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2015년에는 이렇게 살게 하소서(1) 딤전 6:17-19
한국에 갓 부임한 외국인 선교사가 있었다. 본국에서 열심히 한국말을 배우고 익혔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국말은 서툴렀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도착하니 얼마 안 되어 그 선교사가 송구영신 예배시간에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친애하는 교우 짜매 여~러분! 오늘 이 밤이 지나면, 지난 년이 가고 새 년 이 옵니다. 우리는 오는 년 을 맞이함에 있어, 새 년 과 함께 보낼, 몸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듯, 간 년 을 과감하게 정리하여야 할 마음가짐 또한 중요합니다. 참으로 지난 년 들을 돌이켜 보면, 여러 가지 기대가 충만했던 년 도 있었지만, 어떤 년은 대단히 실망스럽기도 했으며. 어떤 년은 참 행복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조금 있으면 돌아올 새 년에 대해 우리 각자의 마음속은 과연, 이년은 어떤 년일까 하는 기대에 찬 호기심으로 꽉 차 있겠지요. 그러나,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년 저년 할 것 없이 모든 년은 하나님이 주신 년이란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조금 있으면 각자 맞이할 새 년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희망찬 한 년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지만 이 선교사의 말씀에 큰 의미가 있다. 간 년을 과감하게 정리하여야 할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나간 해는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2015년 신년예배를 드렸습니다. 왜 똑 같은 날을 반복하면서도 1월 1일은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는가? 그것은 이 날이 우리에게 새롭게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1월 1일은 의미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과거를 정리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주 예수 믿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것의 첫 번째 답이 바로 “자유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유함은 바로 지난 과거에 대하여 자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리가 되지 않으면 자유해질 수 없습니다. 작년 새해에 올 해에는 성경을 일독하겠다, 새벽기도를 일주일에 한 번은 나가겠다, 한 가지 선한 일을 하겠다, 일주일에 3일은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여름이 지나면서 아니 여름도 가기 전에 봄에 꽃놀이하면서 모든 것이 흐트러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12월까지 왔습니다. 만약에 1월 1일이 없었으면 우리는 또 다시 시작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을지 모름니다. 그러나 1월 1일이 있었기에 지난 과거를 덮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1월 1일이 있음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두 번째 의미는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12월 31일과 1월 1일이 어떤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월 1일에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왜 그런가? 다시 시작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새롭게 도전을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신년예배는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하는 결단의 예배입니다. 작년처럼 살지 않겠다고 하는 결단이며, 작년보다 올 해에 더 열심히 살겠다는 결단이 바로 신년예배입니다. 그래서 1월 1일은 의미 있는 날입니다. 물론 우리는 또 넘어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또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1월 1일이 다시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1월 1일이 다시 우리에게 온다는 것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작년에 1월 1일에 예배드렸던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품에 가셨습니다. 우리는 1월 1일 신년예배를 드리면서 올 한해가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본문은 아주 정확하게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올 한해에 어떻게 살 것인가? 겸손하게 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높이지 말라는 것은 바로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명한 말씀이냐면 부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죄이거나 문제가 전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유한 사람만이 가지는 유혹 즉 시험이 있습니다. 이것을 조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그 유혹은 마음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물질이 부유하다고 해서 마음이 높아져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높아집니다. 돈이라는 것이 묘한 속성이 있어서 물질과 인격을 동일시하게 된다. 돈을 가지면 모든 것이 다 용서가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자는 이쁘면 다 용서가 된다고 하고 남자는 돈이 많으면 다 용서가 된다고 하는 착각입니다. 그래서 부유하게 되면 자기의 말에 남들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돈으로 믿음을 사려고 하고 지위를 사려고 합니다. 섬기는 것도 기분이 좋으면 섬기고, 기분이 나쁘면 헌금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돈이 많아지고 부유해지면 수용성이 사라지고 순종이 사라집니다. 돈 많은 사람이 순종하는 것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남의 말 잘 안듣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이 자기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무엇이라고 하는가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17절)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어디입니까? 재물이 소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은 돈 만 있으면 모든 미래가 보장된 것처럼 생각합니다. 재물은 날라 가는 것입니다,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것에 소망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질에 소망을 두니까 모든 것이 물질이 기준이 됩니다. 어떤 일을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도 아니고 일도 아니고 관계도 아니고 오직 돈에 의해서 판단을 합니다. 왜? 물질에 소망을 두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하는가요?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라(17절)”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받은 물질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에게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누리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물질을 가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물질을 가지고 누리게 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수억의 돈이 있어도 누리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사람은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누리지 못하는 물질은 물질이 아니고 받은 복을 베풀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복은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은혜와 복은 누리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 차를 사면 노심초사를 합니다. 혹시 차가 찌그러지지는 않을까? 기스나 나지는 않을까?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차를 즐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음식점에서 발렛하면서 차를 맡기는 것이다. 맡길 때에 조금 상처 나겠지, 길가에 세워두면서 찌그러질 수도 있겠지하고 세워놓아야 합니다. 음식점에 차를 맡기고 음식 먹으면서 내 차가 상처가 나면 어떻게 할까 하고 그 생각만 하면 음식 맛없습니다. 이때에는 즐겨야 합니다. 차는 타고 다니는 것이지 내 안방에 고이고이 모셔두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의 복을 받았습니다. 은행에 무작정 쌓아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가지고 정말 즐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호에 계속>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