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58)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제9장 동과 서, 어떻게 다른가? – 문화충격
14. 편지로 해결하는 사회
사회가 선진화 될수록 일처리는 말로가 아니라 글로 하게 된다. 먼저 정확성을 기하고 기록을 남겨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계약이라면 더 말할 것 없다. 영미사회에서 변호사는 자기 고객이나 상대 변호사와의 대화를 말보다 편지로 한다. 분쟁 소지가 있는 사항을 말로 한다면 자칫 감정이 개입되어 언쟁으로 발전할 수 있고, 소송으로 이어질 경우에 대비 기록으로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주거 관련 이웃과 일어나는 작은 분쟁도 한쪽이 관활 구청 (호주, 영국은 카은슬, 타운 홀, 카운티 홀. 미국은 시티 홀, 카운티 홀 등)에 편지를 써 해결하는 게 보통이다. 대부분의 민원도 편지와 함께 서류를 받거나 보내며 하는 게 원칙이다. 그래서 인지 이 사회의 전문인들은 말할 것 없고 일반인들도 [실무 편지/business letter]를 요령 있게 잘 쓴다.
조직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의사소통이 주로 [메모/memorandum]라는 회람(요즘은 이메일을 더)을 통하여 이뤄지므로, 매니저들은 대개 글을 잘 쓴다. 그런 능력이 없거나 성의가 없는 사람은 진급을 안하거나 못한다. 교수들은 더 그렇다. 1970년대 초 미국에서 공부할 때 노교수의 열의와 정력에 놀랐었다. 그는 10여명 학생들의 개별적 질문이나 용건에 대한 회신과 연락을 이들 각자에게 배정된 [서류함/pigeon hole]에 일일이 남겨 놓음으로써 하는 것 이었다.
대부분 영미 교수들이 한국 교수들보다는 많은 양의 편지를 쓴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해외 유학파 교수들이 늘고 인터넷이 사용이 일반화된 요즘은 이메일에 의한 교수와 학생 간 커뮤니케이션이 용이하겠지만 역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능력과 성의가 있어야 한다.
단체장이든 개인이든 영미인들은 정당한 편지에 대해서는 상대가 누구인지를 따지지 않고 회답을 잘해주는 편이다 (요즘은 살기가 각박해지면서 서양에서도 이런 좋은 관례가 퇴색하고는 있으나). 비서들은 외부에서 단체장 앞으로 온 편지에 답장하는 일을 먼저 한다. 유학생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이 점을 잘 이용해야 한다. 제7장 공부방법 가운데 영어 에세이 글쓰기에 대한 요령을 다뤘지만 그 요령은 실무 편지 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5. 기쁜 감정은 숨길 필요가 없다
서양인들이 우리보다 기쁨, 사랑, 놀라움 등의 감정을 공개적으로 잘 표출하는 편이다. 자녀나 친한 친구를 만날 때는 껴안으며 기쁨을 표시한다. 요즘 한국에서도 [안아드려요/Free Hugs] 운동이 벌어지고는 등 세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으나 아직은 아니다. 서양인들은 선물을 받으면 그 내용물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열어 보이며 호들갑을 떤다. 또 남의 집에서 음식 대접을 받으면 맛이 있다고 극구 칭찬을 한다.
동양사회에서는 이런 때 감정은 억제하는 것이 미덕이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약혼식, 결혼식 때 여자가 손님들 앞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이 보통이다. 너무 웃는다든가 행복감을 나타내는 것은 부적절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영미인들과는 달리 울분, 슬픔, 증오감, 불쾌감 등 감정은 참지 않고 나타낸다. 관공서에서 일이 마음대로 안 될 때, 기차가 연착하거나 고장 정차하게 되면 아우성을 치는 승객이 많다. 영미사회에서도 기차가 늦어서 30~40분씩 기다리는 일은 흔하지만, 신기하리만치 조용하다.
영미사회에서 한국인 어른이 가끔 서양인들 앞에서 얼굴을 붉히고 화를 내거나 초중고등학교 학생이 다른 서양인 학생을 때리는 사건이 생기는데 본래의 급한 성격에다 영어가 부자유스러워 그렇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영미사람들의 장례식에 가, 상주측이 손님들 앞에서 목 놓고 우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죽은 아들의 장례식에 온 손님들을 어머니가 침착하게 커피 대접하는 것을 봤다. 그렇다고 슬픔이 덜 하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결국 영미사람들은 긍정적인 일에, 한국 사람들은 부정적인 일에 더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아닌가 한다.
남의 집에 가 어린이는 물론, 개를 보면 예뻐하고 호감을 표시하는 게 예의인 것 같다. 무표정과 침묵에 익숙한 동양인에게 어려운 일인데, 그렇게 하면 서양인들과 가까워지기 어렵다.
유학생들이 영미인들 집에 민박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다. 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주인집 아이들과 놀아 주는 정도의 성의만 보여도 돈으로는 얻을 수 없는 호의를 받을 수도 있는데,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그러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유학생과 경험이 많은 교포의 이야기인데 새겨들을 만하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karckim@optusnet.com.au
Blog: blog.daum.net/samokim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