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경제윤리 연재기획6 : 자본/대부에 관한 기독교경제윤리
빚 문제,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나(3)
안식년의 빚 탕감, 전부인가 일부인가 유예인가
신명기 15:1~3에서는 “매 칠 년 끝에는 빚을 면제하여 주십시오. 면제 규례는 이러합니다. 누구든지 이웃에게 돈을 꾸어 준 사람은 그 빚을 면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면제를 선포하였기 때문에 이웃이나 동족에게 빚을 갚으라고 다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방 사람에게 준 빚은 갚으라고 할 수 있으나, 당신들의 동족에게 준 빚은 면제해 주어야 합니다(표준새번역)”고 말씀한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은 일곱 번째 안식년(면제년)에 탕감해 주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빚을 탕감해 주라는 유일한 구절인 신명기의 안식년(면제년) 빚 탕감 규례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서로 엇갈린다. 어떤 학자는 빚의 완전한 탕감이 아니라 안식년 1년 동안에 진 빚만을 탕감해 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또 어떤 학자는 안식년에는 빚을 유예해 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안식년에는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지 못하고 안식년이 끝나면 빚을 다시 받는다는 말이다.
안식년의 빚 탕감이 일부 탕감이나 빚의 유예라는 해석의 근거는 안식년에는 땅의 휴경으로 인해 소득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그 해에는 빚을 갚으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이방인에게는 부채 탕감을 해 주지 않은 것도 이방인은 안식년에도 경작을 하여 소득이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안식년에 빚을 모두 탕감해 주면 꾸고서도 갚지 않으려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나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안식년(면제년)의 부채 탕감이 빚 전부를 탕감해 주는 것이 아닌 안식년 1년간의 빚만을 탕감해 주거나 안식년 1년 동안만 빚 갚는 것을 유예해 주는 것이었다면 빚을 진 사람이 다시 자립하여 자신의 땅과 몸을 회복하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하루 빨리 자신의 땅과 몸을 회복하여 자유인이 되라고 말씀하는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에 맞지 않는다. 안식년의 빚 탕감이 안식년 1년간의 빚만을 탕감해 주거나 안식년 1년 동안 빚 갚는 걸 유예해 주었다는 주장은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에 비춰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안식년의 빚 탕감을 회피하기 위해 랍비 힐렐이 프로스불(Prosbul) 제도를 만든 점이나, 고고학적으로 채무자가 안식년을 통해 예상되는 이익을 단념한다는 조항이 담긴 빚 문서가 발견되는 점 등을 감안하면 안식년에 빚을 탕감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안식년의 빚 탕감은 1년간의 빚 탕감이나 빚의 유예가 아닌 전체 탕감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빚으로 인해 저당 잡힌 토지도 안식년에 회복
대천덕 신부는 <대천덕 신부가 말하는 토지와 경제정의>(홍성사)에서 안식년에는 토지를 경작해서는 안 되며 저당권을 포함한 부채는 탕감되고 품꾼과 종은 해방된다고 말한다. 또한 빚을 져서 토지를 저당 잡힌 경우 안식년에 저당권이 말소되지만 희년까지 대가를 받고 토지 사용권을 빌려 준 경우에는 남은 기간의 임대료를 친족이나 자신이 무르지 않는 한 희년이 되기 전 안식년에도 본래의 임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빚을 져서 저당 잡힌 토지는 안식년에 부채가 탕감됨으로써 다시 되돌아오지만 대가를 받고 희년까지 사용권을 판 토지는 희년까지 남은 값을 치르고 무르기를 하지 않는 한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식년에 부채가 탕감되었다는 말은 만약 토지가 저당 잡혔다면 저당 잡힌 토지가 다시 되돌아온다는 뜻이다.
하지만 율법에서는 토지나 집을 저당 잡을 수는 없고 기껏해야 겉옷을 저당 잡을 수 있다. 겉옷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이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그 사람의 인격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당 잡은 겉옷마저도 그날 저녁에 다시 되돌려 주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에겐 겉옷이 덮고 잘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출 22:25).
