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79) _ 10월 26일
그리움 – 자유와 평화

오늘은 2020년 10월 26일 입니다. 지난해 2019년 10월 25일 ‘그리스 – 터키 인문학 여행’ 때 쓴 여행 일기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여기 그날의 일기를 잡기장으로 대신합니다.
2019. 10. 25(금) Crete – 하늘도 바다도 온통 푸른 세상에서 하루를 행복하게 지냈다.
나는, 우리는, 여행을 통하여 그를 만나고, 그녀를 만나고, 또 그것을 만난다. 보는 것과 만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보는 것은 그가, 그녀가, 그리고 그것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아니 그 무슨 반응을 보여도, 전혀 상관없이 내가, 내 생각, 내 입장, 내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만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나도 그와, 그녀와 그것을 보지만, 그와, 그녀와 그것 역시 나를 보아야, 우린 ‘만나게 된다’ 나는, 우리는, 그 때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인생이라는 이 여행을 통하여 서로가 서로를 만나야하고, 만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만남이란 meeting인가? 아니다! meeting이란 단순한 ‘접촉’ touch일 뿐이다. 진정한 만남이란 encountering이다. 부딪침이다. 나와 그가, 나와 그녀가, 나와 그것이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부딪칠 때, 생각과 사상과 인생이 부딪쳐, 교감하고, 마찰과 파열음을 낼 때, 우리는 ‘만나게 된다.’
우리는 어제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선생님, 플라톤선생님, 아리스토텔레스선생님을 비롯하여 디오게네스와 에피큐러스를 만났다. 아테네의 거리와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와 아레오파고에서, 그리고 숲과 거리와 언덕과 골짜기를 걸으면서, 살아있는 그들의 소리를 듣고, 나 또한 할 말을 건네면서, 하루를 행복하게 지냈다.
그런데 나는 오늘 또 한사람을 만났다. 니코스 카잔자키스! 베네치아 성채 높은 언덕을 찾아간 것은 이른 아침이다. 6시에 Anek에서 내린 우리는 멋지고 근사한 아침식사를 한 후, 제일 먼저 니코스 카잔자키스가 누워있는 언덕을 올랐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의 묘비에 쓰여 있는 Greek을 읽으면서, 많이 부끄러웠다. 진리를 향해, 거룩함과 아름다움을 찿아 한 평생을 달려온 한 선배 지식인을 만났다.
“오늘을 사는 내가 아는 것은, 누군가가 살아온 과거를 보고, 내가 살아가는 오늘을 살며, 또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하여 걸어가는 바로 이 하루다. 나는 오늘 그 자리에 서있다” _ 시드니 인문학회원 김용강
“What is Life? Life is the Peace. Peace means Carpe diem” _ James Kang from Sydney
“묘사하면 그림이 되고, 갈망하면 그리움이 된다.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 되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다” _ 이성열. 최부옥
니코스 카잔자키스를 찾아온 우리 인문학 친구들 중 몇 분이 아침을 먹은 호텔의 방명록에 남겨놓은 글을 읽으면서, 나는 더 이상 첨부할 말이 없었다. 그것이 내 글이었기 때문이다. 우린 오늘 모두 죽은 니코스 카잔자키스를 살아있는 모습으로 만난 후 언덕을 내려왔다. 사실 이젠 그냥 집으로 돌아가도 될 것 같다.
오전과 오후, 우리는 미노아 문명의 발상지였던 크노소스 궁전터와 고고학 박물관을 방문했다. 과도 있고 지나친 점도 있지만, Arthur Evans경을 생각하면서 역사란 무엇인가? 문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역사와 문명을 만들어온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한다. 탐욕? 투쟁? 죽고 죽이는 것? 파괴? 정복? 생존? 경쟁? 희생? 포기? 희망?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을 아울러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유다!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말이 맞다! 자유다! “인류의 역사는 영원한 자유의 저변 확대사다” 헤겔의 외침이 다시 귀전을 울린다. 물질로 부터의 자유! 욕망으로 부터의 자유! 당신으로 부터의 자유! 그리고 마침내는 모든 신들로 부터의 자유를 통하여 나 자신으로 부터 자유하는 것! 그것이다! 바로 이 자유를 향한 작은 몸부림들이 큰 문명과 더 큰 역사와 더더욱 큰 종교와 사상을 만들기도하고, 극복하기도 하면서 변증법적 전환을 거듭해 왔다.

