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에 거대 기독교왕국을 건설했다고 알려진 중세의 인물,사제왕 요한 / 프레스터 존 (Prester John)
사제왕 요한 / 프레스터 존 (Prester John, 라: Presbyter Johannes, 프레스비테르 요한네스)의 전설에 등장하는 전설 속의 왕으로 ‘사제왕 요한’이라고도 한다.
독실한 기독교도이며 아시아 및 아프리카 등 동방에 거대한 기독교 왕국을 건설했다고 알려진 중세의 인물이다. 특히 당대 유럽은 동방의 막강한 이슬람 세력에 의해 군사적, 정치적 위협을 받는 처지였기 때문에 그들의 너머에 존재하는 기독교 왕국에 대한 전설은 유럽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하나의 아이콘이었다.
항해왕자 엔리케가 아프리카 탐험대를 조직하고 후원한 이유 중의 하나는 아프리카에 존재한다던 프레스터 존의 기독교 왕국을 찾는 데 있었다.
○ 진실

1200년을 전후로, 유럽인들은 동방에서 이슬람 국가들을 격파하는 어떤 나라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십자군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던 유럽 진영은 오오 프레스터 존 오오를 외쳤으나, 몇십 년 뒤 유럽인들이 맞이한 것은 동쪽에서 이슬람 국가들을 정복하고 온 칭기즈 칸의 몽골 제국군이었다.
다만 먼 동방 몽골 초원에 기독교의 일파인 경교 (네스토리우스파)를 믿는 케레이트, 나이만 등의 부족이 있었던 건 사실이긴 했었다. 네스토리우스교는 유럽에선 이단 취급받고 있었고 몽골에서 현지화도 많이 진행되어 사제가 샤먼과 비슷해지는 등, 유럽인들이 그들을 만났다면 기독교라고 생각은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어쨌든 케레이트의 지배자 토오릴 칸은 유럽까지 그 소문이 퍼져서 다분히 기독교 세계 군주처럼 유럽 예술품에서 묘사되기도 했다. 그런데 칭기즈 칸은 그런 경교를 믿는 부족을 모두 격파하고 몽골 고원을 통일한 뒤 서방으로 진격을 시작했다.
몽골의 침입 이후 동방엔 기독교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져, 프레스터 존 전설의 중심지는 어느새 아프리카로 이동해 있었다. 이교도 세계(아랍 이슬람권) 건너편에 기독교 왕국이 있다는 것이 핵심이므로 방향을 남쪽으로 돌린 것인데, 이 역시 그 쪽에 에티오피아라는 기독교 왕국이 실제로 있었으므로 그저 환상만은 아니었다. 바스코 다 가마의 항해 목적에도 프레스터 존의 왕국을 찾는 것이 들어 있었는데, 당시 포르투갈 왕인 주앙 2세는 인도를 프레스터 존의 왕국으로 알고 친서까지 써서 보냈다. 또 놀라운 것은 인도에는 사도 토마스 (도마)가 전파했다는 기독교 종파가 있다.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더 높긴 하지만 인상적인 사실이다.
○ 전설들
전설이지만 역사적 사료에는 사제왕 요한에 대한 몇몇 기록이 있다.
.아프리카의 전통 기독교 왕국이었던 에티오피아를 프레스터 존의 국가로 여긴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중앙아시아의 경교를 믿던 유목민족들을 요한의 왕국으로 보고 기록한 것도 있다. 중앙아시아의 카라키타이(서요), 몽골 통일 이전의 나이만 부족과 케레이트 부족이 그 발상으로 여겨지고 있었으며, 실제 케레이트의 지배자였던 토오릴 칸이 프레스터 존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현대 중앙아시아 연구자들은 서요의 황제 야율대석을 프레스터 존의 원형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실제로 서요는 불교 중심의 국가기는 했지만 네스토리우스 교 신자 역시 포함하는 복잡한 다민족 국가였고, 화레즘과 셀주크 투르크 군대를 격파, 화레즘 왕조의 조공을 받는가 하면, 셀주크 투르크의 멸망에 이르는 단초 중 하나를 제공하였다. 이들은 모두 몽골 제국에 흡수당했으니 어떤 의미로 유럽을 침공한 몽골족은 프레스터 존의 전설을 반쯤은 실현한 셈이다.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에 중국 북부지역의 타타르족의 지도자가 프레스터 존에게 가축의 10분의 1을 진상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1165년에 익명의 저자가 사제왕 요한에 대해서 쓴 장문의 글이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며 이야기를 덧붙이는 과정에서 확장되었다. 그들이 가상의 수도자를 내세워 종교적 믿음을 상징, 비유로 표현한 것이지만 독자들에게 사실로 여겨졌다. 1177년에는 교황 알렉산드로 3세에게도 알려졌고 순례자들도 프레스터 존을 찾아나섰다.
