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칼럼
거룩한 질투심
인간은 누구나 시기와 질투의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 사전에 의하면 Jealousy 즉 ‘질투’는 ‘다른 사람이 성공하거나 잘되는 것에 대한 분한 마음입니다. 반면에, Envy즉 ‘시기’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나 잘되는 것에 대한 불만족스러운 감정, 혹은 그것을 갖고 싶은 마음’입니다.
시기와 질투라는 주제와 관련된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국의 위나라 왕이 초나라 왕에게 예쁜 처녀를 첩으로 주었습니다. 그러자 초나라 왕은 왕비보다 그 첩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왕비인 정유는 그것을 눈치 채고 그 젊은 첩에게 정성을 다해서 잘 대해주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집과 침구와 옷이며 단장품과 장신구까지 다 갖추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왕은 왕비가 그 애첩을 질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애첩을 가까이 하는 것을 알면서도 당신이 그 사람을 나보다 사랑하니 당신은 참으로 놀라운 여인이요.” 이렇게 왕의 신뢰를 확인한 왕비는 왕의 애첩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자네의 아름다운 모습을 아주 사랑한다네. 다만 자네 코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니 왕을 뵐 때 손으로 코를 가리는 것이 좋겠네.”
그 애첩은 왕비의 말을 믿고 그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애첩이 자기를 볼 때마다 코를 가리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어느 날 왕비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여보, 저 여인이 나를 볼 때마다 코를 가리는데 왜 그러는지 알고 있소?” 그러자 왕비가 대답했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만 차마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왕이 더 궁금해져서 대답을 재촉하자 왕비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황송하옵니다만 그것은 폐하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기가 싫어서 그러한 줄로 아옵니다.” 왕은 그 말을 듣자 마자 그 말을 사실로 믿고 너무나 화가 나서 그 애첩의 코를 당장 잘라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시기심과 질투심의 불이 인간의 마음속에 붙으면 한 사람을 소리없이 죽이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이러한 시기와 질투의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로 인해서 가정이 깨어지거나 인간 관계가 깨어지거나 공동체가 파괴되기도 합니다. 성경에도 이러한 사건들이 등장합니다.
요셉의 이복 형제들이 요셉을 시기해서 종으로 팔아버린 사건이 그렇습니다. 또 다윗이 블레셋의 용장 골리앗을 물리치고 돌아올 때 백성들이 사울왕보다 다윗을 더 높이자 사울왕은 그때부터 다윗을 시기하고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던 사건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시기와 질투의 감정은 본능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다만 그 감정을 우리가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서 악을 행할 수도 있고, 반대로 창조적으로 사용해서 자기 성숙과 자기 발전의 토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감정까지도 구원의 계획을 위해서 사용하십니다.
로마서 11장 13-14절의 말씀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Envy)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롬 11:13-14절)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변화된 모습을 보고 유대인들이 시기심이 생겨서 다시 복음에 관심을 갖고 되고 그 결과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하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우리가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지 않으면 전도의 열매를 맺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변화된 그 모습을 보고 질투심을 느낀 세상사람들이 예수님께 다시 돌아오게 되는 역사들이 있어야합니다.
내 안예 계신 예수 그리스도을 인하여 세상 사람이 질투를 느끼며, 신앙의 형제 자매들이 거룩한 질투심을 느끼게 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