10월 26일, 토요일 새벽 3시다. 배의 객실에서 일어나 씻고, 짐을 챙기고, 생각을 가다듬고, 오늘 생일을 마지하는 아들 현철이와 현명이와 밀리를 생각하며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어제를 유추하며 일기를 쓴다. 난생 처음 찿아온 크레타섬, 카잔자키스의 무덤과 묘비, 크노소스궁존터, 고고학의 의미, 성서고고학이 해야 할 일들, 한국교회와 한국신학의 현주소, 디도기념 교회, 그리고 좋은 인문학 친구들을 다시 생각하면서,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 그져 감사한 마음으로 또 하루를 시작한다.
평화, 평강, Peace를 기도하면서 새로운 날의 아침을 기다린다. 좋은 친구, 강성형선생이 크레타에다 써놓은 Peace는 무엇일까? 그는 Life에다는 아무런 관사를 붙이지 않으면서도 Peace에다는 정관사 The를 붙였다. Life is The Peace! 강선생은 무슨 평화를 그리워할까?
“인생은 바로 그 평화”라고 생각하는, “그 평화”가 마음과 육체, 정신과 종교, 정치와 경제, 너와 나,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평화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온누리에 평화가 임하기를 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자키스 (Nikos Kazantzakis, 1883 ~ 1957)
니코스 카잔자키스 (Nikos Kazantzakis, 그: Νίκος Καζαντζάκης, 1883년 2월 18일 ~ 1957년 10월 26일)는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동 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지형적 특성과 터키 지배하의 기독교인 박해 겪으며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스 민족주의 성향의 글을 썼으며, 나중에는 베르그송과 니체를 접하면서 한계에 도전하는 투쟁적 인간상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시적인 문체의 난해한 작품을 남겼다.

– 니코스 카잔자키스 (Nikos Kazantzakis)
.출생: 1883년 2월 18일, 그리스 헤라클리온
.사망: 1957년 10월 26일, 독일 프라이부르크
.매장: 1957년 11월 5일, 그리스 헤라클리온 Martinengo Bastion
.주요저서: 그리스인 조르바, 최후의 유혹, Christ Recrucified, Report to Greco
.배우자: Eleni Samiou (1945 ~ 1957년), 갈라테아 알렉시우 (1911 ~ 1926년)
니코스 카잔자키스 (Nikos Kazantzakis, 그: Νίκος Καζαντζάκης, 1883년 2월 18일 ~ 1957년 10월 26일)는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터키의 지배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고 이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시킨다.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를 거쳐 부처, 조르바에 이르기까지 사상적 영향을 고루 받았다. 그리스의 민족 시인 호메로스에 뿌리를 둔 그는 1902년 아테네의 법과대학에 진학한 후 그리스 본토 순례를 떠났다. 이를 통해 그는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업적은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임을 깨닫는다.
1908년 파리로 건너간 카잔자키스는, 경화된 메카니즘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를 창출하려 한 앙리 베르그송과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신의 자리를 대체하고 ‘초인’으로서 완성될 것을 주장한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었다. 또한 인식의 주체인 ‘나’와 인식의 객체인 세계를 하나로 아울러 절대 자유를 누리자는 불교의 사상은 그의 3단계 투쟁 중 마지막 단계를 성립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의 오랜 영혼의 편력과 투쟁은 그리스 정교회와 교황청으로부터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그의 대표작 ‘미칼레스 대장’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그리스인 조르바’가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파문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1951년, 56년 두 차례에 걸쳐 노벨 문학상 후보에 지명되는 등 세계적으로 그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다른 작품들로는 ‘오뒷세이아’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 ‘성 프란치스코’ ‘영혼의 자서전’ ‘동족 상잔’ 등이 있다.
– 문학세계

불교의 영향을 받기도 했으며 베르그송과 니체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자유에 대해서 탐구, 한계에 저항하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었다. 대다수의 작품에서 줄거리 전개보다는 사상의 흐름을 강조했으며, 1951년과 1956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되어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대표작으로는 후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최후의 유혹》과 《그리스인 조르바》,《오디세이아》(시)가 있다. 이중 소설 《미할리스 대장》과 《최후의 유혹》은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으로부터 신성모독을 이유로 파문당할 만큼 당시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니코스 카찬자키스는 교회로부터 반기독교도로 매도되는 탄압을 받았어도, 평생 자유와 하느님을 사랑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극작으로 1946년에 <카포디스토리아스>, 1959년에는 <배교자(背敎者) 율리우스>, 1962년에는 <메리사>가 각기 상연되었다.
– 남긴 말
생전에 미리 써놓은 묘비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
_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저작들

.소설
향연
토다 라바
돌의 정원 (1936년)
알렉산드로스 대왕 (1940년)
크노소스 궁전 (1940년)
그리스인 조르바(Βίος και πολιτεία του Αλέξη Ζορμπά, 1943년)
수난
미할리스 대장(Ο καπετάν Μιχάλης, 1953년)
최후의 유혹(Ο τελευταίος πειρασμός, 1951년)
성자 프란체스코
전쟁과 신부
.여행기
스페인 기행
지중해 기행
러시아 기행 (1940년)
모레아 기행
영국 기행
일본, 중국 기행
.서사시, 희곡, 자서전
오디세이아 (Οδύσσεια, 1938년)
붓다
소돔과 고모라
영혼의 자서전
카잔자스의 편지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