그 글에 따르면 사제왕 요한에게 72명의 왕이 충성했고, 요한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왕국의 신도들을 보호해 생계를 책임지며, 3개의 인도를 지배했다. 그 중에는 성 토마스 사제가 묻힌 땅이 포함되어 있다. 해가 드는 성으로 이어지는 사막과 바벨탑 옆에 있는 바빌론의 계곡까지 영토라 했으며, 왕의 영토에는 모든 짐승이 살고 땅 위에는 꿀이 흐르고 젖이 흘러넘친다고 했다.
어떤 지역에는 사람을 해칠 만한 동물이 없거나 아예 힘을 쓰지 못하며, 이교도 거주지 중 어떤 곳에는 파이슨이라는 강이 있어 파라다이스에서 흘러나오는 이 강물에는 여러 진귀한 보석이 있다고 했다. 또한 동유럽에서 인도에 이르는 땅을 통치했고 그 곳에 사티로스, 그리핀, 피닉스 같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사제왕 요한은 보석, 황금으로 지은 밀폐된 궁전에 산다고 했다. 이 궁전은 난공불락이며 왕의 거처에는 마법의 거울이 있어 온 세계를 마음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궁전에는 7명의 왕, 60명의 공작, 360명의 백작을 포함하여 많은 수의 시종, 시녀들이 사제왕 요한의 시중을 든다. 그의 명령은 절대적이며 명령 한마디에 수천 마리의 전투 코끼리와 수십만의 기병들이 움직인다고 했다.
후추를 재배해 곡물, 옷감, 가족과 교환했다는 이야기, 덩치가 크고 머리가 두 개이면서 산양처럼 뿔이 달리고 램프처럼 밝게 빛나는 눈을 가진 뱀들이 울창한 숲속에 우글거린다는 이야기, 후추가 익을 때면 사람들은 왕겨, 지푸라기,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숲 주변에 둘러서 놓고 바람이 적절히 불 때 불을 놓아 뱀들이 숲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가두면 동굴 속에 있는 뱀을 제외한 나머지 뱀들은 무서운 불길 속에서 죽는다는 이야기 등의 내용도 나중에 보태졌다.
○ 프레스터 존 (Prester John)의 다른 말 ‘사제왕 요한’
사제왕 요한 (Presbyter Johannes) 전설은 중세 시대에 동방 (東方) 어딘가에 거대하고 풍요로운 기독교 왕국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프레스터 존 (Prester John)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제왕 요한의 이야기는 12세기 초반에서 17세기 초반까지 유럽에서 유행했다. 동방의 무슬림과 온갖 이교도들의 나라 너머에 있다는 이 기독교 왕국에 대한 이야기는 기록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중세 시대 유럽에서 유행하던 여러 판타지가 섞여있다. 전설에 따르면 사제왕 요한은 세 명의 동방 박사 중 한 명의 후손이며, 관대한 군주이며 덕을 갖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의 부유한 왕국은 청춘의 샘 같은 온갖 신기한 것들로 가득하며 에덴 동산에 맞닿아 있었다고 한다.
몽골이 사실상 공중분해되면서 아시아 지역에서 사제왕 요한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이제는 에티오피아가 사제왕 요한의 나라라는 말이 나왔다. 대항해 시대는 에티오피아의 사제왕 요한과 접촉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에티오피아가 16세기 초반 태평양으로 진출한 가톨릭 나라들을 추격한 오스만 제국이 지원하는 아달 술탄국과의 전쟁에서 무참히 패하자 결국 사제왕 요한에 대한 환상은 식민지 제국이 형성된 17세기 초반부터 역사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사제왕 요한 신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제왕 요한과 가톨릭 세계가 힘을 합해 이슬람을 협공하자는 것이었다. 에티오피아의 대패로 사제왕 요한의 신화는 사라졌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