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 칼럼
유다서에 등장하는 가인, 발람 그리고 고라!<2> (유다서 1장)
유다는 예수님의 재림 전에 기독교에 있게 될 배교를 이야기하면서 그 배교의 예를 들어 첫 번째로 가인을 언급하였다.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은 그 두 번째 인물인 발람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발람이라고 하는 인물에 대해 어떤 이들은 타락한 하나님의 선지자로 또 다른 이들은 메소포타미아의 유명한 복술가라고 말한다. 나 역시도 그의 시작은 하나님의 선지자로 시작한 자가 아니라 베드로의 말처럼 거짓선지자로 시작된 자라고 생각한다(벧후 2:15,16).
발람이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앎이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가데스 반역 사건으로 인해 저주받은 출애굽 1세대가 죽고, 출애굽 2세대를 중심으로 한 정복 행군을 하여, 요단강 동편 지역을 점령하고 약속의 땅, 요단 서편 땅을 정복하기 위해 여리고 맞은편 모압 평지에 머무른다. 이런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놀란 약속의 땅 근경에 살고 있던 이방인들 사이에서는 우상의 힘이라도 빌어 이를 저지하려고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것이 민수기 22장에 나오는 모압 왕 발락과 술사 발람의 이야기이다. 당시 모압 왕 발락이 미디안 족속들과 결탁하여 당시 유명한 메소포타미아 복술가 발람을 초청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총 4번에 걸친 제사와 신탁을 시도한다. “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강 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민수기 22:5-6). 발락의 명령을 받은 모압과 미디안의 장로들이 복술의 예물을 가지고(민수기 22:7) 발람을 방문하게 된다. 그들이 발람을 찾아왔을 때 그는 하나님과 상의를 하겠다고 했고, 하나님은 발람에게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민 22장)라고 명하신다. 나귀의 입을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여호와께서는 또한 모압 왕이 의지하고자 하는 복술가 발람을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여호와이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이에 순종해서 발람은 발락의 사신들을 돌려보낸다. 그러나 발락은 굽히지 않고 며칠이 지나 더 많은 왕자들과 귀족들을 보내어 이스라엘을 저주해 주면 큰 명예와 부를 안겨주겠다는 약속을 거듭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지 말라는 명확한 지시를 기억한다면 지체 없이 다시금 발락의 사신들을 돌려보냈어야만 했건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민 22:19)고 사신들에게 말하고는 하나님께 다시 기도하는 모양새가 꼭 이러했다. ‘부귀와 영화를 원하오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뜻을 바꾸시고 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발람은 발락의 사신들을 따라 가고 싶었고 그들이 약속한 선물과 영광은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났던 것이다. 발람의 마음을 간파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욕심대로 내버려 두시게 된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기 보다 자신이 듣고 싶은대로 듣게 된 것이다.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귀족들과 함께 길을 나서게 되는데, 갑자기 여호와께서 진노하심으로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들고 그를 막아서서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발람은 보지 못했지만 뜻밖에도 나귀가 천사를 보고는 놀라 길을 벗어나 밭으로 피하게 되고, 밭으로 피한 나귀를 발람은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을 하는데 그래도 되지 않자 막대기로 때리고 ……. 결국 여호와께서 나귀의 입을 여시니 나귀가 사람의 말로 자신이 밭으로 피한 그 이유를 말하는 것이다(민 22:21-30). 이 때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그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그 앞에 엎드리는데, 칼을 든 천사가 왜 발람을 죽이려고 했는지에 대해 말하는데 “보라 네 길이 내 앞에 패역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민 22:32,33). 발람이 여호와 앞에서 응답받고 움직인 것 같았으나 ‘패역’하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짓을 저질렀다는 말이다. 그러한 그에게 하나님은 재차 경고의 말씀을 하신다. 함께 가더라도, “오로지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민수기 22:35) 하라는 지시를 내리신다. 결국 발람은 그 경고의 말씀을 지켰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듯하였다.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는 것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아나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하게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대를 막아 존귀하지 못하게 하셨도다”(민수기 24:10,11). 그러나 끝난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발람의 교훈을 전하는 자들이 있다.
민수기 25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싯딤에 머물러 있으면서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고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여 함께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게 함으로 바알브올(브올에서 섬긴 바알)에게 가담한 자가 되고 만다. 이 일에 진노하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여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매달게 하고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모든 자들을 죽이라 명령하신다. 뿐만 아니라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나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어떻게 모압의 여자들이 이스라엘 남성들을 유혹했을까? 어떻게 이스라엘 남성들의 발길을 돌려 매춘행위를 저지르게 하고 제사에 불러들여 그들의 가짜 신들에게 절을 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이스라엘의 파멸을 불러온 이런 사악한 계획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일까? 그 대답이 민수기 31:15-16 과 요한계시록 2:14에 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게 하셨는데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다섯 왕들은 죽였지만 부녀와 아이들 그리고 가축과 양떼 재물을 탈취하여 가지고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의 진에 이르러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 앞에 서게 된다. 이 때에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려두었느냐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민수기 31:15-16)고 천부장과 백부장을 야단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하다! 하나님의 엄한 명령 가운데 이스라엘백성을 저주 할 수 없었던 발람은 나중에 꾀를 내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 앞에서 범죄케 만들었던 것이다.
요한의 계시록에 보면 요한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는데 그 가운데 버가모교회에 보낸 편지에 보면,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요한계시록 2:14)고 했다. 발람은 하나님 편에 있었던 자가 아니었기에 그의 교훈이란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거짓말이었다. 그의 거짓교훈은 한마디로 우상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한 음행 하게하였다. 육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간음을 행하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일이 그 때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기독교 교회와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성경은 엄히 경고하고 있다. 구약성경에 보면 택한 백성 유대인에게 주신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이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신 5:7)는 것이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신약성경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이라고 말씀하였다. 그렇다! 지금 우리시대에도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남편과 아내를 자녀들을 돈과 명예와 건강과 성공을 그리고 목사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도록 발람의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벧후 2:1-3;14-16)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에 붙어있는 자가 복된 자라!
본문을 통하여 유다는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에게 화가 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베드로 역시도 이러한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며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 되어있다(벧후 2:17)고 경고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의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을 인하여 행하신 바를 너희가 목도하였거니와 바알브올을 좇은 모든 사람을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에서 진멸하셨으되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신 4:1-4). 아멘!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말씀 앞에 깨어 있는 자 되어 오직 여호와만을 우리의 마음에 품고 그를 사랑하며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자되어 주의 곁에 꼭 붙어있는 자의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용호 목사(시드니달란트교회, 호주나눔선교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