시간의 장거리 비행을 하고 오전에 도착했다. 일요일마다 치는 골프 파트너들이 부킹 시간까지 바꿔가면서 꼭 라운딩해야 한다고 협박(?)이다. 시차 적응이 안될 때 맥주 얻어먹어야 한다는 원대한 포부를 강조한다. 에이 더러워서 맥주산다고 포기 상태로 라운딩에 임했다. 결과는 웬걸 핸디보다 2타나 줄여 1등을 했다. 신앙의 신비인지 부처님의 가피인지 기분은 무지 좋다. 벌레씹은 표정의 파트너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역시 ‘마음을 비워라’는 명언이다.
제주도에서 싱글 골퍼인 택시 기사가 하는 말이 골프하려면 최소한 10명이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몇몇은 사정이 있어 함께 라운딩 못하기 때문이다. 여러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한국이 여간 부럽지가 않다. 꼭 4명이 라운딩해야 하는 한국에 비해 호주는 골프 천국이다. 부킹없이도 혼자 칠 수도 있으니 한국 골퍼들은 상상이 안 될 것이다. 문제는 재미도 없지만 간혹 외롭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마음에 맞는 친구 4명 맞추어 라운딩하기가 호주에서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인정머리없는 이런 골프 파트너와 라운딩을 해야하나 자괴감도 들지만, 그나마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파트너들이다. 가끔은 맥주도 사줘야 웬수같은 파트너들과도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를 선택할 범위가 좁은 호주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연이 더욱 소중해진다.
골프 세계를 피뛰기는 정글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화엄세계인 것 같다. 골프장에서 왠 생뚱맞은 불교 얘긴가 하겠지만 화엄이란 표현이 골프세계에 더 잘 어울린다.
대승불교에서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를 화엄세계라고 표현한다. 화엄은 산스크리트어 ‘간다뷔하’라는 단어를 의역한 말이다. ‘간다뷔하라’는 말은 온갖 꽃들을 의미하는 ‘간다’와 화려한 수식을 의미하는 ‘뷔하’로 구성되었다. 그래서 ‘간다’는 꽃을 의미하는 ‘화(華)’로 ‘뷔하’는 장관을 의미하는 ‘엄(嚴)’이라는 말이 탄생되었다.
화엄세계란 수많은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있는 장관의 모습이다. 향기가 나지 않는다고 나쁜 꽃이 아니고, 색깔이 탁하다고 무가치한 꽃이 아니다. 할미꽃이 장미꽃을 부러워하지 않고, 개나리가 진달래를 시기하지 않는다.
모든 꽃 (존재)들이 자기만의 가능성과 삶을 긍정하며 만개하는 세계. 각각의 꽃은 자기만의 자태와 향취의 주인공이다.
골프와 달리 거의 모든 운동은 적자 생존론처럼 신체적이 조건이 좋아야 잘 할 수 밖에 없다. 키가 작으면 농구는 하기 어렵고 뚱뚱하면 육상과 같이 스피드를 요하는 운동은 잘 하기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골프는 거의 모든 신체적 결함(?)을 극복할 수 있다.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한국 여자 선수들만 보더라도 모든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고 있다. 키가 작은 땅콩 김미현, 좀 묵직한 신지애나 박인비 선수들이 신체적 조건이 훨씬 좋은 외국 선수들을 능가하고 있다.
신체적 조건과 더불어 스윙 폼도 제 각각이다. 물론 기본 스윙 메카니즘에는 충실하겠지만 신체적 핸디캡에 주눅들 필요는 전혀 없을 것 같다. 나보다 키는 10cm 작고 몸무게는 20kg 덜 나가는 친구는 스윙 폼도 팔자 스윙에 누가 봐도 이상하다. 하지만 드라이버 거리는 나보다 항상 20-30m 더 나간다. 물론 핸디도 더 낮고. 왜 보기도 어색한 팔자 스윙을 하느냐고 한번 물어보았는데 그 친구 왈 ‘키가 작은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팔자 스윙을 해야 아크가 더 커져 멀리 친다.’는 것이다.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고 극복하는 모습이 골프에서 볼 수 있는 화엄세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옛 고승이 매일 아침 자기 자신을 ‘주인공?’하고 부르고서는 다시 스스로 ‘예!’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깨어 있어야 한다? 예! 남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예!’
우리도 라운딩 할 때 마다 스스로를 ‘주인공?’ ‘예!’ , ‘다른 사람 스윙 부러워하지 마라?’ ‘예!’
마이클 림
mcilim@hotmail.com
백세 인생이라는 재미있는 노래를 들으며, 이제는 백세까지 사는 것이 희귀한 일이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 환갑 전이라기보다는 왠지 50대 후반이라는 표현이 조금은 살갑게 들리는 나이다. 앞으로 40년을 더 산다는 것이 끔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뭔가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초조함을 느낀다. 골프는 내 인생의 후반전을 좀더 활기차게 보내기 위한 선택이고, 이 컬럼을 쓰는 것 역시 좀더 풍성한 삶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이전에 종교간의 대화 모임이었던 길벗 모임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모임이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인생의 도반, 좋은 길벗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돌같이 굳은 심장에 약간의 설렘이 속삭인다. 골프를 통한 새로운 도반, 길벗들이 인생 후반기를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Michael Lim, www.crazygolfdeals.com 한국 마켓팅 담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