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제36강 하나님의 평강(1) 빌 4:6-7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제가 호주에 처음와서 머물렀던 호주 할머니의 집 화장실의 정면 벽위에는, “Let the peace of God rule in your hearts”(하나님의 의 평호가 너희 마음을 다스리게 하라) 라는 골로새서 3장 15절의 말씀이 씌여 있었습니다. 인생의 시련을 만날때마다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지 위해서 늘 마음에 두었던 말씀이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줄수 없는 마음의 평화를 내가 너희에게 줄테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요14: 27). 오늘 본문 빌립보서 4장 6-7절은 이러한 하나님의 평화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 누릴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먼저 본문4장 6절을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우리가 염려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전제로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실 세상을 살면서 걱정을 안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때로는 밤잠을 설칠만큼 심각한 걱정을 할때가 있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잠시 머리를 스쳐가는 걱정거리들이 우리의 인생에 끊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걱정과 염려를 계속 마음에 품고 살아가면서 마음과 영혼이 병들어 가게 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사도 베드로는“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 7)”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글 성경은 ‘맡기다’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에필립토’ 즉 ‘던지다’는 더 강한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도 “Cast all your anxiety on him.” (당신의 모든 걱정 거리를 주님께 ‘던져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cf.마 6:25-30참조).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마치 갈릴리 호수에 일어나는 풍랑과 같이 뜻하지 않은 어려움들이 찾아올때도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요르단 계곡 깊숙한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지만 호수라고 하기에는 워낙 넓고 깊어서 갈릴리 바다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갈릴리 호수 주위에는 높은 산들이 둘러싸서 있어서 산 위의 찬 공기가 급속히 냉각되어 내려오면 예상치 못한 큰 파도와 돌풍이 갑작스럽게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수 호수를 건너가다가 갑자기 큰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우면서 우리가 죽게 되었으니 도와달라고 깨웁니다. 그때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으시며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하여졌습니다 (cf.막4: 38-39).
이처럼 우리가 인생의 큰 파도와 풍랑을 만나면 우리는 두려워하고 염려하면서 절망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가 부르짖어야 할것입니다. 그럴때에 파도와 풍랑을 잠잠케 하셨던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속에서 만나는 거친 풍랑을 잠잠하게 하실줄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빌립보서 4장 6절은 우리가 기도할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처해 있을때 어떻게 감사하면서 기도가 나올수 있습니까? 그게 과연 가능할수 있을까요? 그것은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문제를 알고 계시고, 하나님이 나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계시고, 하나님이 나를 어떤 상황속에서도 돌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 할수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과 하나님의 주권을 알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속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고, 그 결과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거룩한 자녀로 만들어 가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때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더 알아갈수록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클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할 수 있고 그 결과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본문 4장 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다시말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 할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모든 지각(νοῦν)에 뛰어난’ (ἡ ὑπερέχουσα πάντα νοῦν)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말은 영어 성경에서 번역하고 있는 것처럼 ‘transcends all understanding’ 즉 ‘우리의 모든 이해를 초월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바람직 합니다. 그 이유는 헬라어 “누스” (νοῦς)라는 단어가 ‘마음, 정신, 이해,지성등의 뜻이 있고, “휘펠레코” (ὑπερέχω)는 ‘지나치게(넘어서) 소유하다’ (ὑπε+ρέχω)는 합성에서 유래하여 ‘뛰어나다. 능가하다, 초월하다’등의 의미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는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평화라는 것입니다.
이 평화는 세상 사람들이 알수 없고 이해할수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들인 그리스도인들 만이 누릴수 있는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초월한 마음의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신 후, 항상 깨어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마음의 평화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평화는 본문 7절의 말씀과 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을때 누리게 되는 마음의 평화’입니다.
그러므로, 걱정과 염려가 찾아올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염려하는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때에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가 기록한 <신앙론>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지난 55년을 살아오는 동안 약 15년을 빼놓고는 기쁨이나 행복이나 안식을 알지 못하고 살았다. …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내 나이 55세, 나는 신앙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단순히 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진정한 안식을 발견했다.”
그리스도 안에 참된 평화가 있고 ‘하나님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불리는 성령안에 우리가 머물때 참 평화가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과 이해를 초월하는 평화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갈5: 22: 롬 14 :17).
한 청년이 외국에 나갈 기회가 생겨서 비행기를 타게 되었는데 바다 위를 통과할 때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장대같은 비가 비행기 창문을 부딛치는 소리를 듣던 이 청년은 스튜어디스를 불러서 자신의 불안함을 호소하였습니다. 그러자 스튜어디스는 웃으면서 “지금은 폭풍우를 뚫고 가지만 잠시 후 비행기가 고도를 높여 성층권으로 들어가면 비행기가 편안하게 갈 수 있으니 안심하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가 성층권으로 들어서자 고요하게 순항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마음의 성층권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안에 더 깊이 들어가고 기도 생활이 더 깊어질수록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성층권과 같은 영적인 세계로 진입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우리는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걱정과 염려가 자신도 모르게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염려와 걱정거리들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하여 성층권으로 들어갈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때 영적 대기권 안에서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참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살게 될 줄 믿습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