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빌립보서 강해 1장 9-11절(2편)
9절)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절)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우리는 지난 주에, 1장 9절의 의미를 살펴 보았습니다. 또한 빌립보 교인들이 지극히 선한 것을 잘 분별할수 있도록 기도하는 10절의 내용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라는 10절 하반절의 말씀을 살펴 보겠습니다. 여기서 ‘진실하다’는 의미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로 “에이리크리네스”(εἰλικρινὴς) 입니다. 그 뜻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또는 ‘순수한’ 이라는 의미인데, 그 유래는 ‘햇빛에 드러낸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햇빛에 드러낸다’는 말이 어떻게 ‘순수한’ 이라는 뜻이 되었을까요? 신약 성경이 쓰여진 그 당시에 도자기나 주전자 혹은 그릇들을 판매하는 상인들 가운데, 정직하지 못한 상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금이 가거나 약간 흠이 있는 도자기나 그릇을 왁스로 바르고 덧칠을 해서 아무런 흠이 없는 물건처럼 파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들은 이런 물건들을 살때에 금이 갔거나 흠이 있는 물건인지 햇빛에 비추어 가려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물건의 순수한 상태가 햇빛에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글 번역은 “진실한”으로 번역하고 있고, KJV 성경은 “sincere” (“신실한”)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NIV 성경은 “pure” (“순수한”)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햇빛이 창문에 비취면 눈에 보이지 않던 먼지들도 숨김이 없이 드러나듯이 숨김이 없는 삶, 즉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투명한 삶이 바로 진실(순수)한 삶임을 의미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에서나 이웃간의 관계에서 이와같이 순수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할때에 이와같이 순수하고 진실해야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지도자나 평신도나 할 것 없이 세상 사람들로 부터 비난을 받고 욕을 먹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자들이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순수하고 못하고 진실하지 못한데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앙이 순수해야 합니다. 그럴때 사람들 앞에서도 진실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1장 10절의 ‘허물이 없이’란 말의 헬라어 원문을 보면 ‘아포스코포스’ (ἀπρόσκοπος)입니다. 그 뜻은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피해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행동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 생활도 교회안에서 다른 신자들의 신앙 생활에 걸림돌이 되거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해야합니다. 교회밖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는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허물이 없는 삶을 살아가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종종 부모들의 신앙 생활이 본이 되어 주지 못해서 자녀들의 신앙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를 다니는 부모들의 모습에서 신앙생활보다 돈과 세상적인 출세와 성공에 집착하는 모습을 자녀들이 보거나 느끼게 될때 신앙의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교회안에서 순종하고 헌신하는 모습으로, 또 교회 밖에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정을 나누는 모습으로, 그리고 가정의 어려움이 있을때 기도하고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신앙의 모습으로 자녀들에게 신앙의 모델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럴때 자녀들은 부모가 믿는 신앙을 떠나지 않고 자손 대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축복된 가정이 될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본문 1장 10절에 나오는 ‘진실함’ (‘순수함’)은 그리스도인들의 내적인 성품에서 나오는 선한 영향력이라면 ‘허물이 없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인간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외적인 열매요 선한 영향력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진실하고 허물이 없는 삶을 살아갈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1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의 열매”란 변화된 삶을 통해서 나타나는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의 열매요 행위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내적인 변화와 삶의 행위를 열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골로새서 1장 10절에서는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골로새 교인들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든 선한 일에 열매가 맺히기를 기도한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적인 기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선한 열매”는 본문 1장 11절의 “의의 열매”와 일맥 상통합니다.
뿐만 아니라, 야고보 3장 18절에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즉 ‘화평케 하는 것’도 의의 열매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여기서 화평케 하는자란 영어로 “Peacemakers” 즉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종종 교회안에는 트러블 메이커들이 있어서 다툼과 분쟁을 일으키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문제를 일으키는 트러블메이커들 (Troublemakers)이 아니라 미움과 다툼과 분쟁이 있는 곳에 평화를 심어주는 피스메이커들(Peacemakers)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신자들이 의의 열매를 거두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마 5:9 참조).
뿐만 아니라 ‘의의 열매’안에는 성령의 열매를 포함시킬수 있습니다 (갈 5:22-23절). 그래서 우리의 인격의 선한 열매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 살아갈때 맺어지는 열매들임을 알수 있습니다. 이러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야 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며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처럼 ‘의의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성령의 은혜로 맺게 되는 내적인 인격의 열매요, 동시에 외적인 선한 행위의 열매입니다. 이러한 열매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할때 맺게 되는 열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의 가지가 포도 나무에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듯이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요한복음 15장에서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안에 거한다는 말은 예수님의 사랑안에 거하고 예수님의 말씀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안에 거한다는 말은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의 열매가 가득한 삶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지식과 통찰력을 가지고 사랑을 실천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갈때 더 많은 열매들을 맺을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의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가장 좋은(옳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고 주님이 오실때까지 진실하고 허물이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때에 의의 열매가 가득한 삶이 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수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려 드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