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42-1)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제7장 바다를 건너면 맥 못 추는 영어 – 언어충격
1. 영어, 얼마나 잘해야 잘하는 건가?
영미지역에서 한국 유학생이 겪는 언어충격을 길게 설명하면 잔소리가 된다. 그만큼 영어 문제는 오래 거론돼 왔다. 그러나 직접 체험해 보지 않으면 그 실상을 잘 모른다고 보는 것이 맞다.
6개월간 교환학생으로 경제학을 공부하러 호주에 온 한 한국 대학생의 영어실력이 수준급이었다. 그런 그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장래 미국 학위 유학을 갈 계획이었는데, 현지에 와 잠간이나마 체험해보고 과연 가야 할지 망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멜번의 한 대학에서 인문분야 공부를 하는 한 한국 유학생은 튜토리얼 시간이 제일 큰 고역이라고 했다. 본 강의에서는 학생 수도 많아 가만히 듣기만 하면 되지만 튜토리얼에서는 교수와 학생들은 서로 마주보고 말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알아듣기도 힘들고, 몇 사람 안 되는 소그룹 속에서 한 두 시간씩 벙어리처럼 앉아 있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시드니에서 석사과정을 하는 다른 유학생은 교실에서 앉아 토의가 한창일 때 교수가 말을 걸어올까 봐 조마조마하다가 막상 끝날 때는 섭섭하더라고 토로했다.
토의 중심인 강의 중 현지 학생들은 교수에게 기탄없이 묻고 서로가 신이 나 대화를 나누는데 늘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나중에는 이들의 관심 밖이 되어버리고 만다.
한국에서는 해외에서 경험하는 영어 문제의 원인을 과거 국내에서의 부적절한 영어교육에 돌린다. 한국인 교사에 의한 문법 중심의 영어교육 말이다. 근년 한국에서 힘을 얻고 있는 원어민 교사에 의한 말하기 중심 영어교육은 이에 대한 대책이다.
그러나 영어사용 국가에서 자란 2세가 아니고, 한국에서 영어를 배운 사람은 어떤 식으로 배웠든 아주 드문 사례를 빼고는 현지에 나와서 모두 영어가 문제다. 정도 차이가 좀 있을 뿐이다. 쓰기와 읽기는 좀 나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 이유를 들면, 첫째로 현지에서 나와 만나게 되는 외국인은 한국의 대학 강의실이나 어학원에서 가르치거나 사귀던 원어민 영어교사와 친구들처럼 말하지 않는다. 그 영어는 교육받은 사람이 조심스럽게 쓴 정식영어, 기본영어였을 것이다.
그 영어는 물론 제대로 된 영어다. 문제는 해외 현지의 거리와 작업장에서 만나는 원어민들은 그렇게 문법에 맞게, 그리고 알아듣기 쉽게 또박또박 발음해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그 영어에는 자기들끼리 평소 주고받던 [속어/slang], [구어체 표현/colloquial expressions], 은어, 각 지역 문화에 따라 다른 비 공식영어가 많이 섞여 있다.
학교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강의를 하는 교수, 세미나에서 토론을 벌이는 현지 학생들이 쓰는 영어는 역시 대부분 구어체이며 공식영어 말고는 잘 못하는 유학생을 의식하여 조심스럽게 하는 영어가 아니다.
발음도 변화무쌍하다. 천천히 발음해 주면 얼마든지 알아들을 수 있지만 그렇게 안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지역 출신들은 [선생님]을 [생님]으로 빨리 발음한다. 대부분 굴러가는 발음인 영어에서는 더 그렇다.
둘째로, 한국인이 해외에 나와 만나는 현지인들은 한국에서 대하던 미국인(또는 캐나다인, 호주인)과는 달리, 이쪽에서 그런대로 괜찮은 영어를 구사했을 때도 [sorry?]하면서 되묻는 때가 많다. 외국인과 접촉 경험이 없어 약간 다른 발음을 하면 못 알아듣거나, 자세히 귀를 기울이면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으나 그런 성의가 없다.
