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 칼럼
죄의 결과로 사라진 사랑! (창 3:8-13)
‘사랑을 가지고 계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많은 요소가 ‘물’이라고 한다. 누구나 매일같이 기본적으로 몸의 건강을 지키고자 한다면 깨끗한 물을 자주 마셔한다. 마찬가지로 내 영혼의 건강 즉 항상 기뻐하는 것과 범사에 감사가 충만한 삶을 원한다면 그 기본에 물과 같은 사랑이 있어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뻐할 조건과 감사할 조건을 먼저 찾지만 그 조건이 내 삶의 기본 조건이 될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가난한 집안에, 혹은 고아로 불구자로 등등…. 그 조건을 기준으로 한다면 아마 어떤 사람은 평생 기뻐할 일도 감사할 조건도 없이 불평과 불만 가운데 살다가 죽을 것이다.
인간의 삶 가운데 사랑이 필수적으로 있어야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나가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있어야 할 그 사랑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모를 뿐만 아니라 과연 그 사랑을 어디가야 살 수 있는지,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말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인간 또한 하나님을 사랑해야한다.
구약성경 신명기 6장 4-9절에 보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찌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백성들에게만 요구하시는 계명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똑같이 요구하시는 계명이다. 놀랍지 아니한가! 대단한 그 어떤 것을 가르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 자신을 인간들이 사랑해야함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 인간을 지으시고 또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지를 알려주시고자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죄 가운데 죽음으로 끝나지 않게 하시려고 독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의 죗값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인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해 보여주셨다고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다(롬 5:8).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당시 바리새인 가운데 한 율법사와 대화를 하시게 되는데 이 율법사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6-40). 아직도 놀랍지 않는가! 모세를 통하여는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하나님의 요구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었다. 그렇다! 인간이 육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면서 목숨을 걸 일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일이다! 당신은 무엇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것이 곧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지 못하는 한 결코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항상 기뻐할 수도, 범사에 감사할 수도 또한 쉬지 않고 기도할 수도 없다.
아담이 잃어버린 것은 바로 그 사랑이었다.
성경 창세기에 보면, 인류 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이 지음 받을 때에 아내인 하와와는 시간적인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같은 시간에 동시에 지음 받은 것이 아니라, 창세기 2장에 보니 어느 날 하나님께서 사람인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으시고 아담을 돕는 배필로 여자인 하와를 짓고자 결정하시고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다. 그리고 깊이 잠자고 있는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을 채워 여자를 만드셨다. 그리고 그 여자를 아담에게 데리고 왔을 때에 아담은 본능적으로 그 여자가 자신의 분신과 같은 존재임을 알았는지 이러한 사랑의 세레나데를 외친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시간이 흘러 하와가 뱀을 통한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금지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만다. 죄를 범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동산나무 사이에 숨어있는 그들을 찾으시고 또한 물어보신다. 왜 선악과를 따먹었느냐고? 그 때 아담은 전혀 뜻밖의 대답을 한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세기 3:12). 이것이 아담의 대답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순종은 고사하고, 더 이상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자신의 잘못에 대해 하나님과 아내의 탓이라고 핑계하고 있는 것이다. 그 후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결과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었다.
죄의 형벌은 사랑 없는 삶이었다.
인간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증거는 곧 사랑 없는 삶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곧 내 이웃 사랑은 고사하고 마땅히 사랑해야할 사람조차도 사랑할 수 없는 모습이 되고 말았다. 사랑 없는 그 모습이 결국은 살인자의 모습이 되어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념과 사상과 종교의 이름으로 테러하고 죽이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잃은 아담과 하와의 첫 번째 아들 가인이 자신의 동생을 죽이고 인류 태초의 살인자가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구원자로 오셨다는 의미는 가난이나 약함이나 병에서의 구원이 아니라 바로 사랑 없는 삶에서의 구원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4, 35).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 5:38-48).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이용호 목사(시드니달란트교회, 호주나눔선교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