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용납(forbearing)과 용서(forgiveness) 2
앞서 말씀드린 용납과 용서의 차이는 이렇게 비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솥 밥을 먹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살고 있더라도 마음으로 그 사람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품고 있다면, 그것은 용납하였지만 용서하지는 않았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런 저런 일로 살면서 용서해야 할 일이 많은데, 실제로 용서를 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용서에 대한 어떤 사람의 실화를 감동적으로 듣게 되더라도, 그 용서의 사건에 대하여 우리들 각자는 각각 다르게 반응하고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즉 우리들이 그 사건의 실제인물이 아닌 이상 우리들의 불만과 분노는 여전히 우리들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느낌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용서라는 문제의 해결은 구원열차의 티켓이라고 할 수 있는 믿음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금은방에 보석을 가지고 가서 보석을 팔려고 한다고 가정합시다. 그때 우리는 보석을 금은방 주인에게 넘겨주고 그 값이 얼마인지를 기대하면서 기다리있게 됩니다. 그런데 이 순간 우리는 금은방 주인을 믿기 때문에 보석을 넘겨줍니다. 금은방 주인이 그 보석을 칸막이 뒤로 가져가서 감정하고 나올 때까지 우리들은 보석과 금은방 주인이 보이지 않아도 믿고 기다릴 것이고, 또한 거래가 성립되면 금은방 주인이 책정한 보석의 가치만큼 돈을 받아 그 금은방을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럴 경우 우리들은 금은방 주인을 믿고 기다리고, 돈은 다른 물건을 살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보석을 넘겨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는 필수적으로 금은방 주인과 돈의 가치를 믿는 믿음이 있어야 애지중지하던 보석을 넘겨주고 잊어버리는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는 우리의 용서라는 행위가 하나님께서 보상해 줄 상급을 믿는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lend)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눅 6:35)
원수를 사랑한다는 말이 용서 아닙니까? 그리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려주라는 말은 용납하기 위한 희생 아닌가요? 그렇게 용납하고 용서하면, 하나님께서 상급으로 보상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상급은 하나님의 양자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신다면 이 말씀도 믿어야 하며, 용서는 우리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득이 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하나님을 믿는다면 어떤 희생과 고통이 따를 지라도 용서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상급을 믿기 때문입니다. 즉 용서는 믿음의 증거인 것입니다. 이 용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의지를 사용하여 꼭 해야 한다고 명령하십니다(enjoined).
어떤 책을 보니까 이런 신부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신부가 자기 교구의 교인 한 명이 특별한 하나님의 은사를 받아서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정말 그런 은사를 받았는지를 알고 싶어서 신부가 그 교인을 만났습니다. 이 신부는 과거에 신학교 시절에 저지른 어떤 죄로 항상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신부: “하나님이 당신에게 정말 그런 은사를 주셨습니까?”
교인: “물론입니다.”
신부: “그러면 내가 젊은 날에 죄지은 일로 늘 마음이 괴로운데. 내가 무슨 죄를 범했는지 하나님께 물어볼 수 있겠습니까?”
교인: “기도해 보겠습니다.”
얼마 후에 신부가 다시 그를 만났습니다.
신부: “기도해 보셨습니까?”
교인: “기도해 보았습니다.”
신부: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가 옛날에 어떤 죄를 범했다고 말씀하십니까?”
이 교인이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잊어버리셨답니다. 신부님.”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얼마나 완벽하게 용서하시는가를 잘 보여 주는 예화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잊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벌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원수를 용서하는 것은 완전한 용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러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죽이고 있는 군병들을 향하여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 하셨던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원수를 무조건 용서하고 하나님께서도 그 원수에게 용서를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와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의 마음속에 분노를 일으키는 적들이 있다면, 그 적들을 조그만 유보도 없이 하나님께서 주실 상급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전적으로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동안 그 적들에게 품었던 적개심의 죄까지도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용서인 것입니다.
손창건 전도자(가정공동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