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년 9월 9일, 로마제국 분열 후 서로마의 첫 번째 황제 호노리우스 (Flavius Honorius, 384 ~ 423) 출생
호노리우스 (384년 9월 9일 ~ 423년 8월 15일, 재위 395 ~ 423년)는 서로마 제국의 황제다. 테오도시우스 1세의 둘째 아들이었고,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아르카디우스의 동생이다.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된 후 서로마 제국의 공식적 첫 번째 황제다.

–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 (Flavius Honorius)
.존호: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 아우구스투스 (Imperator Caesar Flavius Honorius Augustus)
.출생: 384년 9월 9일, 콘스탄티노폴리스
.사망: 423년 8월 15일, 이탈리아
.본명: Flavius Honorius
.형제자매: 아르카디우스, 갈라 플라키디아
.배우자: Thermantia, 마리아 (398 ~ 407년)
.부모: 부) 테오도시우스 1세, 모) Aelia Flaccilla
* 서로마 제국의 황제
.재위: 395년 1월 17일 ~ 423년 8월 15일
.전임: 테오도시우스 1세 / 후임: 발렌티니아누스 3세
395년에 테오도시우스 1세가 죽자 로마 제국은 동서로 나뉘었고, 호노리우스는 이전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황제 호위대장이자 반달족 출신의 장군인 스틸리코의 보좌를 받았다. 치세 초기에 서고트족의 알라리크 1세의 침략을 받아 발칸 반도가 점령되었으나 스틸리코가 살로나에서 이를 격퇴하였다. 396년 알라리크가 다시 발칸을 침략해 아테네, 코린트, 엘레우시스 등을 불태웠고 397년 그리스 서해안 지대까지 진출했으나 스틸리코가 이를 다시 격퇴하고 산악 지대로 쫓아냈다. 뒤이어 북아프리카에서 코메스 길도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스틸리코가 보낸 군사들에게 진압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 잦은 야만족들의 침략으로 갈리아는 거의 포기된 상태였고 농민들이 점차 대농장의 농노가 되고 생산자들이 줄어들었으며 군대도 4세기 초기 내전 당시의 1/20도 안되는 규모로 줄어들어있었다.
401년 라이티아로 야만족이 쳐들어왔다가 스틸리코에게 격퇴되었고 뒤이어 동로마 제국에 의해 일라리쿰 사령관으로 임명된 알라리크가 아퀼레이아를 공격했다. 하지만 스틸리코가 402년 2월 폴렌초의 폴렌티아 평원에서 이를 격파하고 다시 발칸 반도로로 쫓아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결국 야만족의 침입이 계속되자 제국의 수도를 라벤나로 옮겼다.
406년 동고트족의 라다가이수스가 이끄는 40만 대군이 북이탈리아를 침공했으나 스틸리코가 피렌체와 피에솔레의 피에솔레 전투에서 이를 격퇴하고 대승을 거두었다. 뒤이어 407년 브리타니아에서 콘스탄티누스 3세를 자칭한 황제가 나타났다가 갈리아에서 살해되었다.
408년 호노리우스는 스틸리코가 알라리크와 내통하고 있다는 올림피우스의 모략으로 스틸리코를 처형해버렸고 그의 죽음으로 로마군의 정예병 태반이 알라리크에게로 망명해버려 결국 410년 알라리크가 로마를 함락시키고 약탈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로마 재건에 주력하며 야만족들이 갈리아, 히스파니아에서 권력 다툼에 빠진 사이 콘스탄티우스 3세를 등용해 공동 황제로 임명하고 일시적인 평화기를 이루었다.

○ 생애 및 활동
– 공동 즉위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와 함께 공동황제가 되었다가 395년 아버지가 죽자 단독 황제가 되었고, 그의 형 아르카디우스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 혼란한 재위기간
그의 치세 자체 기간 게르만족에게 연속으로 당했다.
즉위 직후부터 시작된 반달, 알라니, 고트 및 수에비족의 연속된 침략으로 로마 제국의 국방은 완전히 와해되어 버렸고, 409년에는 멀리 브리타니아에서 도움요청을 보냈는데도 군대가 없어서 도저히 보낼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이후 브리타니아 주둔군은 반란을 일으켜 콘스탄티누스 3세를 멋대로 황제를 추대한 다음 갈리아 지역으로 ‘철수’해 버렸다.
그러나 콘스탄티우스 3세에 의해 콘스탄티누스 3세의 세력은 격파되었고 이와 같은 수훈으로 콘스탄티우스 3세는 나중에 호노리우스의 여동생과 결혼하였으며, 1년도 안 돼서 병사했지만 어쨌든 공동황제까지 올라갔다.
이 사건으로 실질적으로 서로마 제국은 브리타니아 속주를 상실하였다.
– 통치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한 일은 없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즉위해서 휘둘렸고, 커서도 마찬가지라 즉위 초기부터 지켜주었던 장인이자 매형으로 근친혼인 스틸리코 장군을 408년에 쳐죽이고, 408년부터 410년까지 서고트의 대왕 알라리크가 로마를 포위하고 항복을 권유했는데도 자존심으로 버티다가 결국 410년 로마가 야탈 당하는 꼴을 맞이해야 했다.
그동안 황궁이 있던 라벤나에 숨어있었는데, 여차하면 아드리아 해를 통해 동로마로 도망치려고 했다고 한다.
이후 알라리크가 병으로 어이없이 죽고 나서 로마 시 재건에 힘을 쓰기도 했지만 여전히 통치에 관심없는 건 마찬가지였고, 그나마 활약했던 휘하 장수였던 콘스탄티우스 3세에게 누이 갈라 플라키디아를 시집보내는 한편 공동 황제 자리까지 줘서 그에게 통치와 전쟁을 떠넘긴다.
이후 콘스탄티우스가 급사하자 갈라 플라키디아와 그 자식들을 해치려 들었고 이에 경악한 갈라 플라키디아는 삼촌을 쏙 빼닯은 아들 발렌티니아누스와 딸 호노리아를 데리고 동로마로 도망친다.
그 뒤 2년도 지나지 않아 부종으로 사망. 향년 38세의 나이였다.
– 이교(Paganism) 금지 정책

호노리우스 황제는 아버지의 기독교 국교화를 계승했다.
415년에는 ‘이교’ 사원을 용도변경하는 것 및 이교의 희생제사에 바쳐진 적이 있던 모든 물건은 공적 공간에 발 붙이지 못하게 하는 법을 제정했다.
한 해 뒤 416년에는, 동방의 조카 테오도시우스 2세와 공동으로 제국 전체에서 ‘이교도’들의 공무담임권을 박탈했다.
423년에는 기존의 ‘이교’ 억제 법들을 재강조했고, 또한 ‘이교’의식을 거행한 죄로 체포됐던 사람들의 모든 재산을 압수하는 조치를 취했다.
– 독특한 취미
그의 취미는 닭을 기르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중 가장 사랑하는 닭에게 로마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알라리크가 로마 성문을 뚫고 들어오자 전령이 로마가 끝났다고 전했다.
이에 호노리우스는 슬피 울며 ‘우리 닭 로마가 죽다니’라고 했다.
전령이 그게 아니라 도시 로마가 함락당했다고 설명하자, 호노리우스는 안도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여담으로 호노리우스는 이때 서로마 제국의 실질적 수도인 라벤나에 있었다.
‘참으로 닭스러운 황제였다’라고 래리 고닉이 쓴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세계사”라는 책에서 서술했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