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제23강 존경받는 사람 에바브로디도 (2편) <빌립보서 2:28-30>
28.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29.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존경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들로 부터, 교사는 학생들로부터, 그리고 국가 지도자들은 국민들로부터 존경 받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을 존경한 경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존경심은 타인에게 유익을 끼치고나 사랑을 베푼 헌신적인 삶을 살아간 그 댓가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바브로디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존경 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고 너희들을 대신하여 나를 섬기는 일에 헌신한 에바브로디도를 존귀하게 여기고 존경할 뿐만 아니라, 또 이와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경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의 배경을 보면,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에바브로디도에게 두 가지 사명을 맡겨서 사도 바울에게 보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빌립보 교회가 거둔 헌금을 바울에게 전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 18절을 보면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또 에바브로디도의 두번째 사명은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곁에 머물러 있으면서 바울의 친구가 되어주고 필요한 것들을 도와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30절 말씀을 보면 ‘그가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나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특별히 지난 시간에 함께 나눈 2장 25-27절의 내용을 보면,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함께 수고한 동역자요 군사였습니다.다시말해서, 에바브로디도는 복음안에서 바울의 형제가 되어 바울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가 되어서 함께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던중 병이 들어서 건강이 점점 악화되어서 결국에는 죽음의 위기에 이르렀지만, 에바브로디도의 헌신을 보시고 그를 긍휼히 여기셔서 죽을 병에서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사도 바울과 함께기도한 빌립보교인들에게 큰 기쁨과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앞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제 본문의 내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본문2장29절에서 “존귀히 여기다”는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엔티모스”)을 보면, 말 그대로 ‘명예롭게 여기다’ 혹은 ‘고귀하게 여기다’ 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2장 30절에서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은것” 이라는 말의 헬라어 문장을 보면 ‘파라볼류오마이’라는 분사형 단어가 나오는데, 이‘파라볼류오마이’라는 단어는 ‘위험을 무릅쓰는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단어와 관련해서, 초대 교회시대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았던 기독교 신자들을 ‘파라볼라이’라고 불렀습니다. 특별히 고대 사회에서는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사는 지역들이 많았는데 바로 그런 지역에 가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병자들을 돌보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면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던 사람들이 ‘파라볼라이’ 라고 불리던 신자들이었습니다.
본문 30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와같이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그리스도의 일에 헌신하는 자들을 존경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일” 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대신하여 사도 바울에게 헌금을 전달하고 사도 바울의 친구가 되어 주면서 사도 바울이 필요로 하는 일들을 도와주고자 보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일을 여기서 ‘그리스도의 일’이라고 사도 바울은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 말씀은 복음을 전하는 일과 관계된 일들 뿐만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돕고 협력하는 모든 일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일’ 즉 ‘주의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0장40-42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사실 냉수 한그룻 대접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뜨거운 중동 지방의 날씨에 냉수 한그릇을 대접하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는 정성어린 친절의 행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것은 우리가 무언가 특별한 일을 해야만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들과 함께 협력하고 섬기는 모든 일들이 바로 주님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를 위해 이 땅에 세우신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여러분들의 작은 손길들 하나 하나가 바로 그리스도의 일입니다. 뿐만아니라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그들을 돕는 일들이 주님의 일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는 모든 일들이 바로 하나님께 하는 일이요 그래서 하나님께 상 받을 만한 그리스도의 일이라는 사실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바브로디오와 같이 또 그와 같은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 너무나 귀한 시대입니다. 이 시대에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던 ‘파라볼라이’ 와 같은 신자들이 더욱 많아 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러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깊이 존경하고 신뢰하는 사랑과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헌신과 사랑의 실천은 크고 위대한 일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이 땅에 세우신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작은 손길들 하나 하나가 바로 그리스도의 일이요, 주님의 이름으로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들이 주님의 일입니다. 그러한 사랑과 헌신의 삶 가운데 에바브로디와 같이 존경받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