유학생으로 해외에 나오면 아쉬운 쪽은 언제나 이쪽이다. 우리말로 대화를 할 때도 상대방보다 유리한 입장이면 말이 편하게 되지만, 반대일 때는 그렇지 못하다. 그런 상황에서 저쪽이 얼른 못 알아들으면 대화하고 싶은 의욕과 자신감과 모두 없어진다. 그러니 외국에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참으로 힘들다. 사고를 당해 보면 금방 실감하게 된다.
영미인들은 대개 예의바르고 친절하지만 큰 도시에 가면 그렇지도 않다. 전화로 문의를 받는 현지인 비서는 영어가 약한 외국인에게 간단히 설명해 주고 나서는 [thank you, thank you]를 연발한다. 전화를 그만 끊자는 신호인데 여간 달변 아니면 계속하기가 어렵다.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하고 나면 한국에서 영어를 잘 한다고 믿었던 사람도 거의 예외 없이 위축된다. 이민자를 많이 받는 영미국가의 주민들은 비 영어사용 국가에서 온 사람도 당연히 영어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때문에 외국 태생으로서 그만하면 괜찮은 영어를 해도 자기들처럼 말하지 못하면 영어를 못한다고 치부해버리고 만다. 이민자들이 자신의 교육수준이나 자격에 걸 맞는 직업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유학생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유학을 왔으면 자신들과 똑 같이 영어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우리 기준으로 볼 때 유학생으로서 그만하면 괜찮은데도 교수는 평가서에 [영어가 약하다/예컨대 limited in English]와 같은 말을 집어넣는다. 이 점은 우리와 크게 다르다. 우리는 외국인이 우리말을 조금만 할 줄 알면 잘 한다고 감탄한다. 더욱이 한국에 오는 외국 학생들은 자기 나라 말과 글로 공부하고 학위를 받아 가는 실정 아닌가.
그렇다면 영미국가에서 외국 유학생에게 요구되는 영어의 객관적이며 보편타당한 기준이 없는 게 문제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유학생에게 필요한 외국어를 공부와 관련하여 자기가 아는 지식과 사상을 최소한 표현할 수 있고, 새로 배워야할 지식과 사상을 읽고 들을 수 있는 실력이라고 규정한다면 그 기준은 명백해진다. 그런 영어가 바로 [학술영어/academic English]다. 논문과 보고서를 쓰거나 세미나에서 발표를 할 때 쓰는 영어가 여기에 속한다. 특정 직업과 관련하여 [활용되는 전문 또는 기능영어/professional, functional English]도 여기에 속한다.
그런 영어는 당연히 [정식영어/formal English]이다. 외국학생이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로 유학을 하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각종 영어실력 테스트 [미국의 TOFEL, 호주의 IELTS, 영국의 Cambridge Test, 한국의 TOEIC]는 그런 영어의 실력을 측정하는 것이다. 이 영어는 한국인이 노력하기에 따라서 정복할 수 있는 영어다.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는 학생이 나오지 않는가.
어느 학교 입학 조건에도 유학생은 현지인들이 쓰는 변화무상한 모든 영어를 알아듣는데 불편이 없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그러나 강의를 듣고 세미나에서 현지 학생들과 토론하며 교수와 의논하기 위하여 대화를 할 때는 그게 아니다. 이것은 영어사용 국가에 나가 있는 아시아 학생들이 불필요하게 견뎌야 하는 큰 부담과 고충이다. 한국에서 토플이나 토익 시험 내용을 회화 중심으로 바꾼다 해도 별로 달라질 게 없다. 그 점수가 좋다고 해도 현지 대학에서의 강의를 듣는데 어려움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 문제는 유학을 받는 나라와 보내는 나라의 국제교육분야 전문인, 실무 담당자간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영역이지만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다. 유학을 보내는 쪽에서 아무런 움직이나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 또한 유학은 아직도 셀러스 마켓이고 한국에는 유학정책이 없다는 또 한가지 증거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karckim@optusnet.com.au
Blog: blog.daum.net/samokim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