구약 이스라엘에서 빚을 지게 되는 사람은 희년까지 토지의 사용권을 다 팔고 난 후에도 생계가 어려워 다시 빚을 지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빚을 질 때 토지를 저당 잡을 수는 없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 이스라엘 율법에서는 토지를 영원히 팔 수 없고 토지 무르기나 희년을 통해 언젠가는 다시 토지가 회복되기 때문에 자본을 빌려 줄 때 토지를 저당 잡았다가 빚을 갚지 못하면 토지를 돌려주지 않고 영원히 뺏는 것은 율법이 금하는 죄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느헤미야 5:3~5은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 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을 보면 바벨론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에서는 율법을 어기고 땅과 집을 저당 잡으면서 돈과 곡식을 빌려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빚을 갚지 못하면 동족을 종으로 만들고 땅과 집, 자식을 빼앗았던 것으로 보인다. 느헤미야는 바로 이런 반(反) 희년적인 이스라엘의 죄악에 분노한 것으로 보인다.
욥기 24:2~4의 “어떤 사람은 땅의 경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고아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저당) 잡으며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서 학대 받는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는 말씀을 보면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가축도 저당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 열왕기하 4:1~7의 말씀을 보면 빚을 갚지 못해 채권자가 과부의 두 아들을 종으로 데려가려고 하자 엘리사가 기름을 만들어 주는 기적을 통해 그들을 구해 주는 장면을 보면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빚을 갚지 못하면 자식까지도 빼앗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식을 빼앗아 종으로 만드는 채권자에 대한 느헤미야의 질책과 빚으로 인해 자식이 종이 되는 것을 구해 준 엘리사의 행동,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사 50:1)”라는 말씀을 보면 빚을 갚지 못했을 때 채무자의 자식을 빼앗아 종으로 삼는 것은 성경이 금하는 악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구약성경에 담긴 빚에 대한 가르침은…
땅을 희년까지 팔지 않은 상태에서 빚을 져서 토지가 저당 잡혔다면 저당 잡힌 토지를 안식년에 되돌려 주기 전까지 채권자는 토지를 통해 임대 수익이나 토지의 생산물 같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저당 집힌 토지는 안식년에 부채가 탕감되면 되돌려 주는 것이 맞다. 그런데 저당 잡았던 토지를 안식년과 희년이 되어도 되돌려 주지 않는 것은 강탈이자 도둑질이며 동족을 종으로 만드는 죄악이다.
반면 희년까지 대가를 받고 사용권을 빌려 준 토지까지 남은 값을 물러 주지 않고 안식년에 되돌려 준다면 토지를 빌려 준 사람에게는 이익이고 빌린 사람에게는 불이익이다. 따라서 안식년에는 빚으로 인해 저당 잡힌 토지가 있다면 부채 탕감과 함께 되돌려 주는 것이 맞지만, 희년까지 대가를 받고 사용권을 팔아 버린 토지는 무르기를 하지 않으면 희년이 되기 전까지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구약성경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거나 불가피한 이유로 인해 희년까지 땅을 팔고 가난해진 사람에게는 다시 자립하여 땅과 몸을 회복할 수 있도록 꾸어 주고 이자를 받지 말 것과 함께 안식년(면제년)에는 갚을 수 없는 빚은 탕감해 주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반면 가난한 사람이 아닌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무역이나 상업, 사업을 하는 이방인(외국인)에게 빌려 준 자본에 대해서는 이자를 허용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구약성경에 담긴 빚에 대한 가르침은 ‘빈민(貧民) 무이자 대부’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의 탕감’, ‘생산적인 대부의 이자는 허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빚보증에 관해 주로 잠언에 많이 나오는 말씀들은 빚보증을 서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이다. 대부분 빚보증을 서지 말라는 것이다. 외경인 집회서에는 “네 능력 이상으로 보증을 서지 말며 보증을 섰으면 대신 갚을 각오를 하여라(집회서 8:13)”고 말한다. 성경 말씀은 전체적으로 빚보증을 서지 말거나 대신 갚을 각오를 하면서 능력 안에서 빚보증을 설 것을 말씀하고 있다.
빚에 따른 저당/담보에 관한 말씀들을 살펴보면 빚을 졌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겉옷 이외에 다른 것은 저당 잡을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채권자가 저당물을 취할 때도 채무자의 집에 들어가서 저당물을 취할 수 없고 채무자가 직접 저당물을 가지고 나와서 주어야 한다(신 24:10~13).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 강제로 끌어내는 차압이나 압류, 비인간적인 채권 추심 같은 것은 성경의 뜻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예수님께서는 빚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지금까지 교회는 빚에 대해 어떻게 가르쳐 왔는지, 빚에 관한 성경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현대사회에 실천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고영근 / 희년함께 사무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